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관茶罐의 실용성에 대하여
지인의 안내로 어느 찻집을 찾았다. 茶를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주인장이 큼직하고 두꺼운 무유다관無釉茶罐을 사용해서 녹차를 우려냈다. 어두운 색상의 투박스럽고 큼직한 다관은 일단 외관상으로도 녹차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다관에 넣기 전에 살펴본 찻잎은 매우 짧고 가늘었는데 이처럼 어린잎으로 만들어진 녹차를 우리기에는 더욱 아니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평소에 애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근래 들어 시중에는 중국풍의 무유다관이 눈에 많이 띈다. 중국의 발효차 그 중에서도 특히 보이차가 붐을 일으키면서 중국에서 자사호가 다량으로 유입되자, 도예가들이 이를 겨냥해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싶다.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중국차 열풍으로 말미암아 제다인들이 우리의 녹차를 소홀히 하고 발효차제조에 치우치는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중국풍의 다관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기는 심정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실제적인 문제는 중국의 자사호를 모방한 무유다관이 실용적인 측면에서 자사호에 거의 미치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데 있다. 물론 태토胎土가 다르니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자사호가 중국의 발효차를 우려내는데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면 자사호를 모방한 무유다관 역시 그에 따른 최소한의 기능이라도 갖춰야한다.
자사호는 차탕의 향미香味를 가장 잘 보존하는 다관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우수한 조건들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범인凡人들은 전문성 부족과 경제력의 한계 때문에 진품 자사호를 구매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중국차를 우리는데 있어서 최소한의 기능이라도 갖춘 저렴한 가격의 자사호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없는 것보다 낫다. 최소한의 기능이란 다관에 담긴 열수熱水가 얼른 식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상당한 종류의 중국 발효차를 열수로 뜨겁게 우려 마셔야하기 때문에 이는 필수적이다. 자사호는 열전도율이 높은 흙으로 얇게 빚어서 높은 온도로 단단하게 구워냈기 때문에 저렴한 것일지라도 대개 이 기능만큼은 지니고 있다.
그런데 자사호를 모방한 무유다관은 최소한의 기능마저도 지니고 있지 않은 것들이 많다. 열수의 온도를 급격하게 떨어뜨리는 것인데, 태토가 다른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두껍게 만들어진 것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이런 다관은 모양만 자사호를 닮았을 뿐 실용적인 면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태토가 다른 점을 감안하여 다른 것은 기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기능을 어느 정도나마 지니려면 가능한 얇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다관이 차의 향미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태토를 선택하는데 주의해야 하며 고온에서 소성燒成해야 한다. 자사호의 소성온도는 약 섭씨 1100 도에서 1200 도 사이로 알려져 있다. 거친 태토에, 고온으로 충분히 소성하지 않은, 밀도가 낮은 무유다관은 차의 향미에 영향을 주거나 열수의 온도를 제대로 유지해주지 못한다.
언젠가 이러한 문제들을 놓고 젊은 도예가와 대화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는 무유다기의 문제점들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수긍했다. 내친김에 ‘개인적인 판단이기는 하지만 국산 무유다기를 일, 이십 만원씩 주고 구입하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괜찮은 자사호를 택하겠다.’고 한걸음 더 나갔다. 그가 대답했다. ‘제가 잘 구어서 단단하게 만들어 드릴 테니 한 번 사용해 보십시오.’ 그러나 이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른바 전통다기의 경우도 실용적 가치에 있어서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다관이 너무 두껍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차의 맛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물의 온도인데 두꺼운 도자기 다관은 수온을 빨리 떨어뜨린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다관이 식지 않도록 주의하며 짧은 시간 내에 연속해서 차를 우려야 한다. 또한 다관 중에는 차의 향미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있다. 무유다관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고 이 경우는 아무래도 유약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통적인 다관은, 입자가 곱고 밀도가 치밀한 태토와 순수한 유리질의 유약을 사용해서 고온으로 소성한, 표면에 균열이 없는 백자가 가장 좋다. 이런 다관은 차의 향미가 다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 좋고 차탕의 색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가급적 얇게 만든다면 내구성은 좀 떨어질지라도 온도의 변화를 줄일 수 있어서 더욱 좋을 것이다.
무유다관은 녹차를 우리는데 적합하지 않다, 발효차는 향미가 강하기 때문에 무리가 덜하겠지만 녹차의 섬세한 향미는 조금만 영향을 받아도 순수성을 잃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이기는 하지만 어떤 무유다관은 향미가 거친 발효차를 순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는데 녹차에 있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한 색상과 질감을 내는 독특한 무유다기는 보기에 좋아보일지라도 고급차를 우리는 데는 아무래도 적합하지 않다.
다기를 만드는 도예가들에게는 편치 않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볼 때 실용성을 따진다면 도자기다관보다 유리다관이 효과적이다. 이는 유리의 성질에 기인한다. 『유리는 고온의 유체상태에서 결정이 성장할 틈이 없을 정도로 급속히 고체화되어 만들어진 투명 또는 반투명의 단단한 무기물로서 화학적 안전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내용물과의 반응에 따른 변질이나 오염이 없다.』(다음백과사전 「유리」 참조)
얇은 유리다관은 수온 조절이 용이하고 차의 향미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차탕의 색을 정확하게 볼 수 있어서 차의 품질을 눈으로 식별하는데도 유리하다. 초보자의 경우에는 수색을 보며 적절하게 농도를 맞출 수 있어서 좋다.
시중의 다관이 실용성에서 가치가 떨어지는 원인 중 하나는 도예가 자신이 차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다관을 만드는 대부분의 도예가들이 차를 마시기는 하지만 그들 중의 상당수가 신분상 몸에 배인 습관의 결과인 것 같다. 차의 품질을 까다롭게 가늠하는 사람이 드물고 차를 우리는 실질적인 요령에 익숙하기보다 제도권 차문화의 예법을 적당히 흉내 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정도로는 다관의 실용적 가치를 높이기 어렵다. 게다가 다관을 사용하는 차인들도 차 자체를 잘 모르는 까닭에 형태나 색상이나 질감에만 관심이 많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도예전문가가 아닌 오직 차에 푹 빠져서 살아가는 사람이 생각하는 다관의 진정한 가치는, 『차를 우려냈을 때 그 차가 지닌 본래의 색향미色香味가 그대로 나타나는가?』에 있다. 그런데 형형색색의 다관은 많아도 정작 차를 우려마시기 좋은 ‘적정한 가격에 기능성을 갖춘 다관’이 흔치 않다. 안타까운 현실이다.(Tea & People 2008. 7 기고)
'다도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잎차 제다법 (0) | 2011.09.05 |
---|---|
규방 문화와 규방 다례 (0) | 2011.08.15 |
녹차, 이거 아세요? (0) | 2011.08.02 |
송화가루 채취 방법/펌글 (0) | 2011.07.22 |
아름다운 찻집 다선미家 를 공개합니다 (0) | 2011.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