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부담 없는 가격에 '양껏' 먹고 피로 풀자

아기 달맞이 2014. 6. 10. 07:56

[직장인 회식 명소] 신풍루 곱창구이

위(胃)는 우리말로 ‘양’ 또는 ‘양애’라 불렀다. ‘양껏 먹다’ 할 때의 ‘양’도 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뿐 아니라 소의 위장도 양이라 부르는데, 양곱창 구이집에서 볼 수 있는 ‘양’이 바로 그것이다. 양곱창에는 피로를 씻어주고 원기 회복을 돕는 효능이 있다고 하니 회식 메뉴로 이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저렴한 가격에 넉넉히 즐길 수 있는 곱창 구이 전문점

양곱창은 소의 첫 번째 위장인 양과 작은 창자인 곱창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탄력 있는 식감과 고소한 맛을 갖춘 양곱창은 중독성 강한 메뉴이지만,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자주 먹기는 힘든 음식이기도 하다. 한우 곱창의 경우 가격은 보통 1인분에 2만 원 안팎으로 가격이 ‘착하다’ 싶으면 곱창의 질이 떨어지거나 양이 적고, 질 좋은 곱창을 푸짐히 즐기려면 가격의 압박이 따른다. 그래서 이름난 양곱창집에서 회식이라도 한 번 할라치면 예산이 만만치 않다. 가격을 택할 것이냐, 양과 질을 택할 것이냐, 그 사이에서 헤매는 직장인들이 솔깃할 만한 집이 있다. 봉천동에 위치한 <신풍루 곱창구이>. 이 집은 말 그대로 양곱창을 저렴한 가격 '양껏' 먹을 수 있는 곳이다. 혹자는 '<신풍루 곱창구이>의 양과 맛을 따라올 집은 없을 것이다'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곱창

36년 동안 사랑받은 '곱창 한 판' 단일 메뉴

1978년 개업한 <신풍루 곱창구이>는 긴 업력만큼 오랜 단골도 많은 집이다. 사장님이 아버지에서 아들로 바뀌는 동안, 손님도 한 세대가 흘러, 30년 전 부모님과 함께 이 집을 방문했던 아이들이 오늘은 아내 손을 잡고, 아들 손을 잡고 방문한다. 테이블은 입식, 좌식 합쳐 스물네 개뿐이다. 개업 당시에는 테이블 열 두 개가 전부였던 것을 확장하면서 열두 개를 더 놓았다. 안쪽의 좌식 테이블은 '예약' 푯말을 붙인 채 퇴근하는 직장인 손님을 기다린다. 저녁이 되면 어느덧 삼삼오오 모여든 손님들로 만석을 이룬다.

처음 이 집을 방문한 손님은 미끈거리는 타일 바닥에 놀란다. 테이블과 의자도 기름으로 번들거리기는 마찬가지다. 냄새가 배지 않도록 겉옷을 사수해야 하며 사방으로 튀는 기름을 막아줄 앞치마 착용도 필수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맛과 양, 가격을 만족하는 곱창 메뉴가 있어 30년 이상 된 단골이 많다. 이 집의 메뉴는 '곱창 한판(2인분, 20,000원)' 하나로 그 흔한 볶음밥조차 없다. 착석과 동시에 인원수에 맞춰 '섞어서 한 판‘ 또는 ’두 판‘이 자동 주문된다. 이 집에서는 양, 곱창, 대창, 염통 등 그날그날 공수한 신선한 한우 내장을 섞어 한 판을 만들어 준다. 그 양이 양곱창으로만 배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푸짐하다.

구수한 양곱창, 원기 북돋는 회식메뉴로 제격

<신풍루 곱창구이>에서는 홀 한쪽 편에 마련된 개방형 주방에서 곱창을 한 번 초벌 해 손님에게 낸다. 곱창을 익혀내는 솜씨도 능숙하다. 센 불에서 곱창을 반쯤 익힌 뒤 소주를 붓고 불길을 일으켜 남아있는 잡내를 날린다. 소금과 후추만으로 간을 해도 만족스러운 맛을 낸다. 양곱창집 중에서는 내장에 붙은 기름을 말끔히 제거해 담백하게 구현한 곳도 있지만 이 집 양곱창은 적당히 기름이 붙어 다소 진하고 투박한 스타일이다. 초벌 된 곱창은 테이블 위 버너로 옮겨져 조금 더 노릇하게 익힌다.

곱창의 ‘곱’은 소장 속에 남아있는 소화액인데 이 곱이 가득 차 있어야 좋은 곱창으로 친다. 곱이 가득 찬 ‘알곱창’은 구우면 구수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손님들은 네모난 번철에 양과 곱창이 수북하게 담겨 나오는 모습에 먼저 감탄하고, 잡내 없이 고소한 곱창 맛에 또 한 번 감탄한다. 추가 주문은 반 판(10,000원)씩도 가능하다. 단골손님은 첫 번째 판은 부드러운 대창으로, 두 번째 판은 구수한 곱창으로 주문하기도 한다. 양은 지방질이 거의 없고 단백질과 섬유질이 풍부해 예부터 저렴하게 몸보신 할 수 있는 식재료로 사용됐다. 조선말기의 조리서인 ‘시의전서’에도 양을 잘게 다져 만든 환자식이 소개되어 있다. 곱창은 기운을 돋우고 오장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동의보감’에 기록돼있다. 피로를 씻어주고 원기를 북돋아 주는 양곱창은 직장인을 위한 회식 메뉴로 추천할 만하다.


	신풍루 내 외관 모습과 곱창

 

투박하지만 사람냄새 나는 양곱창 구이집

<신풍루 곱창구이>는 반찬 구성도 단출하다. 김치, 양배추, 양파, 고추, 된장, 소금이 전부다. 고깃집 기본 찬으로 자주 등장하는 상추 겉절이나 부추 무침도 보이지 않는다. 촉촉하게 구워진 곱창은 다른 양념장 없이 소금에만 살짝 찍어 먹는 것을 추천한다. 양배추의 단단한 속 부분은 반찬 삼아 된장에 찍어 먹고 넓은 겉부분은 상추처럼 ‘곱창쌈’을 만들어 먹는 것이 정석이다. 기름진 곱창과 양배추의 시너지는 놀랄만하다. 곱창의 기름진 맛은 잡아주고 양배추는 한층 더 달게 느껴진다. 생양배추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이 집에서는 양배추로 곱창 쌈을 만들어 먹게 된다. 양배추는 한정 없이 제공된다.

개운한 동치미 국물도 없고 볶음밥으로 마무리할 수도 없으니 느끼함을 호소하는 이도 종종 있다. 단골손님 중에서는 아예 즉석밥이나 김밥을 포장해와 식사를 대신하는 이도 있다. 이 집은 술손님이 주가 되는 곱창집임에도 불구하고 가족 손님이 많이 찾는 편이다. 아이 손잡고 올만큼 가게 분위기가 밝다는 것이다. 푸짐한 곱창 한 판 앞에 두고 한 순배 술이 돌면 팍팍했던 마음도 어느새 너그러워진다.
<신풍루 곱창구이> 서울특별시 관악구 은천로2길 18 (02)877-6681

글·사진 김부로니(엔비어블) 맛집 블로거(blog.naver.com/enviableb)
사진 찍고 글 쓰는 3년차 맛집 블로거. 맛있는 음식의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어 블로그를 시작했다. 특별한 미각을 지닌 미식가보다는 맛있게 잘 먹고 잘 마시는 호(好)식가를 지향한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탐(探)식가를 목표로 요리 자격증을 따고 와인 아카데미를 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