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7월 26일 어느 극장, 돌아가던 영사기가 멈춘다. 화면이 정지된다. 극장 안의 사람들이 야유를 보내며 아우성을 친다. 극장의 누군가가 단상에 선다. “오늘 저녁 8시 25분, 우리의 영원한 정신적 지도자이신 에바 페론 영부인께서 돌아가셨음을 알려드립니다.” 극장에 있던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다. 영화를 관람하던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눈물을 흘리고 서로 부둥켜안은 채 극장을 떠난다. 나라 전체가 상실감에 몸을 떤다. 그들이 잃은 것은 대통령의 아내가 아니다. 거룩한 악녀이자 비천한 성녀 에비타, 그녀는 누구인가. 비어가는 극장 한 가운데 체 게바라가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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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의 일생을 다룬 영화가 제작될 당시 정작 아르헨티나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 마돈나의 캐스팅 때문이었다. 국모로 생각하는 성스러운 이미지의 에바 페론을 ‘Material Girl(관능적인 소녀, 마돈나의 히트곡)’이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반감을 가졌다. 그만큼 아르헨티나는, 특히 여성과 노동자, 빈민층은 에비타를 사랑했다. 그 어느 지도자도 자신을 그 나라 자체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뮤지컬을 통해 부활한 에비타는 말한다. “나는 바로 아르헨티나 그 자체!”라고.
1919년 7월 7일 팜파스의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에비타는 수많은 남성을 이용해 삼류연극배우, 영화배우, 성우 등 자신의 영역을 넓혔다. 에비타가 창녀였다는 과거는 그가 권력의 한가운데 섰을 때 권력층의 비난과 조롱의 충분한 이유가 되었으나, 빛날 수 없었던 사생아이자 삼류배우였다는 사실은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됐다. 에비타는 그들은 ‘동지’라 부르며 “근로자여, 단결하라”고 외쳤다. 가난과 고난, 비루한 성장은 노동자들에게 동질감을 안겨줬고 이 열성적인 연설은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여 에비타의 남편 후안 페론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에비타는 상류층과 기득권을 경멸하면서 독설을 내뱉고 사치를 즐기면서도 ‘에비타 페론 재단’을 만들어 노동자, 미혼모, 노약자 등의 고통을 해결하는데 노력했다. 그는 이른바 아르헨티나 하층민들의 구세주가 됐다. 여기서 에비타의 성녀와 악녀의 이미지가 충돌한다. 페론 정부에 반발하는 자를 숙청하는 잔인한 창녀와 노동자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성녀 에비타. 아르헨티나의 독재에 봉사했고 노동자·빈민계급을 마취시킨 악녀라고 비난하기에는 실제로 그녀가 행한 봉사와 헌신들이 모두 거짓은 아니었다. 현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들을 펼치므로 아르헨티나 몰락의 단초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수많은 많은 대중들은 아직도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다. 가장 어린 나이의 퍼스트레이디가 되었으나 척수 백혈병과 자궁암으로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에바 페론의 죽음을, 아르헨티나는 그렇게 광적으로 애도했다.
뮤지컬 <에비타>
두 혁명가, 에비타와 체 게바라의 기막힌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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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33년을 살았으면서 아르헨티나 역사를 횡단하는 방대한 드라마를 가진 에바 페론의 이야기를, 뮤지컬은 그녀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다. 한 여자의 죽음과 장례식에 정성을 들이고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이 작품은 죽음을 통해 그녀를 여신으로 떠받들더니 이내 체 게바라를 등장시켜 지상으로 추락시킨다.
뮤지컬의 흥미로운 점은 체 게바라에 대한 설정이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에비타를 우상화했다는 지적과 함께 체 게바라와의 억지스러운 연관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에바의 정신은 당시 의대생이었던 체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에비타의 연인이었던 마갈디와 체 게바라가 교류했다는 기록에 따라 둘의 만남도 가능하리라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확실히 두 인물의 활동 영역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이 분명하며 따라서 혁명의 최전선에 있던 체 게바라가 바라보는 에비타에 대한 시선은 흥미롭다. 겨우 스물여섯 왕비,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남은 게 없는 에비타를 해설자이자 익명의 존재가 된 체는 조롱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나 외면하지 않는다. 에바와 체가 서로의 호흡에 의지해 탱고를 추며 대립하는 장면, 뮤지컬이 이뤄낸 역사적 두 인물의 만남이 두근대는 심장 위에서 스텝을 밟는다.
<에비타>의 가장 큰 힘은 역시 음악이다. 음악에는 에비타의 궤적과 당시의 아르헨티나가 담겨 있다.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비롯해 우리가 그녀의 삶보다 더 친근히 알고 있는 넘버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이 음악의 드라마를 완성시키는 배우 정선아는 군중들로 하여금 ‘페론! 페론!’을 외치게 하는 에비타의 힘을 설득시켰다. 2011년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아르헨티나’를 기대케 했다. 무대 또한 수직과 회전을 이용해 에비타의 복잡한 여정 더불어 가장 낮은 곳과 높은 곳을 아우른 생의 굴곡을 압축, 상징적으로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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