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다기
조선시대에는 말차가 쇠퇴하고
잎차와 떡차를 끓인 다탕을 즐겨 마시게 됨에 따라
다기도 귀족적이거나 화려하지 않고
소담한 멋과 단아한 기품을 지니게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선비들이 가장 오랫동안 손에 들고 있는 그릇이 따뜻한 찻잔이며,
또 찻잔은 차를 마시는 환경이나
마음상태에 어울려야 하므로,
대단한 멋을 추구하였을 것입니다.
고려의 청자는 퇴조한 반면
조선 초부터 16세기 중엽까지 분청자가 등장하는데,
이는 청자의 바탕흙에 흰흙(白土)으로 분을 바른 것으로,
분청자의 종류로는 잔의 뒷굽을 잡고 흰 흙물에 담갔다가 꺼내는
‘덤벙분청자’와 ‘귀얄분청자’,
‘온분청자’, ‘새김분청자(印花)’ 등으로 나눌 수 있답니다.
특히 덤벙분청자와 귀얄분청자는
모자란 듯 하면서 자연스럽고 대범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대담한 귀얄(붓)자국은 파격적인 멋을 드러냅니다.
임진왜란을 일명 도자기전쟁이라고도 하는데,
더 구체적으로는 다완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일본사람들은 우리 조상들의 손때 묻은 찻잔을 훑어 가져갔고
사기장(도공)들을 잡아갔습니다.
가마의 위치에 따라
정호(井戶), 웅천, 오기, 반사, 김해 등의 이름을 붙였는데,
이들 찻잔은 조선 초엽인 15~16세기의 것이 많고,
이러한 도자기는 차가 많이 나는 지방에서 구운 것으로
실제로 차를 마셨던 그릇인데,
백자는 태토가 흰색으로
신라 말부터 고려시대에도 간간이 생산되다가,
15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발달되어
궁중용이거나 고급그릇으로 쓰였고,
관형 도자기 가마에서 구운 분원제품이 그 특징이랍니다.
조선시대에는
다탕을 마시는 잔과 다유를 마시는 잔의 명칭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다완도 잔의 울이 벌어지고 얕으며 대개 몸통이 두터운 편이나
굽이 또렷하고 마디가 있는 것도 있어서
엎었을 때 굽을 쥐고 놓기에 편하며,
잔 입술은 조금 바라진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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