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남난희

요즈음 kbs tv 인간극장에서 남난희씨

아기 달맞이 2008. 1. 12. 16:06

 

요즈음 kbs tv 인간극장에서 남난희씨 를 소개하는 방송이 있었어요

두 모자의 삶이 너무나 부럽습니다

언제간 물안개도 꿈구는 삶이기에 ...

 

 

 

오래된 나무를 보면 존경스럽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도 어찌 저렇게 당당하고 편해보일 수 있는지.

어쩌면 한자리에서 저리도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지.

얼마나 자신을 비운 삶이기에 저렇게 넉넉할 수 있는지.

그래서 그들이 부러운 것이다.

그들을 닮고 싶은 것이다.


.....................................남난희의 [낮은 산이 낫다] 中에서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3월이 되었건만 서울에는 좀체 봄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매서운 추위랄 것도 없었던 지루한 겨울을 보내고 나니 영 입맛이 없다. 남쪽에는 벌써 봄나물이 지천일 텐데…. 산에서 갓 뜯은 상큼한 봄나물 한 번 맛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풋풋한 봄나물이면 거칠어진 입맛이 당장이라도 살아날 것만 같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급기야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바로 실행에 옮길 순 없으니 그런 삶을 사는 이를 찾아가 시골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야겠다.
서울에서 다섯 시간을 내처 달려 지리산 자락에 사는 남난희 씨를 찾았다. 그이는 젊은 시절 76일 동안 백두대간을 혼자 종주했고, 여성으로서는 세계 처음으로 해발 7천4백55미터의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에 올라 산악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 과정에서 정신과 몸의 끝을 경험해 보았다는 그이는 11년 전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자연의 품에 안겼다. 1990년대 초반 자신이 꾸리던 에베레스트산 등반이 어려움을 겪자 큰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다. 그리고 곧 남편을 따라 지리산으로 삶터를 옮겼다. 그 후 남편은 스님이 되어 출가했고, 그이는 지리산 청학동과 강원도 정선을 거쳐 지금은 지리산 화개골에서 아들 기범이와 함께 살고 있다.


 

된장과 김치만으로 충분하다
짙은 초록이 무성한 대나무 숲을 지나 산자락에 폭 안긴 그이의 집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지 대문에는 달랑 가느다란 못 하나가 문고리에 걸려 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잠금 장치가 집 주인의 느긋한 성정을 대변해 준다. 이내 마실을 나갔던 남난희 씨가 돌아왔다. 찾아온 손님에게 늦은 점심을 대접하느라 분주해진 그이. 잡곡밥을 안치고 두부를 숭숭 썰어 넣고 청국장을 끓여 내고 장독에서 묵은 김치를 내왔다. 틈틈이 캐 놓은 쑥부쟁이와 머위나물을 버무려 내고, 석빙고에서 가죽나물, 취나물, 죽순 장아찌를 내왔다.
“머위나물과 쑥부쟁이는 봄에 가장 빨리 맛볼 수 있는 나물이죠. 겨울을 견딘 나물은 기운이 좋아 몸을 보하게 해줘요. 장아찌는 작년 봄에 담근 것들이에요. 석빙고에 보관해서 지금도 싱싱해요.”
오늘은 손님상이라 좀 푸짐해졌지만, 보통 때 남난희 씨의 밥상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된장과 김치만 있어도 그만이고, 밥에 된장찌개와 갖은 야채, 나물만 넣고 비벼 먹어도 좋다.
재료는 모두 자연에서 얻는다. 봄이면 집 주변에서 나물을 캐고, 대밭에서는 죽순을 딴다. 텃밭에서는 농약이나 비료를 쓰지 않고 기른 고추와 감자, 무, 배추, 상추, 호박, 오이, 토마토 등을 여름과 가을 내내 거둔다. 자연에서 얻은 깨끗한 것들이라 음식을 만들 때도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린다. 생으로 먹거나 데쳐서 먹고, 양념을 하더라도 직접 담근 간장이나 된장을 조금 넣어 무치기만 한다. 또 가죽나물, 음나물, 취나물, 잰피, 산초 등은 장아찌로 만들어 1년 내내 즐긴다.
제아무리 도시에 웰빙 바람이 분다 한들, 인스턴트식품을 아예 피해갈 수 없고 유기농 식품으로만 식탁을 채우기 힘든 도시 사람에게는 부러운 일이다. 땅을 밟으며 땀 흘리고, 그 대가로 땅이 키워 주는 것을 먹고 사는 남난희 씨. 그이의 햇빛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와 순박한 웃음에서 건강함이 묻어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필요한 만큼만 수확한다
남난희 씨는 나물을 캘 때도, 밭에 씨를 뿌릴 때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자연에서 필요한 만큼만 취하는 것, 먹을 만큼만 얻는 것이 자연에 기대어 살면서 자연을 덜 아프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상을 깊이 사랑하면 대상을 이해하게 되는 법이죠. 약간 모자란 듯, 작고 낮게 사는 것이 자연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에요. 풀 하나, 돌멩이 하나라도 존중하고 조금이라도 자연을 덜 아프게 하려다 보니 작게 과하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 정도만 취해도 이웃과 나누어 먹고 살기에는 충분해요.”
장을 담글 때나 차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된장을 팔아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지만, 찾는 이가 많다 해도 더 만들지는 않는다. 딱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지만 돈을 주고까지 사람을 쓰지는 않는다.
장독을 열어 한 손가락으로 콕 찍어 장맛을 보던 그이가 올해 메주가 잘돼서 장맛이 좋다며 흐뭇해 한다.
“된장은 햇볕과 공기, 물… 자연의 힘을 빌려 담그는 거예요. 거기에 세월의 맛, 옹기의 맛이 더해지고, 내가 기운을 보태는 거지요. 발효 음식은 기가 좋아야 음식도 좋아져요. 때문에 옹기에 담을 때는 맨손으로 퍼 담아요. 내 건강한 기운이 장에 배어서 먹는 사람에게도 그 기운이 전해지길 바라요.”
차 역시 집 뒤 언덕에 있는 야생 차밭에서 자신이 1년내 먹을 만큼만 따서 만든다. 지리산 산골까지 그이를 찾아오는 손님과 함께 나눠 마실 수 있을 정도면 족하단다. 얘기를 듣고 보니 남난희 씨가 손수 우려 매화 꽃잎을 띄워 준 차가 더없이 귀하게 느껴진다.
그이는 도시에서 살 때나 지금이나 차를 즐겨 마신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도시에서 살 때는 사서 먹었지만 지금은 직접 만들어 먹는 다는 것. 된장이건 차건 직접 만들어 먹을 때 그 감동은 남다르다.
“내가 좋은 것을 먹고,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에요. 좋은 재료와 환경을 제공해 주는 자연이 곁에 있으니 가능한 일이죠. 또 시골에 살면서 정말 괜찮은 먹을거리를 만들어서 내가 아는 도시 사람들과 나눠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에요. 정성을 다해 만들고 그걸 먹는 사람들이 건강해지면 좋은 거죠.”

 

모자란 듯 천천히 살아도 행복하다
3년째 된장을 팔아 왔지만 셈이 서툰 그이는 작년에야 비로소 수중에 얼마가 들어오는지 알게 됐다. 콩 열 가마니치의 된장을 다 팔면 5백만 원 정도가 들어오는데 그 정도면 둘이 쓸 정도로는 충분하단다. 거의 소비를 하지 않으므로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된다는 것.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사는 것이 자연에 살면서 그가 터득한 삶의 방법이다.
쓰던 것이 떨어지면 다른 걸로 대체하면 되고,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어요. 꼭 그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거든요. 사람들은 불편하다고 끊임없이 뭔가를 사잖아요. 하지만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어요. 세탁기도 없었는데 아는 사람이 사서 보냈더라고요. 그래도 하던 대로 손으로 빨아요. 그다지 힘들 것도 없고 손으로 깨끗이 빨아서 햇볕에 말려야 빤 것 같으니까.”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지 못한다 해도 불편하지 않다. 전구를 갈지 못하면 이웃이 방문했을 때 부탁하면 될 일이고, 장작은 톱으로 천천히 자르면 된다. 그저 세상을 천천히 느리게 살면서 행복을 느끼면 되는 것이다. 그이는 자연을 보며 하염없이 앉아 있는 것, 맑은 차 한 잔을 음미하는 것, 느긋하게 책을 읽는 여유를 누리는 것이 더없이 즐겁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 더 이상 가지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다는 남난희 씨는 산에 사는 것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욕심 없이 무던하게, 그의 삶은 자연을 닮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