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요리시간

식재료 몸통·뿌리·껍질 통째로 … “영양소 많고 맛도 더 깊어

아기 달맞이 2012. 12. 24. 06:46

마크로비오틱’ 식사 열풍

 

식물은 뿌리를 통해 영양분을 얻고, 저장한다. 뿌리 음식에는 비타민·무기질이 풍부하다. 당근도 잎과 줄기, 뿌리 끝 부분까지 다져서 먹으면 좋다. [중앙포토]
예전에는 천대받던 구황작물이 건강식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마크로비오틱(macro biotic)’ 식사가 그 주인공이다. 마크로는 ‘전체’ 또는 ‘큰’을, 비오틱은 생명을 뜻한다.

식재료를 먹기 좋게 깎고 다듬고 씨를 빼 조리하는 게 아니라 생긴 그대로 몸통부터 뿌리·껍질까지 모두 먹는다.


최근 NHN(네이버)·삼성에버랜드 등 대기업에서 마크로비오틱 식단을 운영해 눈길을 끌고 있다. 주부들도 마크로비오틱 열풍이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주부 이순영(60·여)씨는 “식물 몸통보다 껍질·뿌리에 더 많은 영양소가 있다고 들었다. 예전엔 국물을 낼 때 다듬은 무를 넣었지만 이젠 씻기만 해서 뿌리와 줄기까지 다 넣어 우린다. 건강에도 좋을뿐더러 맛도 더 깊다”고 말했다.

톰 크루즈·빌 클린턴 식사법으로 알려져

마크로비오틱에서는 식품을 통째로 먹어야 식재료가 가진 고유의 ‘에너지(기·氣)’를 그대로 섭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자신의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반영되기 때문에 인위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신선한 제품을 먹으라고 권한다.

이런 마크로비오틱 개념이 처음 생기고 체계화한 곳은 1990년대 일본이다. 음양조화·신토불이·일물전체·자연생활 등 4대 원칙에 충실한 일본의 전통 장수건강법을 일본의 한 영양학자가 마크로비오틱이란 이름을 붙이고 구체화해 알리기 시작했다. 이를 공부한 일본의 요리사·영양학자들에 의해 세계 각국으로 퍼졌으며, 니콜 키드먼·톰 크루즈·빌 클린턴 등의 식사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돈나는 매 끼니 정통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먹기 위해 일본인 개인 요리사까지 고용했을 정도다.

우리나라에는 최근 1~2년 사이 알려지기 시작해 매니어층이 생겼다.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김현숙 교수는 “잎사귀를 말려 국을 끓이거나 뿌리를 달여 먹는 등 식재료를 버릴 것 없이 사용했던 우리 전통 요리법이 실은 마크로비오틱 식사법”이라고 말했다.

뿌리·껍질에 비타민 풍부

마크로비오틱에서 강조하는 일물전체(一物全?)에는 어떤 건강학이 숨겨져 있을까. 먼저 식물 뿌리의 영양성분을 들 수 있다. 김현숙 교수는 “식물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가장 많은 영양분을 함축하고 있는 곳이 바로 뿌리다. 꽃이 피고 열매를 키우는 모든 영양소는 뿌리에서 생성되고 저장된다”고 말했다.

실제 대파의 경우 약용으로 쓸 때는 파의 뿌리 부분만 사용한다. 목동아이누리 강남점 이훈 원장은 “파 뿌리는 '총백(蔥白)'이라고 하는데 뿌리에 풍부한 알긴산 성분이 피로물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혈액순환을 돕는다. 몸도 따뜻하게 해 감기에 좋다”고 말했다. 김현숙 교수도 “양파의 뿌리에도 비타민과 무기질이 결집돼 있어 예부터 추운 겨울을 날 때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많이 끓여 먹었다”고 말했다.

뿌리가 건강 식재료인 또 다른 이유는 땅 속 박테리아와 끊임없이 싸우기 때문이다. 김현숙 교수는 “뿌리는 박테리아에 대항하는 화학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이게 사람에게는 유익한 항산화 물질”이라고 말했다. 양파와 무·마늘 등의 알리신, 연근·우엉·마 등의 뮤신이 대표적인 항산화·항암성분이다. 대파와 양파의 뿌리는 식초 물에 잘 씻어 잘게 다진 뒤 다른 식재료 다진 것과 함께 부침개로 구워먹으면 맛있다. 뿌리 달인 물을 섭취해도 좋다.

껍질도 버려서는 안 된다. 김현숙 교수는 “식물은 동물처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곤충을 물리칠 수 있는 보호막이 필요하다. 이 보호막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화학물질이 생성된다”고 말했다. 라스베라톨(빨간색)·안토시아닌(보라색)·카로티노이드(주황색)·카테킨(초록색) 등의 색깔 성분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 귤 껍질은 과육에 비해 비타민 C가 4배, 무 껍질은 안쪽보다 비타민 C가 2.5배 더 많다. 잘 씻어서 껍질째 먹는 게 건강에 이롭다.

줄기는 식이섬유 섭취를 위해 꼭 챙겨 먹는 게 좋다. 김현숙 교수는 “현대식은 부드러운 음식 일색이다. 도정한 백미와 밀로 만든 밥·빵이 대부분이고 반찬도 고기나 가공식품이 주를 이룬다. 식물의 식이섬유는 장 운동을 활성화하고 독성물질을 흡착해 대변으로 빠져나가게 하는데, 줄기에 식이섬유가 가장 풍부하다”고 말했다.

씨도 영양성분이 결집돼 있다. 김 교수는 “씨는 단위 무게당 가장 많은 양의 비타민·무기질이 들어 있다. 싹을 틔우기 위한 영양성분이 밀집돼 있기 때문”이라며 “소화능력에 문제가 없는 젊은층이라면 씨도 같이 갈아서 먹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견과류인 땅콩·호두·잣·아몬두 등도 모두 씨앗류다. 채소 잎에는 적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다.


식초 물에 잘 씻으면 농약 걱정 없어

마크로비오틱에서는 유기농 식재료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 일반 식재료도 잘 씻으면 농약 걱정을 덜 수 있다. 전문가들이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식초물에 씻기다. 신흥대 호텔조리학과 최은정 교수는 “흐르는 물, 담긴 물 등 여러 물에 씻어본 결과 담긴 물에 식초를 여러 방울 떨어뜨려 몇 번 헹구었다 빼내는 방법이 농약 제거에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말했다.

김현숙 교수도 “시중에 유통되는 농산물은 식약청 등에서 농약 잔류검사를 하는 데다 한 번 더 씻으면 안심해도 될 정도”라며 “농약이 무서워 껍질이나 뿌리를 버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간혹 소금으로 씻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더 좋지 않다. 최 교수는 “소금물에 씻으면 삼투압 작용으로 오히려 농약 성분이 식품 속으로 더 스며들 수 있다”고 말했다.

양배추는 가로로 잘게 다져 조리거나 끓여 먹고, 대파 뿌리와 꼭지 역시 잘 씻고 다져서 국이나 볶음요리에 넣으면 쓴맛이 살짝 우러나 풍미가 더 좋아진다. 연근이나 무는 껍질째 잘 씻어 강판에 갈거나 얇게 저며 먹는다.

 
하지만 소화력이 약한 노년층은 마크로비오틱 식사 시 주의한다. 최 교수는 “소화장애가 있는 사람은 껍질과 줄기에 든 식이섬유를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되도록 잘게 썰거나 갈아서 요리해 먹는 게 좋다”고 말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