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국 요리연구소 식구들이 마당 한가득 재료를 펼쳐두고 동치미를 담그던 날. 다행이 겨울바람이 매섭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명문가 며느리들의 요리 선생님으로, 한식 메뉴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는 이종국씨에게 비법 전수를 의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배움을 청하러 오가는 사람이 많은 덕분에 김치와 장 담그는 일은 이 집에선 흔한 풍경이 된 지 오래. 분주한 움직임 속에 뭔가 비밀스러운 맛 비결이라도 있나 싶어 온종일 엿보았다.
how to make 우리 음식 제대로 하는 요리연구가의 동치미 레시피 따라 하기
재래시장 돌며 준비한 재료, 꼼꼼히 손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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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과반 위에 펼쳐둔 소금. 조금 집어 먹어보니 심하게 짜지 않고 뒷맛이 말끔하다. 간수를 뺀 신안 천일염으로 무를 절일 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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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흐르는 물에 흙만 제거할 정도로 씻은 무를 억센 무청은 떼고 여린 것만 몇 잎 남겨둔 채 간수를 뺀 소금에 굴린다. 꾹꾹 눌러서 소금이 무 표면에 반쯤 박히도록 한 다음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어 3~4일가량 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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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동치미 국물에 곁들이는 갓은 색이 진하고 줄기가 긴 청갓으로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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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이맘때쯤 강원도 고랭지에서 생산되는 무는 단단하지만 무청이 억센 것이 특징이다. 억센 무청은 쪽파와 함께 한 끼 식사에 꺼내 먹을 만큼씩 나눠서 실로 쫑쫑 묶어 준비해 둔다.
국물 맛 좌우하는 천연 조미료 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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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은근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 넣는 천연 조미료들. 청각, 마늘과 생강, 소금물에 몇 개월 삭힌 고추를 촘촘한 망에 넣어 맛 주머니를 만든다. 삭힌 고추는 동치미 국물이 끈적거리고 탁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순서대로 재료 넣고 동치미 담그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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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동치미 담그는 물에 사이다 대신 넣는 탄산수. 이종국씨 집에서는 와인 바에서 주로 사용하는 탄산수 기계(소다 스트림, www.sodastream.kr)를 이용해 직접 탄산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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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향긋한 향이 나는 유자는 비릿한 풀 냄새가 나지 말라고 너덧 개를 띄운다. 유자즙이 천천히 배어나올 수 있도록 젓가락으로 여러 번 찌른 다음 넣는 것이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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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한나절 햇볕을 쪼여 소독해 둔 독에 절인 무를 넣고 준비해 둔 쪽파, 무청 묶음을 군데군데 섞어 넣는다. 이때 중간 중간 배와 유자를 넣는다. 시원한 국물 맛을 내는 맛주머니는 절인 무 전체 양의 1/4~1/5 가량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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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마지막으로 맑은 물 붓기. 단맛을 더하고 군내를 제거하고 싶으면 매실청을 약간만 물에 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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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는 예쁘게 세팅하기 참 좋은 음식이다. 둥그런 사기그릇에 재료를 수북이 담고 국물을 콸콸 부으면 그대로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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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 무를 써는 방법만 달리해도 서양 요리처럼 멋진 애피타이저가 된다.
코리안 슬로 푸드, 잘 익은 동치미의 맛이란
이종국씨는 방방곡곡 전국을 돌며 산지에서 구한 자연 재료로 만드는 레시피를 개발하는 채집 요리 전문가다. 솜씨 좋은 주인의 푸근한 마음 덕에 이 집에는 끼니마다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에디터도 경험해 본 바, 그릇장으로 가려진 부엌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들은 정말 예술이다. 수저를 들기 전에 담음새를 보고 감동하고 개운한 음식 맛을 본 후엔 마음으로 탄복한다. 한국을 방문하는 유명 외국인 셰프 중에는 요리 수업을 핑계 삼아 한국의 장맛과 음식 맛을 경험하러 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는 이들에게 자연의 변화를 벗 삼아 맛이 드는 한국의 슬로푸드를 주로 맛보인다. 간장, 된장을 소스처럼 찍어 먹도록 곁들이고 너덧 개의 장아찌를 피클처럼 조금씩 담아낸다. 4~5가지 종류의 김치를 곁들일 때도 있다. 그래서 실온에서 보관이 가능한 초겨울엔 동치미만 100인분 이상 담아둔다.
이날도 겨우내 요리연구소를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 3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에서 김장하는 양만큼의 엄청난 재료를 준비해 시끌벅적하게 겨울 김치를 담갔다. 동치미 활용법은 무궁무진하다. 숭덩숭덩 무를 잘라 반찬으로 곁들이고 출출한 겨울밤엔 잔치 국수의 육수로 사용한다. 멋 부리는 음식으로 동치미를 활용하기도 한다. 동치미 무를 멋지게 썰어 큰 접시에 담아내면 와인을 마실 때 상큼한 한 입거리 애피타이저가 된다.
"한국 음식은 재료 선정에서 맛이 좌우된다"는 것이 이종국씨의 요리 철학. 그는 동치미를 담글 때 가장 중요한 재료로 '물'을 꼽았다. 조선시대 궁중 수랏간에서는 광천수가 나는 초정(충남 연기군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다 대나무 통에 넣어두고 보관했다. 이 천연 탄산수는 동치미를 담글 때 주로 사용됐다.
이종국씨는 이 방법을 응용해 톡 쏘는 맛의 동치미를 담글 때 약수터에서 길어 온 물에 집에서 만든 탄산수를 섞어 사용한다. 사이다에서 단맛을 뺀 듯한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그 다음은 재료 선별. 김장철에는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는데 경동시장 단골집에서 대량으로 배추와 무를 구입한다. 이맘때쯤 담가 설까지 먹는 동치미에 들어갈 무는 강원도 고랭지 지역에서 생산된 단단한 것들로 장만한다.
무는 미끈하고 배가 볼록하며 바람이 들지 않고 무청이 싱싱한 것으로 고른다. 양념으로 사용하는 것은 소금과 매실청이 전부. 소금은 신안 천일염을 사서 간수를 빼둔다. 간수가 덜 빠지면 동치미에서 쓴맛이 돌거나 무가 물러진다. 발효를 촉진하는 매실청은 절인 무에 물을 붓고 부재료를 넣을 때 함께 넣는데 말끔한 단맛을 내고 군내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독에 동치미를 보관할 때 재료 위에 대나무 줄기를 잎사귀째 둘둘 말아 올려두면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 대나무의 시원한 바람 냄새는 동치미 맛을 한결 시원하게 해주기도 한다. 서울 도심에서 구하기 힘든 대나무 줄기는 동치미 담그기 전날 이종국씨와 친분이 있는 진관사 법회 스님이 가져다주었다.
요리연구소 식구들과 함께 무를 절이고 있는 이종국씨. 흐르는 물에 흙만 제거한 무에 천일염이 박힐 정도로 꾹꾹 눌러 굴려야 큰 항아리에 3~4일간 넣어두었을 때 동치미 담그기 좋을 만큼 적당히 절여진다.
여성중앙 2011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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