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남난희

낮은 산이 낮다 / 남난희

아기 달맞이 2010. 9. 29. 08:36

<낮은 산이 낫다> 펴낸 여성 산악인 남난희씨

오르는 산에서 안기는 산으로, 삶의 기준이 되어준 산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버릴 수 없는 것이 이름이다. 아니, 사람은 가도 남아 있는 건 그이의 이름 뿐. 기억되거나 기억되지 못할, 좋거나 나쁘게 회자될 이름, 이름들.

 

남난희…. 그녀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1981년 한국등산학교 수료, 1984년 1월 1일 76일간 (당시) 태백산맥 단독 종주, 종주 기록을 담은 <하얀 능선에 서면> 지음, 1986년 세계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강가푸르나(7455m) 등정, 89년 설악산 토왕성 빙폭 등반 등 유명 산악인으로 활발한 등반활동을 해왔던 것.

 

30대 중반 느지막이 결혼을 하고 경남 하동 청학동과 강원도 정선을 거쳐 지리산 화개골에 정착한 그녀가 최근 산과 자연과 사랑과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책 <낮은 산이 낫다>를 펴냈다.

 

 

산악인에서 자연인으로

두 해 전 태풍 루사를 겪으며 정선자연학교를 떠난 남난희씨가 화개로 들어온 건 1년하고도 반 년쯤 되었다. 학교 지붕까지 물이 차는 바람에 아무것도 건질 수 없었기 때문. 그렇다고 희망까지 버린 건 아니었다. 베푸는 사람도 도와주는 사람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자연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교감이 가능했다. 슬픔과 좌절에 젖어 쉽게 포기할 그였다면 절대 '남난희'가 아니다.

 

아침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기범이와 집 앞의 쌍계사에 들려 108배를 올리는 남난희씨는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텃밭과 차밭을 돌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대부분의 채소들은 직접 길러서 먹습니다. 가능한 적게 쓰고 작게 살고 싶어요.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사는 것도 삶의 한 방법입니다."

 

편하게 사는 것을 택했다면 굳이 산골마을로 들어올 이유가 없는 그다. 4월 중순부터 한 달 이상은 좋은 차(茶) 만들기에 전념한다. 농약과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순수 지리산 자생찻잎을 일일이 손으로 따고 덖는 일이 쉬울 리 없다.

하지만 차보다 더 힘든 일은 섣달에 쑤는 메주 만들기, 이것이 그이의 수입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봄나물을 갈무리 해 장아찌를 만들어 판매한다. 죽순·엄나무·가죽나물·취나물이 재료가 된다. 전화 주문을 통해 판매하는 '남난희표' 된장은 반응도 제법 좋은 편이지만 그녀 스스로 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어린 기범이도 최고로 치켜 세우는 강원도 콩만 사용한다.

직접 재배하고 직접 채취한 산나물로 발효식품도 만들어 판매할 예정이라는데, 둔탁한 등산장비에 길들여진 그의 손끝이 화려하게 변신하는 순간이다.

 

 

산이 나를 선택했다

남난희씨에게 산의 의미는 아직도 남다르다. "의미 같은 건 다 까먹었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그녀에게 산은 떼어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자아였다.

 

"산은 제 젊은 날 하나뿐인 대상이었습니다. 미친 듯이 산에 빠진 게 제겐 플러스 요인인 셈이었죠. 제 삶의 기준 역할이 되어준 것도 산입니다. 제가 산을 찾은 것이 아니라 산이 저를 선택했다고 믿어요."

 

'나다운 나'를 만든 것이 산이었다. 산 덕분에 보람된 삶을 살았다. 그 길을 걷지 않았다면 지금의 평화로운 삶도 없었을 것이라고. 일련의 산악활동과 숱한 과정들이 화개에 정착하기 위한 수순 같다. 산 덕분에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살아온 그녀다.

 

"84년 1월 1일부터 했던 태백산맥 종주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백두대간 개념이 없었거든요.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그 산행으로 산악인이란 타이틀도 얻었고, 그 산행에서 최고의 환희와 최고의 절망을 모두 맛보았으니까요."

 

남난희씨는 그때의 산행으로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로 시골의 아낙네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가 다시 산을 오를 수 있을까.

 

"못 할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회만 되면 백두대간이든 히말라야든 토왕폭이든 어디든 다 갈 수 있습니다."

 

빙벽등반에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는 그이는 재작년 겨울 구곡폭에서 맛본 얼음맛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산행에 있어선 체력보다 정신력이 한 수 위라는 것도 믿는다. 해야 되겠다, 가야 되겠다 생각만 하면 어디서든 힘이 난다. 모든 것을 집중해 등반에 정진한 그녀에게 산은 불가능도 가능케 하는 절대자였다.

 

정선자연학교가 침수되면서 그이가 갖고 있던 많은 것들, 정성껏 쑨 된장과 살림살이와 무수한 추억과 손때 묻은 장비들이 모두 사라졌다. 요즘 들어 장비 구입에 관심을 쏟지만 그녀에게 산은 더 이상 정상 등정에 목적을 둔 커다랗고 높은 산이 아니다. 그녀의 산은 오르는 산에서 안기는 산으로 바뀌었다. <낮은 산이 낫다>의 '입산'에서 고백한 것처럼.

 

"언제부터인가 나의 삶은 아무것도 가지고 싶은 것이 없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 또 어느 곳에도 가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게 되었다. 물기가 다 빠진 풀처럼 가벼운 마음이다. 참 좋다."

 

몇 차례의 출판 제의에 정중히 사양하던 그녀도 10여 년의 자연생활 산중생활을 거치면서 자연과 아들 기범의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놓고 싶었다. '촌 아줌마의 신변잡기를 누가 읽어줄까' 부끄럽지만, 책을 접한 독자들이 책을 읽기 전보다 마음이 따뜻해졌음, 조금 더 행복해졌음 하는 바람 뿐이다.

 

연신 부채질을 하던 그이가 이마 위로 쏟아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쓸어올린다. 산이 만들어준 그녀의 구릿빛 육체는 이제 다른 이들의 소중한 건강과 소박한 행복을 위해 쓰여질 것이다. 남난희씨의 손끝 정성이 마당의 장독 속에서 모락모락

구수한 맛을 키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