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방

일본 다도의 뿌리 - 정동주

아기 달맞이 2010. 1. 23. 09:39

 

 

 

정동주의 茶이야기

 

 

다도(茶道)의 뿌리

  
현대 한국의 차살림이 가장 크게 영향받고 있는 것은 중국 ‘차회’가 아니라 일본의 ‘다도’입니다. ‘다도’라는 어휘가 마치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것처럼 보편화되어 있는 현실이 그 증거입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50년이 지났어도 일제의 잔재는 우리 삶과 역사 곳곳에 유령처럼 살아서 세계화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의식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다도’라는 말은 식민지의 수치가 오히려 뻔뻔스런 고급 문화어처럼 변신하여 한국어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저지른 업보지요. 다도는 단순히 차 한잔 마시며 삶의 여유와 멋을 느끼게하는 취미생활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미묘한 언어 안에는 측량키 어려운 역사, 민족심리, 자본과 미래문제까지 들어 있습니다. 그중 ‘다도’의 역사는 14~15세기 조선시대의 불교문화와 뿌리가 닿아 있지요. 줄잡아도 600여년 전에 시작된 수수께끼같은 이 일은 한국과 일본의 천년 넘는 교류사에서 가장 특기할 문명의 전파였습니다

 

임진왜란이 조선의 고급 도자기 문명을 가장 짧은 시간 안에 통째로 일본으로 옮겨가 일본화시킨 인류 최초의 문명이동이었다면, 다도의 원류가 된 조선 불교문화와 소박하고 자연성 짙은 조선 서민의 주거문화는 한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초암차(草庵茶)’로 완성된 것입니다. 이는 뒷날 ‘다도’라는 종교적 성격을 가미한 일본 문화의 정수로 자리잡았지요. 이 문제는 참으로 중요하기도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차에 관한 자존심, 긍지, 그 이상의 감정까지 내재된 것입니다. 현대 한국 차살림이 지닌 성향 대부분이 일본 ‘다도’의 ‘행다법(行茶法)’ 영향을 많이 받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차실을 꾸미는 방법, 꽃을 꽂는 방식, 특히 말차(抹茶)라 불리는 가루차를 타 마시는 차완과 관련된 이른바 농차법(濃茶法)의 모든 것,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라는 일본 미학자의 차론(茶論), 차완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이도차완(井戶茶碗)에 관한 연구물들, 여러 가지 방법과 기술로 만든 차그릇들의 제작과 감상법, 사용법에 이르기까지 ‘다도’의 영향은 엄청나게 크고 깊습니다.

 

이와같은 ‘다도’를 완성시킨 ‘초암차’의 역사는 세 명의 선구자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초암차라는 말을 처음 제창하면서 일본문화의 특성인 축소지향과 은유의 미학을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한 이는 무라타 슈코(村田珠光·1422~ 1502)입니다. 중흥조의 자리를 구축한 다케노 쇼오(武野紹鷗·1502~1555)는 본래 피혁상인이었지요. 그는 국제무역항이었던 사카이(堺)지역 부유한 상인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하던 조선 풍물을 응용한 새로운 주거 문화에 남다른 주의력을 집중시켰지요.

 

초암차를 완성함과 동시에 ‘다도’를 확립시킨 것은 센노 리큐(千利休·1522~1591)였지요. ‘다도’는 원래 부처를 섬기는 승려의 업(業)을 세속인이 모방한 것이므로 주인이나 손님이 다같이 정성을 다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며, 부처의 은혜가 만인에게 평등하게 베풀어지듯이 다도는 어떤 차별도 없이 모두에게 평등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다도 이념이었지요. 이같은 이념이 집대성될 수 있었던 것은 조선불교 문화와 조선 서민사회의 자연스러운 소박함이 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일본 ‘다도’에는 현대 한국인이 상실해버린 한국의 옛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습니다

 

 

 

 

 

 

 

농차(濃茶)의 세계


한국 차살림 가운데 일본 ‘다도’를 거의 그대로 흉내내고 있는 것은 말차(抹茶) 마시는 모습입니다. 말차는 차나무의 어린 순을 가루로 갈아서 만든 차인데 더운 물에 타서 마시며, 찻잎을 우려 먹는 엽차(葉茶)와 함께 차(茶)의 주된 종류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루로 만든 차를 마시는 법을 일본 다도에서는 ‘농차(濃茶)’라 부릅니다.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은 찻가루를 더운물에 타면 짙은 초록색이 되는 모습을 두고 부른 이름이기도 하고, 이 차를 마시는 특별한 방법에서 비롯된 이름이기도 합니다. 우선 ‘농차’는 일본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신라의 원효(617~686)가 즐겼던 무애차(無碍茶)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시 살펴보도록 하지요.

 

농차는 일본 다도의 상징적 존재이자 다도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해서 한국 차인들도 이를 배우고 마시는데 많은 공력을 들이고 있습니다.

웬만큼 차살림 하는 사람이라면 농차를 모방한 이른바 말차와 관련된 꽤나 복잡한 일을 즐겨 행함으로써 차인으로서의 풍모를 드러내려고 하지요. 흔히 전통찻집에서도 말차를 차완에 직접 타서 팔기도 할만큼 한국에서도 농차는 대중화 되고 있습니다.

 

 

 

 

 

 

일본 다도에서 농차는 옛부터 정해져 있는 규칙이 있습니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쟈왕(茶碗)’ 즉 차완입니다. 다도 완성을 위해 200여년 동안 선구자들이 가장 고심했던 것이 차완이었거든요. 마침내 다도를 완성시켜준 차완이 저 유명한 ‘이도쟈왕(井戶茶碗)’이었지요. 농차 최고의 멋과 품격은 이도차완을 사용하는 것인데, 한국 차인들도 이 전통을 배워 따르고 있지요. 진품 이도차완이 아닌 현대 도공들이 흉내낸 이른바 막사발을 사용하지요.

 

둘째는 ‘차샤꾸(茶杓)’ 즉 차숟가락입니다. 대나무를 쪼개서 만드는 차숟가락은 중요한 역사적 미술품으로 분류됩니다.

 

셋째, 차완은 찻상 따위에 올려 놓지 않고 방바닥에 놓아야 합니다.

 

네째, 방바닥 위에는 헝겊으로 만든 작은 깔개를 깔고 그 위에 차완을 얹지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섯째, 차완을 다룰때는 매우 조심하고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차완은 사용하기 앞서 맑은 물로 깨끗이 헹궈내야 합니다.

 

여섯째, 차가 담긴 차완을 받아 앞에 놓고 공손히 합장하여 차를 낸 주인과 차를 이루고 있는 우주를 향해 인사해야 합니다. 차를 마실 때는 소리를 내지 말고 끝까지 정숙해야 합니다.

 

일곱째, 차를 마신 뒤 차완 바닥에 조금 남아있는 차를 마저 마시기 위해 따로 물을 조금 받아서 부은 뒤 잘 휘저어서 말끔하게 마셔야 합니다.

 

여덟째, 차를 다 마신 뒤 빈 차완은 차수건으로 깨끗이 닦고, 차수건은 정해진 순서대로 접어 제자리에 둡니다.

 

아홉째, 차실에는 담백한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 족자나 액자 한점, 싱싱한 들꽃 한송이를 꽂은 꽃병, 작은 향로 하나 외에 잡다한 물건을 두지 말아야 하며, 고요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차완은 오동나무 상자 안에 넣고 수건을 덮은 뒤 뚜껑을 덮습니다. 상자를 묶는 끈은 반드시 정해진 순서대로 묶어 ‘一’자나 ‘人’자를 뜻하는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이 규칙은 불변입니다.


 

 

 

 

이도차완은 조선의 그릇

 

농차에 관한 열 두가지 규칙은 한국 절집의 발우공양과 매우 닮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닮았는지 차례대로 살펴보지요.

 

첫 번째 문제가 ‘이도차완’인데, 이 차완은 일본과 한국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현실적으로도 매우 민감한 논쟁점을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 다도가 완성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소박하고 자연미가 우러나는 작은 흙집으로 만든 차실, 조선시대 청빈한 수행자 혼자 기거하는 토굴 방안의 담백하고 자연 풍광이 우러나는 분위기, 청자, 백자, 당송의 고급 그릇이 아닌 질박함과 신비성을 느끼게 해주는 차완이었습니다.

 

차실문제는 따로 살피기로 하고 먼저 15~ 16세기 다도의 선구자들이 찾았던 그릇부터 얘기해보도록 하지요. 다도의 창시자 무라타 슈코는 교토 대덕사의 승려였는데, 그는 일본 차문화가 중국 귀족들의 차회(茶會)를 본뜬 서원차(書院茶) 폐해로 병들고 있음을 걱정했습니다. 크고 화려하게 꾸민 차실, 사치와 방종으로 흐르는 차문화, 사무라이와 부호들의 권위주의 패거리 문화 범람은 자칫 일본을 망하게 할지 모른다고 판단했지요.

 

일본 사찰 승려들도 마찬가지여서 우선 절집 차문화부터 뜯어고칠 생각을 한겁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일본 차문화가 지닌 병폐를 지적하고 뜯어고칠 첫 시도를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지요. 그의 노력을 계승한 타케노 쇼오에 의해 차완 문제가 해결되었지요. 쇼오는 작고 소박한 흙집 안에 어울리는 차완을 찾는데 일생을 바친 인물입니다. 당송시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 ‘천목(天目)차완’이나 고려청자, 조선백자, 분청사기류 등은 일단 제외되었지요. 그때는 조선의 생활그릇인 잡기류가 아직 일본에 수입되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조선 지배계층 고급 문물에만 집중했거든요. 쇼오는 일본 도공들이 만든 양념그릇, 씨앗을 담아두는 그릇 등 순수한 일본 잡기들 중에서 찻잔으로 이용할만한 것이 없을까 찾았지만 실패했습니다.

 

오랜 고심 끝에 쇼오의 눈빛이 한 그릇에 머물렀습니다. 쇼오는 승려가 아니라 고미술품 전문 감정가이자 참선과 차를 통해 미술품이 지닌 꿈의 세계를 현실생활 속에다 되살려 놓는 사람이었거든요. 나라(奈良)의 어느 승려가 밥그릇으로 쓰고 있는 조선의 그릇에서 그의 오랜 갈망을 풀어줄 신비한 아름다움을 발견해냈지요. 그의 눈빛에 의해 드러난 것이 이도차완이며, 그가 직접 사용하던 것이 ‘타케노 이도차완’입니다. 1535년경의 일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이도(井戶)’라는 고유한 이름은 붙여지지 않고 다만 조선그릇 모두를 한 이름으로 ‘고라이쟈왕(高麗茶碗)’이라고만 불렀습니다.

 

그때 그는 ‘센노 리큐’라는 천재성을 띤 청년을 제자로 키우고 있었는데, 그 리큐가 뒷날 다도를 완성했고 ‘이도’라는 이름을 짓는 일에도 관련된 듯 싶습니다. 아무튼 이도차완은 쇼오의 눈에 비치기를 인간이 만들기는 했지만 인위적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자연 속의 자연처럼 느껴졌던 것이지요.

 

청자, 백자의 엄격하고 차거운 선과 색깔, 통제와 권위주의적 형태와 질감 대신 투박하고 따뜻한 선과 색깔, 자유분방한 형태와 질감을 지닌 이 그릇은 조선시대 초기 또는 고려 중엽 이후 우리나라 절집에서 만들어진 발우였습니다. 이 그릇을 일제때 일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16세기 조선 서민의 잡기였다고 말한 뒤부터 그만 막사발로 돌변하게 되었지요.


 

 

 

 

 

 

차완을 바닥에 놓는 이유


  
일본 다도의 농차는 차완을 찻상이나 기타 여러 형태의 탁자 위에 얹지 않습니다. 가끔 우리나라 차인들이나 차를 파는 가게같은데서 말차를 찻상에 얹어서 타거나 마시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농차 본디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한국식이라고 말해버린다면 달리 말할 까닭이 없겠으나 말차에 상관된 다른 조건들을 볼 때 한국식이라고 우기는 것은 다만 억지거나 무지일 뿐임을 금방 알 수 있지요.

 

농차에서 차완을 방바닥에 놓는 것은 이 차법의 유래가 발우 공양에서 왔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있는 셈이지요. 즉 발우 공양이 지닌 심오한 종교적 세계를 다도의 미학으로 응용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발우를 상(床) 위에 올리지 않고 바닥에 놓는 까닭은 승려 스스로를 낮추기 위함입니다. 몸과 마음을 대지와 같이 낮추는 것이지요. 겸손을 실천하고자 함이기도 하고요.

 

밥 그릇을 일부러 땅바닥에 놓고 식사하는 것은 승려뿐입니다. 상이나 식탁이 없어서가 아니지요.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땅에 대고, 그 다음에 머리를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오체투지(五體投地)와도 같은 원리지요. 상을 차리지 않는 것은 수행의 기본입니다. 상을 차리자면 반찬과 그릇 등을 여러 가지 갖추어야 합니다. 승려의 수행은 그런 세속적 번잡함과 음식에 이끌리는 욕망을 극복하는 것이며, 음식을 만들어 차려놓고 절제하기보다는 아예 음식을 장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릇이 많으면 그릇마다 담을 음식을 장만해야 하지요. 승려의 계율에 되도록 적게 먹도록 정한 이유가 적게 먹으면 그만큼 살생이 줄어들기 때문이거든요. 먹기는 하되 최소한의 양으로 육신을 보존할 수 있는 만큼만 먹고 수행하라고 한 것은, 인간 육신을 보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살생은 생태계의 건강한 순환을 자연스럽게 유지해야 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모든 거소가 연관되어 있다는 불교 철학이 매우 구체적인 모습으로 실천되는 증거가 발우 공양입니다. 무소유 정신의 생활화가 곧 발우 공양이기도 하고요.

 

초암차를 창시하고, 중흥시키고, 완성한 일본 다도의 스승들은 이같은 발우 공양이 지닌 지극한 생명사상을 받아들여 당시 일본의 폐해였던 호화로운 사치와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는 사무라이와 귀족들의 차문화를 혁파시켜 나갔지요. 궁궐처럼 크고 호화롭게 지은 차실에 수백명 씩 손님을 초대하여, 금은보화와 비단으로 치장하고 값비싼 차완을 가져와 경쟁하듯 뽐내는 서원차(書院茶)의 폐단을 끊지 못하면 일본은 스스로 멸망하고 말것이라는 여론이 초암차를 창시하게 만든 것이었으니까요.

 

이때 이도차완 자체가 본디 승려의 발우였고 보면 발우가 비록 차완으로 바뀌어 사용될지라도 발우 공양의 본질이 조금도 훼손됨 없이 고스란히 살아나고 있었으니, 참으로 지혜로운 응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다도 완성자인 센노 리큐로부터 농차를 배우고 그 정신을 실천한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의 모순을 극복하면서 통일의 단초를 열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일본통일이 달성되어 오늘의 일본이 태어나는 초석을 만들었지요.


 

 

 

 

 

 발우 끈의 미학

  
농차와 발우 공양은 여러가지가 닮아 있습니다. 차를 마실 때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지말고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런 모습은 발우 공양 때도 그러하지요. 여러 대중이 한곳에서 한꺼번에 공양을 하더라도 고요한 상태를 흐트러뜨리는 일은 결코 없거든요.

 

차를 마신 뒤 차완 바닥에 약간 남아있는 차 찌꺼기까지 말끔히 마셔버리기 위해 물을 붓고 잘 휘저어서 마십니다. 발우 공양 때도 그러합니다. 발우 안에 담았던 밥, 국, 반찬을 다 먹은 뒤에도 발우 바닥에는 국물과 반찬 찌꺼기나 작은 밥알이 남아있게 마련입니다. 먼저 반찬 담았던 작은 발우에다 물을 약간 부어 찌꺼기를 씻어 국그릇에 붓고, 국발우 씻은 물을 밥발우에 부어서 찌꺼기를 먹습니다. 그런 뒤 발우를 씻지요. 발우를 씻은 물 속에 밥알이나 음식 찌꺼기가 보이면 물을 따라붓고나서 찌꺼기를 마저 마십니다.

 

음식을 장만해준 사람의 노고에 대한 감사, 제 몸 헌신하여 인간의 양식이 되어준 다른 목숨들에 대한 은혜를 잊지 않으려는 지극한 생명사상의 실천인 것이지요. 또한 음식 찌꺼기를 함부로 버리면 맑은 물을 더럽히고 죽일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재앙을 방지하자는 지혜이기도 한 것입니다.

 

차를 다 마시고 나서 빈 차완을 씻어 차수건으로 깨끗이 닦은 다음 차수건을 정해진 순서대로 접어 제자리에 두고 차살림을 접게 되지요.

발우 공양이 끝나면 앉은 자리에서 손수 설거지를 하고 발우수건으로 발우를 말끔하게 닦지요. 발우수건은 정해져 있는 규칙에 따라 잘 접어서 발우 위에 얹고 보자기로 싸서 묶습니다. 차수건과 발우수건으로 차완과 발우를 닦은 뒤 접는 순서까지 똑같습니다. 농차는 차완을 닦아서 차수건으로 싸서 오동나무 상자 안에 넣고 뚜껑을 덮어 끈으로 묶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때 끈을 매듭짓는 방법과 발우를 싸서 묶은 발우수건의 매듭 방법도 똑같습니다.

 

차완이 든 상자를 묶는 끈을 매듭 짓는 방법은 ‘一’자 형과 ‘人’자 형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발우수건 매듭 짓는 방법도 그러합니다. 이 규칙은 수천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고 있는데, ‘한 일(一)’자는 마음을 제자리에 놓음, 반듯함, 가지런함, 본 바탕에다 마음을 둔다는 등의 의미를 지닌 상징적 표시라고 합니다.

 

왼쪽 오른쪽의 길이가 똑같도록 매듭짓는 이유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중정(中正)’을 뜻하기 때문에 이 원리가 차완을 보관하는 상자의 끈을 묶는 형식으로도 응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조선 말 우리나라 차살림의 중흥조이신 초의스님의 차살림 근본이 중정철학이었듯이 그분 역시 발우 공양의 오랜 철학을 차살림에 응용하셨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람 인(人)’자 형태로 매듭짓는 법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장례의식 절차 중에서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에 옷을 입히고 염포로 묶는 염(殮)의 원리와 같습니다. 윗부분으로 낸 둥근 모양은 머리를 뜻하고, 매듭이 잘록한 것은 허리를, 염의 두 끈이 양쪽으로 벌려진 것은 두 다리를 의미하여 사람(人) 형상이지요. 머리가 위로 향하는 것은 영혼의 승천을 뜻합니다. 이러한 매듭은 매우 예외적이며 보통은 ‘一’자로 매듭 짓습니다. 이렇듯 농차는 조선 사찰문화인 발우 공양의 원리를 그대로 응용한 것입니다

 

 

 

 

 

 

'다도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이차 끓이는 방법~   (0) 2010.01.30
다식의 유래  (0) 2010.01.24
차의 종류에 따른 차도구의 선별   (0) 2010.01.21
다관 고르기   (0) 2010.01.21
말차소개  (0) 2010.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