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누구나 봤을 만화 뽀빠이의 ‘올리브’, 세일러문의 마녀 ‘에스메랄다’, 이상한 나라의 폴의 얄미운 버섯돌이…. 올드 팬들의 가슴속에 낭랑한 목소리로 포개져 있는 성우 겸 연기자 성병숙(58). 1977년 TBC(동양방송)에 성우 공채 15기로 입사해 성우와 MC를 넘나들며 수많은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그가 어느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선한 웃음 위로 번지는 주름이 매력적인 그를 중앙일보 사옥(예전 TBC 건물)에서 만났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는 주문에 환하게 웃어 보이는 성병숙씨. 그는 “엄마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들”이라고 답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1월 종영한 SBS ‘드라마의 제왕’에서 탤런트 정려원의 억척 엄마로 열연했던 성병숙. 올해 데뷔 37년차를 맞은 그의 목소리는 갓 입사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여전히 또랑또랑했다.
“원래부터 목소리가 좋았어요. 대학 때 아르바이트로 잡지사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같이 있던 기자분이 ‘성우가 딱이다’라며 원서를 접수시켜줬죠. 그때가 시작이었어요.”
당시 고려대 임학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집안의 기대주였다. 합격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합격한 건 축하하지만 우리 집엔 딴따라 없다. 이미 회사 자리까지 알아놨으니 거기로 갈 준비나 하라”며 엄포를 놨다. 이미 수백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그에겐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늘 밖으로만 맴돌았고 오히려 교내 연극 동아리의 주연을 꿰차고 있던 그에게 성우는 ‘탈출구’였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설득했다. “정말 힘들게 합격한 건데, 일단 몇 달이라도 하게 해줘요.” 어머니의 간절한 설득에 성병숙은 ‘성우’가 됐다.
이후 각종 어린이 만화에서 성우를 맡은 것은 물론 젊음의 행진, 여보세요 등 당시 TBC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주가를 올렸다. 아버지도 주변 친구들로부터 “딸이 참 똑똑하고 잘한다”는 칭찬을 듣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어머니는 매니저처럼 늘 곁을 지키며 정성스레 딸을 응원했다.
그의 어머니 고 조옥현씨는 딸의 그림자이자 세상에서 가장 친한 ‘단짝’이었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던 어머니는 딸과 함께 꿈을 꾸고 그 꿈을 소중히 이뤄나갔다. TV와 연극 무대에서 맹활약하는 딸을 보며 입가엔 늘 웃음이 가득했다. 딸이 오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오늘도 고생했어, 우리 딸’이라며 어깨를 톡톡 두드려줬다.
“엄마는, 제 아내였죠. 제가 워낙 일찍 일을 시작해 돈을 벌고 또 바깥 생활을 하다 보니 엄마의 내조가 절대적이었어요. 엄마는 늘 바쁘기만 한 제가 미울 법도 한데 ‘우리 딸이 남편’이라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했어요.”
가장이 된 그는 온종일 피를 토할 정도로 일에 매달렸다. 그런 세월이 끝도 없이 반복될 무렵, 어머니가 조용히 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아직 희망이 있다. 엄마가 네 곁에 있고, 네가 내 곁에 있는데 못 이겨낼 일이 어디 있겠니.” 희망을 갖고 다시 삶으로 뛰어든 그는 시련에 맞서기 시작했다. 방황하던 딸은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고, 남편과는 이혼했다. 다시 삶이 안정을 찾아가는 듯싶었다.
하지만 ‘시련’은 여전히 그의 곁에 머물러 있었다. 건강했던 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지더니 퇴원 후 중풍에 걸려 투병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마저 알츠하이머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치매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5개월 전이었다.
치매에 걸렸어도 어머니는 딸을 잊지 않았다. 퇴근 후 밤늦게 귀가해 그대로 잠들곤 했던 그는 아침에 일어나 깜짝 놀라곤 했다. "열려 있던 창문은 꼭 닫혀 있고, 이불도 목 끝까지 올라와 있었어요. 늘 제가 올 때까지 엄마는 기다리셨던 거죠. 가끔 절 못 알아보기도 했지만 본능이 살아 있었나 봐요.” 그는 그럴 때마다 눈이 퉁퉁 부은 채 일을 나가곤 했다. 평소 현철의 ‘사랑의 이름표’를 즐겨 불렀다던 어머니는 지난해 1월 81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우리 엄마는…”이라고 말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평생 엄마의 ‘딸’로만 살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엄마라는 그 빈자리에 자신이 들어섰다. 딸 송희(31)씨의 엄마로 제2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평생 함께한 순간이 5년도 채 되지 않는 모녀는 그 순간을 두 배로 보상하려는 듯 다정하게 지낸다. 이혼과 재혼·유학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딸은 “엄만 내 거. 엄만 평생 내 거야” 하면서 마치 아기처럼 엄마 품에 꼭 붙어 있길 즐긴다.
현재 영어유치원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 송희씨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며 퇴근 후 곧바로 귀가해 그날 있었던 일들을 한아름 풀어놓는다. 엄마는 그런 딸에게 직접 만든 저녁밥을 해주고 싶어 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온다. “진작 해줬어야 하는 ‘진짜 엄마’로서의 삶을 이제야 시작한 거죠. 늘 송희에게 미안한 맘뿐이고요.”
이들의 일상은 부엌에 걸린 송희씨 할머니의 생전 모습에 밝게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둘의 오작교이자, 두 모녀를 끔찍이 사랑했던 ‘할머니’를 소재로 매일 웃음꽃을 피운다. 목소리도 똑 닮은 모녀는 이젠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이가 됐다. 서른을 넘은 딸은 “엄마 같은 남자친구랑 살겠다”며 엄마를 최고의 이상형으로 꼽는다.
2007년 성병숙은 연극 ‘친정엄마’에 출연했다. 조건 없는 사랑을 줬던 엄마를 회상하며 당시 살아계셨던 어머니를 위해 출연했다. 어머니는 치매에 걸렸지만 무대에 선 딸을 보며 마음으로 이해했고, 딸 송희씨는 그런 엄마를 보며 눈물을 쏟았다. 그의 친구들은 “무대에서 네가 아니라 너희 어머니가 보이더라”고 했다. 그는 오늘도 늘 어머니가 보고 싶다. 그만큼 지금 함께하는 딸과의 일상도 소중하다.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을 물었다.
“엄마와 함께했던 순간, 송희와 함께하는 지금, 그리고 어머니와 헤어진 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인터뷰하기 전 기도를 하고 왔다고 했다. "미약하지만 제 얘기를 통해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엄마와 딸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희망을 얻고 행복해졌으면 좋겠고요.”
송지영 기자
◆ 이 기사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땡큐맘 캠페인’ 시리즈 두 번째로 중앙일보·JTBC와 한국P&G가 함께합니다.

지난 1월 종영한 SBS ‘드라마의 제왕’에서 탤런트 정려원의 억척 엄마로 열연했던 성병숙. 올해 데뷔 37년차를 맞은 그의 목소리는 갓 입사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여전히 또랑또랑했다.
“원래부터 목소리가 좋았어요. 대학 때 아르바이트로 잡지사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같이 있던 기자분이 ‘성우가 딱이다’라며 원서를 접수시켜줬죠. 그때가 시작이었어요.”
당시 고려대 임학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집안의 기대주였다. 합격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합격한 건 축하하지만 우리 집엔 딴따라 없다. 이미 회사 자리까지 알아놨으니 거기로 갈 준비나 하라”며 엄포를 놨다. 이미 수백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그에겐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늘 밖으로만 맴돌았고 오히려 교내 연극 동아리의 주연을 꿰차고 있던 그에게 성우는 ‘탈출구’였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설득했다. “정말 힘들게 합격한 건데, 일단 몇 달이라도 하게 해줘요.” 어머니의 간절한 설득에 성병숙은 ‘성우’가 됐다.
이후 각종 어린이 만화에서 성우를 맡은 것은 물론 젊음의 행진, 여보세요 등 당시 TBC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주가를 올렸다. 아버지도 주변 친구들로부터 “딸이 참 똑똑하고 잘한다”는 칭찬을 듣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어머니는 매니저처럼 늘 곁을 지키며 정성스레 딸을 응원했다.
그의 어머니 고 조옥현씨는 딸의 그림자이자 세상에서 가장 친한 ‘단짝’이었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던 어머니는 딸과 함께 꿈을 꾸고 그 꿈을 소중히 이뤄나갔다. TV와 연극 무대에서 맹활약하는 딸을 보며 입가엔 늘 웃음이 가득했다. 딸이 오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오늘도 고생했어, 우리 딸’이라며 어깨를 톡톡 두드려줬다.
“엄마는, 제 아내였죠. 제가 워낙 일찍 일을 시작해 돈을 벌고 또 바깥 생활을 하다 보니 엄마의 내조가 절대적이었어요. 엄마는 늘 바쁘기만 한 제가 미울 법도 한데 ‘우리 딸이 남편’이라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했어요.”

성병숙씨가 2008년 생전의 어머니와 마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어머니는 평생 동안 딸의 매니저이자 최고의 단짝 친구였다. [중앙포토]
무남독녀 외동딸로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던 성병숙. 단 한 번도 찬 곳에 앉아보지 않았을 정도로 금이야 옥이야 자랐던 그에게 결혼과 동시에 연거푸 시련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27세에 지인의 소개로 선봐 결혼했던 남자와는 신혼 초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해 성격 차로 3년 만에 갈라섰고, 37세에 재혼한 남자는 외환위기가 터지자 잠시 외국에 다녀온다는 핑계를 댄 뒤 100억원의 빚을 남기곤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빚쟁이들이 방송국과 촬영장·연극무대에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쑥대밭을 만들었다.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우울증에 걸린 중3 딸은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1년간 집 밖에 나가질 않았다.
가장이 된 그는 온종일 피를 토할 정도로 일에 매달렸다. 그런 세월이 끝도 없이 반복될 무렵, 어머니가 조용히 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아직 희망이 있다. 엄마가 네 곁에 있고, 네가 내 곁에 있는데 못 이겨낼 일이 어디 있겠니.” 희망을 갖고 다시 삶으로 뛰어든 그는 시련에 맞서기 시작했다. 방황하던 딸은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고, 남편과는 이혼했다. 다시 삶이 안정을 찾아가는 듯싶었다.
하지만 ‘시련’은 여전히 그의 곁에 머물러 있었다. 건강했던 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지더니 퇴원 후 중풍에 걸려 투병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마저 알츠하이머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치매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5개월 전이었다.
치매에 걸렸어도 어머니는 딸을 잊지 않았다. 퇴근 후 밤늦게 귀가해 그대로 잠들곤 했던 그는 아침에 일어나 깜짝 놀라곤 했다. "열려 있던 창문은 꼭 닫혀 있고, 이불도 목 끝까지 올라와 있었어요. 늘 제가 올 때까지 엄마는 기다리셨던 거죠. 가끔 절 못 알아보기도 했지만 본능이 살아 있었나 봐요.” 그는 그럴 때마다 눈이 퉁퉁 부은 채 일을 나가곤 했다. 평소 현철의 ‘사랑의 이름표’를 즐겨 불렀다던 어머니는 지난해 1월 81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우리 엄마는…”이라고 말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평생 엄마의 ‘딸’로만 살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엄마라는 그 빈자리에 자신이 들어섰다. 딸 송희(31)씨의 엄마로 제2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평생 함께한 순간이 5년도 채 되지 않는 모녀는 그 순간을 두 배로 보상하려는 듯 다정하게 지낸다. 이혼과 재혼·유학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딸은 “엄만 내 거. 엄만 평생 내 거야” 하면서 마치 아기처럼 엄마 품에 꼭 붙어 있길 즐긴다.
현재 영어유치원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 송희씨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며 퇴근 후 곧바로 귀가해 그날 있었던 일들을 한아름 풀어놓는다. 엄마는 그런 딸에게 직접 만든 저녁밥을 해주고 싶어 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온다. “진작 해줬어야 하는 ‘진짜 엄마’로서의 삶을 이제야 시작한 거죠. 늘 송희에게 미안한 맘뿐이고요.”
이들의 일상은 부엌에 걸린 송희씨 할머니의 생전 모습에 밝게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둘의 오작교이자, 두 모녀를 끔찍이 사랑했던 ‘할머니’를 소재로 매일 웃음꽃을 피운다. 목소리도 똑 닮은 모녀는 이젠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이가 됐다. 서른을 넘은 딸은 “엄마 같은 남자친구랑 살겠다”며 엄마를 최고의 이상형으로 꼽는다.
2007년 성병숙은 연극 ‘친정엄마’에 출연했다. 조건 없는 사랑을 줬던 엄마를 회상하며 당시 살아계셨던 어머니를 위해 출연했다. 어머니는 치매에 걸렸지만 무대에 선 딸을 보며 마음으로 이해했고, 딸 송희씨는 그런 엄마를 보며 눈물을 쏟았다. 그의 친구들은 “무대에서 네가 아니라 너희 어머니가 보이더라”고 했다. 그는 오늘도 늘 어머니가 보고 싶다. 그만큼 지금 함께하는 딸과의 일상도 소중하다.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을 물었다.
“엄마와 함께했던 순간, 송희와 함께하는 지금, 그리고 어머니와 헤어진 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인터뷰하기 전 기도를 하고 왔다고 했다. "미약하지만 제 얘기를 통해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엄마와 딸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희망을 얻고 행복해졌으면 좋겠고요.”
송지영 기자
◆ 이 기사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땡큐맘 캠페인’ 시리즈 두 번째로 중앙일보·JTBC와 한국P&G가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