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불편해도 가고 싶은 곳 ‘슬로시티’ 증도의 실험

아기 달맞이 2009. 12. 22. 06:35

증도에서 관광객들이 자전거로 섬을 여행하고 있다. 신안군은 내년에 관광객 차량 진입을 통제하고, 전기자동차·달구지를 타게 할 계획이다. [프리랜서 오종찬]

전남 신안군 증도는 10분 남짓 배를 타고 가야 하지만, 뭍과 도로로 잇기 위해 증도대교(길이 900m, 왕복 2차로)를 건설 되고 있다. 그러나 내년 4월쯤 교량이 완성돼도 자동차를 타고 섬 안까지 들어갈 수는 없게 된다.

14일 증도에서 만난 남상률(55) 증도면장은 “교량이 개통되더라도 관광객들은 차를 섬 입구에 주차해야 한다”며 “섬 안으로는 전기자동차·달구지·자전거를 타고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섬 입구에 2300여 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과 관광안내센터 부지를 마련, 곧 착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남 면장은 “주민들도 교량 개통 후 밀려들 차량과 관광객으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차량 통제가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며 “주민들 차(총 630여 대)도 일정 시간대에만 운행하도록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증도가 자동차·담배연기가 없고, 깜깜한 밤을 즐길 수 있는 ‘슬로시티(느림의 도시)’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한가로운 섬 문화와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을 지키면서 도시민들에게 안식과 향수를 주기 위해서다. 증도는 2007년 12월 범지구적 민간운동 기구인 슬로시티국제연맹에서 슬로시티로 지정받았다.

증도에선 담배를 추방하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흡연자가 적어 섬 전체에 모두 150여 명뿐인데, 보건소 직원들이 11개 마을을 돌며 금연 클리닉을 운영해 이미 35명이 담배를 끊었다. 50년 이상 피워 온 담배를 5개월 전 끊은 안찬득(70·덕정마을)씨는 “관광객들도 못 피우게 한다는 데 우리가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신안군은 관광객들이 담배를 섬 입구 관광안내센터에 보관한 뒤 섬에 들어오게 할 계획이다. 지난해 7월 8.6%였던 흡연율을 내년 봄까지 ‘0’으로 떨어뜨리겠다는 것이다. 담배 판매소도 3곳은 이미 없앴고 나머지 4곳도 주인들을 설득하고 있다. 섬 전체를 클린 에어 존으로 지정하고 담배 판매소 설치를 제한하는 조례도 제정했다.

증도는 4월 국제다크스카이협회에 가입했고, 인공 빛을 최대한 줄이는 깜깜한 밤 사업을 내년부터 추진한다. 신안군 문화관광과 박관호(37)씨는 “밤하늘과 별을 보기 쉽게 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빛 때문에 식물 웃자람 같은 빛 공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로등(384개)에는 불빛이 위로 나가지 않도록 갓을 씌우고 조도를 낮춘다. 장기적으로는 4~5m인 등 높이를 사람 키 높이로 내릴 계획이다. 또 도로 옆에 있는 집과 일부 마을은 가정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까지 암막(暗幕)으로 차단해 밤에는 완전히 깜깜하게 만들기로 했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관광객 수를 섬이 번잡하지 않은 범위에서 제한할 방침”이라며 “‘불편하지만 편안하고 여유로워서 가고 싶은 섬’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증도는 ‘친환경 섬’을 추진, 화학 세제도 이미 없앴다.

증도=이해석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증도=면적 28.16㎢에 857가구 1785명이 살고 있다. 올 한 해 25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단일 염전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태평염전(462만㎡·연간 생산량 1만5000t), 백사장 길이가 4㎞인 우전해변, 갯벌 위에 놓은 짱뚱어다리가 있다. 섬 주민의 80% 이상이 기독교를 믿어, 흡연·음주 인구가 다른 섬에 비해 아주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