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에 나갔던 아범이 장꾼들에게서 들었다는데, 그놈들은 대둔산에 산채를 두고 있는 패거리로 적으면 십여 명이요, 많을 땐 수백 명이 출몰한다 하였다. 나는 속으로 놀랐지만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고 대꾸했다.
화적 얘기야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장도 출타한 터에 내가 어디를 간단 말인가? 사정이 위급하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작인들을 모아 집을 지키고, 관아에도 알리고, 전주 나가서 동지 어른을 모셔오게.
글쎄, 전주에 가셨는지 익산에 가셨는지 행처를 딱히 모르니 낭패올시다. 우리 읍내 관아라 해봤자 역의 찰방 아래 역졸 몇 명이 고작입니다. 감영에서도 함부로 발병을 할 리가 없지요.
어쨌든 내일 아침에 마름에게 소작인들을 모아서 수십 명이 집을 지키도록 하자고 의논이 되었는데, 나는 가슴이 벌렁거려서 한숨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요즈음 세월에 군현의 백성들이 관장을 알기를 철천지원수로 보고, 군노 사령배를 지푸라기 제웅처럼 하찮게 본다는데, 상단이나 심지어 도부꾼 장사치들도 작은 고개를 넘다가 봇짐 털리기는, 길 가다 소도 보고 말도 보는 격이라고 했다. 가산 돌보기를 내쳐버린 주인의 아랫것들이 이미 집안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렸고, 화적이야말로 마름과 행랑아범 소작인들 모두가 한통속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모이면 적당이오, 헤치면 양민이라는 소리도 있지 않은가. 나는 이리저리 돌아눕다가 벌떡 일어나 장롱을 열고 패물 등속을 간수하고, 사랑채에 건너가 문갑을 열고 층층이 쌓인 문서 류는 그대로 두고, 돈꿰미도 그대로 두고, 금거북과, 말굽은과, 옥관자며, 호박단추, 마노, 대모안경, 산호, 그리고 주인이 아끼는 연경 사행의 박래품 청강석 벼루에, 녹용, 사향, 웅담, 우황 등속의 귀한 약재들을 꾸려 가지고 나왔다. 그것들을 보퉁이에 싸서 뒤란의 장독대로 나갔고, 맨 뒤편의 비어 있던 대독 속에 처박아두고, 위에다 짚 한 뭇을 절반으로 접어 쑤셔넣은 다음 뚜껑을 덮었다. 그러고 나니 두근대던 가슴도 가라앉고 저절로 콧방귀가 터졌다. 흥, 화적이든 홍도깨비든 수백 명이 들이닥쳐도 눈썹 하나 까딱 않을 자신이 생겼다.
이튿날 지시대로 마름이 와서 뵙더니 농한기여서 다행이라고 작인 수십 명을 인솔하여 왔고, 한편 행랑아범과 사랑채의 마당쇠는 각기 전주 익산으로 오 동지를 찾으러 나갔다. 갑자기 바깥마당에 멍석 깔고 사람이 들끓으니 무슨 잔치라도 벌어진 양이었는데, 안채에서는 그들의 점심 준비를 하느라고 또한 법석이었다. 일일이 밥과 찬을 챙길 수가 없으니 장국밥을 끓여서 나물과 김치 얹어 말아내기로 했다. 아무리 호집 소작꾼들이라 하나 상전 집에 들었으니 반주가 없을 수 있나, 막걸리도 한 동이 내갔다. 오후가 되어 따스한 늦가을 햇볕이 내리쬐고 바람도 잔잔한데, 모두들 식곤증에 취기로 멍석에 포개 눕거나 벽과 기둥에 기대어 달콤한 낮잠에 빠졌다. 갑자기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여 작군 두엇이 달려가 물었다.
누구시우?
보면 모르느냐, 어서 문을 열어라!
문틈으로 내다보니 앞에 선 이는 검은 더그레 군복에 전립 쓴 장교였고, 뒤에 창검을 번쩍이며 털벙거지 쓴 일대의 군졸들이 보였다. 그들이 황급히 대문을 열자 관군이 일시에 마당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름이 앞으로 나서며 묻는다.
어디서 나오신 군사입니까?
하자마자 장교가 등채를 들어 그를 가리키며 외쳤다.
이놈부터 오라를 지워라.
뭐라고 발명할 틈도 주지 않고 병졸 두엇이 달려들어 우격다짐으로 그를 붉은 오라로 묶었다. 장교는 겨드랑이에 환도를 차고 있었지만 병졸들은 삼지창에 화승총을 멘 자도 있었다. 장교가 연이어 호령한다.
이놈들 모두 화적과 내통한 놈들이니 모조리 묶어라.
병졸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저항하는 자는 가차 없이 창대로 후려치고, 업어치기나 딴죽으로 걸어 넘어트린 다음 둘 셋씩 묶어놓으니 모두 굴비두름 엮듯이 되었다. 그리곤 열쇠고 뭐고 없이 광문에 걸린 자물통을 철퇴로 단숨에 부수고, 사람들을 모두 꾸역꾸역 밀어넣고는 빗장 대신 창대를 엇질러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