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초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 (3) | 한계령풀] 봄눈 맞으며 산등성이 노랗게 물들여

아기 달맞이 2014. 6. 12. 07:49

↑ [월간산]

강원도 높은 산은 4월에도 수시로 눈이 내린다. 한낮의 따스한 봄볕을 맞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식물들에게 이런 눈은 재앙이다. 순식간에 꽃잎에 눈이 쌓이고 기온이 떨어지면 얼어붙거나 시들고 말 것이다. 하지만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온 식물들은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한계령풀은 봄눈이 수북이 쌓여도 화려한 노란 꽃이 돋보입니다. 고개를 약간 숙인 듯 꽃이 피기 시작해 만개해야 하늘을 향해 꽃잎을 벌리죠. 그래서 개화 중에 눈이 내려도 꽃 속에는 차가운 물이 고이지 않습니다. 작은 꽃이지만 참으로 영리한 녀석입니다."

문순화 선생이 한계령풀을 처음 만난 것은 북암령이었다. 한계령에서 발견되어 '한계령'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정작 한계령에서는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한다. 진정한 '노다지'는 태백산에 숨어 있었다. 유일사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주변 세 곳에서 우리나라 최대의 군락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태백산에서는 4월 초부터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해 5월 초면 만개합니다. 특이하게도 한계령풀은 땅을 뚫고 올라올 때부터 꽃을 머금고 있습니다. 잎과 꽃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있다가 순식간에 펼쳐지며 노란 꽃밭을 만드는 거죠. 그러다가 열매를 맺고 나면 어느새 잎까지 모두 녹아서 사라집니다. 굵고 짧게 피는 꽃입니다."

이렇게 한계령풀의 꽃을 볼 수 있는 기간은 한 달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야생화 사진가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 수밖에 없다.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문 선생은 새벽버스로 태백으로 이동해 택시를 타고 유일사로 간다. 그리고 등산로 입구에서 출발해 30~40분이면 한계령풀이 군락을 이룬 능선에 도착하게 된다.





↑ [월간산]

"한계령풀을 찍을 때는 한 달에 4~5번 태백을 다녀옵니다. 시시각각 개화 상황이 변하기 때문에, 생각 같아서는 산에서 살고 싶을 정돕니다. 태백산은 야생화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봄꽃이 많습니다. 한계령풀이 돋을 시기에 괭이눈과 얼레지도 같이 핍니다. 복수초와 너도바람꽃이 함께 나올 때도 있고요. 하지만 같은 시기에 피는 노란 꽃 가운데는 한계령풀이 가장 화려합니다."

꽃명 |

한계령풀
학명 |Leontice microrhyncha
분류 |속씨식물문 > 쌍떡입식물강 > 미나리아재비목
분포지역 |설악산, 중북부 지방
분포지역 |5월
크기 |30~40cm

한계령풀은 우리나라 중부 이북의 고산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으로 동북아시아 일대에만 자생하는 특산종이다. 만주와 백두산, 북한, 강원도의 고산지대에 군락을 형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남부가 서식지의 남방한계선이다. 생육환경은 반그늘 혹은 양지의 토양이 비옥하고 물 빠짐이 좋은 곳에서 자란다.

키는 30~40cm 정도, 잎은 1개가 달리고 1cm 정도 자란 후 세 개로 갈라진 다음 다시 세 개씩 갈라지며 반원형 또는 원형으로서 원줄기를 완전히 둘러싼다. 꽃은 노란색으로 길이와 폭이 1cm 정도이며 많은 꽃이 원줄기 끝에 달린다. 열매는 7~8월경에 둥글게 달린다.





↑ [월간산]

한계령풀은 1879년 무어(Moore)라는 사람이 최초로 발견해 영국 왕실 린네협회(LINNEAN SOCIETY)를 통해 발표하며 그 존재가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설악산 오색계곡의 한계령 능선에서 처음 발견되어 한계령풀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계령뿐만 아니라 강원도 전역에서 군락지가 발견되며 2012년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됐다. 지금은 환경부에서 희귀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문순화(81세) 원로 생태사진가는 2012년 13만여 장의 야생화 사진을 정부에 기증했다. 평생에 걸친 과업이었기에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나누고픈 마음이 나를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본지는 환경부와 문순화 선생의 도움으로 '한국의 야생화'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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