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방

참선하지 않으면 좋은 차 만들 수 없죠”

아기 달맞이 2011. 7. 16. 07:33

차(茶) 만드는 게 수행입니다”

전남 순천 금둔사는 낙안읍성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금전산(해발 668m)의 작은 암자다. 그 아래 산비탈에 3만㎡ 규모의 넓은 차밭이 펼쳐져 있다. 금둔사 주지 지허(70) 스님이 직접 가꾸는 차 밭이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이즈음 차밭은 온통 진한 녹색이다. 올봄 경남 하동과 전남 보성의 차 밭이 냉해를 입어 절반 가까이 죽어 버린 것과 대조적이다. 20여 년 전, 스님은 선암사와 절 주변 산에 있던 야생 차나무의 씨를 받아 이곳에 심었다. 차밭에는 나무가 많아 마치 휴양림처럼 보이지만 정작 차밭에 서면 산 아래 낙안의 들판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스님과 함께 곡선을 이룬 차밭 이랑을 유영하듯 걸었다.

순천=글·사진 김영주 기자


 스님은 중학교 3학년이던 1954년 순천의 유명한 사찰인 선암사로 출가했다. 76년부터 2004년 사이 선암사 주지를 세 번 지냈다. 50여 년 동안 다각(茶角·절에서 차밭을 가꾸고 차를 올리는 사람)을 맡았다. 2005년부터는 금둔사에 홀로 기거하며 선다일여(禪茶一如) 실천에 전념하고 있다. 차나무를 키우고 찻잎을 덖는 일은 스님에게 수행 자체다. 겨우내 차를 잘 키워야 봄에 좋은 찻잎을 딸 수 있다. 또한 4~5월에 한 번 덖은 차를 한 달여 동안 항아리에 넣어 숙성시킨 뒤 다시 한 번 가마솥에서 볶는다. 일흔 살 노스님이 아궁이 옆에 걸터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찻잎을 덖는 모습은 불자의 수행을 보는 것 같다.

●한 번 덖은 차를 왜 다시 덖는 건가요.

 “차에는 오미(五味), 즉 달고 쓰고 떫고 시고 짠맛이 있어. 이 다섯 가지 맛을 균등하게 가져야 해. 다섯 가지 맛의 총체가 고소한 맛이야. 차는 기본적으로 떫잖아. 한 번 덖었을 때는 떫지만 한 달 정도 말려 수분이 90% 정도 빠졌을 때 한 번 더 볶아 주면 고소한 맛이 나지. 불이 싸지(세지) 않도록 은은한 불에 서서히 볶아야 해. 그러면 색깔이 훨씬 환해지지. 차를 내릴 때 금방 알 수 있어. 입안에 들어갔을 때 훨씬 부드럽거든.”

●언제부터 차를 하셨나요.

 “내가 열네 살에 선암사에 들어갔어. 절에 가면 행자를 하잖아. 스님 45명의 보리밥을 짓는데 보리를 찧고 빻고 까서 밥을 하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 그래서 ‘아이고, 나는 몸이 약해 중노릇도 못 하겠다’ 그러고 있었지. 주지스님이 그걸 알고 ‘그러면 너는 선방에 가서 차를 내라’ 하시는 거야. 보리밥보다는 더 수월합디다만 노장스님들이 차를 얼마나 마시는지, 물은 안 마시고 차만 마시는 거야. 그때는 요즘같이 봄에 차를 만들어 놨다가 사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봄·여름·가을·겨울 계속 덖었거든. 한겨울에도 찻잎 따다가 덖고 비비고 하는데 그것도 보리밥 짓는 것만큼 힘들었어. 그래도 그분들 덕에 차를 배운 셈이지. 덖은 차를 숙성시켰다가 나중에 한 번 더 볶는 방식도 그때 노장스님들에게 배운 것이야. ”

●이른 나이에 절에 드셨네요.

 “벌교중학교(전남 보성군 벌교읍) 3학년 때 머리가 일찍 틔었어. 학교 공부는 안 하고 철학책만 열심히 봤거든. 칸트·니체·야스퍼스의 책 말이야. 나 말고도 그런 친구들이 2명 더 있었는데, 셋이서 만날 책 보고 토론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지. 책을 읽다 보니까 사후세계에 관심이 많아진 거야. 그걸 경험하겠다고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짓을 했어. 무모한 짓이었지. 그러다가 한 친구가 저세상으로 가 버렸어. 그 친구를 화장하고 나니까 버클하고 만년필만 남아. 그걸 바라보고 있는데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사람은 죽어 어디로 가는가, 불교에서 말하는 일귀하처(一歸何處·모든 것이 마침내는 한 군데로 돌아간다 하니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지. 그래서 선암사 스님을 찾아갔는데, 스님이 ‘그걸 알려면 참선을 해야 한다’ 그러시는 거야. 그길로 출가를 했지.”

●중간에 한 번 산을 내려가신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파계하신 건가요.

 “허허, 파계라고 해야 하나. 절에서 한 4년 살았을 때 바람이 들었어. 그때는 요상하게 부처님보다 좋은 옷, 좋은 향기, 특히 여학생들의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 이런 것들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더라고. 하루는 노장스님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놨지. 그랬더니 스님이 나를 산속으로 한참을 끌고 들어가더니 느닷없이 묻는 거야. ‘너는 여자가 좋으냐, 물이 좋으냐’ 그렇게 물어보니까 여자는 또 별것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물이 더 좋습니다’ 그랬지. 그러고 또 한참을 가더니 ‘너는 여자가 좋으냐, 산이 더 좋으냐’ 묻는 거야. 생각해 보니 산이 더 좋아. 그런데 산을 내려와 밤이 되니까 또 생각이 나. 그것을 ‘습’이라고 그래. 생각과 감성이 계속해 충돌하는 것이지. 그래서 ‘아, 내가 직접 경험을 해 봐야겠구나’ 마음을 먹고 산을 내려가 열아홉 살에 고등학교에 들어갔지. 그때부터 동국대 불교학과 1학년 때까지 연애도 해 보고 술도 마셔 보고 남들 하는 것은 거의 해 봤어. 내가 국민학교 때 전국성악콩쿠르에서 1등을 할 정도로 노래를 잘했어. 노래만 부르면 여학생들이 막 따르더라고. 근데 해 보니까 별거 아니야. 그래서 다시 절로 갈 수 있었지. 그 뒤로 ‘절대진리란 무엇인가’ 화두를 품고 전국의 선방을 돌아다녔지.”

●‘선다일여(禪茶一如)’란 무슨 뜻인가요. 쉽게 이해가 안 됩니다.

 “그것이 뭐가 어려워. 참선을 하지 않은 사람은 차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이야. 찻잎을 따서 덖으면 떫은맛이 나잖아. 차는 본래 떫은 것이지. 좋은 차는 거기에 단맛을 가미하는 것이야. 불심이란 것이 뭣인가. 지혜와 자비야. 지혜는 날카로운 것이고 자비는 부드러운 것이지. 이 둘을 합일해야 돼. 그것을 위해 참선을 하는 것이고. 차도 똑같아. 떫은맛과 단맛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둘을 합일하는 과정이야. 그래서 어려운 것이고 말만 갖고는 안 되는 것이지. 절에서 나온다고 해서 다 좋은 차가 아니야. 요즘 절에 가면 참선 안 하는 스님이 많아. 참선을 하지 않는 사람은 좋은 차를 만들 수 없어.”

●차밭의 나무들은 일부러 심은 겁니까.

 “일부러 심었지. 좋은 차밭은 음지가 더 많아야 해. 음칠양삼이 돼야 하지. 그래서 은행나무·단풍·밤나무 같은 활엽수들을 심은 거야. 햇볕이 쨍할 때는 볕을 막아 주면서도 바람이 살랑거리면 또 열어 주지. 좋은 찻잎은 일창이기(一槍二旗·찻잎 모양이 하나의 창과 두 개의 깃발과 같다는 뜻)에 붉은 기운이 도는 것이라고 옛 문헌에도 나와 있지. 붉은 기운이 도는 새잎은 음칠양삼이라야 가능해. 나무만 있어서도 안 돼. 차나무 아래로는 반드시 풀이 자라야 해. 풀이 있어야 밭에 사는 벌레들이 찻잎을 안 먹고 부드러운 풀을 먹지. 하지만 잡초가 성하면 벌레가 많아지니까 종종 베어 줘야 하고. 또 벤 풀을 차나무 아래 깔아 놓으면 겨울엔 차나무를 보호하거든. 그러니까 차 밭은 풀·나무·벌레가 공동체를 이뤄야 하는 거지. 그래서 저번 시한(‘겨울’의 전남 사투리)에도 차나무가 한 그루도 안 죽었던 것이지.”

●차밭 관리가 쉽지 않겠습니다. 일은 혼자 하나요.

 “힘들지. 사람들은 흔히 차는 곡우 때 따서 덖는다고 생각해 봄 한철만 일하는 줄 아는데, 좋은 차를 얻으려면 일 년 사시사철 일해야 돼. 봄에는 찻잎 따서 덖고, 여름에는 풀 베고 가을에는 차나무와 활엽수들 가지치기를 해 줘야 하고. 겨울에는 땔나무 해야지. 참나무는 불이 너무 싸서 안 되고, 반드시 소나무라야 되고…. ”

●보통 일 년에 차를 몇 통이나 내세요.

 “80g짜리 200∼300통 정도. 보통 재배 차밭에서는 한 평에 100g짜리 차 10통을 딸 수 있다고 해. 한데 야생 차 밭에서는 10평에 80g짜리 한 통밖에 안 나와. 일손이 없어 찻잎을 딸 사람이 없어. ”

●스님한테 차를 배우려는 사람은 없나요.

 “없어. 힘드니까 안 하려는 것 같아. 우리 덖음차가 정말로 고급 차이고 고급 문화인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것 같아. 항간에는 ‘내가 만든 차가 최고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봐야지. 어떻게 ‘절대’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어. 차를 덖는 사람은 오로지 차나무의 희생의 가치, 그것이 최고조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는 것, 그뿐이지. 차나무의 희생, 그것이 억울하지 않도록 말이야.”


  차 밭만 봐도 … 

지허 스님이 20년 동안 땀 흘려 일군 금둔사 차밭은 누가 보기에도 ‘좋은 차를 내는 곳이구나’라는 짐작을 하게끔 만든다. 얼마 전 금둔사 차 밭에 한 손님이 찾았다고 한다. 제주 오설록다원을 운영하는 아모레퍼시픽 서경배(48) 대표다. 아모레퍼시픽은 2년 전부터 『한국의 차문화 천년』(돌베개)이라는 책을 내고 있다. 삼국시대·고려·조선에 걸쳐 차 문화와 관련된 문헌자료들을 수집해 번역한 것이다. 올해로 3권째 냈다. 책을 낸 이후 서 대표는 “전통 차에 대해 알고 싶으면 지허 스님을 만나 보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다고 한다.

 금둔사 차밭을 찾아온 서 대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허 스님의 50년 차 사랑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고 한다. 스님은 “너무 대중적인 차만 만들지 말고 고급 차에도 관심을 가져 보라”고 조언했다. 서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서 아모레퍼시픽 임원들에게 차 관련 강의를 부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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