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아기 달맞이 2013. 2. 4. 07:17

 

 

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습니다
곧 낙엽이 되어 떨어질 잎새들이
잘 살아왔다고 마지막 모습을 물들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