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오래된 한 쌍의 부부가 있다. 권태기에 깊숙이 접어든 이들은 서로에게 욕망할 것이 남지 않았다. 일상은 평온해 보이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위기감이 감돈다. 부부는 은밀한 일탈을 감행한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대중연극을 표방하는 ‘연극열전4’의 세 번째 작품 ‘더 러버’는 선정적인 포스터와 배우의 전라 노출로 화제몰이를 하고 있지만, 그 이면을 봐야 하는 연극이다. 부조리극의 대가인 노벨상 수상작가 해럴드 핀터의 1963년작으로,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보여주는 작가주의가 생생하다. ‘불가해’ ‘애매모호’가 그의 키워드인 만큼 결코 쉽지 않은 무대다. 그러나 모든 부부에게 잠재된 심리를 파헤치는 가장 대중적인 무대이기도 하다. 반세기 전의 작품이지만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공연 중인 문제작으로, 국내에서도 ‘티타임의 정사’라는 제목으로 수차례 공연되었지만 여전히 낯선 긴장감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당신 애인, 오늘 오나?” “오후 세 시에 와요.”
기묘한 일탈로 보이지만 사실 부부는 소심한 역할놀이 중이다. 오후 세 시, 티타임이 되면 남편 리처드는 아내 사라의 애인 ‘맥스’가 되고, 아내는 남편의 창녀 ‘돌로레스’가 되어 끝없는 역할놀이의 릴레이를 펼친다. 엎치락뒤치락 파워게임은 존재의 권태를 견뎌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런데 돌연 게임 오버를 선언하는 남편. 아내는 절망한다. 빠져들려는 아내와 벗어나려는 남편의 줄다리기는 부부간의 소통 부재와 권력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모순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내는 소통을 위해 애인이 필요하다. 부부는 서로 점잖은 옷을 입고 겉도는 대화를 나누다 밤이 되면 각자 안대를 쓴 채 등을 돌리지만, 티타임의 아내는 반짝이 구두에 호피무늬 원피스로 갈아입고 ‘애인’의 봉고드럼 리듬에 어깨를 들썩이며 교감한다. 반면 남편이 게임에서 찾는 것은 그저 ‘창녀’다. ‘창녀’와의 일탈은 ‘오일이나 부동액을 체크할 때 한잔하는 코코아 같은’ 기능이면 된다.
“타락한 생활을 끝내자”는 남편과 “속삭여달라”며 매달리는 아내. 둘의 실랑이는 어느덧 부부의 대화인지, 애인과의 대화인지 모호해진다. 역할극을 통해서만 소통해 왔기 때문이다. 한편 역할극 속 파워게임은 현실로 이어진다. ‘애인’이 필요한 아내는 ‘창녀’로 충분한 남편과의 권력다툼에서 불리한 입장. 궁지에 몰린 아내는 ‘매일 다른 애인을 맞는다’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고, 파워게임은 금세 역전된다. ‘티타임의 애인’으로 돌변한 남편은 아내에게 ‘내 귀여운 창녀’의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청한다. 권력이란 도전받을 때 더 짜릿한 법이니.
인물의 성격이나 관계, 배경 등 전후 맥락 없이 눈앞의 상황만을 제시하며 예측 불가능한 대사와 애매모호한 전개를 펼치는 ‘핀터레스크’ 스타일은 그 애매함으로 인해 관객이 각자 잠재된 심리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하게 하는 열린 무대다. 그러나 송영창, 이승비의 애매한 연기는 ‘핀터레스크’가 아니라 그저 에너지 부족으로 보였다. 빈틈투성이 연기와 모호한 드라마는 꽉 짜인 무대 미학으로 지탱됐다. 평범한 가정집 세트지만 잦은 암전과 회전무대, 조명의 정교한 사용은 연극성을 돋보이게 했고 상황과 행동에 적절히 상징성을 부여했다. 허공에 떠 있다 마지막 순간 무대를 덮는 철골구조물은 결국 결혼이란 공허하면서도 견고한 덫이라는 모순된 주제를 감각적으로 은유하는 장치가 됐다.
사랑으로 결혼했지만 결혼으로 사랑이 퇴색되고, 그럼에도 ‘결혼한 인간’으로서 도덕성을 요구받는 결혼이라는 제도의 부조리가 문득 새삼스러워지는 무대다. 결혼이란 저렇게라도 해서 지켜야 할 신성한 언약인가, 혹은 저렇게까지 해야만 지킬 수 있는 공허한 제도인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모순이다. 이 연극이 반세기 동안 전 세계에서 호응받아 온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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