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아침 저녁으로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쌀쌀한 바람이 아닌 선선한 바람이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짧은 가을이 아쉽기만 하다.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짧은 가을 같은 단편영화들을 스크린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제11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가 지난 7일 개막했다.
이번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는 총 104개국에서 3959편의 영화가 출품됐다. 이는 국내 최대 규모로, 지난해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치열한 예심을 통해 엄선된 46편의 영화는 오는 12일까지 서울 신문로 '시네큐브'와 '인디스페이스'에서 만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단편영화들은 러닝타임이 짧기 때문에 5~6편의 영화들을 묶어 상영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영화들이 한 섹션에 묶여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셈이다.
수많은 출품작 가운데 영화제 상영작을 직접 선정한 지세연 프로그래머로부터 저마다 취향에 맞는 영화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추천을 받았다.
지 프로그래머는 영화를 보며 웃고 싶은 관객이라면 < 최후의 국경 사무소 > 와 < 이발사 알베르토 > 를 보는 것을 추천했다. 독일 영화 < 최후의 국경 사무소 > 는 한적한 한 국경의 초소를 지키는 경비 요원 알프레드의 이야기다.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매일 초소를 지나가는 수잔느를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국경 개방에 따라 초소를 폐쇄한다는 소식을 알게 된 알프레드는 어떻게든 자신의 직장인 초소를 지키기 위해 수잔느가 나쁜 짓을 하지는 않는지 파헤친다.
베네수엘라 영화 < 이발사 알베르토 > 는 칠순의 이발사 알베르토의 이야기다. 세월이 흘러 남자들도 이발소가 아닌 미용실을 찾게 되자, 그의 가게는 매일 파리만 날리게 된다. 결국 괴상한 머리 스타일을 한 스타일리스트까지 채용해 이발소를 새로 단장을 해보지만, 점점 뒷자리로 밀려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내용의 영화다.
로맨틱한 영화를 좋아한다면 < 게이밍 > 과 < 짧은 마주침 > 을 보는 것을 추천했다. 스웨덴 영화 < 게이밍 > 은 홀로 아들을 키우는 엘리자벳의 이야기다. 어느 날, 온라인 데이트에 갔다 실망만 하고 돌아온 그는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아들의 친구 아담을 만나게 된다. 아담은 의기소침해 있는 엘리자벳에게 비디오 게임을 하자며 초대하고, 그 둘은 어느 새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중년 여성과 10대 소년의 사랑을 다룬 로맨틱한 영화다.
캐나다·미국 합작 영화 < 짧은 마주침 > 은 자살을 하려고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 남성은 떨어지는 도중에 자살을 하려고 뛰어내린 또 다른 여자를 만난다. 자살이라는 끔찍한 소재에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를 더한 단편영화만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감동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 고요한 항해 > 와 < 나만의 내비게이션 > , < 패밀리 > 를 보라고 추천했다. 스웨덴·미국 합작 영화 < 고요한 항해 > 는 고국과 통신이 끊긴 채 우주에 홀로 떠다니게 된 우주 비행사 알렉산더의 이야기다. 어느 날 이탈리아의 한 라디오 엔지니어가 우연히 알렉산더의 구조요청 신호를 잡게 되고, 그는 마지막으로 생존의 희망을 가지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개봉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 그래비티 > 를 연상케 하는 단편영화다.
헝가리 영화 < 나만의 내비게이션 > 은 한 노부부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에게는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다. 아내가 모든 것을 꿰뚫고 남편에게 지시를 내리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 역할을 아내는 남편에게 짜증나는 존재보다는 꼭 필요한 인생의 동반자다. 지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를 가리켜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단편"이라고 설명했다.
추천작 가운데 유일한 한국영화 < 패밀리 > 는 가출 청소년 신애, 민정, 훈 3명에 관한 이야기다. 셋은 같이 살 집을 구하기 위해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훈이 유혹에 빠져 그 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도망을 치게 되고, 민정도 아파서 꼼짝 못하는 상황이 된다. 타인이 만나 가족이 되는 과정, 그리고 그 아픈 현실이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단편영화라고 모두 서정적일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독특하고, 환상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 약탈자들 > 과 < 내부의 속삭임 > 을 보라고 권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영화 < 약탈자들 > 은 은행 강도를 다룬 영화다. 강도의 출현과 함께 영화는 무언극으로 바뀌고, 강도들은 모두 마임 움직임을 선보인다. 무기들도 모두 마임을 통해 연출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영화다.
벨기에 영화 < 내부의 속삭임 > 은 침실에 갇혀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자신의 침실이지만 어디에도 탈출구는 없다. 그리고 어디선가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과 함께 극적인 효과들을 이용해 잘 표현해 낸 수작이다.
지 프로그래머는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이들 외에도 모두 뛰어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다 재미있는 영화들"이라며 "장편에서 느낄 수 없는 단편만의 매력을 아시아나영화제에서 만나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정범 사무국장은 "최근에는 과거보다 예술 영화 관객층도 많이 늘어나고, 관객들 수준이 올라간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단편영화에 대한 관심도 같이 커지고 있다. 단편영화가 장편의 하위 장르나 장편으로 가는 한 과정이 단편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인식하는 관객들이 많이 늘어났다"며 "단편영화는 상영관이 별로 없고, 영화제나 기획전이 있을 때 관객이 노력해서 찾아봐야 하는 영화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마음껏 단편영화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김경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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