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고향을 찾아서 평창]백덕재 주인 최영숙 씨가 차린 건강한 산골 밥상 건강의 고향을 찾아서 평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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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20만 평에 이르는 산자락에 일일이 길을 내고 계곡 물길을 잡아가며 가꾸는 ‘서원 백덕재’ 최영숙 씨. 배포도 크지만 섬세함도 그에 못지않아 산 전체가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일일이 손댄 흔적이 역력하다. (오른쪽) 새콤하면서도 코끝을 찡하게 하는 향으로 유명한 ‘서원 백야초’. 한 독에서 6년 이상 숙성시켜 만든다. 시원한 물에 원액을 타 주스처럼 마시거나 따끈하게 차로 마신다. 음식에 넣는 천연 조미료나 더부룩한 속을 달래주는 소화제로도 사용한다. 강원도 깊은 산골의 정기를 모은 것이니 몸 어디엔들 안 좋을까. 순한 음식은 사람을 순하게 만든다 강원도 영월군과 평창군 사이 백덕산 깊은 자락을 찾아갔다. 오행 음식 연구가로 알려진 최영숙 씨가 하루도 빠짐없이 그 골짜기에서 채취한 1백 가지 산야초를 발효시켜 만든다는 ‘백야초’를 맛보기 위해서다. 더불어 15년을 묵혔다는 금쪽같은 깻잎장아찌도. 몇 년 만에 쏟아진 폭우가 지나간 자리라더니 만나는 물줄기마다 대단하다. 누런 흙탕물이 넘칠 듯 불어난 강물도 그렇거니와 허연 포말을 피워내며 세차게 굽이치는 계곡물도 장관이다. 강원도 산골에 있다지만 길이 좋은 덕에 서울을 떠난 지 3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선계仙界에 들어섰다. 시골 인심이 다 그렇듯 주인 최영숙 씨는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미리 보아둔 점심상부터 내민다. 교자상이 부럽지 않은 밥상에 고기 한 점 없다. 그래도 손님인데…. 먹는 사람이야 어떻든 주인은 접시를 일일이 끌어다 앞에 놓으며 맛보라 권한다. 나물 하나 장아찌 하나마다 사연도 제각각, 역사가 이어진다. 5년 묵혔다는 조기젓은 가시 하나 없이 차진 살점이 그대로 씹히고,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게우젓 역시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10년 전에 담갔다는 감장아찌는 아직도 아삭아삭하고, 5년 된 오가피장아찌와 산뽕잎장아찌도 질깃한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8년 된 무장아찌에 10년 된 콩잎장아찌…. 20가지는 족히 넘어 보이는 반찬마다 관록이 대단하다. 별빛이 우리 눈에 도달하기까지는 억만년이 걸린다더니 이 집 반찬도 그에 못지않은 셈이다. 거친 가시가 제법 보이는데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두릅나물이며 혀에 순하게 감겨오는 고사리, 시래기나물의 맛도 하나같이 절묘하다. 마늘이며 고춧가루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담백하게 무치고 볶아냈다. 문득 양념 맛이 도드라지지 않는 나물을 먹어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스친다. “파, 마늘을 거의 안 쓰니까 음식이 순하지. 순한 음식을 먹으면 사람도 순해지거든. 바짝 말린 시래기를 삶아 냉동고에 넣었다가 먹을 때 해동해 일일이 껍질을 벗겨서 무치면 보들보들 씹을 새도 없이 넘어가. 생더덕은 곱게 찢어서 효소와 들기름, 소금을 조금 넣고 바락바락 무치면 달큼하면서도 향긋하고. 장갑 끼고 무치면 맛이 안 나니 번거롭다 생각 말고 맨손으로 무쳐야지.” 중국 음식은 불끝이요, 일본 음식은 칼끝이며 우리 음식은 손끝이라 했다. 최영숙 씨의 기막힌 나물 맛도 모두 손끝에서 나오는 예술이다. 들기름 맛이 은은하게 밴 묵은지 지짐 국물에 기름 한 방울이 안 떠 있다. 바락바락 손으로 무쳐 서너 시간 폭 끓인 때문이다. 밑 국물도 만드는 방법이 따로 있단다. 찬물에 멸치와 다시마, 표고 버섯을 넣고 대여섯 시간 우린 다음 건더기는 건져내고 국물만 끓이는 것. 그 정도로도 맛을 내는 성분이 충분히 우러나기 때문이다. 강된장 또한 여느 집과는 끓이는 법이 다르다. 뻑뻑하게 끓이는 것이 아니라 묽은 찌개처럼 만드는데 맛을 보면 구수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니 신기하다. 쥐눈이콩을 섞어 담근 된장에 물을 붓고 팔팔 끓이다가 대합조개를 곱게 다져 넣고 끓이는데, 중간에 다시마 가루와 멸치 가루를 조금 넣고 먹을 땐 풋고추를 송송 썰어 얹으면 색도 곱고 고추 향이 더해져 입맛을 돋운단다. 산뽕잎장아찌나 산초장아찌의 강한 맛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구수한 뒷맛에 밥 한 그릇이 언제 없어졌는지 모를 정도. 호박잎 쌈에 얹어 먹으면 그 맛이 기막히겠다 싶으니 밥 욕심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마음속 고기 타령이 그만 쏙 들어갔다. 하나같이 입에 착 붙는 반찬들이니 체면 차릴 겨를이 없다. 조심하자 했어도 허겁지겁했을 것이다. 밥상을 물리고 숨을 몰아쉬는데 난데없는 두통이라니. 미리 짐작한 주인은 체기가 있을 거라며 찬물에 진하게 탄 효소를 한 잔 내놓는다.불그스름한 빛깔도 곱지만 향긋한 맛도 일품이다. 시원하게 한 잔 비우니 몸이 절로 뒤로 젖힌다. 느긋해지는 것이다. (왼쪽) 아침저녁으로 오르내리는 산길에 돌탑을 쌓았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돌탑이 무려 50여 개. 1백8개를 목표로 한다니 이제 반 정도 완성한 셈이다. 계곡 물길을 일일이 잡아가며 38개의 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암반과 돌을 쌓아 만든 것이다. 넓은 암반을 밑단에 까는 일은 혼자 힘으로는 벅차 동네 사람들의 힘을 빌렸다고. 돌멩이 하나 얹을 때마다 맘속으로 드렸을 기도와 치성도 어지간할 것이다. 1, 2 미나리 싹과 어린 소나무. 무심한 사람에게는 한갓 들풀이지만 최영숙 씨의 눈에는 모두가 귀한 재료다. 소나무는 직접 심어서 재배하는데 깨끗한 송순을 얻기 위해서다. 3 백야초는 물과 1:4의 비율로 희석해서 하루 두 번 정도 마신다. 4 5월 단오절에는 새순을 따서 넣고, 9월 중양절에는 뿌리를 캐서 산야초를 담근다. 24절기에 맞춰 재료도 달라지는 것이다. 5 청정한 산기운이 묻어나는 장아찌. 산초장아찌와 산뽕장아찌의 깊고 그윽한 향은 쉽게 맛보지 못할 별미. 15년을 묵혔다는 깻잎장아찌는 어찌나 살뜰히 보살폈는지 아직도 질깃질깃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 산의 정기와 바람, 새소리가 녹아든 건강 효소 뒤꼍 항아리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사람 허리를 넘는 대독들이 즐비하다. 뚜껑을 안 열어볼 수가 없다. 붉은 거품이 떠 있는 독은 오가피요, 누런 거품이 떠 있는 독은 귀하다는 상황버섯을 발효시키는 독이다. 독 안은 살아 있는 세계. 몇 년을 묵혀도 그 안의 효소들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며 제 약성을 뿜어낸다. 최영숙 씨는 1년 내내 집 뒤 백덕산에 올라 효소 재료를 구한다. 이른 봄의 새싹과 새순, 한여름의 꽃, 늦가을 열매, 한겨울의 뿌리까지 계절마다 거둬야 할 것들이 널린 까닭이다. 더덕과 도라지 같은 나물도 평창 바깥을 넘지 않고 구해 쓴다. 봄에는 냉이와 쑥, 달래, 두릅, 엄나무 순, 솔잎, 들미나리, 원추리 등을 캐거나 뜯고 초여름부터는 곰취, 참나물, 참취, 미역취, 산부추, 하고초, 고추나물, 비비추, 매실 등을 구한다. 가을이면 복분자, 오미자, 구절초, 인삼 등을 구하고 겨울에도 눈을 뚫고 올라오는 갖가지 약초를 구해온다. 과연 1백 가지를 다 채울까 싶더니 일일이 꼽아보니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겠다 싶다. 많게는 1백30여 가지가 넘는단다. 이렇게 모은 재료들은 각각 황설탕에 재워 발효시키는데,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지나 국물이 가라앉고 건더기가 떠오르면 건져내고 필요에 따라 다른 재료들과 섞어서 6년 이상 발효시킨다. 아침저녁 지저귀는 산새 소리와 청량하게 불어오는 백덕산 바람이 녹아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 증발로 독 안의 효소는 양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때도 햇수가 모자란 것을 섞는 것이 아니라 오래 묵은 효소를 섞는다. 해마다 양이 줄어들게 마련인 간장독에 장을 부어 덧장을 만들듯 정성을 더하는 것이다. 한 항아리에 적어도 세 번은 양을 보태가며 오랜 기간 발효시키는 것이니 양은 적어도 맛은 진할밖에. 최영숙 씨가 만든 효소는 자신의 호인 서원瑞園을 따 ‘서원 백야초’라 이름지었다. (오른쪽) 해발 700m 산중에 조성한 서원 백덕재. 사랑채와 안채, 대문채 정도만 완성되었고 나머지 공사가 진행 중이다. 마룻장 하나도 귀신을 쫓는다는 엄나무와 붉고 강한 주목을 쓰고, 목화 무늬를 넣어 짠 비단창을 만들어 달 만큼 심혈을 기울여 짓고 있다. 꽃담과 창호, 문살에는 소담한 목화 문양을 섬세하게 새겨 넣었다. 어머니가 정성을 다해 지은 집이라는 상징성을 살리기 위해서다. 사진 제공 백덕재 그이는 원래 강원도 토박이가 아니다. 서울을 떠나 평창군 방림면 뇌운리 계곡에 자리 잡은 지 이제 만 6년. 여덟 살 적 아련한 기억 속 한 장면과 어린 맘속에 품었던 다짐 덕분에 산골 살림을 시작했단다. “몰락한 문중의 종부셨던 할머니가 충청도 산골에서 돌아가셨을 때였을 거야. 시집올 때 입고 오셨던 활옷과 관례복, 꽃가마와 꽃상여까지 다 태워 보내드렸던 그날, 꽃비가 내리는 중에 여덟 살 먹은 계집애가 맘속으로 할머니가 가졌을 소원을 이루어드리리라 다짐했던 것 같아.” 두 아들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가 인사동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추억은 현실적 목표가 되었단다. 차와 음식을 배우고, 그릇과 가구도 눈여겨보고, 효소와 장아찌를 만들며 한정식 식당을 운영하던 그이는 그야말로 가산을 정리해 6년 전 강원도 산골에 깃들였다. 20여 년 전 조그마한 땅을 마련했던 터 근처의 뇌운계곡 옆으로. 이번에는 20만 평이나 되는 산 하나를 통째로 사들였다. 그날부터 빽빽한 산에 길을 내기 시작했다는데 2.5km 산길을 손수 닦아 도로를 냈다. 도로 옆은 깊은 계곡. 그 계곡마저도 일일이 다듬어 만든 38개의 소가 장관이다. 백담사 오르는 내설악 계곡에 조금도 뒤지지 않을 정도.사람의 힘이 참 무섭다 했더니 그이는 ‘어머니의 힘’이라고 바꿔 말한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첩첩산중에 난데없는 길을 닦은 그이는 내친김에 ‘서원 백덕재伯德齋’라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신영훈 대목장, 이광복 도편수, 서예가 권영대 선생 등이 참여해 이미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 등을 조성했고 나머지 공간 역시 꾸준히 꾸며가는 중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공간은 해발 700m 지대에 구름처럼 걸려 있다. 생활사박물관과 야생화 산책길 등을 만들 터도 차근차근 닦고 있다는데, 언뜻 보아도 그 웅장한 규모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침저녁 백덕재를 드나들며 잡초를 뽑고 바위를 옮기며 돌탑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정성이 그야말로 지극하다. 발효 음식은 기다림의 결정체다 매일 꺾어오는 산채의 어린잎과 새순, 야생화, 갖가지 열매들로 독마다 효소를 담그는 것도 중요한 일과. 새벽 첫 샘물을 길어다 드리는 치성이 이보다 더할까 싶다. 동쪽에 해가 떠오르는 새벽에만 재료를 거둬 효소를 만든다는데, 24절기에 맞춰 제철 재료만 취한다. (왼쪽) 산더덕을 통째로 넣어 만든 장아찌. 효소에 절인 더덕에 간장과 효소를 섞은 장물을 부어 만든다. 해마다 새로 간장을 붓는데, 따라낸 장물을 끓여 다시 붓는 것이 아니라 처음 장아찌 담그듯 새 장물을 만들어 붓는다. 끓이면 효소의 작용이 멈춰 죽은 음식이 되는 까닭이다. (오른쪽) 잘 삭은 조기젓과 구수한 강된장, 곰취장아찌와 더덕장아찌로 차린 소박한 밥상. 은행을 넣고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 위에 얹어 먹고, 비벼 먹는 맛이 각별하다. “항아리를 땅에 묻어서 발효시켜야 좋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모르는 소리지. 깨끗하게 비워둔 항아리를 땅에 묻고 장마철을 지내보면 어느새 물이 꽉 차 있는 걸 볼 수 있으니까.상극인 재료들을 한데 섞으면 위험할 거란 생각도 미련한 거고. 6년 세월을 서로 어울리다 보면 그 맛과 약성이 모두 한데 어우러지거든.” 50여 가지가 넘는 장아찌도 보통 정성으로는 엄두도 못 낼 귀한 음식. 오랫동안 보관하는 장아찌는 가끔 장물을 따라내어 팔팔 끓였다 식혀 붓는 줄로만 알았더니 최영숙 씨는 어림도 없는 소리란다. 장물을 끓이면 그 안에 들어 있던 효소가 죽어 같은 맛을 유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수분을 빼는 단계에서 소금 대신 효소에 절이는 것도 특이하려니와 매해 간장과 효소를 섞은 장물을 새로 부어 늘 같은 맛을 유지한다. 짜지 않고 담백한 그이만의 장아찌 비법인 셈이다.구수하지만 왠지 쿰쿰한 여느 장아찌와는 달리 입에 달면서도 산뜻하다 싶더니 담백함을 가벼움으로 받아들인 입맛이 부끄럽다. 못 먹던 시절에 만들던 장아찌는 우선 짜야 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최영숙 씨가 만든 것은 심심하고 질감이 아삭한 것이 특징. 일본인이 자랑하는 쓰케모노와 비슷하면서도 훨씬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 급하면 조악해지는 게 세상 이치. 효소며 장아찌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많아도 어머니는 드물다”는 그이가 기다림과 희생으로 만든 참죽장아찌 한 점을 맛본 어떤 스님은 “선 자리에 들어선 것 같다”고 했다는데…. 하루 종일 다섯 명이 꽃을 따도 한 자루를 못 채우는 법. 진달래 꽃잎만 봐도 좀 하늘하늘한가 말이다. 그렇게 1백 가지 꽃을 모아 독 하나를 채우는 데 2년을 기다린단다. 어머니가 차려내는 밥상에는 마땅히 그 기다림이 녹아 있어야 제격일 것이다. 모정 母情으로 차린 밥상은 소반 蔬飯도 보약일 테니 말이다.문의 033-336-7120 ‘건강의 고향을 찾아서’는 한국벤처농업대학 설립자이며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으로 재직 중인 농업경제학자 민승규 박사와 함께 기획・구성한 건강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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