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손하의 핸드메이드 라이프
윤손하의 블로그를 들여다보면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 배시시 미소가 절로 새어 나온다. 요리면 요리, 바느질이면 바느질, 인테리어면 인테리어, 못하는 것 하나 없이 다방면으로 야무진 살림 솜씨를 선보이는 그녀의 곰살맞은 핸드메이드 생활.
윤손하. 그녀의 이름을 떠올렸을 때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녀 앞에 붙는 수식어가 무척이나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는 데뷔 20년 차 배우. 요리를 좋아해 일본에서는 채소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고,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즐겨 가는 공간들을 모아 소개하는 책을 냈다.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녀는 가수이기도 하다.
'늦은 후회'라는 제목을 가진 그녀의 노래를 당시 퍽 좋아했었는데 어쨌든 그녀는 얼마 전까지도 우쿨렐레 컴필레이션 앨범을 내고 일본의 우쿨렐레 페스티벌에 참여하기도 하며 여전히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뿐인가. 5년 전부터 블로그 또한 운영하고 있으니 요즘 연예인 블로그로 주목받는 아이비나 이효리보다도 한참 선배다. 그녀의 블로그는 일본에서 꽤 인기가 좋아 블로그를 보고 한국 요리를 배우고,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따라 하는 이들도 많다.
이쯤 되면 전문 수행비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24시간이 모자란 스케줄이다. 태생이 게으른 기자는 이렇게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그녀가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사실 블로그를 관리하는 것 하나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사진을 고르고, 글 한 줄 쓰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들지 않나. 참 부지런한 성격인가 보다 싶었는데 그녀의 이야기는 달랐다.
"바쁜데 일부러 자투리 시간을 내서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하고 있어요. 20대 때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만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 일의 재미를 몰랐고 그저 일에 치인다고 생각했죠.
30대 때는 용기를 내 하나씩 내가 원하는 일을 하다 보니 조금씩 일의 재미를 알게 됐어요. 내가 하는 일로 인해서 누군가가 즐거워하고, 정보를 얻게 된다는 사실에 신이 났죠.
올해로 마흔이 되었고, 지금 하는 일들은 모두 제가 좋아서 하는 일들이에요. 앞으로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 텐데 이렇게 여러 가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고 감사할 따름이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이토록 예쁜 마음과 지혜를 가졌다니. 윤손하가 새삼 달리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다.
인테리어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어릴 적부터 옷을 살 바에야 내 공간에 투자하자는 주의였어요. 집은 매일같이 시간을 보내고 머무는 곳이잖아요. 때문에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에서도 일에 집중하면 할수록 집에 돌아왔을 때 그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집에서 힐링을 해야 다시 일할 힘을 얻게 되니까요. 꼭 화려하거나 멋있을 필요도 없어요. 좋아하는 향초 하나, 소품 하나만 놓여도 내게 의미 있는 공간이 되는 거죠.
원래 좋아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인테리어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 건 일본에서 지내면서부터예요. 다이칸야마 에비스에서 지냈는데, 저에겐 천국과도 같았죠.
우리나라에서는 인테리어 관련 제품들을 사려면 백화점에 들르거나 가구 거리, 조명 거리처럼 대단위로 밀집된 곳을 찾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구석구석에 잡화점이 많아 큰맘 먹지 않아도 동네를 다니다 들러 구경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그냥 걷다가 예쁜 소품 숍을 발견하기도 하고, 즐겨 가는 카페에서 인테리어 책을 구입할 수도 있고. 그래서 인테리어 관련 책도, 소품들도 엄청 샀어요.
그래서인지 윤손하 씨에 대한 질문 중엔 여느 연예인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윤손하 씨 집 거실에 우쿨렐레 걸이가 예쁘던데 브랜드를 아느냐, 블로그에 올린 요리 접시는 어디서 살 수 있느냐 하는 식으로. 지금 이사한 집도 그렇게 꾸며져 있나요?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는 분위기가 또 달라졌어요.
특히 아이가 둘로 늘면서 모든 인테리어의 화두는 수납, 수납, 수납으로 집중되고 있죠. 그리고 요즘은 가구를 직접 만들려고 해요. 아들 시우가 레고에 꽂혀 있어서 레고 테이블을 사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가구 디자이너와 상의하고 있지요.
거실에 TV가 크게 놓이는 게 싫어서 효과적으로 감춰둘 수 있는 가구도 고민하고 있고요. 얼마 전에 둘째 소이가 뛰어다니다가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쳐 얼굴에 흉터가 생겼는데 여자아이라 더 속상하더라고요. 그래서 테이블 모서리는 반드시 둥글게 만들어달라 이야기 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엄마가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으면 아이도 그걸 보고 배운다는 거예요. 소파와 쿠션을 정리해놓으면 아이도 그게 뭔지 모르면서도 따라 하거든요. 그걸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봐요. 자연스럽게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고요.
시우와 같이 백화점에 가면 캔들을 보고, 여기 엄마가 좋아하는 초 있다고 이야기를 해줘요. 종이에 도안 그리듯 그리며 자기 방을 이렇게 저렇게 꾸며달라 이야기도 하고요. 자기 공간에 대한 애착과 물건에 대한 소중한 마음이 생긴 덕인지 작은 것도 함부로 다루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직접 디자인한 패턴 원단을 능숙한 솜씨로 재봉하는 그녀. 윤손하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작은 파우치 하나를 뚝딱 만들어낸다.
바느질은 원래 잘했어요?
5년 전쯤, 한창 인테리어에 눈뜨고 재미를 붙일 무렵 문득 재봉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어요. 원하는 크기나 모양의 제품이 없을 때 재봉틀로 뚝딱뚝딱 만드는 게 신났죠.
우쿨렐레 걸이도 그렇게 만든 거예요. 소잉 좋아하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단계처럼 처음에는 티 코스터와 같은 작은 소품으로 시작해 냄비 받침으로, 발 매트로 점점 크기를 키웠어요.
시우가 태어난 후엔 더욱 규모가 늘어 아이 베스트도 만들고, 잠옷도 만들고, 심지어는 한복까지 만들었죠. 둘째 소이가 태어나면서는 더 심해졌고요. 시우는 아무래도 남자아이다 보니 제가 공들인 것만큼의 리액션이 없었어요.
옷을 만들어주면 좋아는 해도 그때 잠깐뿐이니 감흥이 덜했는데 역시 딸은 다르더라고요. 아직 세 살밖에 안 되었는데도 옷을 만들어주면 입고 거울 앞에서 돌아보고, 반응이 달라요. 그러니 신이 날 수밖에요. 힘들게 만들어준 보람을 느끼죠.
요즘은 패턴 디자인도 한다고 들었어요.
이렇게 만든 것들을 하나둘 블로그에 올렸는데, 이를 본 일본 패브릭 회사에서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해왔어요. 내 프린트를 가져보자는 욕심이 생기던 차에 그래서 디자인까지 직접 하게 되었죠.
지금은 이를 디자인 소품을 만드는 사업으로까지 확대했어요. 일본 쇼핑몰(sunday9am.co.jp)에 가면 직접 디자인한 패턴으로 만든 가방과 리빙 소품을 만나볼 수 있답니다. 지금은 주로 면으로 작업을 하는데, 앞으로는 리버티 원단을 사용해보고 싶어요. 훨씬 톡톡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라 예쁘거든요.
손하 씨의 블로그를 보고 한국 요리를 따라 하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보통 드라마 촬영을 가면 로케 벤또라고 부르는 도시락을 먹는데, 매일 먹다 보니 질리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만든 요리들을 싸갔죠. 이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는데, 다들 한국 요리를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특별히 큰 선물은 못 해도 음식 선물은 종종 했는데 사람들이 다른 선물보다 오히려 더 좋아하며 기억해주더라고요.
그러다 방송에서 부침개도 직접 만들고, 김밥도 싸고, 요리 잘하는 이미지가 생겼죠. 일본에서 지인들과 한국 요리 쿠킹 클래스를 하면서 친해졌을 만큼 요리를 즐겼어요.
실제 요리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요. 남동생 둘밖에 없다 보니 부엌에 들어가 엄마를 도울 일이 많았거든요. 어머니가 바빠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동생들 밥을 챙겼어요. 집이 전주인 데다 어머니 손맛이 워낙 좋기도 하고요.
요즘은 국내 작품에서도 손하 씨를 볼 수 있어 반가워요. 앞으로 계획을 들려주세요.
사실 2년 전부터 고정 출연하던 것도 그만두고 대부분의 일본 활동을 정리했어요. 첫째 때까지만 해도 제게 일은 인생의 90%였어요. 열심히 한 만큼 애착도 있었고 쉽게 놓기 어려웠죠.
그래서 남편과 아들을 한국에 두고 한참을 일본에 머물며 활동하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되더라고요. 내 욕심에 일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둘째가 태어났고, 아이와 더 있어주어야 할 때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지금은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인생의 우선순위를 놓고 고심한 끝에 한 선택이지요. 아이와 공유해야 하는 많은 순간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가장 큰 고민은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아들을 어느 학교에 보내야 하나 뭐 그런 정도예요. 하하.
1
아들 시우와 딸 소이를 위해 만든 앞치마.
2
오래된 청바지로 패치워크 가방을 만들었다. 이는 그녀가 즐겨 들고 다니는 가방이기도 하다.
3, 4
올해 디자인한 패턴 원단으로 만든 러그와 아이 구름 베개.
5
그녀가 좋아하는 민트, 패치 컬러로 디자인해 만든 숄더백.
6
올해 디자인한 패턴 원단들.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일 계획이다.
기획_오영제 | 사진_박재형(Plug Studio)
레몬트리 2014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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