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연재소설-1] 푸른 눈물

[신경숙 연재소설 - 7] 푸른눈물

아기 달맞이 2012. 10. 6. 06:47

 

  • 1. 두 사람
    • 그림=김동성
    • 사랑 때문에 슬픔에 빠져도 사랑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녀는 그의 손을 더듬었다. 그가 브러시를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푸우. 그들 사이로 콜랭이 종일 타고 왔던 말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도성에서 마부와 함께 대여한 말은 세 마리였다. 두 마리엔 짐을 실었다. 이십 리마다 백 냥씩을 지불했다. 세 마리 중의 한 마리는 배에 화농을 앓고 있었다. 온종일 걸었던 말들은 객관의 조랑말들과 함께 여물을 먹고 깊은 잠에 빠져있을 거였다. 상처를 입은 말이 잠자는 중에 연거푸 내지르는 숨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콜랭이 입고 있는 상의 단추를 풀었다. 붉은 빛의 콜랭의 가슴이 드러났다.

      그녀는 콜랭을 돌아눕게 했다.

      그녀의 손가락들이 콜랭의 갈색 뒷머리 속으로 들어가 머리카락을 다정히 헝클었다. 손에 힘을 주어 콜랭의 머리를 꾹 눌러주었다. 그녀의 손이 혈을 따라 뒷목으로 등뼈로 내려왔다. 그녀의 손가락이 머무는 곳마다 그의 굳어있던 몸은 긴장이 풀리고 유연해졌다. 리진(李眞)의 손바닥은 머위 잎처럼 넓게 펼쳐졌다가 차돌처럼 꾹 쥐어졌다. 뒤집어졌다가 둥글게 뭉쳤다가 다시 활짝 펴졌다. 그때마다 달라지는 손바닥 힘이 콜랭의 몸에 기분 좋은 열기를 퍼뜨렸다. 그 열기는 발바닥까지 전해지며 종일 말을 타고 와 피로로 꺼져있던 콜랭의 욕망을 일깨웠다.

      리진의 손이 더 아래로 내려가기 전 콜랭은 바로 누웠다.

      그녀의 얼굴을 끌어당겨 입 맞추며 얇은 모슬린 잠옷 위로 비치고 있는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혀가 부드럽게 휘감겨왔다. 그는 그녀의 몸을 가리고 있던 옷을 벗겨 내렸다. 수줍은 듯 볼록하게 솟아있는 그녀의 가슴이 맨손바닥에 닿았다. 콜랭의 아랫배에서 뜨거운 기운이 밀고 올라왔다. 그는 그녀를 바짝 끌어안았다. 서로 밀착된 두 사람의 몸이 곧 엉겨들었다. 두 사람의 손은 어둠 속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몸을 찾아 헤맸다. 얼굴을 어루만지고 가슴을 파고들다가 등을 끌어안는 사이 그녀의 배에 눌린 자국이 생겨났다. 콜랭의 입술은 그녀의 목덜미를 핥고 귓불을 깨물었다. 어느덧 그녀의 뺨에도 발그레한 열기가 내려앉았다. 깊은 눈에 서려있던 우수가 사라지고 입술은 붉어졌다. 어느 순간 서로 위로 올라가려던 두 사람의 무릎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 순간엔 두 사람 사이에 어두운 상념이란 존재치 않았다.

       

    • 달리는 말의 네 발굽은 땅에 닿을 틈이 없다.

      두 사람의 격렬한 애무는 서로의 몸에 예민하게 반응해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와 그의 이마에 이슬 같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미세한 떨림이 서로에게 전해졌다. 여자의 붉어진 몸이 남자 속으로 들어갔는지 남자의 단단한 몸이 여자 속으로 들어왔는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등이 휘어질 것 같은 정점의 순간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눈물방울을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 ―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랑하오!

       

    • 그는 그녀의 눈물을 혀로 쓰다듬었다.

      사슴일까? 매? 아니면 수달인지도. 가까운 곳에서 끼룩대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 그녀는 눈물에 젖은 눈을 감은 채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말의 숨소리가 아니었다. 땀에 젖은 채로 두 사람이 잠 속으로 빠져들던 조선 산골의 객관의 마당으로 낮에 어미를 잃은 듯한 이름 모를 새끼 짐승이 토방 아래까지 기어들어 새벽이 다가올 때까지 칭얼거렸다.

      이제 다시 저 아이와 함께 춤을 출 수 없겠지.

       

    • 리진은 항구의 인파 속에서 궁중의 벗 소아가 손으론 장옷을 말아 쥔 채 하염없이 손을 흔들고 있는 걸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