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년하고 반의 반백년을 묵은
늘어진 뱃가죽이 첩첩이 접혀지는 수평선
엄마는 한 손으로 수평선 한자락을 처억 들어올려
초록 이태리타올로 쓰윽쓰윽 문지른다
처억 맨 밑자락을 들어올리면
흰 거품에 뒤덮인 꽃무리
밑에 밑자락까지 사태져 튼 살들
제 나온 배에게서 제 들어갈 배에게로
누가 펼쳐놓았을까 저리 소스라치게
여자라는 처억 깊은 수평선에
우리를 태우고 왔던 백년 묵어가는 배 위에
물비늘진 바람의 희디흰 흉터들
은어떼였을까 거슬러가고 움푹 발자국들
벗어놓고 깜빡 잊은 속치마처럼
배꼽에서부터 피어나는
아직 더운 사방연속의 상형문자들
백년 묵은 누런 꽃숭어리의 저 주술
목욕탕에 나란히 앉아 딸은 늙은 엄마의 첩첩이 접혀지는 뱃가죽이 만든 수평선을 보고 있다. 반백년하고 반의 반백년을 살아온 세월이 첩첩이 쌓은 흔적.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층층의 수평선을 가진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맨 밑자락의 살을 들어올려 문지르는데 삶의 흔적은 흰 비누거품에 뒤덮인 가운데도 예외 없이 밑자락까지 사태져 있다. 시인은 자신을 태우고 온 백년을 묵어가는 배 위에 그려진 ‘여자라는 처억 깊은 수평선’ 위에 희디흰 흉터들을 모천으로 회귀하는 반짝이는 은어떼라고, 배꼽을 중심으로 첩첩 쌓인 살가죽들이 이룬 수평선을 ‘아직 더운 사방연속의 상형문자’라고, 그리고 ‘백년 묵은 누런 꽃숭어리’의 주술이라고 부른다. 늙은 노모의 처지고 겹겹이 쌓인 백년을 묵어가는 뱃가죽을 많은 꽃송이가 달려 있는 덩어리로 바꿔내는 유쾌한 말부림이, 그 시선이 반짝인다.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