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Fiddler on the Roof
감독: 노만 주이슨
출연: 토폴, 노마 크레인, 로잘린드 해리스, 미셸 마쉬
제작: 1971년 / 미국 (180분)
줄거리
1905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지방에 있는 '아나테프카'라는 작은 유태인 마을.다섯 명의 딸을 둔 우유장수 테비에(토폴 분)는 신앙심 깊은 유태인이다. 그는 전통과 율법을 중요시하는 전형적인 아버지이지만, 우유를 파는 가난한 살림에도 신에게 ‘조금만 더 부자가 되면 안 되겠냐’고 투정부리는 귀엽고 낙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어느날 첫째 딸 짜이텔(로잘린드 해리스 분)은 옌떼 할머니가 점지해준 부자와의 결혼을 거부하고 가난한 재봉사 모텔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누구보다 전통을 중시하던 아버지 테비에는 큰딸의 결혼을 반대한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고 큰딸의 결혼을 허락하게 된다. 이어지는 흥겨운 결혼식 장면에서 본 영화의 가장 유명한 테마곡 'Sunrise, Sunset'이 등장한다. 흥겨움도 잠시, 러시아 혁명이 시작되면서 결혼식장으로 러시아 경관들이 밀어닥친다. 우여곡절 끝에 큰딸의 결혼식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자, 둘째 딸은 호델(미셸 마쉬 분)은 가정교사 페르칙과 사랑에 빠진다. 테비에는 또 다시 실망과 분노를 느끼지만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하게 된다. 혁명가였던 페르칙은 혁명운동을 하다가 시베리아에 유배되고, 호델은 페르칙을 따라 시베리아로 가게 된다. 그리고 셋째딸마저 아버지의 뜻과 상관없이 러시아 청년 피에드카와 결혼해 몰래 도망치고 마는데...
주제
엄격한 유태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해 가는 세 딸들의 이야기를 묘사한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196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어 브로드웨이 롱런 기록을 수립하였으며 토니상 11개 부문과 아카데미상 3개 부문, 골든글로브 2개 부문의 수상을 하였다. 또한 유태인들의 생활과 풍습, 신앙과 기질, 전통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조셉 슈타인의 대본은 유쾌하고 긍정적인 유대인 가정을 단조롭게 그리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다양한 상징들로 가득하다. 제목인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역시 상징적인 표현이다. 첫 장면에서 테비에는 말한다. ‘지붕 위에서 균형을 잡고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전통이 무너지면 바이올리니스트도 쓰러질 수밖에 없다. 지붕 위에서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는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있어서 더욱 간절하고 안타까운 전통을 상징한다. 아버지 세대가 언젠가는 자녀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 하듯 전통은 언제까지나 고수될 수가 없다. 작품 속에는 주제와도 같은 ‘전통’에 관한 상징으로 가득한데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 아나테프카가 공간적으로 상징한다면, 인물로서는 전근대적인 결혼관을 실천하는 중매쟁이 옌테가 전통을 상징한다.
감상 포인트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1964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76년, 81년, 90년, 2004년 무려 네 차례나 브로드웨이에서 리바이벌된 불후의 명작이다. 10년을 터울로 한 차례씩은 리바이벌된 셈이다. 세대가 달라도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이 보편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담고 있는 보편적 정서는 세대간의 갈등과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우크라이나의 한 작은 유대인 마을 아나테브카를 배경으로 한다. 우유가공업을 하는 테비에가 다섯 딸을 키우면서 겪는 세대간의 갈등과 가족간의 사랑이 주요 내용이다. 지금 세대에게는 친숙하지 않지만 1971년 영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고, 대표곡인 ‘선라이즈, 선셋’은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상위권에 랭크되는 곡이었다. 영화 OST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스턴이 연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음악은 토니상을 비롯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감독
1926년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났다. 노만 주이슨은 토론토 대학을 졸업한 뒤 1950년 영국으로 건너가 1952년까지 BBC 방송국에서 어린이 쇼 스크립트를 쓰며 경력을 쌓았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 1958년대 말까지 캐나다 국영방송사 CBC에서 드라마와 TV쇼 연출로 일했는데, 이때 주디 갈란드와 해리 벨라폰테 같은 연예계 스타들을 위한 쇼를 만들며 에미상을 타기도 했다.
영화로 입문하기 전 뉴욕으로 건너가 뮤지컬을 연출하기도 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던 중 토니 커티스 주연의 <40파운드의 갈등>(1962)으로 데뷔했다. 이후 <아트 오브 러브>(1965) 등 주로 코미디 영화들을 몇 편 연출했으나 별로 주목받지 못했고, 스티브 맥퀸 주연의 <신시네티 키드>(1965)를 만들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미국 남부 도시의 인종적 편견과 살인사건을 다룬 시드니 포이티어, 로드 스타이거 주연의 <밤의 열기 속으로>(1967)는 오스카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 남우주연상(로드 스타이거)을 안겨주며 그를 일약 할리우드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이후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68), <지붕위의 바이올린>(1971), 뮤지컬의 영화화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73), <롤러볼>(1975), <투쟁의 날들>(1978) 등 서로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노만 주이슨 감독의 작품 모색은 계속되어 <문스트럭>(1987), <온리 유>(1994), <보거스>(1996) 등을 만들었다. 그 사이 1986년 캐나다 토론토에 영화 교육 센터를 설립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제작도 겸하면서 덴젤 워싱턴 주연의 <허리케인 카터>(1999), 마이클 케인 주연의 <스테이트먼트>(2003)를 만들었다.
<자료출처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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