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군자에서 - 신경림

아기 달맞이 2011. 2. 12. 05:34

 

 

군자에서 - 경림

 

협궤열차는 서서 
기적만 울리고 좀체 떠나지 못한다 

승객들은 철로에 나와 앉아 
봄볕에 가난을 널어 쪼이지만 
염전을 쓸고 오는 
바닷바람은 아직 맵차다. 

산다는 것이 갈수록 부끄럽구나 
분홍 커튼을 친 술집문을 열고 
높은 구두를 신은 아가씨가 
나그네를 구경하고 섰는 촌 정거장 

추레한 몸을 끌고 차에서 내려서면 
쓰러진 친구들의 이름처럼 갈라진 
내 손등에도 몇 줄기의 피가 배인다. 

어차피 우리는 형제라고 
아가씨야 너는 그렇게 말하는구나 

가난과 설움을 함께 타고난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형제라고 

역앞 장터 골목은 누렇게 녹이 슬고 
덜컹대는 판장들이 허옇게 바랬는데 

석탄연기를 내뿜으며 헐떡이는 
기차에 뛰어올라 숨을 몰아쉬면 

나는 안다 많은 형제들의 피와 눈물이 
내 등뒤에서 이렇게 아우성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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