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진
3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숙맥이나 바보, 찌질이가 멘토”라며 “숙맥 같은 사람들은 상처를 많이 받지만 더 오래가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0여 년 전 일화를 털어놨다.
스승인 고(故) 박목월 선생과 설렁탕을 먹으러 갔을 때다. 감히 선생님 쪽에 놓은 소금 그릇을 달란 말을 못해 간도 되지 않은 설렁탕만 먹었다. 그런 그를 보며 박목월 선생은 ‘저리 숙맥 같으니 시는 잘 쓰겠구나’ 생각했다고 어느 글에서 밝혔다.
그는 살면서 조금은 느슨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데 산문만큼 적합한 글도 없다 했다. “시는 알레고리와 아이러니 등이 있어야 하지만 산문은 어머니처럼 편해요. 어머니가 고쟁이 바람으로 다녀도 괜찮은 편안함이 있잖아요. 모든 글이 다 산문, 수필이 되니까.”
그러면서 헐거운 마음이 갖고 있는 장점은 홍시에 비유했다. “나이가 드니 마음도 약해지고 여려져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게 되네요. 독기가 없어진 거죠. 그런데 생각해요. 항상 땡감이면 맛있겠나. 땡감이던 시절을 지나 단감도 지나고 홍시가 돼 흐물대는 거라고.” 따뜻한 그의 시선을 거쳐 나오는 삶에 대한 통찰은 말랑한 홍시 같았다. 한 입 베어물면 입 안에서 녹아내리 듯 읽는 이의 마음에도 그렇게 슬며시 녹아서 번졌다.
어머니의 아버지 손 / 유안진
늘 두 손에 나눠 쥐고 주셨지
“이건 아버지가 보낸 거, 이건 내가……”
정말로 그런 줄 알았다
램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에서 탕자를 껴안은 아버지의 두 손이
남자 손과 여자 손인 걸 알고서야
엄마의 한 손도 늘 아버지 손이었음을
엄마이자 아버지였던 내 어머니
하느님아버지도 어머니신 줄 비로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