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7대 종단 유적지 60곳 껴안은 전북 ‘아름다운 순례길’

아기 달맞이 2013. 1. 4. 07:28

모든 종교를 품은 길 … 그 길 위에서 소망 하나 품어봅니다

 

새해 들머리다. 굳이 신앙이 없어도 가슴에 소원 하나쯤 품게 되는 때다. 종교를 막론하고 기도의 깊이는 얼마나 진심을 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종교에서 수행과 순례를 강조하는 까닭이다.

 전라북도에 가면 정말 제대로 된 소원을 비는 길이 있다.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종교가 길 하나에 다 모여 있다. 그러니까 원불교 교당 옆에 성당이 있고, 성당 뒤편으로 십자가 달린 교회가 나오고, 이국적인 로마네스크 풍의 성당을 지나면 공자 영전을 모시는 향교가 맞아주는, 서로 다른 종교가 어울려 지내는 길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 전북 전주시내. 조선 왕조 시조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경기전 돌담 너머로 천주교 성지 전동성당이 보인다.


 이 길의 이름은 ‘아름다운 순례길’이다. 전북 전주시·익산시·김제시·완주군에 걸쳐 조성된 길로 9개 코스 240㎞에 이른다. 아름다운 순례길은 종교 유적지와 순교지 60여 곳을 지난다. 기독교·불교·유교·원불교·천도교·천주교·민족종교(증산교·대순진리교 등) 등 소위 국내 7대 종단에 소속된 종교가 모두 이 길을 걷다 보면 등장한다.

 2009년 천주교 신자로 이루어진 (사)한국순례문화연구원이 순례길 조성을 시작했고 지난해 11월 마침내 개통됐다. 지금은 단체 이름이 세계순례대회조직위원회로 바뀌었고 전라북도가 조직위원회와 공동으로 순례길을 관리한다.

 순례길이 조성되자 기독교·불교·유교·원불교 등 4대 종단 간 소통도 활발해졌다. 박진구 전주 안디옥교회 담임목사, 금산사 주지 원행 스님, 원불교 전북교부장 김성효 교부장, 이병호 천주교 전주교구 주교가 조직위원회 고문으로 참여했다. 조직위원회 이사장을 맡은 김수곤(77) 전 전북대 총장은 “아름다운 순례길은 각 종교 지도자가 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바람직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아름다운 순례길의 마스코트인 달팽이 ‘느바기’. ‘느리고 바르고 기쁘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라북도 4개 시·군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순례길은 이렇게 종교와 종교 사이를 이으며 나아간다.

 아름다운 순례길은 성당·절·교회·교당(원불교)은 물론이고 천주교 순교지와 민족종교 성지도 지난다. 하나의 길 위에서 서로 다른 종교가 화합하고 교류하고 있었다. 김제시 금산면 원평마을에 살던 천주교 신부와 원불교 교무는 낮에는 마을 농사를 돕고 밤에는 야학을 운영하면서 혹독했던 일제 강점기를 버텼다. 완주 송광사의 스님들은 구한말 혼란기 때 절로 숨어들어온 신부님을 숨겨주기도 했다.

 그런데 서로 붙어있는 4개 시·군에 어떻게 우리나라 7대 종교 성지가 다닥다닥 모여있을 수 있었을까. 전북도 종무계 신현숙 계장은 “이 지역은 예부터 수탈이 심했던 곡창지대로 민중은 늘 의지할 존재를 기원했다”며 “생활에 지친 민중에게 외래 종교든 신흥 종교든 활발하게 전파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소망이 없어도 상관없다.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이미 힘찬 새해를 열어젖히는 것이다. 계사년 벽두, week&이 전라북도의 아름다운 순례길을 첫 번째 여행지로 자신 있게 소개하는 이유다.

 

 글=홍지연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