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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시 - 향수(鄕愁)

아기 달맞이 2013. 10. 4. 07:19
 

 

  

     향수(鄕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활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의 "향수"를 읽으면,
    언제나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란

    시가 떠오른다.
    이것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비단 두 시인이 북조선과 관련되었다는 유사한

    사정이 동일이미지를 준 것인가?
    아니다.
    향토성을 긴 호흡으로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살아가면서 좁은 애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아니라,
    뛰어난 문학예술적 재능으로 조국과 겨례의 문화와

    삶을 자부있게 묘파해내는 이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우리것을 낮게 보지 않고,그렇다고 허장성세로 과장하지도 않고,
    다만 있는 그대로 아끼면서 말하는 주체성이 아름다울 따름이다.

    충북 옥천출신의 천재시인 정지용!
    이상과 청록파를 추천한 시인의 시인!
    자진월북이라 잘못 알려진 납북의 시인!
    벌써 다 해금되어 그 유장한 우리의 향토정서를

     한껏 노래해 주고 있다.

    원래 이 시는 「조광문학」, 제65호(1927.3)에

    실린 것이다.
    1927년이면 그의 나이 26세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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