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연재소설-1] 푸른 눈물

[신경숙 연재소설 - 4] 푸른눈물

아기 달맞이 2012. 10. 6. 06:41

1. 두 사람

    • 그림=김동성
    •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다는 것은 흠이 아니라 매력이다.

      어깨로부터 허리를 지나 S 자로 흘러내리는 리진(李眞)의 연푸른빛의 드레스는 발목까지 흘러내렸다. 무명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는 부두의 여인들과는 단연 대조적이었다. 그녀가 한걸음 뗄 때마다 구경꾼들이 앞으로 뒤로 몰려 들었다.

      처음엔 외국 여인인가? 바라봤다가 어, 조선여인이네, 싶으면 다시 한번 호기심 서린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머물렀다가 콜랭의 얼마간은 오만해 보이는 코와 그 아래의 콧수염과 흰 피부 갈색 곱슬머리로 옮겨갔다.

      리진의 깊이 파인 드레스의 가슴 부분에 장식된 눈부신 흰 레이스에 눈길을 주었다가 손에 들고 있으나 머리에 쓰게 되면 앞사람 이마쯤에 닿고 말 것 같은 챙이 긴 모자를 보았다. 혹여 그녀의 드레스를 밟을라, 싶어 뒤로 한 발짝 물러서기도 했으나 리진과 콜랭을 바라보는 부두 사람들의 시선에는 조선 여인이 웬 서양여자 옷차림을 했을까? 의혹이 공통으로 서려 있었다. 어떤 이는 심사가 뒤틀려 눈살이 찌푸려지거나 입술이 퉁명스러워졌다.

      리진의 매력은 단순히 옷차림이 다른 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인들 속에 섞여 있어도 단박 눈에 띄는 눈부신 목덜미와 깊은 눈동자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녀의 드러난 목덜미는 어디에서나 하얗게 빛을 냈다. 그 빛의 느낌을 뭐라 표현할까. 고개가 아래로 숙여질 땐 다정하고, 몸의 중심이 바로 서 있을 땐 의연하며, 무엇을 살피는 듯 주변을 돌아보느라 부드럽게 접혀지고 휘어질 때는 누구라도 손바닥을 갖다대고 싶게 관능적이었다.

      가지런한 눈썹 밑에 자리잡은 리진의 반짝이는 두 눈은 또 어떤지.

      무슨 어려운 이야기를 해도 금세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이 깊은 데다가 물기가 촉촉이 서려 있어 그 눈동자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바다 밑을 감추고 있는 듯 비밀스러워 보였다. 귀밑으로부터 뺨까지는 홍조가 들어있어 얼핏 수줍음이 많은 사람인가 싶은데 두 눈 사이로 좁은 듯 길게 뻗어 있는 콧마루가 수줍음을 넘어 총명함을 느끼게 했다. 독특한 조화였다. 가늘지도 도톰하지도 않은 꼭 다문 입술 주변엔 봄날 새싹에나 붙어 있을 옅은 솜털이 보송보송해 설령 그녀가 무슨 생뚱맞은 짓을 해도 깊이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사랑스러움이 넘쳐흘렀다.

      그 사랑스러움이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매력의 전부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매력은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도 지적일 정도로 단정하고 균형 잡힌 걸음걸이를 유지하고 있는 데서 흘러나왔다. 리진은 뭇사람들의 흘끔거림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장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습관처럼 숨듯이 움츠리고 걷는 조선 여인들하고는 확연히 구별되는 걸음걸이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익숙해진 듯 리진은 걸음걸이의 균형을 흩트리지 않았다. 의혹에 찬 뭇시선을 견디느라 저편 바다를 응시하는 따위의 행동도 하지 않았다. 자칫 오만해 보일 수 있는 그 걸음걸이를 그녀의 깊은 눈동자, 애잔한 목덜미, 얼굴에 넘쳐 흐르는 사랑스러움이 덮어주었다. 가슴을 펴고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그녀의 걸음걸이는 무엇이라도 뚫고 나갈 듯해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신을 잃지 않을 것 같은 강인함을 느끼게 했다. 아무리 흘끔거려도 흔들림 없는 리진의 모습에 외려 그녀를 응시했던 사람들이 긴 한숨을 쉬며 바다로 시선을 외면했다.

      그 사랑스러운 여자는, 낮은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는 포구를 바라보고 있는 그 여자는, 불과 십여 년 전인 1882년에 제물포 조약이 체결되기 이전에는 이 항구가 손가락을 꼽으며 셀 수 있을 정도의 초가들이 조용하게 모여 살고 있던 곳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