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요리시간

올 추석엔 기름기 뺀 건강식 상차림 해볼까

아기 달맞이 2013. 9. 6. 17:09

[한겨레][esc] 요리


대전 영선사 법송스님이 차려 낸 사찰식 명절음식 만들기


가을에는 토란, 연근, 더덕 같은
뿌리채소가 좋다
해콩, 깨, 햇밤을 넣은 송편은
치자, 녹차, 포도, 당근 등으로
고운 색을 낸다


"여름에는 홍두깨수제비를, 가을에 송이밥을 해주셨는데." 영선사(대전광역시 서구 도마2동)의 법송스님이 말끝을 흐린다. 사람으로 치면 일흔이 넘은 절간 개가 스님의 말을 알아듣는지 멍멍 짖는다. 지난 6월17일께 입적한 영선사의 큰스님, 성관스님에 대한 그리움은 사람이나 개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성관스님은 3년 전 진단받은 뇌암이 악화되어 향년 73으로 입적했다. 법송스님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사찰음식 전문가로서의 그의 소질을 알아보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스승이었다. "우리 큰스님은 솜씨가 좋았죠. 맛깔스러운 송이밥은 영양도 많아서 쇠고기 열근 먹는 거나 진배없을 겁니다. 홍두깨수제비는 어찌나 얇은지, 종잇장 같았지요. 가르쳐주신 대로 만들어도 그 맛이 안 나요." 아꼈던 이의 빈 곳과 느닷없이 마주친 법송스님은 먹거리로 사모곡을 부른다.

그는 큰스님을 생각하면서 올 추석 다례(차례)상은 더 정성스럽게 올릴 생각이다. 영선사의 사찰 다례상은 정갈하고 담백하다. 기름이 많이 들어가 칼로리가 높다는 둥, 먹을거리가 풍부한 요즘과 안 맞는다는 둥, 천덕꾸러기 취급 받는 추석 명절음식. 올해는 법송스님의 솜씨를 따라 저칼로리 사찰음식을 만들어보자.

"야하지 않아요. 그래서 절 음식은 맛없어요." 법송스님이 웃으며 농을 한다. 햇과일, 전, 나물을 합쳐 20여가지, 7가지 색의 송편, 토란탕이나 토란튀김, 토란전 등이 다례상에 오른다. 토란은 매년 빠지지 않는 식재료다. "가을에는 토란이 최고 맛나죠." 송편은 치자, 녹차, 포도, 당근, 쑥, 흑미를 활용해 색을 낸다. 해콩, 깨, 흑임자, 햇밤이 송편에 들어간다. 천태만상 인생사를 담은 듯 다채롭다. "큰스님은 송편도 참 잘 빚으셨지요." 주지스님인 현도스님도 큰스님이 그립다.

법송스님은 도란도란 가족들이 둘러앉아 먹을 음식으로 '더덕찹쌀구이'부터 추천한다. "가을에는 땅속 저장음식인 셈인 뿌리채소가 아주 좋아요. 연근, 더덕, 도라지 같은 거요." 영선사 식구들은 봄에는 나물을, 여름에는 열매를, 겨울에는 봄부터 저장해둔 갖가지 발효음식을 먹는다.

더덕찹쌀구이는 더덕의 질감과 끈적거리는 찹쌀이 잘 어울린다. "더덕이나 도라지는 칼로 자르지 않고 칼등 같은 걸로 찧죠." 편리함을 버리는 것도 수행의 한 과정이다. 도라지도 쓴맛을 없애려고 소금물에 빡빡 씻지 않는다. "쓴맛이 약간 남아 있는 게 좋아요." 재료 본연의 성질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살짝 도는 도라지의 쓴맛은 오히려 침을 고이게 한다. 잣과 어울려 고소하다.

한창 인기 좋은 가지로 만든 만두도 식탁에 오른다. 그런데 어째 시커멓다. 아스팔트 색이다. 누가 걷는 도로를 얇게 뜯어 싼 듯한 먹거리를 좋아하겠는가! 도무지 손이 가지 않는다. 이유는 통밀가루다. 하지만 한입 물면 '편견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스님은 담백한 명절 상차림에 특별식을 빼놓지 않았다. '깻잎주머니'. 납작한 지우개 모양 주머니의 겉은 깻잎, 그 안에 물컹한 마가 들었다. 꽉 깨물면 퍽 터진다. 그다음에는 두부 푸딩처럼 부드러운 것들이 흘러나온다.

가장 흔한 명절음식은 잡채다. 어느 집이나 비슷하다. 하지만 스님의 잡채는 뭔가 다르다. 그의 '우엉잡채'에는 쭉쭉 늘어지는 당면이 없다. 채 썬 우엉과 고추들이 인간 세상처럼 섞여 한 접시를 만들었다. "산행주먹밥 빼놓으면 안 되지." 현도스님의 말이다. 영선사 스님들은 다례를 지내고 주먹밥을 만들어 신도들과 함께 계룡산에 오른다. "소화도 잘되고 김밥처럼 간편합니다." 종류는 2가지. '삭힌 고추 주먹밥'과 '삭힌 깻잎 주먹밥'. 매운 고추 맛이 은근히 올라와 한 걸음씩 떼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깻잎은 6년 삭힌 거다. 세월이 빚은 맛만큼 기품 있는 것은 없다. 단출한 주먹밥은 위에 부담도 적다. 칡잎이나 떡갈나무잎에 싸 간다. "비닐봉지 같은 건 안 씁니다. 먹고 던져도 썩어 없어지는 것들이죠."

법송, 현도스님은 성관스님을 위한 건강식 끼니도 많이 만들었다. 일종의 식이요법이었다. "병원에서는 6개월 사신다고 했지만, 더 사셨죠." 어쩌면 그 이유가 사찰음식에 있을지도 모른다. "물도 가려서 드시게 했고, 우선 마음을 가장 편하게 해드렸어요." 두 사람은 지금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컸던 큰스님이 보고 싶다. "흐르는 물도 아껴서 써라 하셨죠." 현도스님이 말한다. 영선사 두 스님은 한달에 한번 15가구 홀몸노인들에게 반찬을 갖다 주고, 420여명의 노인들에게 점심 공양을 제공한다.

법송스님은 현재 동국대학교 전통사찰음식연구소와 '향적세계'(대한불교 조계종이 운영하는 사찰음식 교육관)에서 사찰음식을 가르치고 있다. 오는 15일까지 열리는 '2013 천안국제웰빙식품 엑스포'에서 사찰음식 전시와 시연, 체험행사를 진행한다. "먹는 행사가 많다 보니 사찰음식 관심이 더 높아졌어요."

대전/글·사진 박미향 기자mh@hani.co.kr

: 고추 50g, 밥 3공기, 김 5장, 볶은 소금 1t, 깨소금 2T, 참기름 1T, 삭힌 고추 양념(들기름 2T, 깨소금 1T)

: <1> 삭힌 고추는 소금물을 빼고 다져서 들기름에 볶는다. <2> 밥에 삭힌 고추와 소금, 깨소금, 참기름을 섞어 주먹밥을 만든다. <3> 구운 김에 주먹밥을 싼다.


: 더덕 1㎏, 찹쌀 1컵 반, 대추 10개, 소금과 물 약간, 잣가루 조금

: <1> 더덕을 깎아 씻어 부드러워질 때까지 찧는다. <2> 1을 마른 찹쌀가루에 묻힌다. <3> 남은 찹쌀가루 조금과 소금, 다진 대추, 소금, 물을 섞어 반죽한다. <4> 2에 3을 바른다. <5> 굽는다. 찹쌀 때문에 들러붙지 않도록 더덕 사이사이로 잣가루를 뿌려준다.


: 가지 3개, 통밀가루 2컵, 감자 1개, 잣 60~70g, 물 조금, 두부 반모

: <1> 통밀가루에 물을 조금 섞어 반죽한 뒤 하루 정도 상온에서 숙성시킨다. <2> 가지를 채 썬 뒤 소금에 넣어 30여분 둔다. <3> 2를 물기가 좀 남을 정도로만 짠다. <4> 두부는 으깨고 감자를 곱게 채 썰어 볶는다. <5> 반죽으로 만두피를 만들고, 재료들을 넣는다. 잣은 통째로 넣는다. 잣 대신 땅콩을 넣어도 된다.


: 도라지 5개, 잣 조금, 배 반개, 참기름과 들기름, 소금 조금

: <1> 배를 즙 내고 소금 살짝 뿌려 하루 정도 묵혀 둔다. <2> 도라지를 찧는다. <3> 배즙에 잣을 갈아 넣고 참기름과 들기름도 넣는다. <4> 3에 도라지를 재웠다가 굽는다.


: 우엉 500g, 청고추 100g, 홍고추 10g, 들기름과 집간장 조금

: <1> 재료들을 비슷한 크기로 채 썬다. <2> 들기름, 집간장 넣어 볶는다. 우엉은 입맛에 따라 볶는 시간 조절한다. 법송스님은 살짝 볶는다.


: 깻잎 6장, 마 300g, 잣가루 조금, 고추장양념(고추장 1t, 매실 1t, 조청 약간을 끓여 낸 것) 조금, 감자 1개, 표고버섯 2개, 당근 1/4개, 두부 1/4모, 들기름 조금

: <1> 감자, 표고버섯, 당근은 다진 뒤에 살짝 볶는다. 마는 갈아둔다. <2> 두부는 으깬 뒤 살짝 볶는다. <3> 1과 2를 깻잎에 싼다. <4> 고추장양념과 잣가루를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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