- 그림=김동성
- 차마 말할 수 없는 이별은 눈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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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그녀는 항구에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대불호텔에서 소아와 함께 잤다.
그녀들의 작별을 위한 콜랭의 배려였다. 소아는 여섯 살 때부터 궁에서 함께 살아온 그녀의 방 동무였다. 두 여인은 함께 관례를 치르고 함께 춤을 추었다. 소아는 생것방에 있고 그녀는 수방에 있었으나 잠자리는 또한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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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 다른 일을 할 수 없던 시절을 두 사람은 공유하고 있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서로 알고 있어야만 외연에 나가 태평무(太平舞)를 추어도 처용무(處容舞)와 무산향(舞山香)을 추어도 손 추임새와 발 디딤새가 안정이 되었고 귀주머니나 타래버선에 목단이나 거북을 수놓을 때에 손놀림이 틀리지 않았다.
어젯밤 소아는 리진(李眞)에게 흙과 꽃씨와 난 화분을 건네 주었다.
소아가 도성에서부터 품고 온 것이었다. 푸른 난을 보자 리진은 눈이 감겼다. 소아와 함께 수방에서 키워왔던 난이었다. 소아는 바다 건너 그의 나라에 가면 다른 화분에 분갈이를 하라고 일렀다. 분갈이할 때 사용할 흙을 따로 싸오기까지 했다. 두 달 후에나 다다를 바다 건너의 낯선 땅에 뿌리라며 궁궐에 피었던 꽃들의 씨앗도 챙겨주었다. 싹이 트고 꽃이 피면 저 보듯 보라, 하였다. 그녀가 자수를 놓던 수방 앞의 흙을 쌌으니 그 흙이 곧 궁의 흙이라고 말할 때 소아의 눈이 슬픔으로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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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 무렵에 소아는 은밀히 매듭지어진 무명보자기를 내밀었다.
그녀가 풀어보려 하니 소아가 만류했다. 그의 나라에 도착하면 그때 풀어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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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데?
대답을 할 듯하다가 소아는 입을 다물었다. 리진은 배에 짐을 실을 때 소아가 준 난과 흙과 꽃씨와 무명보자기를 따로 챙겨 선실에 실었다. 먼 바닷길에 소아의 기척이 함께 있으면 의지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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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는 새벽에 다시 도성의 궁으로 돌아간다, 하였다. 그런데 왜 아직 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저 인파 속에 서 있는 것인지. 저만큼 사람들 속에 서 있는 소아를 보자 리진은 그제야 조선을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녀의 눈 속에 담겨 있던 항구의 모든 풍경이 뒤로 사라졌다. 손을 흔들고 있는 소아의 모습만이 눈 속으로 가득 차오르다가 그녀의 시선이 항구로 들어서는 입구 흰 건물 앞에 꼼짝 않고 서 있는 남자에게 옮겨갔다. 모든 물체가 움직이는데, 소아마저 손을 흔드느라 움직이고 있는데 남자만이 꼼짝없이 붙박인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배가 다시 한 번 출항을 알리자 남자가 항구의 하얀 모래밭 앞으로 몇 걸음 나왔다.
그녀, 리진이 그 남자를 이제 발견했을 뿐 그 남자는 이른 새벽부터 항구에 나와 있었다. 동이 트기 전부터 바닷가에 나와 갯벌을 걸어 다녔다. 날이 밝고 그녀와 콜랭이 뭇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항구에 나타났을 때도, 그녀가 콜랭 곁에 서서 프랑스 선교사들과 작별을 나누며 목례를 할 때도, 인력거 옆의 수녀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성호를 그을 때도 그 남자는 그녀, 리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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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姜淵)인가?
바다 밑을 숨기고 있는 듯 침착하던 리진의 깊은 눈이 한순간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그가 왔는가. 그녀가 몸을 돌리려 했을 때 콜랭이 그녀의 목덜미에 손을 내려놓았다. 잠깐 균형을 잃고 허둥거리던 그녀의 흰 목덜미는 곧바로 세워지며 다시 긴장과 탄력을 되찾았다. 다만 그녀의 눈이 콜랭도 모르게 항구를 헤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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