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요리시간

모정소반의 건강한 한식 밥상 , 세 번째 이야기

아기 달맞이 2011. 12. 26. 07:54

 

입력 : 2011.04.29 09:05

#찻잎된장무침과 냉이된장찌개로 개운하게 차린 상

장 담그기가 끝나자 점심상을 받았다. 첫눈에는 수더분한 상이다. 돼지고기를 삶아 된장과 쌈채를 곁들이고, 부추를 썰어 넣고 부친 장떡을 옆에 놓으니 푸짐하다. 차정금 씨는 고기를 삶을 때 된장과 양파, 생강, 마늘을 곁들이는데,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다시마 한 조각을 넣는다. 묵은 김치에 잘 익은 부추김치, 마늘종과 멸치볶음, 여기에 달래 넣은 된장찌개와 직접 농사지은 매실로 담근 매실장아찌가 따라 오른다. 매실장아찌는 고추장 단지에 묻은 것이 아니라 설탕에 절여 아삭아삭하게 익힌 것이다. 고기반찬에 어울리기도 하지만 밥을 다 먹은 후 후식 삼아 몇 점 먹어도 좋을 만큼 새콤달콤하다.

여린 잎채소로 만든 샐러드 맛이 독특하다 싶었더니 된장을 넣어서 그렇다고 한다. 된장키위소스를 얹은 것이다. 잘 익은 된장을 작은 수저로 두 숟가락 뜨고, 키위 반 개에 큰 수저로 두 숟가락 매실청을 섞어 갈아 낸다. 된장 특유의 맛은 사라지고 고소하면서도 상큼한 맛이다. 취나물무침처럼 보이는 나물은 잎차를 우려 내고 남은 것을 다른 양념 없이 된장으로 무친다. 쌉쌀한 맛이 거의 없이 개운해 눌은밥이나 물에 만 밥에 얹어 먹으면 입맛을 돋울 것이다.

#야생차밭과 매화밭 사이의 고랑에서 재배한 콩으로 만드는 순된장

징광문화의 잎차는 옹기만큼, 아니 그보다 더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귀할 만큼 넓은 야생차밭에서 나기 때문이다. 약 39만㎡(12만 평)에 이르는 야생차밭은 일 년에 두어 번 풀베기만 해줄 뿐, 비료나 퇴비는 일절 쓰지 않고 자연 그대로 가꾸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79년 남편인 한창훈 선생이 조성했다는데 원래 있던 야생차밭에 화엄사와 선암사에서 구해온 차 씨를 심고, 차나무를 가져와 꺾꽂이해 가며 가꿨다고 한다.

징광문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한상훈 선생과 그의 형님인 한창기 선생이다. 한창기 선생은 우리나라 문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종합지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깊은물>의 발행인이다. 선생이 펴낸 인문지리지 《한국의 발견》은 서울·부산·경기도·강원도·충북·충남·경북·경남·전북·전남·제주도 편에 걸쳐 총 11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보물과 같은 책이다. 예전에 방송국 도서실에 가보면, 수많은 책들 중에 유독 《한국의 발견》만 해지고, 때 묻고, 누가 ‘훔쳐가’ 이가 빠져 있었다고 한다.

한창훈 선생은 잎차와 옹기, 유기 문화를 새롭게 일으키기 위해 남도 징광리에 내려와 징광문화를 설립했다. ‘잎차’는 ‘녹차’와는 조금 다르다. 흔히 부르는 녹차는 일본식의 쪄서 만드는 제다법에서 나온 차를 말한다. 찻잎을 따서 고온에서 일일이 손으로 덖고 비비는 우리 고유의 제다법으로 만든 차는 잎차라고 부른다. 녹차는 흔히 끓는 물을 한 김 식혀 부어서 우려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뜨거운 물을 부으면 탄닌 성분이 지나치게 빨리 우러나서 떫고 쓴맛이 나기 때문이다. 잎차는 펄펄 끓는 물을 부어서 우려도 떫은맛이 없고 그윽하고 단맛이 돈다.

차정금 씨가 된장을 만들게 된 계기는 차밭 근처에 매화나무 밭을 따로 가꾸게 되면서부터다. 매화나무를 4~6m 간격으로 심을 때, 넓은 고랑을 메우기 위해 콩을 심기 시작했다. 콩을 심으면 질소 성분이 생겨 매화나무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콩을 심음으로써 풀이 덜 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 김매기가 한결 수월했다. 콩 역시 비료나 퇴비를 일절 쓰지 않고 유기농법으로 기른다. 이렇게 수확한 콩으로 메주를 만들어 된장을 담근다. 차정금 씨는 자신이 담근 된장에 특별히 ‘순된장’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요즘 녹차된장이니 고로쇠된장이니 하는 것들과 차별화하려는 것인데 예전 우리 어머니, 할머니가 담그시던 순수한 맛을 재현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직접 콩농사를 지어서 메주를 만드는 탓에 차정금 씨가 내놓는 된장은 워낙 양이 적다. 그런 만큼 알음알음으로 구입하는 사람들에게만 나눠줄 수 있을 뿐, 널리 알려가며 판매할 수는 없다고 한다. 작년에 담근 된장은 이미 동이 나서 구할 수 없다. 천상 미리 주문해 놓고 올해 담근 된장이 맛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징광의 된장은 3kg 들어가는 작은 항아리에 담긴 상태로 배송되는데, 항아리가 어찌나 예쁜지 된장보다 항아리 욕심에 구입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직접 된장이나 고추장을 담가 보려는 사람들은 항아리를 따로 구입하는데 조형이 좋은 샐러드볼이나 뚝배기, 접시, 쌀독 등도 인기다. 베란다에 화분을 놓고 상추를 심어 길러 먹는 맛이 남다르듯, 작은 항아리 서너 개를 조르르 세워 두고 직접 장을 담가 익혀 먹는 맛도 각별할 것이다. 질박하나 조형이 세련된 옹기 그릇 몇 개를 갖춰 두고 상을 차리는 즐거움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음식 맛의 기본이 장이라면, 음식 맛의 끝은 푸근하고 정겨운 그릇에 정성스럽게 갖춰 내는 담음새에 달린다.

Shopping Info
1 샐러드나 과일을 담아 내기에 좋은 ‘나리 샐러드볼’. 징광옹기의 베스트셀러 상품 중 하나다.
2 양쪽에 손잡이가 있는 쌀독. 5kg, 10kg, 20kg 단위로 만들어지므로 식구 수에 따라 선택해 사용한다.
3 장을 직접 담그려면 징광의 연봉항아리를 구입하는 것도 좋다. 1호는 9L, 2호는 13L, 3호는 18L 용량이 들어간다. 장 담그기에 적당한 것은 2호와 3호다. 손잡이가 있는 뚜껑은 비실용적으로 보이지만, 예전 남도 사대부가의 귀한 옹기를 재현한 것이다.
4 순박한 느낌을 주는 뚝배기. 큰 것은 국밥을 담으면 좋고 좀 작은 것은 국이나 물김치를 담는 데 사용하면 적당하다.
5 3kg 된장이 들어가는 ‘순된장’ 포장 항아리. 지난해 담근 된장은 이미 동이 났지만 올해 담근 된장은 미리 주문받아 두었다가 된장에 맛이 들면 배송한다.

/ 기획 이미영 헬스조선 기자
글 모정소반(푸드 칼럼니스트)

 사진 차병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