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을 둘러싼 바다, 충남 서산 황금산 트레킹
step 1 목표의식 버리기 트레킹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급해하지 않는 것. 보고 싶은 만큼만 보고 가고 싶은 만큼만 간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집을 나설 때 툴툴대는 내게 남편이 한 말. “편하게 가. 그냥 슬슬 걷는다고 생각하고.” 사람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기에 나는 그다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출발했으니 일단 코스는 다 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마음이 앞섰다. 이런 내 마음을 꿰뚫고 있었는지 남편은 내심 뿌듯한 말투로 나를 안심시켰다. “그럴 줄 알고 2시간짜리 트레킹 코스를 선택했어. 서산에 있는 황금산으로 갈 건데, 산을 넘으면 해변 트레킹도 즐길 수 있어. 기대되지?” 일단 나의 첫 트레킹이 너무 거창하지 않다는 사실에 안심이 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트레킹 마니아들은 국내 코스의 경우 대부분 당일 코스를 선호한다고 한다. 걷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step 2 가벼운 몸풀기 시작이 중요하다. 가볍게 몸을 푼다는 생각으로 한 걸음 내디디면 그 뒤부터는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고, 남편에게 트레킹 코스에 대한 정보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기대감에 부풀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주위 풍경에 천천히 눈을 돌려보니 전혀 다른 세계가 보였다. 목마르면 마실 물과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했다. 근처에 있는 맛집은 내려오면서 들르기로 하고 올라갈 때는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걷다 보니 사진 찍을 곳도 많았다. 산 중턱의 돌담을 배경으로, 통나무에 걸터앉아 기념사진을 남겼다. 도시의 풍경으로 뒤덮인 내 미니홈피에 자연이 담긴 사진을 올릴 생각을 하니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그리 험한 길은 아니지만 트레킹족들을 위해 잡고 올라갈 줄이 매여 있었다. 뒤에서 내가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남편이 새삼 든든했다.
step 3 적응기 조금 험한 코스가 나타났다. 매우 짧은 코스지만 돌길이라 조금 위험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한 번쯤 이런 코스를 경험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레킹을 하면 할수록 용기가 생겼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발도 못 디디다가 점점 익숙해져 남편의 뒤를 잘 따를 수 있게 됐다. 돌이 많은 비탈길에서는 작은 돌을 밟으면 미끄러지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큰 돌을 디디며 미끄러지지 않는지 확인한 후 아래로 내려갔다. 5분도 안 되는 코스였지만 왠지 모를 성취감이 느껴졌다. 남편도 내가 기특한지 등을 두드려주었다.
step 4 자신감 갖기 흙길, 돌길을 거쳐 드디어 몽돌해변이 펼쳐진 바다로 내려가는 길. 산길에서 벗어나 탁 트인 바다를 보니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출발할 때 그냥 운동화를 신겠다는 걸 굳이 등산화로 갈아 신으라라고 해서 남편에게 짜증을 부렸는데 돌길을 걷다 보니 새삼 등산화를 갖춰 신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막길이라 조금 수월했지만 오르막길보다 더 위험한 것이 내리막길이라고 한다. 이제는 자신감이 붙어 거의 뛰어 내려가다시피 하는 나를 남편이 진정시킨다.
step 5 마음껏 감상하기 몽돌해변이 펼쳐진 바닷가 왼쪽으로 보이는 코끼리 바위는 신기하리만치 코끼리와 똑같은 형상이었다. 서해바다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라고 한다. 낙조가 유명한 황금산 해변은 탁 트여 있었다. 우리는 높은 바위에 올라 숨을 크게 쉬었다. 이곳의 돌들은 모두 절벽 바위가 떨어져 바닷물에 깎여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돌 위를 걷느라 발바닥이 좀 아팠지만 모래사장에서는 느끼지 못할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돌을 집어 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 맞추기 놀이도 하고, 한동안 조용히 해변 을 걷기도 했다. 적당히 즐기고 나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고 우리는 슬슬 내려올 채비를 했다. 하루가 이렇게 알차게 느껴진 건 요즘 들어 처음이었다. 한번 걸었던 길이라 돌아가는 건 훨씬 수월했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늘 힘들고 지쳐 아무 말도 하지 않곤 했는데 이번 트레킹은 달랐다. 남편과 나는 내려오는 내내 즐거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step 6 주변 돌아보기 트레킹 코스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이 바로 근처의 맛집 탐방. 내려오니 오후 7시, 딱 저녁시간이었다. 황금산은 바다를 끼고 있어 가리비와 바지락칼국수가 유명하다고 한다. 남편은 트레킹 장소를 정했을 때는 그 지역의 특성이나 문화, 맛집 등의 정보를 미리 챙기는 것이 좋다며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가리비가 얼마나 싱싱한지 입을 벌리니 그 안에 조그만 게들이 한 마리씩 자리잡고 있었다. 게도 함께 구워 먹으니 바삭바삭하니 과자같이 맛있다. 피조개와 해삼 등 신성한 어패류들이 가득해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김장김치가 너무 맛있어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해수로 담갔다고 한다. 트레킹의 마지막 코스는 훌륭했다. 마음껏 걷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을 수 있었던 하루. 길게 일정을 잡지 않아도 이렇듯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다. 트레킹은 그냥 걷는 여행이 아니다. 걸으며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는 여행이다. 이제부터는 조금 더 많이 걸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남편과 정기적으로 트레킹 여행을 할 것이다. 우리가 걸었던 그 길 위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