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춥다… 감기 걸렸나? 그런 당신은 잎차에 레몬
싫다, 남들 다 마시는 차는… 그런 당신은 홍차에 별사탕
- 살짝 우려낸 홍차를 담은 맑은 유리잔 위로 히비스커스 꽃잎 몇개를 흩뿌렸다. 진홍빛 꽃물이 천천히 퍼지더니, 어느덧 잔 안엔 붉은 석양이 담겼다. 눈으로 그 황홀한 빛깔을 즐기고, 코끝으로 향을 만끽하고, 혀끝으로 맛을 음미하는 블렌딩 티. 그야말로 공감각(共感覺)의 음료다.
"블렌딩이요? 그 자체가 두근거림이에요. 어떤 맛과 빛깔, 향기를 낼지 천천히 지켜봐야 하니까요. 기다리고, 바라보고, 음미하는 과정 자체가 작은 느낌표가 되는 거죠."
갓 끓여 식힌 찻물 위로 오전 11시의 햇살이 감돈다. 28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만난 아모레퍼시픽 오설록 곽혜진 브랜드 매니저는 '티 블렌딩(Tea Blending)'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뭐든지 뒤섞고 더하고 새로 조합하는 게 유행인 시대. 이젠 차(茶) 한 잔을 마실 때도 다양한 재료를 한데 혼합하는 이른바 '티 블렌딩'이 인기다.
블렌딩 티는 이름 그대로 여러 재료를 혼합해서 우려내는 차를 일컫는다. 각기 다른 맛과 향을 지닌 잎차를 섞는 것이 가장 기본이고, 여기에 때론 과즙이나 우유, 꿀이나 시럽, 말린 과일과 꽃잎도 넣는다. 단순하고 깔끔한 차 맛을 선호해온 사람이라면 '굳이 왜 이렇게 할까' 갸우뚱할 수도 있겠다. 곽 매니저는 "음식이 갈수록 다채로워지는 만큼, 차도 여기에 맞춰 다양한 변주를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커피도 원액을 추출하는 방법에 따라, 거품이나 우유를 어떻게 얹느냐에 따라 종류가 무한대로 늘어나잖아요. 그렇다면 잎차도 충분히 가능한 거죠. 천연의 재료를 우려내 맛을 더하는 것이니, 커피보다 맛과 표정이 한결 더 풍부한 것도 특징이에요. 계절 따라 같은 재료도 그 풍미가 다르니까요."
블렌딩 티를 제대로 즐기려면 먼저 각각의 잎차가 어떤 맛과 향을 지녔는지 알아두는 게 좋다고 한다. 차는 흔히 발효하지 않은 불발효차와 발효차로 나뉜다. 녹차는 대표적인 불발효차다. 여린 찻잎을 채취해서 돌솥에 찌거나 덖어 더는 발효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녹차는 발효차보다 향과 맛이 꽤 강하다. 곽 매니저는 "강렬한 향기를 지닌 허브를 더하거나 맛이 진한 레몬이나 감귤즙 등을 넣어야 녹차 블렌딩의 매력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녹차에 향이 산뜻한 민트잎을 섞어서 함께 우려내는 식이다.
발효차는 발효하는 방식에 따라 반발효차, 발효차, 후발효차로 나뉘기도 한다. 반발효차와 발효차는 천연 효소로 차를 발효한다. 반발효차로는 우롱차가, 발효차로는 홍차가 대표적이다. 후발효차는 미생물을 이용한 차다. 발효 기간이 길수록 고급 차에 속한다. 삼나무 통에 미생물을 넣고 오래 발효한 제주삼다연차가 후발효차에 속한다. 발효차는 불발효차보다 맛이 한층 깊고 부드럽다. 따라서 녹차보단 발효 잎차가 블렌딩을 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은 편이다. 과일 껍질 말린 것, 꽃잎 말린 것을 넣어도 좋고 생강이나 레몬을 넣어도 맛이 더욱 풍부해진다. 우유나 두유, 꿀 등을 넣고 즐겨도 무방하다.
곽 매니저는 "일단 집에 있는 재료로 편하게 블렌딩에 도전해보라"고 했다. "녹차에 우롱차나 둥굴레차를 섞어도 되고요, 집에 있는 허브차와 잎차를 섞어도 괜찮아요. 쌉싸래하면서도 구수하고 향긋한 새로운 차가 됩니다. 집에 있는 사과나 귤을 잘게 잘라 찻물 위에 띄워도 되죠. 조합은 수백, 수천 가지까지도 가능해요. 블렌딩 티는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지녔으니까요."
차, 이럴땐 이런 블렌딩
기분 따라 날씨 따라 맛과 향을 변주해서 즐길 수 있는 것도 ‘티 블렌딩’의 장점
이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잘 어울리는 블렌딩 티 조합을 찾아봤다.
- 잎차와 말린 과일, 꽃잎 등을 배합해 만든‘블렌딩 티’들. 보랏빛 수레국화·장미·마리골드 등의 꽃을 섞어 화려한 색감을 보여주는 차가 있는가 하면, 별사탕과 말린 열대 과일을 섞어 달콤한 맛을 강조한 것도 있다. /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촬영 협조=오설록
◇쌀쌀한 겨울 날씨엔… 카카오향을 더한 발효잎차
추운 날씨가 이어질수록 피로도 누적된다. 이럴 땐 달콤한 향을 더한 차가 제격이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문인영씨는 “발효잎차에 카카오와 캐러멜 시럽 등을 살짝 더해도 풍미가 살아난다”고 했다. 끓여서 70도 정도로 식힌 물에 홍차를 30초 정도 우려낸 다음 카카오 덩어리(또는 분말) 캐러멜 향을 더한다. 카페인이 많은 음료를 꺼리는 사람이라면 홍차 대신 제주삼다연차를 골라도 좋다. 카페인 함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데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질이 있어 수족 냉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도 괜찮다고 한다. 문씨는 “기호에 따라 황설탕이나 꿀을 살짝 넣어도 좋다”고 했다.
◇감기에 걸렸다면… 생강이나 제주영귤을 더한 잎차
감기에 걸려 목이 아프고 칼칼할 땐 따뜻한 홍차에 레몬즙 반 티스푼 정도를 더하고 생강 한두 조각을 띄운 음료도 괜찮다. 레몬이 생강의 쓴맛을 잡아줘서 한결 상큼할 뿐 아니라, 생강이 가래·기침 등을 어느 정도 가라앉혀주기도 한다. 계피를 넣고 한번 우르르 끓여도 괜찮고, 배즙을 조금 섞어도 맛이 나쁘지 않다.
최근엔 제주영귤이 블렌딩 재료로 인기다. 제주영귤은 우리나라에서만 나는 토종 귤로, 감귤과 달리 과육이 덜 익어 껍질이 초록빛을 띨 때 맛과 향이 가장 좋다고 한다. 레몬보다 비타민C가 1.5배 정도 많이 들어 있어 감기에도 효과가 제법 있다. 제주영귤 즙을 넣어도 좋고, 제주영귤 껍질을 말린 것을 잎차에 띄워도 무척 향긋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땐… 녹차에 국화꽃잎을
혼자만의 고즈넉한 시간을 즐기고 싶을 땐 맛이 차분하고 그윽한 차가 제격이다. 이럴 때 대개 녹차를 마시지만, 녹차에 국화꽃잎을 더하면 은은하고 깊은 향기가 한결 더 풍부해진다. 말린 국화꽃잎과 녹찻잎을 한데 모아 70~80도 정도의 따뜻한 물에 2분 정도 충분히 우려낸다. 작은 국화꽃잎이 찻물 안에서 찬찬히 피어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즐거움도 있다.
◇쓰린 속을 달래고 싶을 땐… 조릿대와 곡물을 섞은 허브 티
제주에서 자란 한라조릿대는 당뇨병과 위염 등에 효험을 보이는 자생식물로 알려졌다. 속이 쓰리거나 소화가 잘 안 될 때 조릿대 허브 티를 마시면 한결 편안해진다. 이때 조릿대 허브 티만 마시면 다소 맛이 밋밋하다. 가을 곡물을 섞어 함께 우려내면 한층 구수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둥굴레도 좋고 옥수수나 현미, 보리도 좋다.
◇색다른 맛을 원할 땐… 별사탕과 말린 열대 과일을
아모레퍼시픽 오설록 곽혜진 브랜드 매니저는 "별사탕과 말린 열대 과일을 홍차에 넣어도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부드럽게 우려낸 홍차에 파인애플·구아바·파파야·레드커런트 말린 것을 띄운다. 인공 향기가 지나치게 강하지 않은 천연 사탕 조각을 넣어주거나 별사탕을 넣어줘도 맛이 더욱 좋아진다. 달콤한 풍미가 더해지면서 아기자기한 맛이 난다. 로즈힙, 히비스커스 같은 허브를 섞어주면 향기가 더욱 강렬해진다.
◇봄을 미리 느끼고 싶을 땐… 녹차에 유채와 동백꽃을
몸이 나른하고 머리가 무거울 때, 화사한 기운을 얻고 싶을 땐 꽃차가 제격이다. 특히 노란 유채꽃과 붉은 제주 동백꽃 말린 것을 녹차에 함께 띄워 주면 찻잔에서 모락모락 봄기운이 전해진다. 감귤이나 영귤 껍질 말린 것을 더하면 한층 더 상큼한 맛을 즐길 수 있고, 여기에 말린 살구나 말린 구아바 조각 몇 개를 띄워도 맛과 향이 크게 충돌하지 않는다.
◇작은 사치를 느끼고 싶을 땐… 홍차에 장미꽃잎을
손님 초대할 때 내놓기 좋은 블렌딩 티. 90도 정도 되는 뜨거운 물에 홍차를 2분 정도 우린다. 이때 장미꽃잎과 말린 파파야 조각을 함께 넣는다. 열대 과일의 새콤달콤한 풍미가 더해지는 것은 물론, 장미꽃잎이 화려하게 물속에서 피어나는 걸 눈으로 즐길 수 있다.
마땅한 재료 없다면… 우유나 과일 넣어보세요
찻잎에 블렌딩할 재료가 마땅히 없을 땐 우유나 두유, 꿀이나 과즙을 넣으면서 블렌딩을 시작해볼 것을 권한다. 두유나 우유는 우려낸 잎차나 홍차, 가루 녹차 등 어디에 섞어도 제법 괜찮은 궁합을 자랑한다. 찬 우유를 섞어도 나쁘진 않지만 따뜻한 맛을 충분히 즐기고 싶다면 데운 우유를 넣는 게 낫다. 차를 우려내는 동안에 작은 냄비에 우유를 조금 따라 끓인다. 냄비 가장자리에 거품이 생기면 불을 바로 끈다. 우려낸 차에 천천히 데운 우유를 섞어준다. 우유를 약간 남겼다가 거품기로 휘저어 거품을 낸 다음 음료에 올려도 좋다. 바닐라 파우더나 계피가루, 녹차가루, 캐러멜 시럽을 넣어도 맛이 좋아진다.
집에 있는 사과나 배, 감귤의 즙을 내서 살짝 섞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녹차엔 사과나 배보단 향이 강한 레몬이나 감귤, 오렌지즙 등이 더 어울리고, 홍차나 우롱차 등엔 모든 과일이 두루두루 어울린다. 갈증이 날 땐 찻물을 차갑게 식혀서 과즙을 한두 숟갈 넣고 탄산수와 얼음을 더해 ‘아이스 블렌딩 티’로 즐겨도 좋다.
과즙을 내는 게 귀찮을 땐 집에 있는 과일을 아무거나 골라 잘게 썰어 올려도 된다. 사과를 얇게 썰어 올리거나 복숭아 조각을 올리는 식이다. 레몬이나 오렌지를 깨끗하게 씻은 다음, 껍질을 잘게 깎아 찻물 위에 띄워도 훌륭한 블렌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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