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미

경주 최부잣집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각하다

아기 달맞이 2013. 1. 27. 19:14

경주 최부잣집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각하다

경주 교동 최부잣집. 원래는 99칸이었다는데, 지금은 소박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솟을대문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한번에 쌀 800석을 보관했다는 곳간이다.


3대 가는 부자 없다는 옛말은, 경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경주 최부잣집이 있기 때문이다. 300년이 넘는 세월에 12대를 거치며 만석 재산을 지켰고 9대에 걸쳐 진사(進士)를 배출한 명문가가 경주 교동 최씨 집안이다. 최부잣집은 단순히 재산 많은 양반가에 그치지 않는다. 최부잣집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흔치 않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진정한 의미의 사회 지도층이다.

최부잣집에 내려오는 여섯 가지 가훈이 있다. 만석 이상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이 들면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등등 하나같이 근검절약과 사회공헌의 가치를 전파한다.

최부잣집 가문은 대대로 가훈을 받들고 살았다. 10대 방계 최만선 선생이 돌아갔을 때는 경주장이 아예 철시하고 어른을 애도했다고 한다. 수백 년 내려오던 가산을 세상에 내놓은 건 12대 최준(1884∼1970)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최준 선생은 “나라 없이 부자도 없다”며 독립운동에 앞장섰고 광복 이후에는 “나라가 망한 건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교육사업에 전 재산을 바쳤다. 최씨 고택 관리인으로 있는 후손 최용부(70)씨는 “최부잣집은 참부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부잣집 후손이 운영하는 한정식집 ‘요석궁’의 3인 상차림. 최씨 고택 맞은 편에 있다.

최씨 고택은 소문만큼 으리으리하지 않다. 원래는 99칸이었다는데, 지금은 사랑채·안채·사당·곳간이 전부인 작은 한옥일 뿐이다. 그래도 옛 명성은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정문이 솟을대문인데 다른 솟을대문보다 한참 낮고 수수하다. 허세를 경계하던 최부잣집의 정신이 엿보인다. 최부잣집이 얼마나 큰 부자였는지는 곳간에서 알 수 있다. 국내에 현존하는 목제 곳간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쌀 800석을 한꺼번에 보관할 수 있었단다.

최씨 고택 오른쪽에 ‘교동법주’가 있다. 교동법주는 경주 최씨 가문의 가양주로서 1986년 우리나라 전통주 최초로 문배주, 면천 두견주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현재 최씨 집안 방계 후손 최경씨가 어머니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교동법주는 찹쌀로 빚어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최씨 고택이 있는 교동은 신라시대 때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이 있던 터다. 그 요석궁의 이름을 빌린 한정식집을 최부잣집 후손이 운영하고 있다. 경주에서 유명한 한정식집으로 1인 3만·6만·9만원(세금 별도) 밥상이 있다. 예약 필수. 054-772-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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