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위에는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어릴적 부모님 손을 잡고 떠났던 그 길엔 추억도 가득하다. 인터넷 속도화 시대인 지금에도 철길 위에는 여유가 흐른다. 대전과 서울을 45분에 연결하는 KTX도 있지만 사람냄새 나는 무궁화호 열차를 따고 한적한 여행을 떠나보자. #1 군산으로 가는 기차안 특별한 볼거리도, 명소도 없는데, 한번쯤 군산에 가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다. 일제시대 수탈의 전초기지였던 군산. 그 흔적이 해망동 일대에 아스라이 남아 있지만 가본 이가 그리 많지 않다.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군산에 가려면 갈아타는 번거로움을 감내해야 한다. 서대전역에서 익산역까지 호남선을 이용한 뒤 군산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지난 주말 호남선 하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여행객들이 많은 탓인 지 생각보다 북적였다. 엄마따라 온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 한아름 짐을 들고 오르시는 어르신들. 저마다 표정이 밝다. 서대전역을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30분 정도 내달렸을까. 열차는 강경을 지나 전북으로 접어들었다. 차창 밖으로 지나는 풍경들은 이미 봄을 담고 있었다. 전라도 땅에 들어선 뒤 또다시 30분이 흘렀다. “이번 정차역은 익산” 이란 방송이 나왔다. 익산역은 전라선, 호남선, 군산선 환승역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낯선 열차 한 대가 플랫폼에 들어섰다. 하루 여덟번, 평균 승객 800명이 이용하는 전주-군산을 오가는 통근열차였다. 군산에 가려면 이 통근열차를 타고 23.1km를 달려야 한다. 곡선 레일을 달릴 때마다 들려오는 거친 쇳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간이역의 풍경을 보는 재미라도 없었다면 열차여행을 후회했을 지도 모른다. 플랫폼도 없는 버스 정류장 같은 2개의 간이역을 지나 30분을 내달리니 목적지인 군산에 도착했다. 일제가 1912년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곡식들을 착취하기 위해 만든 군산선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군산역. 6.25전쟁으로 역사(驛舍)가 소실된 뒤 지난 1960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서 있는 군산역. 낡고 초라한 모습만이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전해주는 듯 하다. #2 군산시내구경을 나서다 월명공원, 해망굴, 내항, 철길마을, 은파유원지등 군산에 가볼만한 곳은 역에서 멀리 있지 않아 적은 시간과 비용만 있어도 웬만한 곳은 하루에 충분히 들러볼 수 있다. ♧월명공원 금강하구언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에 조성된 월명공원은 산책로 길이만 12km나 된다. 공원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서해바다의 풍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새벽에 잡아올린 생선을 손질하는 시장 할머니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내항 건너편에 보이는 군산산업단지는 눈요기를 방해해 아쉽다. “월명공원은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 진달래가 유명하다”는 산책하는 아주머니의 말에 4월쯤 다시 한 번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공원내에는 은적사, 수시탑은적사, 수시탑, 전망대, 점방산 봉수대지, 바다조각공원, 채만식 문학비, 삼일운동기념탑등이 있어 가족끼리, 연인끼리 들르기에 안성맞춤. ♧은파유원지 군산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은파유원지는 택시로 15-20분 거리에 있다. 2001년 완공된 용담댐 물이 저수지의 주 수원이다. 저수지 옆으로 나있는 숲길이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다. 햇살받은 물결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은파’라고 불리는 이 곳은 원이름은 미제지(살뭍방죽)이고 일반적으로 미제방죽으로 불리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조선조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고산 자 김정호선생의 대동여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는 역사 깊은 곳이다. 저수지를 한바퀴 도는 약 6km의 순환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충혼탑과 집단상가 시설과 바이킹 등 놀이시설이 있고 넓은 잔디밭에서는 소풍나온 가족들의 모습과 비둘기들이 모이를 찾는 평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저수지 멀리 보이는 물빛다리도 둘러볼만한 포인트다. #3 역사를 보듬어 안아 보다 ♧해망굴 해망굴은 1926년 시내와 내항을 연결하기 위해 뚫은 131m짜리 터널이다. 시내와는 다르게 제법 세게 부는 바람과 코끝을 자극하는 비린내가 이 곳이 바다 근처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부두 노동자들이 모여 살았다던 해망동은 군산 내항이 그 기능을 잃으며 함께 쇠락했다 전해진다. “터널을 뚫을 당시엔 이 주변이 신사, 신사 광장, 의료원 등이 자리잡은 중심지”였다고 마을 사람들이 귀띔한다. 해망굴 입구에 있는 서초초등학교는 한석규, 심은하가 출연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유명하다. 군산시내에서 시내버스로 15분 거리. ♧철길 마을 ‘아니, 아직까지 이런 곳이 남아있나.’ 좁다란 길을 가로지리는 철길하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철길마을’로 알려진 경암동 일대. 낡은 집 사이로 기차 1대가 겨우 빠져나갈 만큼 좁은 길에 빨래를 널고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또한 흥미롭다. “사진한장 찍어도 될까요” 한마디에 아주머니는 구경오는 사람마다 물어봤는지 “그러지 말라”며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군산경찰서 뒤편으로 그렇게 곡예 운전을 해가면서 지나는 이 기찻길의 이름은 ‘페이퍼코리아’선. 1944년 4월 4일 개통된 철길이다. 군산시 조촌동에 소재한 신문용지 제조업체 ‘페이퍼코리아’사의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군산역과 페이퍼코리아 공장 사이에 놓인 철로의 총 연장 거리는 겨우 2.5㎞.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니 요즘은 일주일에 두 세차례 다닌다고. 이 구간을 지나는 화물열차의 규정 속도는 시속 25㎞ 이하. 그런데 그 속도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차단기가 있는 곳과 없는 곳 모두를 합쳐 건널목이 11개나 되고 사람 사는 동네 한가운데를 지나야 하니 기껏 빨라야 시속 10㎞ 를 넘지 못한다. 기적 소리에 이어 철로에 기차의 진동이 전해질 때면 집안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이곳에서는 일상일 뿐이다. 낡은 집들 건너에 서있는 대형마트가 어색(?)해 보인다. #4 배를 채우는 여행.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답게 군산은 해물요리가 유명하다. 매운탕, 회, 간장게장 등 풍부한 먹거리가 사람들을 유혹한다. 비교적 저렴하게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해물칼국수도 그 중의 하나. 은파유원지 입구에 위치한 은파칼국수는 친절한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만큼 푸짐한 상차림을 자랑한다. 이집의 주 메뉴인 해물 칼국수와 해물 얼큰이 칼국수에는 민물새우, 바지락, 미더덕 등 넉넉하고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하다. 해물 칼국수가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면 해물 얼큰이 칼국수는 깔끔한 뒷맛이 그만이다. 해초를 갈아 넣어 반죽한 면발은 쫄깃함이 혀끝을 자극, 내륙에서는 맛볼 수 없는 명품이라 칭하기에 손색이 없다. 반찬으로 나오는 샐러드 맛도 독특하다. 가격 4500원. <글·사진 심영운·박정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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