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임윤수 기자]
나
▲우리나라 김치는 발효식품의 대명사, 중국의 파오차이와 일본의 기무치는?
ⓒ 임윤수
: 와~ 두부가 이렇게 슬픈 사연이 있는 음식이었어?
아내
: 뜬금없이 두부는 뭐고 슬픈 사연은 뭐야.
나
: 내가 읽어 줄 테니까 한 번 들어봐.
옛날에 사이가 좋지 않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살았다. 구박에 시달리던 며느리는 끼니를 때우는 것조차 시어머니의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였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외출한 틈을 타 며느리는 요기를 할 요량으로 콩을 갈아 국물을 내고 있었다. 그 순간,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시어머니인 줄 안 며느리는 콩 국물을 급히 항아리에 숨겼다. 돌아온 사람은 남편이었다. 콩물을 넣어둔 항아리엔 콩물이 응고되어 하얀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콩 국물과는 전혀 다른 별미였다. 그 음식을 '남편아 따라왔다'는 의미로 '두부(逗夫)'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나중에 두부(豆腐)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 < 한·중·일 밥상문화 >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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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는 사연도 담겨 있어
아내
: 우리 엄마 인절미 얘기하고 비슷하네.
나
: 장모님? 장모님이 어땠기에? 그리고 인절미는 뭐야?
아내
: 엄마가 다섯째를 가졌을 때, 인절미가 너무 먹고 싶더래. 내리 딸만 넷을 낳아 죄인 아닌 죄인이기도 했지만 할머니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았잖아.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가 장엘 간다고 하더래. 엄마는 이때다 싶어 할머니가 집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광으로 들어가 한 됫박쯤의 찹쌀을 꺼내다 얼른 씻고, 솥에다 쪄서 절구통에다 넣고 급하게 절구질을 했대.
인절미를 제대로 만들려면 인절미에 뭍일 고물도 준비해야 하고, 쌀도 충분히 불리고, 절구질도 한 사람은 뒤집어주고 또 한사람은 절구질을 하며 두 사람이 차분하게 해야 하지만 장에 가신 할머니가 돌아오시기 전에 몰래 해 먹으려니 마음이 급했던 거지. 대충 절구질을 해 제대로 으깨지지 않은 밥알이 듬성듬성 보이는 찹쌀 덩어리를 둘둘 문지르고 뚝뚝 잘라서 대충 인절미모양이 나게 해 부엌에서 먹고 있는데 할머니가 쑥 들어오시더래. 할머니는 별다른 꾸중 없이 '그렇게 먹고 싶으면 해 달라고 하지 그게 뭐냐'고 하며 야단 아닌 야단을 치는 것으로 끝내 시더래.
나
: 그때 낳은 딸이 다섯째 처제면 딸을 한 명 더 낳고 낳으신 게 처남이네. 다음에 장모님 오시면 인절미 실컷 드시게 사다드리든지 아니면 직접 만들어 드려야겠다. 얘기가 나온 김에 짜장면이 왜 검은색인지도 말해 줄까?
아내
: 어. 짜장면은 왜 검은색인지 늘 궁금했는데 잘됐다.
▲< 한·중·일 밥상문화 > 표지 |
ⓒ 이가서 |
콩과 찹쌀 등으로 발효시킨 된장에 캐러멜을 섞은 검은 면장이 바로 '춘장'이다. 중국에는 없는 새로운 면장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국 전통 음식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검은색 요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 < 한·중·일 밥상문화 > 150쪽.
김경은 지음, 이가서 출판의 < 한·중·일 밥상문화 > 를 읽고 아내와 나눈 대화중 일부입니다. < 한·중·일 밥상문화 > 는 한·중·일 3국의 대표음식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중·일 3국의 밥상 음식
음식에 담긴 사연(유래)에서부터 영양학까지를 여러 가지 색실을 섞어 뜬 뜨개질로 뜬 스웨터처럼 알록달록하고 도톰하게 다루고 있어 읽다보면 저절로 음식의 맛과 향이 상상의 밥상으로 차려집니다. 어떤 음식은 입에 침이 고이게 하고, 어떤 음식은 목젖을 꿀꺽 거리게 하고, 어떤 음식은 첫사랑처럼 그리운 사연으로 그려집니다.
비슷하지만 3개의 나라에서 각각의 이름으로 불리는 음식들, 조선의 왕이 먹던 수라상에 차려지던 음식, 중국의 제후 서태후나 측천무후에게 차려지던 어마어마한 밥상, 일본의 쇼군들에게 차려지던 검소한 밥상은 물론 배고프고 가난했던 사람들이 먹던 빈대떡에 얽긴 이야기들까지가 실타래에 감겼던 실처럼 줄줄 이어집니다.
단순한 음식이이갸기 아니라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가치, 정치와 문화까지를 아우르고 있으니 진수성찬과 산해진미를 뛰어넘는 총체적인 밥상, 역사와 정치, 문화와 시대적 가치까지 두루두루 담아낸 음식문화의 총합서입니다.
▲무쇠솥에 지은 밥이 더 맛있는 건 과학입니다. |
ⓒ 임윤수 |
짜장면을 안 먹어 본 이가 별로 없지만 짜장면이 내포하고 있는 탄생과정이나 유래를 제대로 아는 이도 별로 없습니다. 김칫독이 배불뚝이로 생긴 이유도 모르고, 삼계탕에 닭과 삼을 동시에 넣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는 이도 별로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 한국에서는 미역국을 끓여주지만 중국에서는 계란탕, 일본에서는 즈이키(토란) 조림을 산후 음식으로 즐겨 먹는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지 않는 것이 예의지만 일본에서는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지 않는 게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라고 합니다.
밥상에 담긴 역사와 문화
한·중·일은 참 가깝고도 먼 나라입니다. 쌀을 주식으로 하고, 같은 한자권 문화이지만 때로는 가깝이 하기엔 너무 먼 나라,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 나라입니다.
"스시 요리사는 일본에서 아직도 금녀의 영역이다. 스시의 최고 맛은 스시와 체온의 온도가 일치할 때라고 한다. 이 때문에 배란기에 따라 체온의 변화를 겪는 여성은 스시 요리사로서 부적격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생리 때 분비되는 황체호르몬(프로게스테론) 작용에 의해 체온이 약1도 상승한다. 불과 1도 차이지만 스시의 맛에 미묘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이유에서 요리사로서 주방 출입이 금지된 것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전통 씨름인 스모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 < 한·중·일 밥상문화 > 130쪽.
< 한·중·일 밥상문화 > 에는 한·중·일 3국의 밥상에 차려지는 간식과 끼니음식, 건강식과 미용식 까지 골고루 담고 있어 음식에 대한 지식은 물론 밥상을 마주 놓고 버무릴 수 있는 이야기꺼리가 듬뿍합니다.
▲음식에는 맛과 영향만 담겨 있는게 아니라 역사와 문화도 담겼습니다. |
ⓒ 임윤수 |
< 한·중·일 밥상문화 > 를 읽은 이라면 밥상을 마주 놓고 벌이는 진부한 논쟁 '살기 위해서 먹느냐, 먹기 위해서 사느냐'에서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밥상에 차려진 음식에 배어있는 사연이나 유래, 3국의 밥상에서 차지하는 문화, 음식이 품고 있는 영양학을 논하는 지식인 이야기꾼, 좌중의 이목을 한 몸에 집중시키는 입담꾼으로 각인될 게 분명합니다.
여느 때라면 차려진 밥만 꾸역꾸역 먹었을 밥상이었지만 < 한·중·일 밥상문화 > 를 읽은 뒤 딸만 줄줄이 낳던 장모님이 인절미를 몰래 해 먹은 사연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알 게 되는 것이 여행이듯, 아는 만큼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게 밥상에 차려지는 음식이며 음식에 담겨있는 문화 일지도 모릅니다. < 한·중·일 밥상문화 > 를 읽은 이라면 음식을 제대로 알고, 각각의 음식을 너무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 해박한 지식인의 소유자가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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