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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데코 제공
검은빛이 돌 만큼 반짝반짝 윤이 나는 보라색 껍질에 싸여 있으면서 몸은 스펀지처럼 폭신폭신한 가지는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제맛을 낸다. 원산지는 인도다. 가짓과 가지속의 한해살이풀로, 일본에는 나라시대(710~ 794년)에 들어왔다고 한다. 한국 사찰 음식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에게 물어봤더니 한반도에서는 가지가 그보다 앞서 삼국시대부터 내려왔다고 한다. 가지는 요리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신이 가능한 기특한 채소다.
가지에 가시가 있다는 걸 처음 가르쳐 준 사람은 외할머니였다. 어릴 적 여름방학이 되면 늘 찾아가던 외가는 일본 나가노현(縣) 우에다시(市)의 산속 마을에 있었다. 뒷산에 올라가면 외할머니가 가꿔놓은 밭에 가지와 토마토, 오이가 줄기가 휘도록 매달려 있었다. "가지 꼭지에는 가시가 있으니까 조심하렴." 내가 가지 줄기를 가위로 자르려고 할 때마다 할머니는 당부하셨다.
가지는 토마토나 오이처럼 바로 먹지 못하고 구워서 반찬으로 냈다. 한여름에 뭔가 도우려고 부엌에 들어가보면 내게 주어지는 일은 가지 굽기였다. 석쇠 위에 가지를 올린 후 진한 보라색이 새까맣게 탈 때까지 데구루루 굴려 가며 구웠다. 매끈매끈한 가지 껍질이 탈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구운 가지는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뒤 생강을 갈아서 올리고 간장을 끼얹는다. 아주 간단한, 그러나 가지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살린 일품요리였다.
구워 먹는 줄로만 알았던 가지를 데쳐서도 먹는다는 사실은 결혼하고 한국에 와서야 알았다. 나중에 한국 궁중요리를 배우면서 가을볕에 말린 가지를 데쳐 대보름 나물 중 하나로 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굽거나 데치거나 말리거나 튀기거나…. 친숙한 재료라도 음식 문화가 달라지는 데 따라 얼마나 다양한 얼굴로 변신할 수 있는지를 한국과 일본의 부엌이 내게 가르쳐주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내가 가르치는 요리 교실에서도 새로운 가지 조리법을 가르쳐달라는 수강생들의 주문이 많아진다. 이번 여름에도 친정어머니께 배운 가지구이, 소금으로 아린 맛을 없애고 날것 그대로 담그는 가지 쓰케모노 등 일본식 요리를 비롯해 스페인풍의 가지 마리네, 시칠리아 섬 스타일의 튀긴 가지 파스타 등 매력 넘치는 가지의 변신을 보여주기 위해 동네 마트의 특가 코너에서 비닐봉지가 터지도록 가지를 담았다.
가지의 계절은 가을까지 이어진다. 일본에는 '가을 가지는 며느리에게 먹이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가을 가지의 맛이 그만큼 좋다는 얘기다. 오늘도 부엌엔 속이 야물고 씨가 적은 가을 가지가 준비돼 있다. 오븐에 구워 올리브 오일에 담가서 두고두고 먹을 것인가, 아니면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말려서 요리할 것인가,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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