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재처럼

주부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여자, 자연주의 살림꾼 효재

아기 달맞이 2010. 8. 25. 10:40

미국에 타샤 튜더와 마샤 스튜어트가 있고, 일본에 쿠리하라 하루미가 있다면 한국에는 이효재가 있다. 효재 선생님의 손끝에 닿으면 누더기 헝겊도 선녀의 날개옷이 되고, 초근목피도 진수성찬이 된다." 욘사마 배용준은 그의 책 <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 에서 효재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효재, 살림하는 주부들에게 그녀는 가장 닮고 싶은 '자연주의 살림꾼'이다.

눈이 사박사박 내리던 날, 성북동 '효재집'을 찾았다. 오랜만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한아름 들고 갔더니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손님이 오면 옷걸이로 문을 가려둔다는 비공개 공간, '만화방'까지 열어준다.

'효재다방' 커피를 내온다. 작은 유리잔에 나온 커피를 앙증맞은 손뜨개 컵받침에 올려놓는다.

"커피는 온도예요. 뜨거울 때 마셔요."
예전에는 '효재집'에 가면 녹차나 허브티는 있지만 커피는 없었다. 효재다방 차가 인기가 없어서 커피머신을 들여놓았단다. 달콤하고 부드러우면서 진한 커피 맛이 혀끝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중독성이 강한 맛이다. 커피 맛의 비결을 물으니 '마약 한 스푼'이란다. 이런, 유머도 느나 보다.

하지만 효재는 커피보다는 컵받침 자랑이 더 하고 싶은 듯하다.
"이 컵받침 색깔 예쁘죠? 먹고 남은 와인으로 물들인 거예요."
먹고 남은 와인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염색료로 쓰다니, 이럴 땐 '효재 답다'는 표현을 써야 할 것 같다.

지난 한 해 효재는 너무도 바빴고, 그 어느 때보다 활동이 많았다. 에세이집 < 효재처럼 살아요 > 를 출간했고, 배용준의 책 작업에도 동행했다. 덕분에 주부들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한발 더 다가갔다. 일본에서까지 유명 인사가 되어, 성북동 한복집 '효재'와 '효재집'은 일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을 정도란다.

"나야 뭐, 책 핑계대고 전국 유람한 것밖에 더 있나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배용준이 효재의 매력에 빠졌듯 효재도 배용준의 매력에 빠진 듯하다.
"참 아름다운 청년이더군요. 외모만큼 속도 잘생겼어요."
그 아름다운 청년의 일본 출판기념회에서 효재는 '보자기 아트쇼' 초연을 했다. 도쿄돔에 모인 4만5천여 관객이 보자기를 묶어 흔드는 아트쇼는 흡사 마스게임 같은 엄청난 장관이었단다. 이어 수원 봉녕사에서 열린 '2009 대한민국 사찰음식 대향연'에 참여,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보자기 아트쇼'를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 그뿐 아니다. 지난 11월에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키의 러브콜을 받아 함께 패션 전시회도 했다. 효재가 일본에서 선보인 댕기머리 모양을 형상화한 보자기 덕분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억에 남을 일인데, 보자기 아트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데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보자기 한 장으로 에코 실천가가 되다
효재는 참 많은 일을 한다. 처음에는 한복을 아름답게 짓는 한복 디자이너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 날 살림서를 냈다. 특별한 멋을 부린 요리도 아니고 외국에서 배워온 솜씨도 아니었다. 소박한 우리네 한식을 아름답게, 맛깔나게 즐기고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다. 정갈한 살림살이, 재활용하며 아끼는 검소한 살림살이가 주부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보자기로 책을 내더니 문화 퍼포먼스를 하고 아트쇼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요즘은 광목으로 옷을 짓는 재미에 흠뻑 빠졌단다. 지난봄에는 에세이집도 냈다. 작가가 된 것이다.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거 알아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어머니들이 일상으로 하던 일이었어요. 어머니들은 가족을 위해 바느질해서 옷을 만들고, 음식을 하고, 집을 아름답게 가꾸고, 보자기로 선물을 쌌지요. 전화가 드물었으니 소식을 전할 일이 있으면 편지를 쓰고요."

자신은 그 어머니가 하던 일을 계속할 뿐인데, '시절을 잘 만난 덕분'에 주목받는 것이란다. 시절을 잘 만나서 하고 있는 일들, 그중에서도 새로운 분야로 주목받고 있는 보자기 이야기가 궁금하다.

효재에게 보자기는 일상이다. 한복을 지으면서 그 한복을 싸고, 혼수를 싸 보내던 것이 보자기였다. 여성지에 살림법을 소개하면서, 효재는 포장지 대신 그 보자기로 선물을 싸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보자기로 책까지 내게 되었고, 화장품이며 자동차를 싸는 문화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이제는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아 '보자기 아트쇼'까지 선보이게 된 것이다.

"내가 늘 하던 일인데, 계속해서 하다 보니 길이 되고 예술이 되더라고요."
보자기는 사각 천 조각일 뿐이지만, 효재는 보자기만큼 우리네 '정'이 고스란히 담긴 것도 없다고 말한다.

"보자기로 싸기 전에 우선 탁탁 터는데, 그건 나쁜 것을 털어내는 거예요. 그리고 복을 싼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우리는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니가 싸안아야지, 그냥 덮어, 풀어"라고 말한다. 모두 보자기와 연관된 말들이다. 이렇게 보자기는 뭐든 감쌀 수 있다는 뜻이다. 효재는 그렇게 보자기로 흉을 덮고, 복을 싼다. 그리고 그것을 예술로 보여준다. 내년에는 미국 6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한복과 보자기 아트를 전시할 계획이다.

무엇보다도 보자기는 최고의 친환경 포장재다. 정성이 담기면서 재활용이 가능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그녀가 보자기와 고무줄 하나로 포장하는 모습은 충분히 환경운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예술로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선물을 보자기로 싸고, 포장지만 쓰지 않아도 아마존 정글 하나쯤은 보존할 수 있을 걸요."

이렇게 말하는 효재, 그녀는 진정한 자연주의 살림꾼이었다. 그리고 그 자연주의 살림꾼이 환경운동가로 인정받은 것이다. 자신은 '무슨 거창하게 환경운동가냐, 그저 에코 실천가쯤으로 해두자'고 하지만 말이다.

이런 그의 마음을 나라에서도 인정한 것일까. 서울시에서 '2010년 서울시 환경보호대사'로 효재를 임명했다. 환경보호대사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얼마든지 힘을 보태겠다고 한다.

들깻묵 같은 글을 쓰고 싶다
효재는 글쓰기를 참 좋아한다.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고, 수필도 쓰고, 그러다가 동화책도 한 권 냈다. 그리고 지난해 봄에는 에세이집을 냈다. 산문이라기에는 짧고, 시라기에는 긴 글이다. 어렸을 적 이야기부터 선물, 살림, 아름다움, 나이 듦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소박하게, 이웃집에 마실 나온 느낌으로 풀어낸 에세이다. 항상 글을 쓰고 싶다던 그의 소망이 제대로 이뤄진 것이다.

"젊어서도 글을 썼지만, 그때는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가 없었어요. 젊어서 쓰는 글은 모가 났거든요. 내 주장과 주관이 강할 때이다 보니 글이 모가 날 수밖에요. 하지만 쉰이 넘어서는 둥글둥글하고 편안한 글이 써지더군요."

그의 표현대로라면 "들깻묵 같은 글"이란다. 들깨에서 고소한 기름을 짜고 남은 들깻묵은 은은한 향만 남지만, 최고의 거름이 된단다. 그래서 자신의 글이 들깻묵처럼 거름이 되는 좋은 글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들깻묵 같은 글을 쓰고, 독자들은 그 글에서 고소한 향을 맛보면 좋겠어요."
효재는 자신의 글에 대해 '덜어낸다'는 표현을 쓴다. 쓴 글을 줄이고, 말을 아끼고, 단어를 함축한다는 의미다. 자꾸 덜어내다 보면 예순 즈음에는 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도 있다.

책 이야기를 더 하자면, 효재는 올봄쯤 일본에서 < 내 친구 욘사마 > 라는 책을 출간할 계획으로 집필 중이다. 이 책은 연예인 배용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일종의 문화서다. 사실 배용준의 책 덕분에 많은 일본 관광객이 '효재집'을 많이 찾는데, 그들에게 여성으로 느끼는 섬세한 한국의 문화를 잘 전하는 것이 숙제란다. 요즘은 '문화가 상륙한다'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빠르게 전파되는데, 그러다 보니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효재는 그 옛날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의 문화가 전해지고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문화가 전파된다면 거부감도 트러블도 없을 거란 이야기를 한다. 그런 취지로,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욘사마가 만화의 주인공이 되어, 우리 문화를 일본에 알리는 만화책을 기획하게 되었단다. 만화책을 좋아하는 효재가 쓰는 만화책이라니 더욱 기대가 된다.

또 한 권은 동화책이다. 30대 젊은 주부가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 아이를 낳아보지도 않은 여자가 어떻게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담은 동화를 쓸 수 있나 싶다. 하지만 효재의 집에는 항상 주부들이 찾아온다. 보자기를 배우고 살림을 배우기 위해서다. 개중에는 아이를 데리고 오는 이들도 있다. 또 주변에서 아이 키우는 모습을 숱하게 봐왔다. 실제로 동화책의 모델이 되어준 엄마와 아이도 있단다. 생활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이야기, 내면을 담은 이야기가 될 거라는 효재의 말처럼, 효재가 바라보는 30대 젊은 아줌마가 주인공인 동화책에는 어떤 마음이 담기게 될지 기대가 된다.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는 것
그러나 무엇보다 효재는 자연주의 살림꾼이다. 그녀는 재활용의 도사고, 정리정돈의 여왕이다. 실제로 효재는 뭐든 아까워서 그대로 못 버린다. 지난가을 낙엽을 줍던 1회용 비닐장갑도 버리지 못하고 가방에 넣고 다닌다. 언제든 휴지라도 주울 요량이다. 요즘은 냅킨도 크게 만들지 않는다. 입 한 번 닦을 정도로 작게 만든다. 천도 아끼고 세탁하는 물도 줄이기 위해서다. 이 말에 꼭 묻고 싶었던, 참고 있던 질문 하나가 톡 튀어나왔다.

"제가 하면 궁상인데, 선생님이 하면 왜 환경보호가 되죠?"
"호호호. 싫은데 억지로 하면 궁상이지만, 좋아서 하면 에코 실천가가 되는 거지."
우문현답이다. 효재의 아끼고 재활용하는 살림살이, 어찌 보면 궁상인데 효재는 그 모두를 좋아서 한다. 그러다 보니 아름다워 보이고, 자연주의 살림꾼으로 칭송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주부가 '효재처럼 늙고 싶다'는 말을 한다. 효재는 여자는 40대가 가장 아름답고, 50대가 되면 가장 빛난다는 표현을 쓴다. 각자 느끼는 것이 다르고 순간이 다르기 때문에 남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효재. 그래도 인생을 먼저 산 선배로서 주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책을 많이 읽으라는 것. 책을 많이 읽으면 속이 편해진단다. 밖으로 나돌지 않게 되니 비교되는 일도, 시끄러운 것을 접할 일도 적어진다는 이야기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가장 평화로워요. 마음이 시끄러울 때 책을 읽으며 평안을 찾으려 했고요."

효재에게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게 있느냐고 물으니 "휴대전화를 없애는 것"이라는 다소 황당한(?) 소망을 꺼내놓는다. 보고 싶은 사람들 목소리 듣고, 안부도 수시로 묻고, 궁금한 것도 바로바로 물을 수 있어 좋은 게 휴대전화 아닌가. 더구나 이렇게 일을 많이 벌려놓은 사람이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 휴대전화를 없애겠다는 건지.

효재는 휴대전화가 좋은 점도 많지만, 이것 때문에 그만큼 사람들 얼굴 볼일이 줄어들어 아쉽단다. 또 바쁘거나 깜빡 놓고 나가서 휴대전화를 못 받으면 섭섭해하는 이도 많아 미안한 마음이 더해진단다. 그래서 차라리 없애고 예전처럼 살아보겠다는 마음이다. 보고 싶으면 직접 찾아가고, 궁금하면 안부 편지를 쓰겠다니 참 효재다운 대답이다. 그래서 요즘은 편지를 쓰기 위해 붓글씨 연습도 시작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과연 휴대전화를 없앨 수 있을지, 연말쯤 다시 만나러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새해 효재는 쉰셋이 된다. 효재는 쉰이 되면서부터 마음이 편안해지고 매일매일이 다르게 느껴진다고, 매일이 새날이고 새해라고 말한다. 또 나이를 먹으면 숙제를 잘 푸는 게 중요하다며, 자신의 숙제(일)를 잘하기 위해 평안해지기 위해 매일매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단다.

그의 새해 소망은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는 것"이란다. 효재의 호는 '지금'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효재의 행복 노하우이고 살림 비법인 셈이다.

출처: 리빙센스
사진|성균
취재|조윤희(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