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아기 달맞이 2013. 2. 8. 07:24

'시 한 줄 쓴다고 뭐가 달라지나.'

KBS 드라마 < 학교 2013 > 13회에서 문제 학생 정호가 쓴 한 줄의 시가 화제가 되었다. 보충수업 시간에 시 쓰기를 가르치게 된 교사가 아이들에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한 문장 써보라고 제안했다. 시 쓰기를 귀찮아한 정호가 교사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낸 문장이 그것이다. 비꼬듯 쓴 문장인데도 교사는 희망을 읽는다. 반어법을 썼다면 '시 한 줄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 지식여행 제공

우울한 일상 '살아가는 힘' 주고 홀연히 떠나

'약해지지 마'라는 시 한 줄로 일본 사회를 들썩이게 한 시인이 있다. 2011년 3월 일본 전역이 동북부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로 침울해 있을 때, 당시 만 100세를 앞두고 있던 시바타 도요라는 시인이 쓴 시가 일본인의 마음을 다독였다. 정치도 종교도 우왕좌왕하며 하지 못한 일을 노시인 한 사람이 해낸 것이다. 당시 시인은 재해민에게 보내는 시를 통해 '이제 곧 100세가 되는 나, 천국에 가는 날도 가까울 터. 그때는, 햇살이 되어 산들바람이 되어 여러분을 응원하겠다. 앞으로 괴로운 날이 계속되겠지만 아침은 반드시 찾아온다. 약해지지 마라'고 위로했다.

지난 1월20일 시바타 도요 시인이 노환으로 타계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시바타 도요의 장남인 시바타 겐이치는 이날 이른 새벽에 도쿄 북쪽 우쓰노미야 시 자택 부근의 사설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알렸다. 1백1세의 할머니 시인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많은 독자에게 '살아가는 힘'을 안겨주었던 시인이었기에 그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컸다.

많은 독자가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생전 시바타 도요 시인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100세가 되어서도 결코 늙음이나 외로움에 좌절하지 않고 매일을 신선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감동했다. 젊은이에게도 삶의 표본이 되어주었고, 환갑을 넘긴 '후배' 노인들에게도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교훈이 되었다. 시도 좋았지만, 그 시를 쓴 시인의 인생 스토리가 더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곡절 많은 인생살이야 둘째치고라도 92세에 아들에게서 시를 배워 쓰기 시작해 98세에 첫 시집을 낸 할머니가 시를 통해 들려주는 추억과 삶에 대한 반추가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것이다.

산케이 신문에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던 시들을 모아 펴낸 첫 시집 < 약해지지 마 > 는 2009년 10월 자비로 출판했다. 이 시집이 독자의 호평을 받자 2010년에 대형 출판사 아스카신샤가 삽화와 작품을 추가한 개정본을 펴냈다. 이 시집은 일본에서 1백60만부나 판매되는 대기록을 세웠다. 시바타 시인은 2011년 6월 자신의 100세 생일을 기념하는 두 번째 시집 < 100세 > 를 내놓았다. 그해 3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희생자를 기리고 피해자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시도 담았다.

시바타 시인이 쓴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나는 시 한 편을 보자. < 추억- 이별 > 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월급을 받은 봄날 저녁 / 다리 옆에서 / 후 짱이 / "도요 짱, 나 / 내일 고향으로 돌아가." / 작은 목소리로 알렸다 // 어머니께서 몸이 / 많이 편찮으시구나 / 생각했지 // 버드나무에 솜처럼 / 핀 꽃 / 눈물이 흘러넘쳐 / 멈추지 않았네'

더부살이로 힘들게 살아가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고락을 함께하던 동년배 친구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자, 시바타 씨는 마음속으로 '친구의 어머니가 편찮으시구나'라고 중얼거린 것이다. 그날의 슬픈 감정을 표현한 시의 행간에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해야 하는 친구에 대한 동정 그리고 다음 날 친구를 떠나보내야 하는 데 대한 괴로움, 이별 뒤에 찾아올 외로움을 숨겨 놓았다. 시바타 씨는 이별 앞에서 눈물을 쏟는 대신 독자의 시선을 버드나무에 핀 꽃으로 돌려놓는다. 눈물이 차올라서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자신을 솜처럼 부풀은 꽃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넘쳐나는 눈물을 흘렸다.

이 시에 대해 산케이 신문 '아침의 시' 심사위원인 신카와 가즈에 시인은 "시바타 시인이 쓴 시의 매력은 사람의 마음을 마치 어린 가지처럼 바람이나 빛에도 휘어지게 하고 산들거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특히 눈물의 맛을 아는 사람의 인생관에서 나온 위트가 마무리 부분에 자연스럽게 구사되어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준다"라고 평했다. 가즈에 시인은 시바타 시인이 99세에 펴낸 첫 시집 < 약해지지 마 > 의 100만부 판매 돌파 축하 모임에서 "예로부터 마흔 살 이후의 얼굴은 스스로 책임지라고 했다. 시바타 시인은 90년에 걸쳐 지금의 얼굴을 만들었다. 무인 집안에서 자란 듯한 품격과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핀 꽃 같은 저 미소. 사람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시도 사랑받고 존경받을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나는 저 얼굴이야말로 시바타 시인의 최대 걸작이라고 감탄하면서 뵙고 있다"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세대 간 단절 세태에 경종

나이 들어 더욱 빛나는 업적을 남긴 과학자나 예술가, 철학자가 있다.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것과 시바타 도요 시인을 기리는 일은 사뭇 다르다. 시바타 시인을 기리는 일은 세대 간 단절을 보여주는 세태에 생각할 것을 많이 던져주기 때문이다. 세대를 불문하고 살아가는 용기를 얻었다는 서평이 줄을 이었고,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일본 국민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일깨웠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시바타 시인의 책은 한국에도 소개되어 실의에 빠진 독자들을 울리고 웃겼다. 늙어가는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이들도 많았다. 늙어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떨쳤다는 사람도 있었고, 어떻게 늙어가야 할지 지침을 얻었다고 고마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노인 관련 책을 펴내면서 시바타 시인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 노인 자원봉사 코칭 > 을 펴낸 이성록씨는 "일본에서는 100세에 이른 한 할머니의 시집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해 98세에 첫 시집 < 약해지지 마 > 를 발간했는데, 6개월 만에 70만부 판매 돌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할머니의 시에는 추상적이거나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없다. 평범한 일상에 대한 추억과 감사를 통해 따뜻한 목소리로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할머니의 시를 읽고 자살하려던 생각을 버렸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하니, 삶의 연륜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시집 < 100세 > 를 내면서 생전 시바타 시인은 독자들에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많은 분의 엽서나 편지로 격려를 받았다며 "터질 듯한 기분을 시로 옮겨 인생의 마지막을 크게 꽃피울 수 있었다"라고 감격했다. 또, "남에게 상냥하게 대한다. 그리고 남이 상냥하게 대해준 걸 잊지 않는다. 이것이 100년의 인생에서 배운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