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도보 여행 코스는 ‘제주올레’다

아기 달맞이 2009. 8. 31. 07:35

사람들이 걷기 시작했다. ‘빨리빨리’가 미덕인 듯 초고속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걷기’라니, 퇴행인가 싶지만 걷기는 ‘삶의 속도를 늦추라’는 간단하고 명쾌한 조언이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도보 여행 코스는 ‘제주올레’다. 바다와 하늘, 한라산을 끼고 걷는 162㎞ 올레는 제주 여행의 백미로 꼽힌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제주 걷기 여행>의 저자 서명숙에게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걷기 여행, 제주올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걷기는 삶의 불안과 고뇌를 치료하는 약이다
이전에도 걷기나 산책은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걷기운동이 붐을 일으킨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삶의 질을 소중히 하는 웰빙이 트렌드로, 문화로 자리 잡아가더니 ‘걷기 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강변과 공원길을 걷고, 전국의 아름답다는 시골길, 산길을 걷는다. 문화와 걷기가 함께하는 ‘도보 여행’이 트렌드로 떠올랐을 정도다.
서점가에는 도보 여행 안내서나 로드 에세이가 붐을 일으키고, 인터넷에는 크고 작은 도보 여행 동호회가 생겨나고, 블로그마다 도보 여행기가 올라오면서 걷기에 불을 지핀다. 신문은 걷기 좋은 산책 코스나 도보 여행 코스를 소개하는 칼럼을 연재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은 ‘느리게 사는 삶’을 추구하는 슬로 시티(Slow City)에 가입하는 등 슬로 시티 운동, 도보 여행을 관광 상품화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300여 개의 도보 여행 대회가 열린다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걷기 운동이 이처럼 급작스럽게 확산된 이유는 다양하다. 다이어트를 위해 걷는 젊은 여성들, 건강을 위해 걷는 어른들, 우울증 치료를 위해 걷는 주부들…. 하지만 이 모든 도보 여행 붐에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자신을 되돌아보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삶의 무게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 그저 하루뿐인 여행일지라도 마음대로 내가 걷고 싶은 곳을 걷고 생각하며 사진도 찍고 싶었죠. … 목장을 따라 걷는 시간. 속도에 지치고 경쟁에 지친 이들과 바로 나 자신을 위해 보폭의 운용을 달리해봅니다. 느리게 걷기, 걸으며 호흡하고 내가 숨을 쉬고 있음을, 그렇게 들숨과 날숨을 쉬고 있는 존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습니다.”(http://blog.daum.net/film-art 중 발췌)
문화 분야의 인기 블로거 김홍기 씨가 블로그에 올린 여행기는 도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자들을 위한 도보 여행 ‘제주올레’
최근 가장 인기 높은 도보 여행 코스는 ‘제주올레’와 ‘지리산 둘레길’이다. 특히 제주올레는 제주가 고향인 언론인 출신 서명숙 씨가 제주의 숨겨진 길을 찾아내 잇고 만든 이야기, 걷기 예찬을 담은 책 <제주 걷기 여행>(북하우스)를 내면서 더 유명해졌다.
서명숙 씨는 고향 제주의 아름다움을 잊은 채 ‘총알이 콩 볶듯 튀는 언론사’에서 일 중독자로 23년을 살았다. 그리고 어느 날 홀연히 사표를 던지고 자신을 찾는 여행길 산티아고 카미노(순례길)에 올랐다. 900㎞가량에 이르는 대장정을 하며 자신을 정면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고향 제주를 떠올렸다고 한다. 35일간의 긴 여정을 마치며 그녀는 제주에 자신만의 카미노를 만들겠다고 결심했고,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설립하면서 실행에 옮겼다.
고향 서귀포를 시작으로 제주도를 한 바퀴 둘러가는 길이 그녀의 계획안이다. 그 길의 이름은 집에서 대로로 통하는 소로를 이르는 제주 말 ‘올레’를 붙여 제주올레라 지었다. 제주올레는 동네 사람들만 아는 옛길, 작은 길을 찾아내 잇고, 없는 길을 뚫어가며 느리게 만들어졌고, 지금도 만드는 길이다. 그녀와 지인들, 제주도민들, 해병대 장병들, 관공서가 함께 만든 작품이다.
2007년 9월 8일, 서귀포 시흥초등학교에서 출발하는 제주올레 1코스 개장을 시작으로 1년 넘어 서쪽으로 서쪽으로 느리게 움직여 10코스 하모해수욕장에 이르렀다. 총 162㎞에 이른다. 앞으로 11코스, 12코스…, 다시 서에서 동으로 이동해 제주를 한 바퀴 돌 때까지 제주올레의 여정은 이어진다고 한다.
제주올레를 걷는 사람들을 올레꾼이라고 부른다. 서명숙 씨의 책과 제주올레를 다녀간 이들의 여행기, 올레 사진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술렁이게 했다. 발끝을 간질이더니 바람난 여자처럼 새벽 기차에 몸을 실어 생전 처음 배를 타고 제주로 향하게 만들고 있다. 공식적인 행사 참여 인원은 이미 3만 명을 훌쩍 넘어섰고, 개별적으로 찾은 인원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란다.
재미있는 현상은 올레꾼의 60%가 여자라는 것. 20~30대 직장 여성은 물론 40대 주부들, 노년의 부부 등 연령대도 다양하다. 혼자 찾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친구끼리, 이웃이나 동창들과 함께 온단다. 왜 이렇게 여자가 많을까. 여자들은 혼자 와서 좋으면 친구에게 권하고, 가족을 데려오기 때문이란다. 서씨는 ‘제주올레는 여자들을 위한 길’이라고 말할 정도로 안전한 길이라고 소개한다. 시골 마을을 끼고 걷는 만큼 위험이 없다는 뜻이다. 아이들에게도 부담 없는 길이고, 천연의 생태학습장도 된다. 제주올레에서는 ‘간세다리(게으름뱅이)’가 되라고 한다. 제주의 절경을 감상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의미다. 빨리 걸으면 1천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제주올레 길을 만든 것은 속도에 치이고 일에 쫓겨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 휴식과 위안을 주기 위해서였다. 진정한 평화와 행복은 ‘느림’과 ‘여유’를 통해서만 찾아오는 것. 사람들을 ‘간세다리’로 만들어야만 했다.”(<제주 걷기 여행> 중 발췌)
제주의 푸른 바다와 하늘, 그리고 오름을 오르내리며 걷는 제주올레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도보 여행 코스다. 서명숙 씨는 겨울의 올레를 꼭 걸어보라고 말한다.
“제주의 겨울은 육지보다 5~6℃ 정도 기온이 높으니 가을 날씨 정도예요. 꽃이 더 많이 피고 사철 푸른 나무가 더 푸르고 선명해지니 제주는 겨울이 더 아름답죠. 12월까지 밀감나무도 볼 수 있고요. 바람 부는 날을 대비해 윈드 재킷만 준비한다면 겨울철 도보 여행지로는 이만한 곳이 없어요.”

자료제공 : |리빙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