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옷차림을 잘 관찰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숨어 있다. 색깔과 모양이 바뀌어도 거의 바뀌지 않는 '법칙'이 있다. 바로 웃옷 겉에 넉넉한 크기의 손 주머니가 달려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외국 정상을 만나건, 청와대 내·외부 행사에 참석하건 이 '코디네이션'만큼은 지킨다. 그 주머니 안에는 어김없이 펜과 메모지가 들어 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메모 방법은 매우 독특하다. 두꺼운 수첩이 아니라, A4용지 크기의 흰 종이를 정사각형 형태로 4등분해 접은 다음 접혀진 한 면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 내려간다. 뭔가 생각이 나거나, 누군가로부터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을 전해 듣거나, 지시할 내용이 있으면 박 대통령은 여기에 쓴다.
이렇게 종이를 사용하면 A4용지 1장에 4장 분량까지 쓸 수 있다는 후문이다. "자그만 물건이라도 아껴 써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생활습관을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만, 단지 근검절약 정신만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쉽게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종이 한 장조차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의 메모 방법이 전해지면서 '모방'하는 참모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말 박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서우두(首都) 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서 내려 환영 나온 중국 화동(花童)을 만났다. 박 대통령 옆으로는 이 모습을 쪽지에 담는 참모들이 눈에 띄었다.
박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새롭다 싶으면 적으세요"라고 권한다. "중요하다 생각되면 자꾸 적어야 머리에 박히고 그래야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게 된다"는 지론에서다.
그래서 청와대 사람들 사이엔 '적자생존'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환경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기존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아니라 "대통령이 적으니까 우리도 적어야 한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이 전임자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달리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회의 때 현안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짚을 수 있는 것도 메모 습관에서 나온다고 한다. 회의 과정에서 나오는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자리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상세하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니 받아들이는 참모와 사람들도 헷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도 유명한 메모광(狂)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방면에 걸쳐 박식했으며, 참모들에게 각종 지시를 내릴 때도 메모를 활용했다.
신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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