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요리시간

화전민 음식 감자옹심이

아기 달맞이 2012. 9. 21. 04:54

▲ 감자를 주 원료로 한 강원도의 향토음식 감자옹심이. 감자를 갈아 물기를 짜낸 뒤 가라앉은 녹말가루와 섞어 새알처럼 작고 둥글게 빚어 갖은 채소와 함께 육수 국물에 끓여 만든다. 횡성 =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궁핍의 시대, 강원도 산골마을에는 논이 없는 대신 화전밭을 일궈 감자, 메밀 등 구황작물을 재배해 먹는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화전으로 땅을 일궈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척박한 곳에서도 심어놓기만 하면 자라는 감자와 옥수수가 배고픔을 달래주는 훌륭한 식용품이 됐던 것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렇다 할 만한 저장기술이 없어 수확한 감자와 옥수수를 마당 한켠에 쌓아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추위에 감자가 적당히 얼어갈 때쯤 썩어가는 감자를 갈아 새알처럼 빚어 수제비를 만들듯이 만든 음식이 바로 ‘감자옹심이’다. 알고보면 쌀을 구경하기 힘든 대신 감자와 옥수수가 주식이었던 강원지역 화전민들이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인 셈이다.

감자옹심이가 강원도를 대표하는 향토음식 중 하나가 됐다. 강원 횡성군 청일면 봉명리의 고라데이(골짜기를 가리키는 강원도 토속어) 마을이 농협중앙회에서 선정하는 식체험마을 중 ‘향토음식 마을’로 지정된 것이다. 고라데이 마을은 높이 900m가 넘는 발교산, 병무산, 수리봉이 병풍처럼 둘러싼 전형적인 산골마을로 마을 앞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과 봉명폭포가 절경을 이룬다.

화전민의 후예가 살아가던 이름 없는 마을이 지난 2004년 전통 테마마을로 지정된 것을 시작으로 새농어촌건설운동, 팜스테이마을, 5도2촌 사업, 자연생태우수마을 등에 잇따라 선정되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금도 연평균 3000여 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특히 화전민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기획한 각종 농촌체험 프로그램이 도시민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심마니 체험, 산나물 채취, 봉명폭포 트레킹, 얼음 고라데이 트레킹, 쇠발톱 방구놀이 등이 그것이다. 지난해 귀촌인 출신 이재명(56) 씨가 마을 대표를 맡으면서 농촌체험 사업도 안정적으로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각종 사업이 성공을 거두자 도시로 나갔던 청년들도 하나둘씩 다시 돌아오고 있다. 고라데이 마을에는 젊은이를 찾아보기 힘든 다른 농촌마을과는 달리 80여 가구 130여 명의 주민들 중 30~50대가 30여 명이나 된다.

고라데이 마을은 마을주민들이 직접 음식을 조리하면서 체험학습도 진행한다. 올해 마을 중심부에 한옥 형태로 지어진 체험관에는 조리장과 식당이 마련됐다. 내부 위생 상태도 매우 양호하며, 식재료는 마을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무농약 청정 유기농 농산물을 거의 모두 사용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곳에서 마을 사무장을 맡고 있는 박소연(50) 씨가 감자옹심이 만드는 과정을 직접 시연해줬다. 박 씨는 먼저 황태머리, 다시마, 양배추, 양파, 밴댕이를 물에 함께 넣은 뒤 1∼2시간가량 푹 끓여 육수를 만들었다. 황태머리 대신 대구머리를 넣을 수도 있지만 향이 너무 강해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 육수 다음에는 새알에 해당하는 옹심이를 만들 차례다. 강판에 감자를 곱게 갈아 전분이 가라앉으면 물기를 쭉 뺀 뒤 남은 덩어리와 전분을 섞어 옹심이를 빚는다. 그런 뒤 먼저 만들어 놓은 육수에 넣어 다시 한 번 끓여내면 감자옹심이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