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예술을 찾아 떠난 한복 인생, 北村에서 안식한다
어릴적 사고로 팔을 잃었다
미술학도가 되어 그림을 그렸다
옷을 캔버스 삼아 작품을 만든다
전통을 잇고, 전통을 뛰어넘으려藝人들의 마을 北村으로 왔다
이나경(李那瓊·56), 그녀가 태어난 곳은 고대 국가 아라가야, 마산이었다. 지금은 서울 한가운데 가회동 북촌(北村)에 산다. 56년 세월 동안 이나경은 팔 하나를 상실했고 예술을 얻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은 단순했다. 설날을 사흘 앞둔 1967년 2월 6일 월요일이었다.이나경은 저녁을 후딱 해치우고 인절미를 해 먹으러 마을 방앗간으로 달려갔다. 기계 돌아가는 걸 바라보며 다가서는 순간, 오른쪽 소매가 쇠바퀴와 벨트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시작은 그렇게 단순하고 잔인했다. 아이를 둘러업고 사람들이 병원으로 가니, 놀란 의사가 수술을 하며 크게 울었다. 이나경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언젠가는 인공지능 의수가 발명될 터이니, 신경 끝은 잘라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훗날 그녀가 말했다. "언젠가까지 내 머릿속에는 팔이 존재했다. 분명히 팔을 흔들고, 움켜쥐고 그랬다." 어느날부터 뇌 속에서 팔이 망각되면서 이나경은 세상을 받아들였다. 지금 그녀는 "장애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며, 씩씩하게 살고 있다.
장애를 어찌어찌하게 극복했다든지, 좌절을 딛고 일어섰다든지 하는 상투적인 경로를 거쳐 "장애인은 미대 원서 안 받는다"는 서울대에 욕 한번 해주고 이나경은 1973년 이화여대 미대에 들어갔다.
그림을 그리고 염색작업도 하고 옷도 만들다가 1978년 옛 신촌역 공동화장실 앞에서 우연히 연출가 오태석을 만났다. "너, 제대로 옷 해."
오태석은 단종애사를 극화한 연극 '胎(태)' 의상을 의뢰했고, 이나경은 종이로 100벌을 만들었다. 무대의상 의뢰가 쏟아졌는데, "어느 날 '이러다 그림 못 그리겠다'고 겁이 나더라"고 했다.
그래서 10년 정도 실과 바늘을 놓고 그림만 그렸다. 하지만 어찌 인연이 사라지겠는가. 결국 이나경은 옷, 한복으로 회귀했다. 인생 두 번째 시작은 그렇게 화장실 앞에서 전개됐다.
-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오태석과 만나면서 화가 이나경은 한복 장인으로 인생을 틀었다. "옷이라는 게 결국은 캔버스 아닌가. 벽에 걸면 그림이고, 무대의상은 움직이는 설치미술이다."
이나경은 1989년 인사동에 작업실을 냈다. 전통과 한번 맺은 인연이 공간으로 이어졌다. 1995년에는 고향 이름을 따서 아라가야 한복집을 냈다. 완전한 전통 복식은 아니되, 전통에 어긋나지 않은 그런 옷을 만들었다. 탤런트 고두심, 가야금 명장 문재숙 같은 명망가들이 이나경을 찾았다. 그런데 "인사동이 완전히 정신없는 곳이 돼 버리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재동으로 북상해 작업실을 옮겨 살다가 아예 인사동보다 더 인사동다운, 좁은 골목 틈새에 숨어 있는 가회동 북촌으로 더 북상해버렸다. 한 집 건너 동료 예인이 둥지를 튼 거대한 전통 공동체다. 이나경은 그제서야 안식(安息)했다. 그녀가 말했다.
"21세기에 18세기 옷을 입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전통(傳統)이라는 거는 틀림없이 계승해야 하는 가치다. 계승을 해야 전통을 딛고 발전할 수 있지." 인연이라는 게 묘해서, 집을 구하고 보니 1990년에 그녀가 탱화를 그려놓은 절 뒷집이었다.
비장애인을 초월하는 초능력자 이나경이 북촌에서 염색작업을 한다. 좁은 공방에서 왼손 하나로 가위질을 하고, 바느질을 하고, 다림질을 하며 옷을 만든다.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100년 후 박물관에 전시될 옷이니 귀하게 입으시라"며 위풍당당하게 옷을 내민다.
북촌 집은 마당이 깊어서, 평상에 누우면 사각하늘이 보인다.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다가, 해거름이 되면 골목길을 걷는다. 길모롱이를 돌면, 거기에 아직도 몰랐던 새로운 공간이 나타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그게 북촌이다.
"생명이 다해서 자연스럽게 돌아갈 때는 미련없이 쿨하게 가야지요. 하지만 오늘 최선을 다해 살다 가게 되면, 눈앞에 보이는 산머리 초승달도 밤하늘 별들도 비온 뒤 땅에 비친 나무그림자도 가슴이 시리도록 슬프게 흘러나오는 저 음악이 아쉽긴 할 것 같습니다. 죽고 난 뒤에는."
힘들다 내색 없이 쉰여섯 해를 살아온 예인 이나경이 쓴 글이었다. 전통이 맺어준 인연, 북촌 작업실에 앉아서 쓴 글이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