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학문이 있다. 그러나 정작 평범한 사람들이 접하고 터득하기는 어려운 일이거늘 다도는 다만 한 잔의 차를 통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 차는 기(技) 10년, 예(禮) 10년, 도(道) 10년이라 하였는데 감히 차 공부를 하고 자 하는 후학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차 공부를 하면서 한결 같이 다도에 관한 용어들을 듣는다. " 다선일여(茶禪一如) 선다일미(禪茶一味) 화경청적(和敬淸寂) 정행검덕(精行檢德) 현묘지도(玄妙之道) " 이는 차를 통해 지고지순한 곳을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심자의 식견으로는 알아듣기는 하나 행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선현들이 차를 즐겨 마시고 차를 통해 높은 정신적인 경지에 다다르며 주옥같은 글들을 남긴 것에 새삼 감탄한다. 우리나라도 초등학교부터 차를 가르치고 차 생활을 어릴 때부터 익히게 하면 어지러운 사회가 훨신 부드러워 질 것이 틀림없다.
차를 마시면 먼저 즐겁다. 차가 달고 맛이 있어서가 아니라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고 차통에서 차를 꺼내 담고 물을 식히고 다루는 모든 행다 즉 다사의 과정에서 마음이 아늑해지고 천천히 마시면 기분 좋은 시간을 갖게되고 맛있는 차를 우렸을 때는 좋아서 혼자 만족의 미소를 짓기도 한다. 그래서 선현들도 차는 혼자서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정다운 사람들끼리 차를 나누는 것도 좋다. 서로 어려울 때 덕담을 나누고 다른 사람의 다구(茶具)들도 감상하고 차 생활을 하며 새삼 물과 같이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 차를 통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는데 시, 서화, 꽃, 예절 등인데 차는 그래서 종합예술이라고도 한다. 차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가 도자기를 들 수 있는데 다관, 찻잔, 차호 등을 다루다 보면 자연 도자기에 대해 눈이 뜨이게 되고 심미안도 열리게 된다. 차를 하는 동안 특히 도자기는 소박한 분청의 멋에 끌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청자, 백자도 또한 좋지만 우리 정서에는 분청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일본에서 국보로 소중히 대접받는 대덕사 고려 다완(茶碗)도 우리 나라에서 건너간 막사발이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조에 들어와 천민 중에서도 천민의 신분인 도공들이 앞날에 대한 희망도 없이 그저 체념의 상태에서 두 번도 손대지 않고 슬쩍 빚은 소박한 막사발이 일본에서 ㅜ그리 대접받는 것은 고요하고 적막하다는 와비와 사비란 일본의 정신에 맞앗고 또 그것을 볼 줄 아는 심미안이 있어 고려 다완으로 높임 받는다.
차도 다른 문화와 같이 나라마다 차이가 있어 일본차는 빛깔은 고우나 가볍고 깊이가 없어 보이고 중국차는 은은하고 부드럽다. 역시 우리 입맛에는 우리 차가 제일 좋다. 차뿐만 아니라 춤을 보면서도 그렇게 느꼈다. 중국운 수질이 나빠서 차가 마실 거리로 대중화하여 일상생활에 우리가 물 마시듯 마심으로서 행다법은 중요시하지 않고 실용적이고 편리하다. 일본은 차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도 받아들이면 그것을 꽃피우며 형식적이고 의식적으로 다듬어 낸다. 우리의 차 생활을 더듬어 보면 풍류적이고 멋이 있었다. 먼 신라시대부터 국가의식에서부터 차를 썼고 선인들의 음다(飮茶)로 차가 풍류의 자리르 차지하였다. 차가 가장 꽃 피워진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조에서도 선비들이 차를 애음하였기에 특히 다시(茶詩)가 발달하고 물질보다 정신적인 삶이 질을 향상시켰다. 그래서 풍류다도(風流茶道), 해탈다도(解脫茶道), 무사다도(无邪茶道), 이간다도(易簡茶道), 독락다도(獨樂茶道), 돈각다도(頓覺茶道)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조선조에 와서 억불정책으로 차가 많이 쇠퇴했지만 선비들과 스님들꼐서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볼 수 있다. 산사의 스님들은 수행할 때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쫓는데 꼭 필요해 차를 많이 마시며 심신의 기를 돋구었다. 조선조 후기에는 다산(茶山)선생과 초의(草衣)선사로 하여 차가 중흥되고 초의의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은 지금도 모든 차하는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차 따는 시기 : 우리 나라는 곡우 또는 입하 전후로 좋은 차가 나는데 구름 없는 맑은 날, 이슬 먹은 아침에 딴다. 천기와 지기는 합일되는 시점에 딴다.
산지 : 반음(半陰) 반양(半陽)의 산골짝에 해풍이 불어와 온도가 높고 습기가 높은 곳이 좋다.
모양 : 일기일창(一旗一槍)이라 하여 차 잎이 참새 혀(작설)같이 하나가 나올 때 따나 이는 어렵다.
차를 덖고 말리는 과정은 정성을 다해야 한다. 차를 잘 따서 잘 만들고 잘 보관해야 좋은 차가 된다. 차통에 잘 보관하여 서늘한 곳에 두면 좋다.
차의 종류 : 발효차에는 홍차, 반발효차에는 오룡차, 불발효차는 녹차로 대별할 수 있다.
불과 물 : 불이 약하면 차가 위로 뜬다. 불이 강하면 노수(老水)가 되어 차 맛이 좋지 않다. 문무지후(文武之候)를 잘 부려야 한다. 순숙(純熟), 결숙(結熟), 경숙(經熟)으로 나눈다. 옛날 숯으로나 나무를 땔감으로 할 때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요즈음에는 가스, 전기가 주로 쓰이니 차 물 끓일 때 조금만 주의하면 쉽게 노수(老水)를 막을 수 있다. 물은 산상수(山上水), 석간수(石間水), 유청(乳泉)이 일등 물에 속하나 현대 생활에는 이런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수돗물을 피해 생수를 쓰면 적당하다.
차를 다관에 넣는 투다법(投茶法)에는 여름철에는 차를 위(나중)에 넣는 상투법과 춘추에는 차를 중간에 넣는 중투법과 겨울에는 차를 먼저 넣는 하투법이 있다.
차는 보통 세 번 정도로 우려 마시나 첫 번째는 2~3분만에 우리나 두 세 번째는 조금 빨리 우려내도 괜찮다.
물은 차의 몸이요, 차는 물의 신이다. 고로 중화를 얻어 차를 잘 우려내는 것은 흔히 현묘(玄妙)의 경지라 한다. 수지다체(水之茶體) 다지수신(茶之水神) 신체건령(神體健靈)이라 한다.
차를 마시는 방법에는 첫째 천천히 공손하게 마시면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고 부드럽고 지극하게 마시면 행동이 정리가 되고 조용히 경건하게 마시면 분위기를 얻을 수 있다. 또 차는 세 모금 정도로 나누어 마시면 좋다. 이렇게 하므로 다주(茶主)와 다빈(茶賓)간에 시공(時空)의 처리가 아름답다. 많은 사람이 마시면 번다하여 시끄럽고 저속해 진다. 초의 선사는 홀로 마시면 신(神), 둘이 마시면 승(勝) 3~4인이 마시면 취(趣), 5~6인이 마시면 범(泛), 7~8인이 마시면 시(施)라 했다. 원광스님은 "차 물 끓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년 대나무 숲을 건너 오는 별들의 웃음소리, 사정없이 차고 나가는 폭포소리,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였다.
♬. 첫물 차잎 따기와 차 만들기
차를 기호로 하는 차인들이 茶道의 大意인 中正의 道가 마음의 바탕을 이루지 못하면 물질적인 마음으로만 지향하게 되어 더좋은색,향기,맛만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되며 儉素,謙遜한 생활이 끝내는 사치하게 고급화된 생활로 치닫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머뭅니다.
겨울 내내 모진 눈 서리와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그 푸른 빛을 잃지 않고 견디며 찬눈을 떨치고 연녹빛으로 돋아난 차잎을 보니 햇차의 차맛이 혀위에 감미롭게 감도는 듯하여 벌써 작년차 향기와 맛을 잃은듯이 느껴집니다.
우리나라에서 차를 製茶하는 기간은 입하 7일전(4월28~30일)부터에서 처서(8월23일) 7일 후까지 3개월 동안 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도 입하 7일 전부터 입하때까지 만든 작설차가 가장 좋은 상품인 극세작이며 입하 7일 후까지는 그 다음품인 보통 작설이며 다시 칠일은 그 다음의 중간품인 中雀이 나옵니다.
입하절기 보름이 지나면 차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전지토비를 하여 약 15일에서 20일 정도이면 다시 차잎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대개 야생차의 경우에는 재배하는 차보다 4~5일 정도 차따는 시기가 빠르지만 전체의 기간은 절반 정도 기간에 미칩니다.
차밭에서는 8월 말에 접어들면 작설차보다는 紅茶를 생산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다하는 처음 시기를 곡우가 절기라고 하지만 사실은 입하절기가 제 철입니다. 특수한 단양지에서 곡우 절기에 적기가 된 차잎도 있기는 하지만 아주 적은양에 그치므로 차의 적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적기 아닌 곡우절기가 좋다하여 덜 여문 차잎을 따서 제다를 하면 색과 향기, 맛이 오묘한 깊이에 이르지 못합니다. 곡식이나 과일이 제 철에 제 맛이 나듯이 차입도 약이 차게 익어야 제 효능을 낼 수 있습니다.
다성 초의(1786~1867)선사께서도 저서 동다송에서 이르기를 「중국 강남에서는 곡우 7일 전과 7일 후가 적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입하절 7일 전과 7일 후가 적기라고 하였으며 「茶神傳」에는 채다의 시기는 매우 귀중하게 지켜야 한다. 너무 빠르면 맛이 온전하지 못하며, 늦으면 神氣가 흩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몇 년에 한번 꼴로 차나무에 겨우 움이 트기 시작하는 청명(4월5일)에 천재이변으로 진눈깨비와 우박으로 차농사를 망쳐 놓기도 하는데 이런 때에는 평년보다도 10일 정도가 늦어집니다.
차밭에 차종자를 심어 가꿀 때에는 토질과 向方을 잘 선택하여야 합니다. 제일의 차밭은 남쪽 단양지(남족 방향 햇빛이 많이 드느곳)에 흙이 기름지고 잔자갈과 모래가 약간 섞여 있으며 경사가 15도 정도 되어서 비가 올때에 배수가 잘되고 흙속에 수분이 적당하게 보존되어 있는 차밭이며, 두번째 차밭은 경사가 있는 남동방향 차밭이며, 셋째는 경사가 있는 남서방향 차밭이며 넷째는 평지의 차밭이며 다섯째는 황토와 모래땅의 차밭이며 여섯째는 동북 서북 정북 방향의 음산한 계곡의 차밭인데 차를 취할 곳이 못됩니다. 다신전에는 계곡(남쪽 양지계곡)에서 생산되는 차잎이 상품이며 대나무 숲에서 생산되는 차잎이 다음 품이며 들녁에서 생산되는 차잎은 그 다음 품이라고 햇으며 다경에서는 그늘진 음산한 계곡에서 생산되는 차잎은 음기가 응체되어 하질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대나무 아래 차나무의 잎이 두번째라고 했는데 일조량이 많은 지역에서는 가장 으뜸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작설차는 반음 반양이 좋으며 홍차는 양생이어야 좋은 품질이 되기 때문입니다.
차잎을 딸 때에는 순(과 싹(芽)을 분별하고 피지 않은 잎과 핀 잎을 골라서 따야 합니다.
차순은 대개 기본의 차나무 잎에서 대나무의 죽순처럼 새롭게 쭉 뽑아 올라온 특별한 차잎을 말합니다. 그러나 또 차나무의 가장 중앙의 옷가지에서 자란 차잎을 순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싹은 빽빽하게 자란 여러 가지에서 자란 차잎을 가르킨 것입니다. 피지 않은 잎은 새의 혀처럼 말린 잎을 말하며 핀잎은 그 말린 잎이 펴진 잎을 가르킨다.
다경에 경사진 양지쪽 차밭에서 자색으로 된 잎이 상품이며 녹색으로 핀 차잎은 다음 품이며 순은 상품이며 싹은 다음 품이며 잎이 말린 것은 상품이며 잎이 펴진 것은 다음 품이며 찻잎이 완전히 펴졌거나 둥근 잎은 딸것이 못 된다고 하였습니다. 또 찻잎을 딸 때에는 간밤에 구름이 덮이거나 비가오면 따지 말아야 합니다만 그 차잎으로 제품을 만들면 차의 향기와 맛이 떨어지므로 간밤에 별이 총총나고 달빛을 흠뻑 받은 차잎을 따야 합니다. 하루중에 시간은 이슬이 마르지 않은 아침에 따는것이 좋으며 햇볕이 따가운 한낮이나 오후에 따는 것은 좋은 시간이 아닙니다. 한낮에는 피지 않은 차잎이 눈에 잘 뜨이지 않아서 따는 수확도 적습니다.
따온(採茶) 차잎은 바로 제다하여야 하며 하루밤을 넘기게 되면 차의 싱그러운 기운이 현저하게 감소됩니다. 먼저 차잎속에 섞인 노엽(老葉)과 쇤줄기 부스러기 잡초의 잎을 가려 내어야 합니다. 만약에 잡초의 풀을 가려내지 않으면 차의 색 향기 맛이 떨어지며 심한 경우에는 질병을 유발시키기도 합니다. 차를 제다할 때는 2자4치 정도의 솥을 사용하는데 차의 종류는 엽차(작설차)와 병차와 말차 세 종류가 있는데 엽차에는 부초차와 증차 두종류가 있으며, 병차는 단차(團茶) 돈차(錢茶) 전차(塼茶) 세종류가 있습니다.
부초차는 따온 차잎 그대로를 덖어서 만든 차란 말이며 덖는다는 것은 차잎을 익히면서 건조 시킨다는 뜻입니다.
처음 덖을 때에는 장작이나 섶나무로 뜨겁게 달군 솥에 차잎 한근반을 넣고 급히 뒤집고 저으며 익히며 건조시키데 주의 해야 할 것은 첫솥에 불길이 약하면 차잎은 익기도 전에 수분이 말라서 타고 줄기는 붉게 변질이 되어 차를 망치게 됩니다. 첫물의 차잎이 약한 불로 익혀진 차는 탄잎은 떫떫하게 쓴맛을 내며 설익어 붉어진 줄기는 떫고 무거운 맛을 냅니다. 제다과정은 첫물 차잎은 뜨겁게 달구어진 솥에서 숨이 완전히 죽고 익혀지면 꺼내어 비비고(유념이라함) 다신 넣고 덖는데 이렇게 하기를 4~5번 또는 6~7번을 거듭하는데 횟수를 거듭 할수록 불길을 서서히 줄이면서 익히고 건조 시킵니다.
증차(蒸茶: 찐차)는 차잎을 솥에 쩌서 제다했다는 뜻인데 제다 과정은 부초차의 경우처럼 달군 솥에 첫물 차잎을 넣고 덖어 차잎의 숨이 죽고 어느 정도 익으면 나무걸이나 시루속에 넣고 솥 바닥에는 찬물을 조금 붓고 약한 불로 30~60분 정도를 차잎의 상태에 따라서 조절하여 찐뒤 다시 유념을 하여 더운 방에서 수분이 완전히 거두어 질때까지 건조 시킨다. 주의해야할것은 솥에서 차잎이 익혀지는 정도까지만 건조하고 건조방에서 완전하게 건조를 한다.
병차는 차잎을 시루에 쩌서 절구에 찌어 판에 찍어내거나 모가나게 만드는 차를 말합니다. 마치 인절미의 떡을 할때 처럼 쌀을 솥에 찌고 절구에 찌어 만드는 듯 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제다하는 과정은 먼저 달군 솥에 덖어서 시루에 찌고 절구에 찌어서 차잎이 완전히 찌어진 것으로 판에 찍어 내는데 다식 모양처럼 찍어내어 만든 것을 단차(錢茶)라고 하며 옛날 구멍뚫린 엽전 모양으로 만든 것을 돈차라고 하며 흙벽돌 모양으로 만든 것을 전차(塼茶: 벽돌차)라고 합니다.
조선의 茶와 禪에 의하여 살펴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단차나 돈차 종류를 납차(臘茶)라고 하였으며 한약방에서는 청태전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벽돌차는 중국에서 주로 만들어져 사용 되어 왔습니다.
말차(末茶: 가루차)는 병차의 덩어리를 쪼개어 깨어서 맷돌에 갈아서 粉末로 만들어 체로 치고하여 미세한 가루로 정제한 가루차를 말합니다. 또 전차(煎茶)와 연고차가 있는데 전차는 엽차의 종류를 가르킨 말이며 연고차는 병차의 종류를 말하는데 말차까지 포함하여 말하기도 합니다. 전차의 의미는 염엽차를 탕수(달인물)에 달여서 마신다는 의미이며 연고차는 솥에 쪄서 절구에 찌어 마치 기름을 짜듯이 하여 찍어내어 만들고 다시 차덩어리를 쪼개어 맷돌에 갈아서 분말로 만든 차란 뜻 입니다.
차를 제다하는 妙法은 차나무를 잘 가꾸고 채다의 시기를 잘 선택하고 솥의 불길을 잘 살피는데 있습니다. 비록 불길 살피는 묘법(火候妙法)이 뛰어나더라도 음산한 차밭의 잎이나 절기가 기후에 맞지 않으면 상품의 茶를 제다할 수 없으며 절기와 기후를 맞추어 딴 차잎일지라도 불길을 맞추지 못하면 상품의 차가 되지 못합니다.
대저 뛰어난 법제(모든 제다법에 알맞게 한 제다)의 묘방은 지극한 정성,지극으로 차잎과 제다인의 감정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다 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절기와 기후를 잘 살필줄 아는 것은 天氣를 잘 살필줄 아는 것이며 불길을 잘 살피어 차잎을 고루 익게 다루는 것은 五行을 조화롭게 잘 다스릴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천기를 잘 살핀다는 것은 차를 따는 시기에 해(낮의 날씨)와 달(밤의 날씨),별(이슬,안개) 바람, 구름 비를 가리어서 차나무를 가꾸어채다하는 것이며 오행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차나무가 토(土: 흙의 물질)위에 목(木: 나무의 물질)으로 몸을 이루어 화(火: 불의 물질)의 정기를 받아 水를 통하여 금(金: 차의 효능)의 효능이 피어난 것을 다시 木(차나무) 水(차잎의 물기운) 土(차잎의 본 물질) 金(쇠)의 성분이 솥위에서 火(불)에 익혀지는 것이므로 다스린다고 맣한 것입니다. 즉 천기를 잘 살핀다는 것은 길사를 맞이하고 흉사를 피하는 것이며 오행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질병을 멀리하고 건강을 잘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또 천기와 오행의 미묘한 조화속에서 만물이 생성하는데 그 속에서 깊은 이치를 터득하고 실현에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 제다의 미묘한 처방
차나무는 영하 7도가 일주일만 계속되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되며 비온뒤 추위는 특히 동상의 피해가 심합니다. 차나무가 동상을 입게 되면 그해 차 수확이 적은 것은 물론이지만 차의 색,향기,기운,맛이 떨어 집니다.
차의 색,향기,기운,맛이 완전한 차는 첫째 採茶의 시기를 잘 맞추어야 하며, 둘째는 솥의 크기와 차의 량이 서로 잘 맞아야 하며, 셋째는 불길을 잘 살피어 잘 맞아야 하며, 넷째는 차가 잘 저장되고 보관되어야 합니다.
첫째의 채다 시기가 잘 맞지 않으면 차의 기운과 맛이 흩어지게 되는데, 시기를 너무 빨리하여 어린 잎을 따면 차의 약효가 오르지 않으며 핀차잎을 따면 약효가 흩어집니다. 불길을 잘 살피고 저장을 잘 하드라도 시기를 잘 선택하지 못하면 좋은 차가 못되며 차에 잡풀이 섞이면 색,향,기운,맛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약이 차지않은 어린 잎이나 피지 않은 차잎을 따지않은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둘째는 솥의 크기와 차의 량이 알맞아야 하는데 솥이 작고 양이 적으면 너무 빨리 익고 차잎이 타거나 겉만 익게 되며 솥이 크고 양이 많으면 설익어서 붉게 변질이 되어 덟은 맛이 심하게 납니다. 에를 들면 2자3치 정도 크기의 솥이면 차잎 한근 반이 적당합니다.
셋째 불길 살피기(火候)는 맨 처음의 뜨거운 불길과 두번재의 온온한 불길과 셋째의 느슨한 불길, 넷째,다섯……(차잎 형편에 따라 다름) 불길을 잘 살펴서 덖어야 하는데 솥안에서 빠르지도 더디지도 않게 찻잎을 잘 익히고 건조되는 정도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길은 문화(文火: 약한 불길)와 무화(武火: 센불)가 잘 어울려야 합니다.
넷째의 차의 저장과 보관은 저장한다는 것은 일차 제다된 차를 더운 방에서 건조하여 다시 솥에서 마지막 마무리 덖음을 한 후에 큰 오지 항아리나 다육기(藏茶하여 자체 시키는 기구)에 20일에서 30일 이상을 저장하여 자체 발효를 시켜야 제색,향기,기운,맛이 납니다. 그러므로 저장하는 오지 항아리에 죽순껍질이나 대잎으로 항아리의 벽에 세우고 싸서 제다 된 차를 가볍게 쌓아서 불에 구운 벽돌로 항아리 위을 뚜껑으로 덮어서 저장하여야 하며, 보관은 절대로 바람이 닿거나 불 기운이 닿지 않아야 하는데 만약 바람이 닿거나 차에 냉기가 서리게 되고 불 기운이 닿으면 빨리 누렇게 변질이 됩니다. 또 차는 온돌 방바닥의 열기가 직접 닿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다신전에서 「차의 微妙함은 처음 채다할때 精微롭게 하여야 하며 藏茶할때에 法을 얻어야 하며 차를 달일때에 적당하고 마땅함을 얻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차의 우열은 솥에서 처음 덖을 때에 물과 불이 맑고 탁함을 좌우하는데 불길이 강한 솥에 덖으면 향기는 많으나 차잎이 타게 되며, 열기가 식은 솥이나 덜 달구어진 솥에 덖으면 차의 신기가 권태로워지고 비취색(녹색)을 잃게 되며, 오래 덖으면 너무 익고 황색이 되며, 빨리 솥에서 꺼내면 차잎이 설익으며 흙색이 됩니다. 불길이 순응하여 고르게 익으면 차맛이 달고 불길을 거슬려서 순응하지 못하면 차맛이 떫으며 제다된 차에 흰점이 있는 것은 무방하며 타지않은 것은 가장 좋은 차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제철 제시기에 채다하고 솥과 차의 량이 적당하고 불길을 잘 살피고 저장과 보관이 잘된 차는 모름지기 中正의 道에 이르른 차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정의 도에 이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중정의 도에 이른다는 것은 天氣의 음양과 채다, 제다의 오행이 잘 조화 되었다는 뜻입니다.
다성 초의선사 말씀에 "배건(焙乾: 제다와 장다)이 알맞아서 깊고 미묘한 중정은 표현하여 말하기 어렵지만 화후(火候)가 균정(均停: 불길이 고름)하면 색 향기 맛이 미묘하다. 만약 배건을 극진하게 하지 않으면 신기로운 기운이 권태로워 진다.' 하였습니다.
제다의 발달 과장을 간략하게 간추려 말하면 맨 처음 고대 인도 기원전의 수행자의 바라문과 불교의 수행 승려들의 시대나 중국 주나라 주공(周公)단(BC1121년) 시대에는 엽차가 유행했으며 당나라 육우 다인(720출생)이나 노동(盧同)의 시대에는 단차와 말차가 유행했는데 그때는 솥에 차를 달이는 차죽시대 였으며 송나라 휘종 황제(1082~1135)가 지은 대관다론 시대에는 지금에 말차를 점다하듯이 다완에 먼저 찻가루를 갠후 달인 물을 부어 차선으로 격불(차의 거품이 일게 하는 것)하여 마시었습니다.
청나라(1616~1912) 초기에 단차와 말차는 백성들의 노고를 크게 끼치고 의식이 번다하고 사치하다 하여 다시 엽차로 돌아가서 오늘에 까지 그대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에는 엽차시대, 고려때에는 단차와 말차시대 였으나 고려말 이제 이재현(1287~1367)시대에 이미 다시 만들어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선의 중엽 쯤에는 단차나 말차가 만들어지는 것은 거의 볼수없고 남쪽의 일부 사찰지역에서 소량의 엽차 만이 생산되어 왔습니다. 조선 중엽이후 근근이 남쪽 일부 사원에서만 제다되어 공양 되어온 차예법과 생활이 한일 합방 이후 일본사람들이 차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하여 성행하게 되자 일반사회에서도 차가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차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 물의 선택
1. 물의 품성
다신전(茶神傳)에 보면 「차는 물의 神)이요, 물은 차의 체(體)이나 진수(眞水)가 아니면 그 신이 나타나지 않으며 정다(精茶:眞茶)가 아니면 그 체를 볼 수가 없다」고 하였다. 물이란 차를 끓이는데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 물이 좋아야 맛있는 차를 끓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좋은 물을 구하는 일이야 말로 맛있는 차를 끓이는 비결 중의 비결이다. 그래서 옛부터 차를 좋아하는 다인(茶人)들은 좋은 물을 구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과 경비를 아끼지 않았다. 산마루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맑고 가볍고 산아래서 솟아나는 샘물은 맑고 무거우며 돌틈에서 나는 샘물은 맑고 달(甘)며 모래틈에서 나는 샘물은 맑고 차가우며, 흙 속에서 나는 샘물은 맑고 희며, 누런돌(黃石) 틈으로 흐르는 물은 좋으나, 푸른돌(靑石) 틈에서 나는 물은 쓰지 못한다. 또 흐르는 물은 고여 있는 물보다 좋고, 그늘에 있는 물은 햇볕에 있는 물보다 나으며, 진수는 맛과 향기가 없는 것이다. 진수는 스스로 여덟 가지 덕(八德)지녔는데, 가볍고(輕), 맑고(淸), 시원하고(冷), 부드럽고(軟), 아름답고(美), 냄새가 나지않고(불臭), 비위에 맞고(調適), 먹어서 탈이 없는 것(無患)을 말한다. 조선초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 齋叢話)에 보면 상곡 성석인(成石咽,고려 말∼조선 초)과 기우자(騎牛子), 이행(李荇,1352∼1504)이 서로 친분이 두터웠는데 하루는 기우자가 상곡을 찾아 갔다. 상곡은 그의 아들에게 명하여 차를 다리게 햇는데 찻물이 넘쳐 다른 물을 더 부었다. 기우자가 맛보고 그에게 하는 말이 이 차에 네가 두 가지 생수(生水)를 더 부었구나 하였다. 기우자는 이렇게 물맛을 잘 분별하였는데 그가 충주(忠州)의 달천수(達川水)를 제일로 삼고 금강산에서 나오는 한강의 우중수(牛重水)를 두 번째로 삼고 속리산(俗籬山)의 삼탁수(三陀水)를 세 번째로 삼았다. 그러나 기우자가 어디에 근거를 두고 품격을 나누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2. 물의 종류
1)하늘 물(天水)
하늘에서 내리는 물(비나 눈) 중에는 가을 물이 제일 좋고 다음이 봄 물이다. 여름이나 겨울 물은 쓸 것이 못 된다. 가을 물은 희고 차며 봄 물은 맑고 무겁다. 물이 맑고 시원하면 좋지만 탁하고 무겁고 너무 달면 좋지 않다. 여름에 내리는 폭우는 바람과 뇌성을 수반한 것으로 대기 중의 먼지를 많이 함유하고 있으며 그 성질이 사납고 거칠어서 쓸모가 없다. 가령 장마철에 내리는 것이라든지 또는 가뭄 뒤에 갑자기 내리는 것, 냄새가 나고 빛깔이 검은 것, 흙탕물이 섞인 것, 장대 같이 쏟아지는 소나기 등은 먹을 수가 없다. 그리고 겨울에 내리는 눈(雪)은 냉기가 극심하여 취할 바가 아니나 혹 한가할 때 소담스럽게 내린 함박눈을 가지고 차를 끓이면 풍치가 있다. 고상한 정취로 가끔 즐길 수는 있으나 장복하면 건강에 해롭다. 물이 귀한 마라도(제주도)나 홍도(신안군) 등 도서지방에서는 지금도 빗물(天水)을 받아 먹고 있지만 요즈음은 오염이 많이 되어 침전시켜서 쓰지 않으면 안 된다.
2) 샘물(地泉)
땅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로는 완만하게 바위 사이를 흘러나오는 유천(乳泉)이 제일 좋다. 샘물은 맑고 시원하고 달고 향기로운 것이 좋은데 맑기는 쉬워도 차갑기는 어려우며 달기는 쉬워도 향기롭기는 또한 어렵다. 땅 속에 돌이 적고 흙이 많거나 모래가 차지고 진흙이 엉킨 곳은 결코 맑고 차가운 물이 나올 수가 없으며 산맥이 꾸불꾸불하고 그 맥이 끊어지지 않아 물이 정유하지 않고 흘러서 바위 사이를 도라 돌 사이에서 솟아 나와야만 향기롭고 달고 시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울이 깊고 흐름이 빨라 급히 솟아나는 물이나 바위 속 깊이 산 그늘에 가리워져 있어 차가운 것은 쓸 것이 못 된다. 또 흐르지 않고 멈춰 있다면 원천(源泉)이 없기 때문이니 필경 가물 때는 마르고 말 것이다. 이런 물도 먹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모래 속으로 스며서 흐르는 물이 있는데 이것을 떠내도 마르지 않고 계속해서 고이는 것은 먹어도 무방하나 가뭄 떄 마른다면 이것 또한 흙 속에 고인 물과 다를 바가 없다. 아무리 물이 맑고 시원하다고 먹을 것이 못 된다. 그리고 산 중의 계곡이니 폭포의 물이 맑고 시원하기는 하나 장복하면 목병이 나고 독(毒)이 있는 나무가 샘 가에 있으면 나무의 독액이 스며 나와 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 이떄는 나무를 뿌리채 뽑아 그 해를 방지해야만 한다. 또 이 악목(惡木)은 맑고 향기로운 물의 기운을 손상시켜 단맛과향기를 손감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샘가에는 옛부터 향기로운 나무나 약이 되는 나무들을 심는다. 무릇 좋은 물을 만나는 것도 큰 복이 되나니 물은 양생(養生)을 하여 오래 살게 하고 무병(無病)하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복락을 누리게 한다. 이러한 물은 달고 향기로우며 반드시 돌틈에서 나오는 석간수이다.
3)강물(江水)
강물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것일수록 좋다. 요즈음은 오염이 심해서 그냥 먹을 수는 없고 침전을 시켜서 사용한다. 대도시 상수도 물은 거의 강물을 쓰는데 침전을 시켜 소독해서 사용하므로 냄새가 심하고 오염도도 높아 차를 끓이는 데는 적당치 않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수돗물이 아닌 샘물을 구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4)우물물(井水)
우물물은 대부분 수맥(水脈)을 알 수가 없고 주변에서 스며서 고이는 물로서 가물면 마르기 쉽고 건수(乾水)가 많아 비가 오면 수량이 늘고 개이면 줄어드는 물이다. 수질이 엉켜 맛이 짜고 색이 탁하고 비리기 일쑤이며 해변가나 논밭가에 있으면 짜고 기름기가 어려 차맛을 버리기 쉽다. 이런 물로 차를 달이면 찻잔 수면 위에 기름기가 뜨고 맛도 비리고 향기도 죽어 버린다. 우연히 판 우물이 물줄기를 만나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면 먹을 수는 있으나 산천의 석간수에 비할 바는 아니다. 우물물은 자주 퍼내어 깨끗이 해야만 좋다.
5)온천(溫泉)
온천수는 대개 유황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엉기고 맛이 비리다. 또 뜨거운 기운이 땅 속에서부터 솟아 올라 끓일 필요가 없으나 차를 달이는데는 마땅치가 않다. 온천수 속에 함유되어 있는 여러 가지 불순물이 차의 맛과 향을 훼손시키기 떄문이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곳에서 온천수가 솟아 나오고 있으나 아무 것도 찻물로는 쓸 수가 없다.
6)영천(靈泉)
영천은 하늘의 은택으로 내린 샘물인데 아는 사람도 드물고 있는 곳도 많지 않다. 명산이나 대찰(大刹)이 있는 곳에 가끔 한두게 보이나 만나기 힘든 샘물이다. 송광사(松廣寺)에 있는 영천은 일년에 서너 번 넘쳐 흐른다고 한다. 이떄 물의 기운이 넘쳐 솟아 올라 올 때 그 물을 받아 마시면 고질병도 고치고 능히 장수할 수 있다. 또 대흥사(大興寺)의 산내 암자인 도선암(導船庵)에는 고산천(孤山泉)이 있는데 이 샘물도 일년에 한번 자정(子正)에 넘쳐 흐르는데 이 물을 마신 스님의 고질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이 샘물은 고산 윤선도(尹善道)가 즐겨 길어다 마셨기에「고산천」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7) 약수(藥水)
약수는 물 가운데 천연 탄산가스가 주사( 砂) 등의 약성분이 들어 있는 것을 말한다. 만약 물 속에 주사가 녹아들어 있다면 이 물을 장복하면 능히 병도 물리칠 수 있으려니와 장수할 수도 있다. 남설악(南雪岳)의 오색약수나 초정약수는 이상한 맛과 향이있어 그냥 마시기는 좋으나 차를 끓이기는 적당하지 않다. 약수로 차를 끓일만한 물은 드물고 유난히 단맛이 나는 감천(甘泉)이나 향기가 나는 향천(香泉)은 찻물로 쓸 수가 있다.
8) 양수(養水)
좋은 물을 구하지 못하였을 때는 반드시 양수를 해서 쓰면 차맛을 낼 수가 있다. 양수를 하는 방법은 옹기독 속에 깨끗한 왕모래와 작은 자갈을 넣어 준비해 두었다가 첫번째 항아리에 물을 부어 침전시키면 잠시 후에 물이 맑아지고 맛도 좋아진다. 이 물을 흔들지 않고 가만가만히 퍼내서 두번째 항아리로 옮긴다. 다시 잠시 기다리면 물이 침전된다. 첫번째 항아리 속의 모래와 자갈을 꺼내 깨끗하게 씻어서 다시 넣고 두번째 항아리에 있는 물을 다시 첫번째 항아리로 옮겨 침전시킨다. 이렇게 번갈아 서너 번만 계속해서 침전시켜 걸러내면 웬만큼 수질이 나쁜 물도 좋아지고 맑아져서 차 끓이는데 크게 맛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은「정수기」가 널리 보급되어서 많이 활용하고 있다. 정수기에 정화를 해서 사용하면 물맛을 좋게 할 수 있다.
3. 물 끓이는 법(湯法)
물을 잘 끓이는 법은 차를 잘 끓이는 비법이다. 물을 잘 끓여야만 맛있는 차를 낼 수 있으므로 찻물 끓이는데 많은 정성을 쏟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좋은 물을 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좋은 물을 잘 끓이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물을 구하였다고 하여도 끓이는데 실패하면 맛있는 차를 끓일 수가 없다. 찻물을 끓이는데 필요한 것은 불(火)과 물 끓이는 탕기(湯器)가 있어야 하는데 불은 냄새가 나지 않고 고르고 순수한 불이어야 하며 탕기는 돌솥이 제일 좋고 다음이 도자기나 옹기제품이 좋으며 다음은 쇠붙이 제품이다. 물은 순숙(純熟)한 상태까지 끓여야 하는데 이는 물끓는 정도를 보고서 판별해야만 하며 너무 끓여서 탕이 늙어 버리거나 덜 끓여서 맹탕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를 감별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방법(三大辨)과 작게 15가지 방법(十五小辨)이 있다.
첫째 물이 끓는 형태를 보고서 분별하는 형변(形辨),
둘째 물이 끓는 소리를 듣고서 분별하는 성변(聲辨),
셋째 물이 끓는 증기를 보고서 분별하는 기변(氣辨)이 그것이다.
십오소변(十五小辨)이란 형변의 오소변(五小辨), 즉 해안(蟹眼), 하안(蝦眼), 어목(魚目), 연주(連珠), 용천(湧泉)과 성변의 오소변(五小辨), 초성(初聲), 전성(轉聲), 취성(驟聲), 무성(無聲)과 기변의 오소변(五小辨), 일루(一縷), 이루(二縷), 삼루(三縷), 사루(四縷), 난루(亂縷)를 합쳐서 말한다.
4. 사불 삼대변법(四沸三大辨法)
1) 사불 구분변법(四沸九分辨法)
(1) 일비 구분변법(一沸九分辨法)
* 一分辨 : 물은 따스해졌으나 어떤 변화도 일으키기 전이다. 만가지 상(像)을 잉태하는 중이다. 형(形), 성(聲), 기변(氣辨)이 생기지 않는다.
* 二分辨 : 해안(蟹眼)이 탕관 바닥 불 기운이 가장 많이 접촉한 부분에 생기기 시작한다. 해안이란『게의 눈』처럼 수기(水氣)가 엉킨 물방울을 말한다. 그 모양은 탕관 바닥에 바짝 달라 붙은 상태의 물방울이다.
* 三分辨 : 해안이 제법 많이 생겨서 늘어나고 들리듯 말듯한 작은 미미성(微微聲)이 생긴다.
* 四分辨 : 해안이 하안(蝦眼)으로 변하면서 한 개씩 부상한다. 하안이란 『새우의 눈』과 같은 물방울을 말한다. 해안(게눈)보다는 크고 둥글며 탕관 바닥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물방울을 말한다.
* 五分辨 : 하안(새우눈)이 어묵(魚目)으로 바뀌는 때이다. 미미성(微微聲)이 초성(初聲)으로 바뀌고 약간의 어목이 생긴다. 날카롭고 예리한 소리가 탕관의 한 부분에서 나는데 화력(火力)이 집중된 곳이다. 어목은 『고기의 눈』과 같은 물방울을 말한다. 탕관바닥에서 부상하는 상태의 물방울이다.
* 六分辨 : 어목이 생겨서 약간씩 부상한다.일루(樓)에 해당된다. 초성(初聲)은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로 다인(茶人)에게는 좋지않으며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켜 주지 못한다.
* 七分辨 : 어목(고기눈)이 성장하여 탕관 전면에서 형성되어 부상한다. 어목이 탕관 바닥에서 서서히 부상하는데 화력이 집중된 부분이 더욱 기가 왕성하다.
* 八分變 : 초성의 날카로움이 작아지면서 전성(轉聲)으로 바뀐다. 이때는 수등기(氣變의 內氣)가 생기기 시작할 때이다.
* 九分變 : 어목이 부상하여 사방으로 산포한다. 이루(二縷)에 해당된다. 증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소리는 변하는 과정으로 들어간다. 소리가 완전히 변하고 증기가 많이 생기면 이비(二沸)로 접어든 것이다.
(2) 이비 구분변법(二沸九分變法)
* 一分辨 : 어목이 연주(蓮珠)로 바뀐다. 어목이 줄을 이어서 탕관 밑바닥에서부터 탕 위 수면으로 부상하는데 마치 그 모양이 구슬을 꿰어놓은 것 같다.
* 二分辨 : 전성(轉聲)으로 완전히 바뀐다(굴러가는 듯한 소리). 초성이 차차 작아지면서 한 부분에서 나던 소리가 탕관 전체 부위에서 나며 그 소리는 날카롭지 않고 조금 둔탁하지만 좋은 소리는 못 된다.
* 三分辨 : 여러 개의 연주(連珠)가 생긴다. 삼루(三縷)에 해당된다. 루루연주가 일어난다. 이때는 탕이 뒤집어 지기 전이다. 탕은 뒤집어 지지는 않으나 탕관의 밑부분에서 여러 개의 연주가 부상한다.
* 四分辨 : 전성이 진성(振聲)으로 바뀐다. 이때가 증기가 제일 많이 나는 때이다. 우유빛 구름처럼 증기(수기)가 많이 증발한다.
* 五分辨 : 연주가 급히 부상하며 탕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사루(四縷)에 해당된다. 수기가 차차 없어지기 시작한 때로서 수기의 증발에 의해 생기는 증기가 탁하게 올라온다. 이때 나오는 증기에 손바닥을 대면 끈적끈적 해진다. 그러나 별로 뜨거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 六分辨 : 진성(振聲)으로 완전히 바뀐다(움직여 진동하는 듯한 소리). 이때의 소리도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켜 주지는 못한다.
* 七分辨 : 미세한 출렁임과 파도가 인다. 증기가 차차 줄어 들면서 기운은 왕성해지고 맑아진다.
* 八分辨 : 진성이 취성(驟聲)으로 바뀐다. 말을 몰아가듯 바람이 구름을 몰아가듯 하는 소리가 맑아진다.
* 九分辨 : 사방으로 출렁임이 밀린다. 용천(湧泉)을 하기 시작한다. 이비(二沸)의 초기는 증기가 탁하고 소리가 변칙적이나 말기는 증기도 맑아지고 소리도 제법 고르게 된다.
(3) 삼불 구분변법(三沸九分辨法)
* 一分辨 : 파도가 생기고 탕이 뒤집어진다. 난루(亂縷)에 해당된다.
* 二分辨 : 취성에서 송풍성(松風聲)으로 변한다. 삼불(三沸) 초에는 싱싱함이 살아 있다.
* 三分辨 : 북 치듯 파도가 치며 간간히 물방울이 튄다.
* 四分辨 : 수면에 파도가 치고 가랑비가 내리는 듯하다. 소나무에 바람 스치는 소리(松風聲),전나무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檜雨聲)가 난다.
* 五分辨 : 송풍성이 절정에 이른다. 송풍성은 탕관 안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속에서 들린다. 이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켜 주며 삼매경(三昧境)에 들 수 있도록 해주는 삼매음(三昧音)이다.
* 六分辨 : 내기(內氣)는 사라지고 외기(外氣)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때의 송풍성은 모든 인간의 번뇌를 피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절정의 소리요 최고의 음률이다. 이때 말차(抹茶)를 타면 다신(茶神)이 수면에 뜬다. 진수(眞水)가 아니기 때문이다.
* 七分辨 : 송풍성이 무성(無聲)으로 변한다. 기(氣)가 충관하기 시작한다. 삼불 초에는 증기(內氣)가 보통 나지만 말기로 접어들면 증기도 줄고 맑으며 수기(水氣)도 거의 소멸이 된다.
* 八分辨 : 폭포수가 거꾸로 쏜아지는 듯 하다. 싱그러운 맛을 낼 수는 있으나 잘 익은 맛은 내지 못한다. 그러나 사도(邪道)를 하는 다인들 중에는 설익은 탕수로 싱그러운 맛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 九分辨 : 등파고랑(騰波鼓浪)이 절정(絶頂)에 이른다.
(4) 사불 구분변법(四沸九分辨法)
* 一分辨 : 무성(無聲)으로 완전히 바뀐다. 송풍성이 사라지면서 기운은 충만해도 탕은 소리가 없다.
* 二分辨 : 수기(水氣 : 內氣)가 완전히 증발한다. 이때 탕은 내기(內氣: 湯水의 水氣)는 다 증발하고 외기(外氣:湯水와 접한 외부의 공기중의 氣)가 생기는데 이는 탕의 수면에 접촉하는 외부의 기(氣)가 탕의 뜨거운 온도에 접촉해서 생기는 것이다.
* 三分辨 : 외기(外氣)가 불규칙적으로 생긴다. 센불(活火)이 아니면 이 지경에 이르지 못한다. 기가 충관한 상태이다.
* 四分辨 : 탕은 순간에도 건공(乾坤)이 바뀌듯 요동을 하며 잔 빗방울을 허공에 수없이 뿌린다. 탕이 끓는 소리는(松風聲) 사라지고 물방을이 튀는 소리만 미세하게 나며 물결을 세차게 일어 마치 폭포수가 거꾸로 쏟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소리는 거의 없다. 좋은 불일지라도 숯불은 부채질을 해야만 이 지경에 이른다.
* 五分辨 : 탕이 순숙(純熟)해졌다. 설유(雪乳)가 찬란하다. 이때는 차를 울궈도 다신(茶新)이 수면에 뜨는 일이 없다. 탕은 순숙해야만 된다. 너무 끓여 늙거나(老水), 덜 끓여 어려서도(萌湯 : 嫩)안 된다.
* 六分辨 : 탕이 동중정(動中靜)에 이른다. 폭풍우가 잠자고 바다도 고요해지니 맑은 해가 비치는 정취이다.
* 七分辨 : 이때의 탕은 황톳길을 달려가던 마차가 쓰러져 사람과 말(人馬)이 다 죽고 홀연히 세상이 다 잠자는 듯한 청취이다.
* 八分辨 : 탕(湯)이 넘치기 직전이다.
* 九分辨 : 탕이 늙어진다. 탕은 늘거(老)나 맹탕(嫩)은 사용하지 못한다.(湯用不用老嫩)
2) 삼대변법 (三大辨法)
(1) 형변 오소변법(形辨五]小辨法) 탕(湯水)이 끓이는 형태(形態)를 보고 분별하는 법이다. 탕관 안을 살펴 보고서 분별하기 때문에 내변(內辨)이라고도 한다. 해안(蟹眼), 하안(蝦眼), 어목(魚目), 연주(連珠), 용천(涌泉), 등파고랑(騰波鼓浪), 세우(細雨)가 모두 형변이다. *해안(蟹眼)은『게의 눈』이다. 게의 눈처럼 탕관 바닥에 바짝 달라 붙어서 처음 생긴 물방을이다. *하안(蝦眼)은『새우의 눈』이다. 새우의 눈처럼 탕관 바닥에서 막 떠오르려고(浮上)할 때, 게의 눈(蟹眼) 보다는 약간 큰 모양의 물방울을 말한다. *어목(魚目)은『물고기의 눈』이다. 물고기의 눈처럼 둥글고 또렷한 것인데 새우의 눈(蝦眼)이 탕관 바닥에서 떠오르고 있는 상태의 물방울을 말한다. *연주(連珠)는 구슬을 실로 꿰어서 놓은 모양으로 탕관 바닥에서부터 수면 위에까지 연결되어 물방을이(魚目)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어목이 계속해서 연결된 상태이다. *용천(涌泉)은 샘물이 밑에서부터 위로 솟아오르는 모양을 말한다. 탕이 끓어서 거꾸로 샘솟듯 올라오는 상태를 용천이라고 한다. *등파고랑(騰波鼓浪)은 북을 치듯 파도가 일어나고 탕이 뒤집어 지는 것을 말한다. 탕이 끓엇 넘칠 듯 뒤집어 지고 파도가 밀리며 물방울이 튀기는 상태를 말한다. 세우(細雨)는 잔 빗방울이 탕의 수면 위에 내리는 듯한 것을 형변(形辨)의 오소변(五小辨)은 다음과 같다.
(2) 성변 오소변법(聲辨五小辨法) 탕(湯水)이 끓는 소리(聲)를 듣고 분별하는 법이다. 탕관 밖에서 소리를 듣고서 분별하기 때문에 외변(外辨)이라고도 한다. 미미성(微微聲), 초성(初聲), 전성(轉聲), 진성(振聲), 취성(驟聲), 송풍성(松風聲), 회우성(檜雨聲), 삼매음(三昧音), 무성(無聲)은 모두 성변(聲辨)이다. 미미성(微微聲)은 탕에서 맨처음 나는 소리로서 초성이 울리기 직전에 미세하게 들릴 듯 말 듯 나는 소리이다. * 초성(初聲)은 미미성에서 날카롭게 변해서 강하게 나는 소리이다. * 전성(轉聲)은 초성이 잦아지면서 날카로움이 작아지고 굴러가는 듯한 소리를 낼 때를 말한다. * 진성(振聲)은 굴러가는 소리가(轉聲) 진동하는 소리(振聲)로 변한 것을 말한다. * 취성(驟聲)은 진동하는 듯한 소리(振聲)가 말을(馬) 몰아 가듯이 밀리는 소리를(驟聲) 말한다. 소리가 휘몰리는 것 같다. * 송풍성(松風聲)은 소나무에 바람 스치는 소리이다. 이 소리는 절정의 소리로서 산란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며 정(定)에 들 수 있도록 도와주며 우주 가운데서 나는 소리 중에서 가장 미묘한 소리이니 가히 삼매(三昧)에 들 수 있는 소리이다. 모든 다인(茶人)들은 이 소리를 사랑한다. * 회우성(檜雨聲)은 전나무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이다. 송풍성과 같은 소리이다. 이를 줄여서 송풍회우(松風檜雨)라고도 한다. * 삼매음(三昧音)은 삼매경(三昧境)에 들 수 있는 소리이다. 송풍성이나 회우성을 삼매음이라고도 한다. * 무성(無聲)은 송풍성이 조금 지나서 작아지면서 온 천지가 잠든 듯이 조용하며 탕이 끓는 소리는 전혀 나지 않고 물결소리만 미세하게 나는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를 순숙(純熟)했다고 한다. 무성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물결치는 소리만 들린다. 성변(聲辨)의 오소변(五小辨)은 다음과 같다.
(3) 기변 오소변법(氣辨五小辨法) 탕(湯水)이 끓는 증기( 氣)를 보고서 분별하는 법이다. 탕관의 안과 밖에서 함께 보면서 분별하는 첩변(捷辨)이라고도 한다. 탕의 기(氣)는 내기(內氣)와 외기(外氣)로 나눈다. 일루(一縷), 이루(二縷), 삼루(三縷),사루(四縷), 난루(亂縷), 연취(煙翠), 기직충관(氣直 貫)은 모두 기변(氣辨)이다. 일루, 이루, 삼루, 사루, 난루, 연취는 내기(內氣)이고 기직충관(氣直 貫)은 외기(外氣)이다. 내기란 탕 자체에 함유되어 있는 수기(水氣)를 말하는 것으로 끓여지는 과정에서 차차 증기로 해서 사라진다. 이 수기는 사불(四沸) 초에 이르면 완전히 증발한다. 일비(一沸) 말부터 수기가(內氣) 증발하기 시작해서 이비(二沸) 때에 가장 많이 증발하고 사불(四沸) 때에 이르면 완전히 증발하고 외기(外氣)가 생기기 시작한다. 외기란 탕의 내기가 다 증발한 후에 생기는데 잘 익은 탕수가 외부의 대기와 접촉하는 부분에서 탕의 온도가 높고 대기의 온도는 낮기 때문에 대기 중에 있는 수기가 접촉하는 부위에서 증기로 화해서 탕의 기류(氣流)와 함께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외기는 삼불(三沸) 말부터 생기는데 불규칙적으로 많게도 또는 적게도 생겨서 증발한다. 이 외기는 계속 이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줄기 증기가 밀려나오다가는 잠시 멈추고 다시 외기가 생긴다. 또 생긴 외기는 밀려 나오고 또 생긴다. 이처럼 외기는 나오다 안 나오다 하면서 연속적으로 증발한다. 일루(一縷)는 연주(連珠)처럼 기(氣)가 한 줄기로 증발 부상하는 것을 말한다. 이루는 두 줄기, 삼루는 세 줄기, 사루는 네 줄기를 말하며 난루는 기루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어지럽게 피어오르는 것을 말한다. 연취(煙翠)는 기색(氣色)이 푸른 연기처럼 맑은 것을 말한다. 연취는 내기와 외기 사이에서 나오며 외기 중에 있는 빛깔이다. 일비(一沸) 말에 나오는 증기는 먼 산간 마을의 외딴 집에서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와 같고 이비(二沸) 때에 나오는 증기는 하늘을 뒤덮은 우유빛 구름과 같고 삼불(三沸) 때에 나오는 증기는 가을 밤 달빛과 같이 맑고 푸르다. 기직충관(氣直 貫)은 기(氣)가 상승하는 기운이 탕면(湯面)을 꿰뚫고 올라 승천하는 것을 말한다. 이 지경에 이르러야만 탕이 순숙(純熟)했다고 한다.
♬. 불의 조절
문무화후(文武火候)
차를 맛있게 잘 끓이는 요령 중의 하나가 불 기운을 잘 다스리는 일이다. 불 기운에는 성질이(火性) 사납고 극렬한 것과 유연한고 체성이 허약한 것 또 기운이 온화하고 적당한 것 등 다양하다. 이러한 불 기운을 잘 알아서 다스린다면 좋은 차를 만들 수 있고 또 좋은 물을 끓여 낼 수 있는 것이다.
진다(眞茶)와 진수(眞水)를 만드는 비법(秘法)이 모두 이 불 조절에 달려 있으니 불을 모르고는 차를 마신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도공(陶工)이 도자기를 만들 때 흙과 불과 도공의 혼이 합쳐져서『흙으로 옥(玉)』을 완성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인(茶人)은 차잎과 불과 물로써 우리가 원하는 진미(眞味), 진향(眞香), 진색(眞色)의 신비스런 차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다인은 차잎과 불과 물에 대해서 탁월한 견식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문무화후(文武火候)란 불(火)을 다스리는 치수의 법도이다. 불기운이 극렬하고 매섭고 뜨거워서 만물(萬物)을 다 태울 듯이 사나운 것을 무(武)에 이르렀다고 하고 유약하고 쇠진하며 체성이 허약하여 탕수(湯水)의 수기(水氣:물 가운데 들어 있는 탁한 기운)를 전소시킬 능력이 없는 것을 문(文)에 치우쳤다고 한다.
불 기운의 다스림은 문(文)에 치우쳐 더디고 게으르다면 탕수가 순숙(純熟)해지지 않고 물 비린내가 나고 수기(水氣)가 소멸되지 않아 차맛을 낼 수가 없다. 또 무(武)에 치우친다면 탕수가 본성을 상실하여 수성이 위로 뜨고 가벼워지며 중화(中和)의 덕(德)을 상실하고 만다. 그래서 불 가늠은 문에 이르러도 안 되고 무에 이르러도 안 되는 것이다. 그 중도(中道)인 중화(中和)를 얻어야만 된다. 이것을 문무화후(文武火候)라고 하는데 그 적절함을 다하여 중화의 불 기운을 얻어야만 좋은 탕수인 진수(眞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진수를 만드는 비법은 좋은 물을 얻어 중화를 얻어 불 기운으로 잘 끓이는 길 뿐이다.
중화(中和)를 얻는 방법은 첫째 양호한 연료의 선택과 둘째 불 기운의 변화에 대한 올바른 관찰과 셋째 부채질이나 연료를 첨가하여 불 기운을 살려 중화를 유지시키는 일이다. 좋은 연료를 구하여 불을 일구어 기운을 승화시키되 극렬해도 안 되고 유약해도 안 되게 늘 곁에서 살펴 기운이 함께 잘 어울려서 중화의 덕으로 진수(眞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처럼 진수를 만들어 내어야만 진다(眞茶)와 합쳐서 중용(中庸)의 덕(德)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진다(眞茶)와 진수(眞水)를 얻으면 신(神)과 체(體)를 규명하게 되고 신과 체를 규명해야만 건(健)과 영(靈)을 얻게 되고 건과 영을 얻어야만 묘리(妙理)의 진체(眞諦)를 궁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의 종류
1) 숯 불
불의 종류는 연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 종류는 대단히 많다. 그러나 옛부터 많이 애용해 온 것은 숯불이다. 숯불은 나무를 열길 태워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덜 탄 숯은 연기가 나고 냄새가 나며 화력도 좋지를 못하다. 반대로 잘 구워진 숯은 화력도 좋고 연기나 냄새도 나지 않으며 찌꺼기가 남지 않고 깨끗하게 연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숯은 잘 태워야만 하며 숯을 굽는 재료의 나무도 결이 단단하고 좋으며 냄새가 나지 않고 부패되지 않아야 한다. 대개 숯을 굽는 나무는 참나무나 느티나무 그리고 뽕나무와 오동나무, 팽나무 등이 좋으며 가시나무와 상수리나무 등도 쓸만하다. 그러나 소나무나 잣나무 또는 전나무나 계수나무 같이 냄새가 나거나 나무진이 많이 스며나오는 나무 종류는 숯 굽는데는 마땅치 않으며 차를 만들 때의 연료로도 부적당하다. 그리고 연기가 많이 나는 솔방울이나 덜 마른 생나무를 연료로 쓰면 연기가 많이 나와 차와 탕수를 해치게 된다. 이것은 차에게는 악마와 같은 것이다. 또 속이 빈 대나무나 체성이 약한 썩은 나뭇가지나 낙엽 등을 태워서 탕을 끓인다면 불의 체성이 부박(浮薄)하여 중화(中和)의 기가 없으므로 좋은 탕수를 만들 수가 없다. 그리고 타다 남은 허탄(虛炭)이나 볏짚으로 탕을 끓여도 마찬가지로 진수(眞水)를 얻을 수가 없다. 하지만 산 중에서 솔방울이나 낙엽을 긁어모아 불을 피워 뜻이 맞는 벗과 함께 차를 달여 마시는 일은 고상한 운치가 있다. 그러나 이따금 즐길 일이지 장복하면 체증이 맺힌다. 경계할 일이다.
2) 연 탄 불 연탄불은 연기는 나지 않으나 가스가 많이 나오고 냄새가 나서 탕수를 버리게 되고 또 불 기운이 유약하거나 게으르기 쉽고 부드럽고 허약하여 탕을 끓이는데는 마땅치가 않다. 그러나 백탄은 풍로에 넣어 숯 대신 많이 써왔다. 백탄은 불을 잘 피워서 빨갛게 달군 다음에 탕관을 올려놓고 계속 부채질을 해서 끓이면 만족스런 탕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이런 백탄은 구하기 어렵고 무연탄이 성행하여 각 가정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다. 연탄불로 탕을 끓여서 차를 우려 마셔보면 향이 죽고 맛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3) 석유불(곤로, 난로) 석유불은 연소를 잘 시키지 않으면 냄새가 나서 탕수를 해치는 경우가 있으나 요즈음은 완전연소를 시키는 곤로들이 개발되어 나오기 때문에 가정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석유불은 기구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열전도도 좋고 연료 취급도 편리해서 많이 활용하고 있다. 경계해야 할 점은 냄새가 나지 않게 하는 일이며 또 그을음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연소를 잘 시켜서 불꽃이 파랗게 되면 탕을 끓여도 무방하지만 불꽃이 빨갛고 검은 연기가 생기면 화력도 약하고 냄새가 침범하여 탕수를 버리게 된다. 석유불은 파란 불꽃이 나오고 연기가 나지 않으며 냄새가 없을 때만 탕을 끓일 불로서 사용할 수가 있다.
4) 가스불(레인지, 버너) 가스는 냄새도 적고 화력도 좋아서 현대생활에 알맞는 연료이다. 잘만 활용하면 모든 일에 만족스런 열기구가 된다. 탕을 끓이는 데에도 가스불은 연소가 잘 되고 화력조절이 편리해서 아주 적합한 연료이다. 탕은 가볍게 빨리 끓이는 것이 좋은데 너무 강렬한 불로 급히 끓이는 것은 좋지 못하다. 자못 가스불은 화력이 강렬하여 급히 끓이기가 쉽지만 화력을 낮출 수 있도록 장치가 되어 있어 적당한 불기운을 조절하여 사용할 수 있다. 가스불로 탕을 달일 때 주의해야 할 점은 탕이 늙어 노수(老水)가 되어 버리는 일이며 수성(水性)이 바닥이 나거나 탕이 말라버리는 일이다. 가스불에는 탕이 쉽게 증발하는 단점이 있어 노수가 되면 빠른 속도로 탕이 증발한다. 그래서 가스불로 탕을 끓일 때는 너무 급히 끓이거나 탕이 늙어버리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하며, 탕의 수성이 가볍게 수면 위로 뜨거나, 감칠 맛이나 중후한 맛이 나도록 힘써야 하며, 싱그럽고 산뜻한 맛을 살려야만 한다.
5) 전열기(곤로, 포트) 탕을 끓일 수 있는 전열기로 곤로와 포트가 있는데 곤로는 탕을 끓이기 어렵고 포트를 많이 이용하는데 편리하기는 하지만 좋은 탕은 얻을 수가 없다. 포트는 열전도가 느리고 약하기 때문에 수성이 침체되고 수증기가 증발하지를 않는다. 다만 물을 뜨겁게 하는 정도이니 진수를 얻을 수가 없다. 그러나 편리하기로는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 좋은차 마시는 법
아침에 차 한잔 달여 마시는 여가 ! …
어떤 사람은 바뿐 사회생활에서 무슨 여가로 그런 여유를 부리겠느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보통 때의 하루를 살펴보면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정서가 없어서 한가한 마음의 공간을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가 바쁘고 각박하고 불완전할수록 차 한잔하는 공간적 여유를 가지고 지내온 어제의 일과 다가올 내일의 일등을 성찰하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時俗의 흐름대로 하루 하루를 맡겨서 흘러가 버리면 스스로의 내면의 정서와 개성은 영영 피어나 꽃피울 날이 없을 것입니다. 차의 빛깔 향기 맛이 좋은차 한잔을 달여 마실려면 작게는 4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하고 크게는 9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작게 4가지 조건은 첫째는 잘 정제된 차를 구하는 일이며 둘째는 좋은 물을 구하는 일이며 셋째는 물을 잘달여서 점다하는 일이며 넷째는 차를 마시기에 적당하고 운치가 있는 차그릇을 구하는 일입니다. 크게 아홉가지의 조건은 육우다인이 다경에서 밝혓듯이 첫째는 차를 만드는 일이며, 둘째는 차를 감별하는 일이며, 셋째는 그릇을 선택하는 일, 넷째는 불길을 살피는 일, 다섯째는 좋은 물을 구하는일과 간수하는 일, 여섯째는 차를 굽는 일, 일곱째는 차 가루를 내는 일, 여덟째는 차를 달이는 일, 아홉째는 차를 마시는 일입니다. 茶家에서 불을 피워서 물을 달이는 것을 불길 살피기(火候)라고 하는데 팽가(烹家: 차달이는 집)에서 제일의 요지가 됩니다. 風爐(밑으로 바람이 통하도록 되어있는 불피우는 용기)나 화로(밑으로 바람이 통할 수 없는 불피우는 용기)에 불을 피워서 불이 다 피워졌을 때 탕관(물 끓이는 주전자)이나 차솥을 올려 놓아야 합니다. 불을 피우기 전에 올려 놓고 불울 피우면 연기 냄새가 물에 훈습되어 쓸 수가 없게 되며 불길이 순조롭게 조화되지 않아서 잘 익게 달여 지지 않습니다. 불을 처음 피울 때에는 부채질을 가볍고 천천히 하다가 불이 붙어 타오를 때에 무겁게 빨리하여 삽시간에 전체에 불길이 오르게 한다음 찻물을 올려 놓습니다. 올려놓고 잠시동안 눈을 내려 깔고 지켜보다가 불길이 약간 가라앉으면 다시 부채질을 가볍게 천천히 하다가 물이 달려지는 소리가 점차로 크게 들려오면 무겁고 세게 빨리합니다. 그 모양이 천리마가 천천히 걷다가 주인의 채찍에 발굽을 박차며 질풍처럼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물달임을 문무지후(文武之候)라고 합니다. 文은 부드럽다, 가볍다, 약하다, 느리다 는 뜻으로 가벼운 부채질을 하여 약하게 일어나는 바람을 文風이라고 하며 가볍고 약한 바람으로 부드럽고 약하게 일어나는 불길을 文火라고 합니다. 武는 강하다, 무겁다, 빠르다는 뜻으로 무겁게 부채질을 하여 강하게 일어나는 바람을 武風이라고 하며 무겁고 강한 바람으로 세고 크게 일어나는 불길을 武火라고 합니다. 찻물을 달일 때에 문화가 지나치면 물의 성품이 부드러워지고 가라 앉아서 물의 기운이 연약해지고 차를 점다하면 차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발현되지 못하며, 무화가 지나치면 물의 성품이 제압되어 (물의 기운이 소멸됨) 역시 차의 신령스러운 빛깔 향기 기운 맛을 발현시키지 못합니다. 차를 달일 때는 반드시 문과 무의 불길이 잘 조화되어 인온(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화합하여 어리는 모양)이 서리어 충실하게 조화 되어야 합니다. 물을 달이는 일에 부드럽고 강한 것이 서로 순서잇게 조화되어야 제 빛깔제 향기 제 효능 제 맛을 내어 본래의 제 몫을 해내듯이 인생의 삶에 있어서도 부드러운 성품을 지닌 여성과 강한 성품을 지닌 남성이 서로 적적한 조화가 있어야 한가정을 원만하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강하고 용맹스러운 것만 취하고 부드러운 것을 관용하지 않으며 부드럽고 여린것만을 취하고 강하고 용맹스러움을 관용하지 않으면 한쪽에 편중되어 원만하게 조화를 이룬 성취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마치 그것은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고음만 다루고 저음만으 다루는 것과 같아서 인생살이가 매우 딱딱하고 건조하여 재미없는 삶이 될 것이며 본성을 망각하는 것은 자기 본래의 특성과 매력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한 인격을 형성하는데 있어서도 먼저 타고난 특성을 잘 다듬고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하여 조화롭게 이루었을 때 제빛깔 제향기 제역량 제맛으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또 그것은 강한 것이 부드러운 것의 위에 서지도 않으며,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 위에 서지도 않은 것입니다. 당나라 소이(蘇痍)의 십육탕품에 '찻물을 달이는 일은 차의 목숨을 맡기는 일이므로 찻물을 함부로 다루면 진귀한 명품의 차일지라도 보통품이 되고 만다' 라고 하였습니다. 잘 정재된 차가 있고 좋은 찻물이 있을지라도 찻물을 잘 달이지 못하면 차는 한갓 맹탕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옛부터 차인들은 찻물 달이는 일을 숭고하게 다루어 왔습니다. 문화와 무화의 화후가 균등하게 조화되면 달여지는 물에는 세가지 큰 변화와 열다섯 가지의 ?br> 邦?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세가지의 큰 변화는 모양의 변화, 소리의 변화, 기운의 변화 인데 모양의 변화는 끓는 솥이나 탕관 안에서 분별되는 변화이므로 안의 변화라고 하며, 소리의 변화는 끓는 솥 밖에서 분별되는 변화이므로 밖의변화 라고 하며, 기운의 변화는 물이 달여지는 물기운의 정도를 미첩하게 살펴서 분별하는 것이므로 민첩한 변화 라고 합니다. 모양의 변화는 불기운에 물이 달여지면서 일어나는 기포를 말함인데 각각 이름 지어진 것의 그 모양과 같다하여 이름을 한 것입니다. 처음 일어나는 물방울의 모양은 게눈 새우눈 고기눈 연이음 구슬의 순서로 일어나며 또 솟구치는 끓음 타고 넘는 물결 북치는 물결 소리로 이어지는데 이 세가지의 변화는 모양의 변화와 소리의 변화 모두 해당 됩니다. 소리의 변화는 첫소리 굴림소리 떨림소리 달리는 소리의 순서로 이어지며 기운의 변환는 서리는 김한꾸리 김두꾸리 세네꾸리 여러꾸리의 순서로 이어집니다. 모양의 변화가 4가지, 소리의 변화가 4가지, 기운의 변화가 4가지 모양과 소리의 변화를 겸한 것이 3가지 모두 15가지 변화가 됩니다. 15가지 변화를 차례로 엮어보면 처음변화는 모양의 변화부터 일어납니다. 물이 달여지는 그릇에 불기운이 더해지면 게눈이 여러게 되는데 물의 기포가 그릇의 가장자리에 붙어서 있는 게의 눈처럼 보입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두번째의 작은 소리가 작고 가늘고 맑게 첫소리가 울려오며 세번째는 새우눈 처럼 생긴 물방울이 머리를 흔들며 흩어져서 떠오르며 네번째는 조금 더 큰 고기눈처럼 생긴 물방울이 드문 드문 여기저기서 떠오르며 다섯번째는 김한주리가, 여섯번째는 김두꾸리가 비온 뒤 앞산의 아지랑이처럼 아물아물 피어오르며 일곱번째는 굴림의 소리가 마치 작은 수레바퀴가 굴르는듯이 울려오며 여덟번째는 떨리는 소리가 마치 힘센 장수가 네활개를 치며 걸어 오는 듯한 소리가 울려오며 아홉번째는 김서너꾸리가 잘 익는 내음을 흘리며 피어오르며 열번째는 연이음 구슬이 마치 헤아릴 수 없는 백팔염주알이 흩어져서 솟아오르듯이 솟아오르며 열한번째는 김여러꾸리가 다 끓어진 밥솥에서 피어나는 김서리 처럼 피어오르며 열두번째는 달리는 소리 인데 여러 마리의 말들이 떼를 지어 달리는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작고 가는 첫소리에서 점차로 소리가 커져서 달리는 소리에 이르르면 가장크게 울려옵니다. 잠시 이 순간이 지나가면 소리가 굵어지면서 잦아지는데 이때가 열네번째의 타고 넘는 물결인데 바다의 캔뎔?서로 타고 넘는듯 모양과 소리가 들리며 열다섯번째는 북치는 물결 소리가 옛적 싸움터에서 북치는 소리처럼 크고 맹렬하게 들려옵니다. 이 때를 순숙(純熟: 잘 익었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순숙이 지나치면 노수(老水)가 되는데 이 때의 노수는 때가 넘고 너무 끓인 나물국 처럼 된 것을 말합니다. 유심히 살피어서 때가 넘지 않게 불길을 낮추거나 내려놓아 피어오르는 김서리가 가시어 뜸이 들게 하여야 합니다. 달인 물 뜸들이는 때를 결숙(結熟: 인온이 잘 조화되었다는 뜻)이라고 하며 완전히 뜸이 들어서 열탕(熱湯: 80도의 온도)을 할 즈음이 되었을 때를 경숙(經熟: 탕을 할 즈음에 이르렀다는 뜻)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열다섯가지의 변화와 삼숙이 완전히 된 물은 물의 인온이 온화하게 조화된 물중의 물이어서 茶神이 온전히 발현될 수 있습니다. 당나라의 나대경 거사는 첫소리에서 달리는 소리의 과정까지를 '솔바람소리' 라고 하고 타고 넘는 물결과 북치는 물결소리에 이르러 잦아지는 소리를 '전나무 가지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라고 하였습니다. 이 열다섯가지의 변화를 '솔바람 소리 전나무가지에 비오는 소리' (松風檜雨)라고 간결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옛 다인들의 자취를 더듬어 보면 찻물 달이는 일을 대자연 속에 잇는 사물이나 변화무쌍한 조화에 잇대어서 물이 달여지는 과정과 그 정도를 조절하였으며 운치있는 풍류를 즐기며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였으며 슬프고 즐거운 감정의 변화를 화애하여 그윽한 道心에 젖어 들어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 깊은 이치를 터득하여 인격도야를 이룬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전통 행다법(다도)
차는 색(色) 향(香) 미(味) 등 3요소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이 3가지 요소가 어우러져야만 차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행다(行茶)법 즉 다도(茶道)가 중시되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행다법은 불을 지피고 물을 잘 익혀서 정성들여 만든 차를 간맞게 하여 마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 평범한 일체의 행위들이 정신을 가다듬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행다법을 하나의 도(道)로 승화시켜 선인들은 다도라 칭했다.
다성 초의는 차의 기본을 `겸손'과 `덕행'이라고 했다. 차를 달이는 모든 과정에 정신을 곧추세우지 않으면 색과 향은 물론 맛도 바로 내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 요즈음의 우리 다도는 어떤가. 우리의 전통 행다법 즉, 차 마시는 예절은 중국과 일본과는 조금 다르다.
전국 각지의 다향제에서 선 보인 우리의 전통행다법을 알아보자. 전다(前茶) 찻상을 바로 배열하고 숙우(물 식힘 사발)에 탕수를 받아 다관(차 주전자)에 부어 다관을 데운다. 다관의 탕수를 찻잔에 나누어 따라 찻잔을 데워 둔다. 다시 차를 우릴 탕수를 숙우에 받아서 식힌다.
차넣기(投茶)
차넣기는 계절에 따라 방법을 달리해야 하는데 증제차(옥로차, 말차, 옥록차, 은시옥로차 등)는 덖음차(녹차, 마차, 주차, 옹정차 등)보다 많은 양을 넣어야 한다. 보통 1인분 기준으로 2-3g이고 사람 수가 증가하면 조금 적게 넣어도 좋다.
투다법은 물의 온도조절과도 관계가 있다. 크게 3가지 방법이 있다. 하절기에는 다관에 먼저 탕수를 붓고 차를 넣는 상투법을, 봄과 가을에는 탕수의 1/2을 먼저 다관에 붓고 차를 넣은 뒤 나머지 탕수를 넣는 중투법을, 겨울에는 차를 먼저 넣고 탕수를 붓는 하투법을 주로 사용한다.
차우리기(泡法)
차가 우러나는 동안 더운 물로 덮히고 있던 찻잔의 물을 퇴수기에 버린다. 이때 차수건을 이용해 찻잔입술의 물기를 훔쳐 내거나 흘린 물을 닦는다.
차따르기(注法)
차가 알맞게 우러났을 때 차를 잔에다 골고루 나누어 따른다. 차는 잔마다 3번에 나누어 따르되 팽주 (차를 다리는 사람)의 잔을 기준으로 1-2-3, 3-2-1, 다시 1-2-3의 순으로 반복해 따르고 양은 7부를 넘지 않도록 한다. 차를 3번에 걸쳐 나누어 따르는 것은 차의 농도를 같이 하기 위함이다.
시자가 잔에 따른 차를 연장자 순으로 손님들에게 가져다 놓고 `드십시오'라고 권한다. 이때 손님들은 찻잔을 받지않고 고마움을 표시하면 된다.
차 마시기
주인(팽주)과 손님이 가벼운 인사를 나눈뒤 찻잔을 든다. 팽주는 차를 한모금 마신뒤 두번째 차를 낼 탕수를 숙우에 따라 식혀둔다. 차는 세번으로 나눠 마시는데 마실 때 소리를 내서는 안된다. 잎차를 마실 때는 잔받침은 그대로 두고 두손으로 잔을 들어 오른손으로 잔을 잡고 왼손으로 잔을 받친다. 잔이 크면 두손으로 감싸 쥐고 두세 번에 나누어 마신다. 말차를 마실 때는 손님이 많을 경우 다 같이 마시지 않고 주인이 주는 대로 마신다. 찻잔은 두손으로 안전하게 감싸쥐고 천천히 한꺼번에 마신다.
다과
첫번째 차를 손님들에게 낸뒤 팽주는 두번째 차를 준비하고 시자는 손님들에게 다과를 권한다. 다과는 먼저 차의 향기와 맛?본 뒤에 먹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말차를 마실 때는 식후가 아니면 위장을 자극하므로 다과를 먼저 먹고 차를 마신다. 다과는 웃손님부터 드리는 것이 예의이다.
두번째 차(再茶)
두번째 차가 우러나는 동안 주인과 손님은 다과를 들며 정담을 나눈다. 또 시자는 손님의 찻잔이 바뀌지 않도록 거둬들인다. 우러난 차를 숙우에 따루어 각 잔에 나누어도 좋고 손님의 의사에 따라 원하면 두잔, 석잔을 더 마셔도 좋다.
세번째 차(三茶)
두번째 차와 같은 방법으로 행한다.
1.茶具 다구는 차를 마시기 위해 갖추어야할 도구들을 가리킵니다. 기본적인 다구(茶器)에서부터 찻상, 다반, 차시, 다포 등을 통틀어 다구라고 합니다.
2.다구의 명칭과 쓰임새
*다관- 차를 우려내는 주전자입니다.
*찻잔- 다관에서 우러난 차를 따라 마시는 잔입니다.
*숙우- 다관에 물을 붓기 전에 적당한 온도로 식게하는 그릇입니다.
*기본 다기세트- 5,3,2,1인용으로 구성됩니다.
*찻상, 다반- 다기를 올려놓는 상과 소반을 가리킵니다.
*다포- 찻상과 다반 위에 덮고 그 위에 다기를 올리는 수건입니다.
*차시- 마른 차잎을 다관에 일정량 떠 넣을 때 사용하는 숟가락입니다.
*차탁- 잔받침입니다.
*개인다기- 편리함을 위해 고안된 잔,거름망,잔 뚜껑으로 구성된 다기입니다.
*여행기- 여행을 위해 부피를 줄인 작은 개인용, 다인용 다기입니다.
*자완- 주로 가루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막사발입니다.
*다선- 가루차를 저을 때 사용하는 거품기입니다.
♬. 다식
일본에서는 초탕을 마시고 나면 다과(茶菓)를 든다. 다과는 주과자(主菓子),건과자(干菓子),생과자(生菓子)로 나뉘어지며 종류는 약300종에 달한다.
중국에서도 초탕과 재탕사이에 다식을 내 놓는다. 중국의 다식은 땅콩,해바라기씨,호박씨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식을 드는데,오래된 기록은 아마도 고려의 이색(李穡,1328~1396)이 읊은 시로 보여진다. 종덕 부추가 팔관 개복과 다식을 보내다 짧게 씹으니 단맛이 이와 혀에서 감도네 다식의 기원(起源)에 대해서는 이익(李瀷,1681~1763)이[성호사설](星湖僿說)의 [다식]조에서 고증을 시도하였다. [제사의 예전에는 다식이 있다. 쌀가루를 꿀에 개어서 나무통속에 넣고 둥근 떡을 빚는데 사람들은 그 이름과 뜻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것을 송나라 대.소 용봉단차(龍鳳團茶)의 와전(訛轉)이라고 일컫는다.
차는 처음에 탕으로 달였다. 가례(家禮)에는 점다(點茶)를 쓰기때문에 찻가루를 잔 속에 넣고 끓인 물을 끼얹은 다음 차솔로 휘저었다 오늘날 제사에 쓰이는 다식은 곧 점다의 뜻인데 이름만 남고 물건이 바뀐 것이다. 여염집에서는 간혹 마른밤을 가루내어 대신 쓰는 경우도 있다.
물고기,새.꽃잎 모양으로도 만드는데 용단차가 와전된 것으로 보여진다. 다산(茶山)정약용도 [아언각비](雅言覺非)의[인단](印團)조에서 다식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인단(印團)을 속어(俗語)로는 다식이라고 일컫는다. 마른밤,깨,솔꽃가루(松花)를 가루내어 꿀에 개어 목함(木陷)에 넣고 떡을 빚는데,꽃잎,물고기,나비,모양으로 박아낸다
. 성옹은 이르기를[용단(龍團).봉단(鳳團)은 차떡(茶餠)을 박아내는 모양이다.]라고 하셨다. 인단의 제식은 다가(茶家) 에서 취한것이기에 다식이라고 한다.]
▲주요 차문화유적
♬. 차와 선인
1.최치원
신라 말엽의 학자로 자는 고운이며 해동공자라 일컬었다. 13살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많은 벼슬을 받았으며, 29세에 귀국하여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들을 지내다가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고 외직을 자청하여 태수를 지냈다. 894년에 시무 10여조를 상소하였으며 그 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를 비관하여 각지를 유람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그가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아무도 모르나 이인로는 '파한집'에서 "그는 아마 신선이 되어 간 것일 게다"라고 하였다. 그가 당나라에서 벼슬할 때 차와 약을 사서 고국에 부치겠다는 편지가 전해지며 당시에 햇차를 받고 감사하는 글이 아래와 같이 전해진다.
2.이규보
고려 중엽의 대 문장가로 호를 백운산인 혹은 백운거사라 하였다. 당시에는 글을 읽고 씀에 중국의 모방이 많았으나 기개 있고 강직한 이규보는 그렇지 않았으며,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의 이야기를 서사시로 엮는 등 민족정신에 바탕을 두고 우리 것을 글로 썼다. 최씨의 무단정치로 한때 뜻을 펴지 못하였으나 나중에는 순탄한 생애를 보내어 집현전 대학사, 문하시랑 평장사 등의 벼슬을 했다. 아래의 시는 그가 산림에 묻혀 차 마시며 지내는 생활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출입을 하지 않으니 오는 손은 없고 차를 끓여 먹자고 중하고나 약속하네 쟁기 메고 다시 농사 배우니 밭에 돌아갈 날 있으라라 가난하니 빨리 늙는 것이 좋고 한가하니 더디 지는 해가 싫구나 점차로 늙고 병들어가니 등한하고 게으름 이 뿐 아니라(중략)
3.정몽주
호는 포은이며 고려말의 충신이자 유학자로서 24살때 과거의 삼장에 거듭 장원급제 하였다. 개성에 오부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유학의 진흥을 꾀하여 부패한 불교의 폐단을 없애고자 하였고 명나라와의 외교에 힘쓰다가 한때 유배생활도 하였다. 성미가 호방하고 매서웠으며 충효로 일관하였고, 그의 시문도 일가를 이루어 '포은문집'이 전해진다. 이성계의 문병을 갔다가, 이방원이 부른 '하여가'에 대해 '단심가'로 답하고 돌아오는 길에 개성에 있는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게 피살되었다. - 돌솥에 차 끓이다 - 나라의 은혜에 몸 바치지 못한 늙은 서생이 차 마시는 버릇으로 세상일을 잊는구나 눈보라 휘날리는 밤에 깊은 재실에 홀로 누워 돌솥의 솔바람소리 즐기어 듣네
4.김정희
서화가이며 문신으로 호는 완당, 추사, 예당, 시암, 파파, 노과 외에 차를 무척 좋아하여 다로, 고정실주인, 승설차의 이름을 본딴 승설학인 등이 있다. 충청우도암행어사, 성균관대사성, 이조참판 등을 엮임하였고, 학문에서는 실학파에 속했으며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를 대성시켰는데, 특히 예서와 행서에서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추사는 30살에 다산의 아들 유산의 소개로 동갑인 초의를 만나 특히 친교가 두터웠으며, 초의로부터 해마다 차를 얻어 마셨다. 추사가 제주도에 귀양갔을 때 초의는 직접 찾아가 같이 지내며 차나무도 심고 참선도 하였다. 고요히 앉았노라니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기 시작하는구나 신비한 그 어느 때에 물이 흐르고 꽃이 열리네
경남 하동군 화개면 봉암리를 소재로 하고 있고, 초의선사가 다신전을 등초한 곳으로 다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85년 11월경에는 乳泉이 나왔다고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칠불사까지는 쌍계사에서 신흥까지 버스로 가서 칠불사는 4km, 또한 화개에서 쌍계사까지 가는 길은 십리벚꽃길이며, 4월이 되면 십리길이 벚꽃으로 만발하여 몹시 아름답다
칠불사는 차인들의 수련장소로도 자주 제공되고 있다.한국의 茶聖 초의선사가 40여년간 居하면서 茶의 책을 남긴 一枝庵, 일지암이 있는 곳은 해남 大興寺 경내이다. 이엉을 얹은 초가지붕의 아담한 암자. 그 옆의 조그만 법당. 이것이 차 성지 일지암의 전부였다. 그냥 덩그마니 서 있는 암자보다도 암자뒤쪽에 흐르는 乳泉과 그 둘레의 차나무들, 법당앞에 활짝 핀 매화의 향기가 차 성지의 위용을 더해준다♬. 주요 차문화 유적
♬. 칠불사
칠불사 경남 하동군 화개면 봉암리를 소재로 하고 있는 칠불사는
초의선사가 다신전을 등초한 곳으로 다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고, 지난 85년 11월경에는 乳泉이 나왔다고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유천이 나온 유래를 보면 자웅스님이 3박4일간을 잠도 자지않고 정진하였는데 그후 어느날 부터인가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는 것. 다른 스님한테 이 냄새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는데 다른 스님은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하자 이상하게 여긴 자웅스님은 그 냄새가 나는 우물 족으로 가보니 갑자기 우물에서 우유빛의 물이 샘속더라는 것이다. 절에서는 무슨 불길한 일이 생기려는가 보다고까지 근심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설봉 권윤홍선생이 이 이얘기를 듣고 무릎을 탁 치면서 이것이 바로 유천이라 했다 한다. 이로 인하여 차인들에게는 더욱 관심이 가는 곳이기도 한 칠불사는 차인들의 수련장소로도 자주 제공되고 있다. 칠불사까지는 쌍계사에서 신흥까지 버스로 가서 칠불사는 4km, 또한 화개에서 쌍계사까지 가는 길은 십리벚꽃길이며, 4월이 되면 십리길이 벚꽃으로 만발하여 몹시 아름답다. 칠불사에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많다.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가 16세가 되어 혼인을 서두르게 되었으나, 남달리 재주가 많고 영특하여 장안에 배우자감이 없었다고 한다. 공주의 오라버니가 되는 보옥선사가 관을 보니, 가야국의 김수로왕이 배필의 인연으로 갖고 있었다 하는데 기까운 곳도 아니고 멀리 타국으로 어린 공주를 시집보내는 것이 몹시 가엾은 생각이들어 공주의 마음이 어떠한가 떠보니 공주가 영악하게도 「부처님의 말씀이 전하여진 나라인가」를 묻더란다. 아직 미치지못한 곳이라 대답하니 「그럼 내가 출가함으로써 부처님의 혜광이 미치도록 하겠다.」고 하여 안심하고 쾌히 혼인을 서둘렀다. 인도의 공주였던 허왕후는 오빠인 보옥선사를 따라 가야에 와서 김수로왕과 혼인하여 10왕자를 낳았다. 왕자 중 큰아들은 왕위를 물려받고 둘째,셋째는 멀리 타국에서 홀 어머니가 외롭다하여 어머니성을 따랐고 넷째부터 막내까지 7왕자는 보옥선사를 따라 수도의 길에 올랐다. 처음에 이들 7왕자가 들어간 곳은 가야산 정상에서 약 50m 내려온 지점에서였다고 하는데 아직 칠불의 석탑이 남아있다고 한다. 한 자리에 앉아 3년간 용맹전진을 하여도 왠지 불성을 얻지 못하자, 보옥선사는 이상하다 여겨 다시 정좌하고 관을 보니 여기가 인연터가 아니라 지리산 지금의 칠불사터가 바로 7왕자의 인연터인 것을 알아 바삐 지리산으로 들어왔다 한다. 다시 3년간의 피나는 수도 끝에 7왕자가 성불하였는데 김수로왕은 이를 크게 기뻐하여 국력을 기우려 큰 절을 지어 칠불사라 이름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칠불사에는 유서 깊은 곳도 많다. 7왕자가 수도할 적에 어머니 허왕후가 아들들이 보고싶어 자주 이곳에 들렀으나 보옥선사가 아들의 불심을 어지럽힌다하여 만나지 못하게 하였는데 허왕후는 범왕 부근에 임시궁궐을 짓고 머물면서까지 계속찾아 나섰으나 번번이 거절당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던 어느날 허왕후가 다시 찾아왔는데 「네 아들이 성불했으니 이제는 만나도 좋다.」고 하여 기뻐 어쩔 줄 모르다 하늘에서 「연못을 보면 만나리라」는 소리가 들려 연못을 들여다 보니 황금빛 가사를 걸친 일곱아들이 공중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고한다. 이 연못은 절 아래쪽 150m지점에 있는 影池 인데 6.25때 허물어진 것을 최근 보수했다. 이런 전설들로 인하여 이곳 지명에는 김수로왕과 왕후에 관련된 이름이 많다 "범왕부락"도 당시 김수로왕이 머물렀다는 데서 연유되었고, "天妃村"은 허왕후의 임시궁궐이 있던 곳이다. 범왕부락 오른쪽은 수로왕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저자(시장) 서는 것을 보았다하여 "저자골" 이라 부르며 허왕후가 어두워 질 때 당도하여 어름어름 했다고 "어름골" 또는 "목통"이라 부르는 곳도 있다. 수도승으로서 반드시 행하여야할 것이 참선인데 칠불사의 亞字房은 참선수도하기에 매우 적적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 아자방은 1976년 경남지방 문화재 144호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지만 한번 불을 때면 49일 동안 그 열기가 식지 않는다 하여 세계건축사전에 기록될 만큼 가치가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라 52대 효공왕때 구들도사로 불리우던 운공선사가 벽안당에 구들을 놓으면서 아자형으로 축조한 것이 이것인데 방고래가 8m에 달하는 일종의 이중 온돌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아자방은 여순반란사건때 소실되어 그 터만 함석으로 덮어 보호해 오다가 33년만인 1982년 5월에 복원했다. 아자방은 이제 수도승들에게 개방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정진하여 도를 깨친 승려들이 예로부터 많았다고 한다. 여기에서 수도하는 승려라면 누구나 지켜야될 3대 규칙이 있는데 첫째 묵언, 둘째 장좌불와, 셋째 하루에 한끼만 식사하는 1종식 등이라 한다. 천년간을 단 한번도 이 규칙을 어긴적이 없는 이 선방은 수도승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는 것. 칠불사 보재루에 보면
어떤 스님이 돌을 등에 짊어지고 가는데 호랑이가 뒤에서 그 돌을 떠받치고 있는 그림이 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아자방과 연관된다. 옛날 어떤 스님이 쌍계사와 칠불사를 오가며 수도를 하였는데 밤에는 장좌불와의 규칙을 반드시 지켜야하는 아자방에서 참선을 하고 낮에는 잠을 쫓기 위하여 큰 돌을 등에 짊어지고 쌍계사까지 행선을 하였다고 한다. 매일 쌍계사와 칠불사의 10km나 되는 험한 길을 등에 돌을 짊어지고 오가던 중 어느날 갑자기 돌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깜짝놀라 뒤를 돌아다 보니 호랑이가 그 돌을 떠받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아자방이 개방되면 많은 수도승이 앞을 다투어 찾아 올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곳의 형태 자체가 누울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칠불사에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 많다. 신라3대 악성의 한사람인 옥보고가 왕산악 이후의 琴法을 정리하고 작곡을 했다는 옥보대는 신라 때 사찰 벼슬을 지낸 공영의 아들로 태어난 옥보고가 칠불암 운상원에 들어가 50년간 현금공부를 한 뒤 30곡을 지었으며 그의 현금기능을 귀금에게 전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운상원은 옥보대와 나란히 서 있는데 신라시대 국선인 화랑들의 순례성지였다고 전해온다. 옛 문헌에 보면 칠불사에는 비로법전, 약사석불, 고승당,부휴선사 치아탑, 추월능선사의 부도가 있다고 하나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고 또 열한동의 건물이 잇대어 있어서 비를 맞지 않고서도 다닐 수 있었다 하나 여순반란사건(1948.12.15)때 소실된 후 현재는 문수전, 보광전, 대웅전, 보재루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칠불사는 78년부터 복원되기 시작 했는데 칠불사의 특징 중의 하나는 불상이 금부처가 아니라 향나무라는 것. 향나무를 깎아 만든 불상으로 특이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 일지암
성지 일지암 한국의 茶聖 초의선사가 40여년간 居하면서 茶의 책을 남긴 一枝庵, 일지암이 있는 곳은 해남 大興寺 경내이다. 북쪽에 비해 산세가 그리 험악하지 않은 두륜산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것은 서기 544년 신라 진흥왕5년 진흥왕의 어머니 소지부인의 뜻에 따라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대흥사는 그후 일곱차례나 중창을 거듭해온 유서 깊은 사찰로 임진왜란때 구국의 대업을 이룩한 서산대사의 유물과 진영을 봉안한 성역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피안교,반야교를 건너 대웅전,천불전,표충사로 올라가는 동안 두륜산 곳곳에 아름들이 커다란 나무밑에 빽빽히 자리잡고 있는 산죽은 두륜산의 역사가 절개와 충절로 이어져 왔음을 암시하는 듯 했다. 『우주는 유구한데 인생은 限이 있네. 한번 태어난 목숨 다시 고쳐 못 얻고늘, 평생에 구세제도를 다해봄이 어떠리』 언제 누가 쓴 것인지는 모르지만 길한쪽에 묵묵히 서 있는 石文이 눈길을 끈다.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고 출가하여 불가에 발을들여논 한 스님이 쓴 것이리라. 이윽고 일지암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어쩌면 초라하기까지 한 암자의 모습이다. 이엉을 얹은 초가지붕의 아담한 암자. 그 옆의 조그만 법당. 이것이 차 성지 일지암의 전부였다. 그냥 덩그마니 서 있는 암자보다도 암자뒤쪽에 흐르는 乳泉과 그 둘레의 차나무들, 법당앞에 활짝 핀 매화의 향기가 차 성지의 위용을 더해준다. 『나 사는곳(일지암) 에는 맑고 유천이 있어 秀碧 百壽湯이 이루어져도 목멱산 아래 해옹에게 어이 보내 드릴가.』 초의선사가 일생동안 즐겨 마시던 유천옆에 서니 금방 이라도 초의선사가 찻물을 받으러 나타날 것만 같다. 일지암 주지스님은 『一枝庵이란 이름이 풍수지리적으로 일지암은 두륜산에 뻗어있는 줄기중의 한가지에 속하기 때문에 일지암이라고 이름을 붙였겠지요. 하지만 莊子의 말중에 一枝在安身 이란 말이 있는데 그것에서 따온 이름이 아닌가 합니다. 크고 넓은 세상에서 가지(一枝) 하나면 자신의 몸이 편안히 깃들 수 있다는 뜻이지요. 초의선사의 가난한 마음, 청렴한 자신을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그뜻을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일지암에는 붉은 토란과 빨간 연꽃이 있어 자우홍련사, 또는 紫芋山房 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 신라시대 다도문화
신라시대 차 생활을 보여주는 것으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충담(忠談)의 안민가(安民歌)에 얽힌 설화가 유명하다. 신라 경덕왕 때 국선(國仙)이자 화랑이었던 기파랑(耆婆郞)은 성품이 고결하고 인품이 좋았는데 충담은 그를 기리는 노래를 지었다. 헤치고 나타난 달 흰구름 따라 흐르니 새파란 시내에 기파랑 모습 잠기네. 일오천(逸烏川) 조약돌에서 랑(郞)의 지니신 마음 읽으니 아아, 드높은 잦나무가지 서리모를 그 씩씩함이여. 이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는 당시의 유행가가 되어 임금도 신하도 백성도 즐겨 노래했다. 그러던 가운데 경덕왕 24년 삼월 삼짇날에 경주의 귀정문(歸正門) 누상에서 예전에 없던 다회가 벌어졌다. 경덕왕은 문루에 올라 나라를 잘 다스릴 방법을 깊이 생각하다가 신하들에게 훌륭한 스님을 모셔오라고 명했다. 이에 신하들이 스님을 모셔 오자 왕은 몇 마디 나누지 않고 자기가 찾는 스님이 아니라고 돌려 보냈다. 조금후에 남쪽에서 걸어오는 한 스님이 보였는데 옷은 다 떨어진 누더기요, 등에는 벚나무통을 짊어 졌지만 왕은 이 스님을 누상으로 모셨다. 스님의 통 속에는 차(茶)와 다구(茶具)가 들어 있었다. 왕이 물었다. "스님은 누구시요?" "충담이라 합니다." 왕은 기파랑가를 지은 충담 스님임을 알고 기뻐하며 예를 갖추고 다시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입니까?" "소승은 3월3일과 9월9일이 되면 언제나 남산 삼화령(三花嶺)의 미륵세존께 차를 달여 공양합니다. 오늘도 차를 공양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나에게도 그 차를 한 잔 나누어 줄 수 있겠소?" 스님은 정성껏 차를 달여 왕에게 드렸는데 왕은 차맛의 훌륭함과 그 찻잔에서 나는 기이한 향기를 극찬하며 말했다. "스님께서는 일찍이 기파랑을 찬미한 사뇌가(詞腦歌)를 지었는데 그 뜻이 매우 높다던데 과연 그러하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하여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하는 노래를 지어 주시오." 그러자 충담은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바쳤다.
천지는 어머니요,
임금은 어버이 백성은 자식이어라.
왕이 왕다웁고 백성이 백성다우면
백성은 편안하고 나라는 번영하리라.
경덕왕은 크게 기뻐하며 충담을 왕사(王師)로 봉하였으나 충담은 사양하며 끝내 받지 않았다. 여기서 충담이 메고 다녔던 다구가 담긴 벚나무통이 [다경]에 쓰여 있는 당나라의 다구와 다르고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흥덕왕 3년조'에 적힌 내용을 보면 "흥덕왕 3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김대렴(金大廉)이 차종자를 가지고 왔다.
차는 선덕왕 때부터 있어 왔는데 이 때에 와서 아주 성행하였다." 고 하여 차가 우리 고유의 것이라는 주장도 가능해진다.
♬. 고려시대의 다도문화
신라의 차 생활은 고려로 이어지면서 불교문화의 발전과 함께 더널리 퍼졌고 가장 사랑받는 기호음료가 되었다. 특히 고려때에는 불교가 성행하여 역대 임금이 불타의 제자를 자처했던 만큼, 임금이 손수 불공을 위한 말차(沫茶)를 제조했던 일도 흔했다고 [고려사]는 전한다. 승려들이 즐기는 차는 궁중의 차가 되었고 다시 온 나라 안에 쉽게 번졌다. 모든 국가의식에 진차의례 (進茶儀禮: 주과식선을 올리기 전에 임금께 차를 올리는 의식)가 앞섰고 궁정에는 다방(茶房)이라는 차 전담 관청이 생겼다. 절 주위에는 차 농사를 전문으로 하는 다촌(茶村)이 번성하여 절에서 필요한 차를 가꾸었다. 고려 시대의 차 생활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자료로 흔히 [고려도경(高麗圖經)]이 인용된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와서 한 달쯤 송도에 머물렀던 서긍의 생생한 고려견문록이기 때문이다. 서긍은 자신이 어느 관리의 집에 초대를 받아 그 집에서 차를 대접받았던 일을 이렇게 적고있다. "초대 받은 일행이 나란히 앉자 주인의 아들이 다과를 올렸고 예쁜 젊은이가 찻잔을 돌렸다. 왼손에 찻주전자를 들고 오른손으로 차선을 끌었다. 윗자리부터 차를 따르기 시작하여 아랫자리에 이르는 동안 조심하여 전혀 난잡함이 없었다." "하루에 세번씩 차를 내오고 차에 이어 더운 물을 내오는데 고려 사람들은 더운 물을 약이라고 하며 손님이 그 차를 다 마시면 기뻐하고 다 마시지 아니하면 주인을 방만히 여김이라 하여 불쾌함을 나타낸다. 그래서 억지로 차를 마신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술회했다. 고려 시대의 일품차로는 유차(孺茶)를 빼놓을 수 없다. 유차는 글자 그대로 어린차라는 뜻이니 작설차보다도 더 작은 잎이었던 것 같다. 이른 봄 잔설 속에 싹튼 새순을 따 만드는 차라 그 향기와 맛이 일품이었다. 경남 화개 지방 같은 곳에서 따서 정제하여 바로 왕실에 진상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좀처럼 구할수 없었지만 가끔 큰 승려에게 하사하는 경우가 있어서 다인이자 풍류시인이었던 이규보(李奎報)가 이런 시를 남기게 했다. 인생은 온갖 맛을 즐김도 귀중하니 사람이 사람을 도와 절후(節候)를 바꾸네. 봄에 자라고 가을에 성숙함이 당연한 이치이니 이에 어긋나면 그것은 괴상한 일. 그러나 근대의 습속은 기괴함을 좋아하니 하늘마저 인정의 즐겨함을 따르는구나. 시냇가 찻잎사귀 이른 봄에 싹트더니 황금 같은 여린 움 눈 속에 자랐네. 남방 사람 맹수도 두려워하지 않고 험난함 무릅쓰고 칡덩쿨 휘어잡아 간신히 채차하여 불에 쪄 단차(團茶) 만드니 남보다 앞서 임금님께 드릴 진품 선사는 어디에서 이런 귀중품 얻었는가. 손에 닿자 향기가 코를 찌르고 활활 타는 화롯불에 손수 차를 달여 보니 꽃무늬 자기에 따라 빛깔을 자랑하네. 입에 대니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 마치 어린 아이의 젖내와도 같아 부귀의 가문에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을 우리 선사 이를 얻음이 괴상하고 괴상하구료. 남방의 아이들 선사의 처소 알지 못하리. 찾아가 맛보고 싶은들 어이 알려 줄손가. 이는 아마도 구중궁궐에서 고덕한 선사를 대우한 예물인 것을 차마 마시지 못하고 아끼고 간직하다 임금의 봉물(封物) 중사(中史)편에 보내왔겠지. 나는 세상살이 모르는 쓸모없는 나그네. 좋은 혜산천(惠山泉)의 물을 감상하긴 했지만 평생 불우하여 만년을 탄식했는데 일품을 감상함은 오직 이것뿐인가 싶네. 이 귀중한 차 마시고 어이 사례 없을손가. 공에게 맛있는 봄술을 빚기 권하노니 차 들고 술 마시며 평생을 보내면서 오며가며 풍류(風流)놀이 시작해 보세. 이것은 이규보가 운봉에 사는 고승 노규선사(老珪禪師)로부터 진귀한 유차를 선물 받자 몹시 기뻐 온갖 찬사를 써서 지은 장편의 유차 예찬시인데 찬찬히 음미하면 고려 시대 차 생활의 풍토를 선명하게 그려 보임을 알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거리에 다점(茶店)이 있어 일반 백성에게 차를 팔았다. 주점과 마찬가지로 그곳에서 백성들은 약간의 돈을 내고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차 생활이 어디까지 일반화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인들은 인생과 차를 자연스럽게 노래하며 정신적인 풍류를 누렸다
♬. 조선시대의 다도문화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사찰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차 문화는 척불숭유 (斥佛崇儒) 정책에 따라 쇠퇴하는 현상을 보인다. 그러나 고려 때에 성행했던 음차 풍습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무엇보다 고려의 차공(茶貢)이 조선 중엽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고, 다시(茶時)를 지키는 풍속도 있었다. 사헌부 관원들이 공정한 판결을 위해 매일 일정한 시간에 모여 차를 마시며 의논 하였는데 그것을 다시라고 했다. 차는 전래적인 성격으로나마 민간에 이어져 내려왔고, 그래서 차를 마시지 않으면 대화도 생활도 건조해지는 타성이 대용차 시대를 열게 했던 것이다. 임진 왜란 이후 1805년에 다산 정약용 (茶山 丁若鏞)이 유배지인 강진에서 차생활을 했다는 기록이 나오기까지 가야, 신라 시대부터 민족이 애음하던 차는 깊이 숨어 그 맥조차 끊어졌다는 인상을 준다. 1805년 신유사화(辛酉士禍)로 강진으로 유배된 다산은 해남 대흥사 (大興寺)의 큰 학승이었던 혜장(惠藏)스님을 만덕산의 백련사(白蓮社)에서 만나게 되고 혜장의 주선으로 강진에서 멀지 않은 우이산 우두봉(牛頭峰)에 위치한 고성사(高聲寺)로 거처를 옮겨 보은산방(寶恩山房)이란 현판을 건다. 다산과 혜장의 만남은 다산에게 있어서 한줄기 큰 빛이었다. 다산과 혜장이 처음 만난 날, 밤 늦도록 이야기하다가 못내 아쉬워하며 헤어질때 다산은 "차 맛이 너무 좋습니다. 다시 찾아오면 그 때도 차를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혜장은 "역(易)에 밝으시니 내일 일을 익히 아시겠지요.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열 살 아래인 혜장과의 만남은 다산에게 있어서 반가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그 시절 다산은 차(茶)와 선(禪)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무진년(1808) 봄에 마을사람들은 차나무가 많아 다산(茶山)이라 부르는 마을 뒷산에 초당을 마련하고 그곳에 정약용을 모셨는데 마을사람들이 다산에 사는 정(丁)씨라 하여 정다산(丁茶山)이라 불렀고 이때부터 정약용은 다산(茶山)을 자신의 아호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곳 다산초당(茶山草堂)은 훗날 다산의 발자취를 찾는 후학들의 성지가 되었다. 1818년 다산의 강진 생활이 마무리되던 해에 그의 제자들이 다신계 (茶信契)를 조직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모임이라 볼 수 있다. 다산과 혜장 이후 조선 시대 차 생활의 맥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와 초의선사(草衣禪師)로 이어진다. 1809년 추사는 동지사로 청나라에 가는 아버지를 따라 연경에 가서 당대의 큰 유학자들과 교유하면서 경학(慶學), 금석학(金石學), 서화(書畵)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 때에 차 생활의 진수를 몸에 익히고 돌아온다. 그 후 고증학의 도입을 시도하면서 많은 친구들에게 차 마시기를 권하며 스스로를 승설학인(勝雪學人)이라 칭하기도 했다. 초의가 다산의 아들인 유산(酉山)의 소개로 추사를 만난 것은 이때로서 한양에 초대받은 초의는 두 해 동안을 장안에 머물면서 유산과 추사를 중심으로 많은 선비들과 교분을 맺었다. 다시 해남으로 돌아온 초의는 그 후 해마다 봄이면 정성들여 차를 만들어 추사에게 올려 보냈다. 그렇게 추사에게 보내진 차는 한양의 지체높은 선비들에게 널리 퍼졌고 차를 마시는 자리마다 초의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초의는 이를 계기로 중국의 [만보전서(萬寶全書)]에서 차에 관한 기록을 뽑아 다신전(茶神傳)을 썼다. 그후 추사를 통해 알게 된 해거도인(海居道人) 홍현주(洪顯周)의 부탁으로 '동차(東茶)' 곧 '한국의 차'를 찬미하는 동다송(東茶頌)을 저술하여 다서의 불모지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다신전(茶神傳)
초의선사 『만보전서』에서 가려냄
차 따기를 논함
차를 따는 철을 그 때가 귀중하다. 너무 이르면 맛이 온전치 못하며, 늦으면 신성한 기운이 흩어진다. 곡우날 닷새 앞을 으뜸으로 삼으며, 닷새 뒤가 다음가며, 다시 닷새 뒤가 그 다음간다. 차싹은 자주 빛나는 것이 으뜸가며, 주름진 거죽같은 것이 버금가며, 둥근 잎이 그 다음가면, 가는 대잎처럼 빛나는 것이 가장 아랫질이다.
밤새도록 이슬에 젖은 것을 딴 것이 으뜸이요 햇볕에서 딴 것이 다음간다. 음산하게 비가 내릴 때는 따기에 마땅치가 않다. 골짜기에서 나는 것이 으뜸이요 대숲 밑에서 나는 것이 버금가며, 자갈밭에서 나는 것이 그 다음가 고, 누른 모래따에서 나는 것이 또한 그 다음간다.
차 만들기
새로 딴 것은 쇤 잎사귀와 억센 줄기와 부스러기를 골라 내고, 너비 두 자 네 치의 노구 솥에 차 한 근 반을 덖는다. 솥이 몹시 달 때를 기다렸다가 차를 떨구어 넣기 시작하여 얼른 덖어야 하며, 불길을 늦춰서는 안 된다. 뜨거워질 때를 기다렸다가 바야흐로 불을 물려 내고 체에 담아서 맴돌이 체질을 몇 번 가볍게 한 다음 다시 솥에 넣고, 불길을 차차로 줄이면서 알맞은 정도로 말린다. 그 속에 현미한 것이 있으나 말로써 나타내기란 어렵다. 불길을 고루 머무르게 한 것은 빛깔과 향기가 아름다워진다. 현미한 것은, 아직 밝히지 못하였으나, 신령스러운 맛은 덖을 때 갖춰지는 것이다.
차 가리기
차의 묘리는 정갈한 만듦새에서 비롯되어 법도대로 산수하며, 알맞은 물 다루기에 있다 할 것이다. 우열은 솥의 적부에서 비롯된다. 맑으냐 흐리냐는 물과 불에 달려 있다. 불길을 사납게 하면 향기가 맑아지는데, 솥에만 의존하면 신기가 탐탁하지 못하게 되며, 불길을 매섭게 하면 설은 채 타 버리고, 나무를 더디게 지피면 비취색을 잃게 된다. 불을 오래 지피면 지나치게 익어 버리며, 일찍 들어내면 언저리는 설익고 익으면 누렇게 변하다. 설 익으면 검어지고, 순하게 하면 달고, 어긋나면 떫다. 흰 반점을 띤 것은 무방하며, 잘 그을린 것이 가장 훌륭하다.
차의 저장
차를 만들어 처음 말리려면, 먼저 옛 합(盒)에 담고 종이로 주둥이를 봉한다. 사흘이 지나 차의 본성 이 회복되기를 기다려 다시 약한 불에 쬐어 바싹 말리고, 식기를 기다렸다가 병에 담는다. 가볍게 살며시 쌓아올려 대나무 껍질로써 차고차고 쟁인다. 아름다운 대껍질과 종이로써 병의 주둥이를 겹겹으로 단단히 봉하고, 윗부분을 불에 묻어 구운 벽돌 식힌 것으로 누질러 다육기 속에 넣어둔다. 절대로 바람을 쏘이거나 불기를 가까이 하면 안 된다. 바람에 쏘이면 식기 쉽고, 불기에 닿으면 금방 누렇게 된다.
불 살피기
차를 달이는 뜻은 불 살피기가 앞서야 한다. 화로불이 빨갛게 되면 차 탕관을 비로소 얹고, 부채질을 가볍고 빠르게 하여야 한다. (탕관에서 물 끓는)소리가 나기를 기다려 차츰 심하고 빠르게 하는 데, 이것이 「문무(文武) 살피기」란 것이다.
문(文)이 지나치면 물의 성미가 유순하여지고, 유순하면 차는 가라앉는다. 무(武)가 지나치면 불의 성미가 사나와지고, 사나와지면 차가 물을 제압하는 노릇을 하게 된다. 모두 중화(中和)가 부족하여 차꾼의 요지가 못된다. 끓는 물 분별하기 끓는 물에는 크게 세가지의 분별법과 열 다섯 가지의 작은 분벽법이 있다.
첫째를 모양 보고 분별하기라 하며,
둘째를소리듣고 분별하기라 하고,
셋째를 김 보고 분별하기라고 한다.
모양의 분별은 속을 분별하는 것이요 소리는 겉을 분별하는 것이요, 김은 재빨리 분별하는 것이다. 게 눈 ? 새우 눈 ? 물고기 눈 ? 이음구슬과 같은 것은 모두 맹탕으로 여긴다. 곧 용솟음치듯 끓기에 이르는데,넘실거리며 북치는 물결과 같은 것은 물김이 모두 사라지니, 바야흐로 이것이 전숙이다. 첫소리, 굴림소리,떨림소리, 놀램소리와 같은 것은 모두 맹탕으로 삼는다. 곧바로 소리없기에 이르면 바야흐로 이것이 결숙이다. 김이 한 가닥, 두 가닥, 서너 가닥과 어지러운 가닥이 떠오르듯 왕성한 기운을 분간하지 못하는 어지러운 얽힘은 모두 맹탕으로 여긴다. 곧 김이 곧바로 화합하여 꿰뚫기에 이르면, 바야흐로 경숙이다.
쇠한 물과 어린 물 채군모는 어린 탕수만을 쓰고 쇠한 물은 쓰지를 않았다.
대개 옛 사람들의 제다법을 이어받아, 만들면 반드시 차매질하고, 차매질하면 반드시 갈고, 갈면 반 드시 체로 치고, 체를 치면 티끌은 나부끼고 가루가 날은다. 이제 재료를 섞어 용봉단차를 박아내고 탕면을 보게 되면 차의 신기가 곧바로 뜬다. 이것은 어린 물을 쓰고 쇠한 물을 쓰지 않는 까닭이다. 요즈음의 차 만들기는 체 치기와 맷돌질을 하지 않고, 모두 원래의 형상대로 갖춘다.
여기에 쓰일 탕 수는 모름지기 전숙되어야 원래의 신기가 비로소 일어난다. 그러므로 탕수라면 모름지기 다섯 벌 끓어야만 차의 세가지 기이함이 주효한다고 말한다.
물 다루기
탕의 순숙을 살폈다가 곧 들어올려 먼저 다관 속에 조금 따라서 탕을 버리고 냉기를 가셔낸 다음, 차잎의 많고 적음을 알맞게 짐작하여 떨어드리는데, 중정을 잘못하면 아니 된다.
차가 많으면 맛이 쓰고 향기는 흐리며,물이 많으면 빛깔은 맑아도 맛이 적다. 차관 들을 돌린 다음, 냉수로 흔들어 씻어서 다관을 서늘하고 깨끗하게 한다. 그렇게 안하면 차의 향기가 감소된다.
탕관이 불에 익으면 차의 신기가 건실하지 않고, 다관이 맑으면 물의 성미는 언제나 신령스럽다.
차와 물이 충화되기를 잠시 기다린 뒤, 식히며 우려서 마시기를 베푼다. 빠르게 우리는 것도 마땅치가 않고, 늦게 마시는 것도 마땅치가 않다. 빠르면 차의 신기가 덜 일어나 고, 더디면 묘한 향기가 앞서 사라진다.
차 넣기
차는 차례대로 넣어서 그 마땅함을 잃어서는 아니된다. 차부터 먼저 넣고, 탕을 뒤에 붓는 것을 하투 (下投)라 한다. 탕을 절반 붓고, 차를 떨어드리고 다시 탕으로써 채우는 것을 중투(中投)라고 한다. 탕 부터 먼저 붓고, 차를 뒤에 넣는 것을 상투(上投)라고 한다. 봄 ? 가을에는 중투를 하고, 여름에는 상 투를 하고, 겨울에는 하투를 한다.
차 마시기
차 마시기는 손님이 적은 것이 귀하다. 손님이 많으면 떠들썩하고, 떠들썩하면 아취가 모자란다. 홀로 마시는 것을 신(神)이라고 한다. 두 손님을 승이라고 한다. 3, 4명을 취라고 한다. 5, 6명을 범이 라고 한다. 7,8명을 시라고 한다.
향기
차에는 진향이 있고, 난향이 있고, 청향이 있고, 순향이 있다.
겉과 속이 한결같은 것을 순향이라고 한다.
설지도 않고 익지도 않은 것을 청향이라고 한다.
불길이 고르게 멈춰진 것을 난향이라고 한다.
곡우 전에 신기가 갖추어진 것을 진향이라고 한다.
또 함향, 누향, 부향, 문향도 있는데, 이것은 모두가 바르지 못한 냄새이다. 빛깔 차는 맑고 푸른 것이 빼어난 것이다.
물결은 희고 쪽빛나는 것이 좋다. 누르거나 검거나 붉거나 어두 운 것은 모두 품수에 넣지를 않는다. 눈 같은 물결이 으뜸이요 비취색 물결이 중품이며, 누른 물결이 하품이다.
새 샘물과 활활 타는 불로 차를 달이는 것은 고요하고도 교묘하며, 옥같은 차와 차가운 물결은 장의 절묘한 기예를 맡는다.
맛
맛은 달고 부드러운 것이 상등이며, 쓰고 떫은 것이 하등이다. 오염으로 진성 잃기 차에는 본시부터 진향이 있고, 진색이 있고, 진미가 있다. 일단 더럽혀지면 문득 그 진성을 잃는다. 물 속에 짠 것이 붙었거나 차에 향료가 묻었거나 주발에 과실기가 묻은 것은 모두 진성을 잃은 것이 다.
변질차의 안 쓰기
차를 처음 만들면 푸른 비취색이다. 수장하는데 그 법도를 얻지 못하면 첫번째는 녹색으로 변하고, 두번째 누른빛으로 변하고, 세번째는 검게 변하고, 네번째는 흰 빛으로 변하니, 이것을 먹으면 위장이 차가와지고, 심지어는 파리한 기운이 쌓이는 것이다. 샘물의 성품 차는 물의 신령이요 물은 차의 형체이다. 참된 물이 아니면 그 영모함이 나타나지 않으며, 신령스러운 차가 아니면 그 형체를 엿볼 수가 없다.
산꼭대기의 샘물은 맑고 가벼우며, 산 밑의 샘물은 맑고 무거우며, 돌 속의 샘물은 맑고 달며, 모래 속의 샘물을 맑고 차가우며, 흙속의 샘물은 싱겁고 희다. 누른 돌에 흐르는 것이 좋고, 푸른 돌에서 솟아오른 것은 쓸모가 없다. 흘러서 움직이는 물은 안정된 것보다 더욱 낫고, 그늘을 업고 있는 것은 양기를 향하고 있는 것보다 낫다. 순수한 근원은 맛이 없고, 참된 물은 향기가 없는 것이다. 우물물은 차에 못마땅하다.
『다경』에 이르기를 「산물이 상품이요 강물이 하품이요 우물물이 최하품이다」라고 하였다. 첫째 강물이 가깝지 않고 산에서 별안간 샘물이 없을 때를 대비하여 오로지 봄에 매우를 받아두는 것이 마땅하다. 그 맛이 달고도 순하여 만물을 기르는 물로서 뛰어나다. 눈물은 비록 맑을 지라도 성미가 무겁고 어둡고 차갑게 느껴져서 지라와 위장에 들어가서 많이 쌓이 기에는 마땅치가 않다.
물의 저장
물 담는 독은 모름지기 그늘진 마당 복판에 놓고 비단으로 덮어서 별과 이슬의 기운을 받게 하면, 뛰어난 영기가 흩어지지 않고 신령스러운 기운이 언제나 간직된다. 가령, 나무나 돌로 누르고 종이나 대껍질로 봉하여 햇볕에 말리지만 않으면, 밖으로 감모소산될 영묘한 기운이 가리워진다.
차 마시게에는 오직 차가 신선하고 물이 신성스러운 것을 귀하게 여기므로, 차가 그 신선도를 잃거 나 물이 그 영기를 잃는다면 도랑물과 다를 것이 무엇이랴
찻그릇
상저옹은 차 달이기에 은 표주박을 썼는데, 너무 사치스럽다면서 훗날에는 자기를 썼으나 또한 오래 견디지 못하여 마침내 은으로 돌라갔다. 내 생각에 은붙이란 단청을 칠한 누각이나 화려한 집에서나 쌓아두기에 알맞고, 돌산에 있는 집이나 띠집에서는 그저 주서 표주박이 알맞고 또한 빛깔과 맛의 손상이 없다. 구리나 쇠는 삼가할 일이다.
잔 닦는 행주
차 미시기의 전후에는 가는 베수건을 갖추어 잔닦기에 쓴다. 그밖의 것은 더러워지기 쉬워서 쓰기에 마땅치가 않다. 차의 보위 만들 때는 정성스레, 저장할 때는 건조하게, 물 끓일 때는 청결하게 한다. 정성스럽고, 건조하고 청결 하게 하면 다도는 다 된 것이다.
무자년(1828년)의 비올 즈음, 스승을 따라 방장(지리)산의 칠불아원 (七佛亞院)에서 등초(謄抄)하여 내 려와서 다시 정서하고자 하였으나 병 때문에 아직 맺지를 못하였다. 사미 수홍이 시자방에 있을 때, 다도를 알고자 정초하였으나 그 역시 병으로 아직 끝내지를 못한지 라, 참선의 여가에 억지로 붓에 명령하여 마침내 이루었다.
시작이 있고 마지막이 있는 것이 어찌 홀로 군자만을 위한 것이런가. 총림에는 간혹 조주풍류가 있으나 다도를 다 알수 없기에 베껴서 보이는 것이다. 외람된 일이로고. 경인년(1830년) 중춘병으로 안자에서 쉬는 선승이 눈내리는 창가에서 화로를 안고 삼가 적노라.
『동다송』 초의선사
해서도인의 분부를 받들어 지음
중 초의 의순
후황이 경사스런 나무에 귤나무의 덕성을 배정하사 분부를 어기지 않고 남녘에서 자라네. 우거진 잎은 싸락눈과 다투어 겨우내 푸르고 흰 꽃은 서리에 씻기어 가을의 영화를 떨쳤어라. 고야산 신서의 흰 살결처럼 고우며 염부단금 같은 꽃다운 열매 맺었네.
차나무는 과로와 같고, 잎은 치자와 같으며, 꽃은 희 장미와 같으며, 알맹이는 노랗고,. 가을에 꽃이 피어 맑은 행기가 은은하다. 항해가 벽옥빛 가지를 맑게 씻으니 촉촉한 물총새의 혀는 아침 안개 머금었네. 이태백이 이르기를, 「형주고을 옥천사는 청계의 여러 산과 가깝다. 그 물가의 곳곳에는 차나무가 잇달아 났는데, 가지와 잎은 백옥 같다. 오직 옥천진공이 늘 따서 마신다」고 하였다.
하늘의 선인과 (땅 위의) 사람과 귀신도 함께 매우 사랑하고 너의 됨됨이 진실되고 신기하여 뛰어났음을 알기에 염제도 일찍이 맛보고 식경』에 실었노라. 염제의 『식경』에 이르기를, 「차와 차싹을 오래 마시면, 사람으로 하여금 힘이 있게 하고, 마을을 즐겁게 한다」고 하였다. 제호와 감로는 예부터 이름을 전하네. 신안왕 자란과 예장왕 자상이 담제도인을 팔공산에서 뵈었더니 차를 베풀었는데, 자상이 맛을 보고 「이것은 감로이지 어찌차라 하리까」라고 하였다.
나대경은 『약다시』에서 읊었다. 「솔바람 소리 전나무에 비맞는 소리 처음 들려오면 구리병을 얼른 당겨 죽로에서 물려 놓고 끓던 물소리 잠잠하기를 기다려 마시는 한 사발의 춘설차 맛은 제호보다 좋고녀.」 술을 깨고 잠을 안 자게 함은 주나라 성인이 증험하였노라.
벙『이아』에 「가나무는 고다(苦茶).」라 하고,
『광아』에는 「형주와 파주사이에서는 잎을 따서 떡 을 빚는다. 그것을 마시면 술이 깨고,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안 자게 한다」고 하였다.
제(齊)나라의 영은 현미(玄米)밥에 차싹과 뺑쑥을 곁들였다더라.
『 안자춘추』에는 「안영이 제나라 경공의 정승으로 있을 때, 겉만 쓿은 쌀밥과 세 마리의 새구이와 다섯 개의 알과 차싹과 뺑쑥을 먹을 뿐이었다」고 하였다. 단구는 우홍이 음식 보내주기를 빌고 털보선인은 진정을 인도하여 차숲을 보여주었노라.
『신이기』에 「여요사람 우홍이 산에 들어가서 차를 따다가 세마리의 푸른 소를 이끄는 한 도사를 만났는데, 홍을 이끌고 폭포산에 이르자 말하였다. <나는 단구자라 하오만, 그대가 마실 것을 잘 갖춘다는 소문에 늘 뵙고자 생각하였다오. 혜산 소에는 큼직한 차싹이 있으니 그대를 도울 만하오. 그대에게 비노니, 훗날 차 구기에 여줄가리가 있거든 보내주시구료>. 그리하여 제사를 지내드렸는데, 훗날 집안 사람을 산에 들여보낼 때면 언제난 큼직한 차싹을 얻게 되었다더라 」고 하였다.
『속 수신기』에 「진나라 무제때에 선성사람 진정이 일찍이 무창산에 들어가서 차싹을 따다가 키가 한 길 남짓한 어떤 털보를 만났다. 정을 이끌고 산 밑에 이르자, 차숲을 보여주고 물러가더니 별안간 되돌아와서는 품 안의 귤을 뒤져내어 진에게 주었다. 진은 두려워서 차싹을 지고 돌아왔다」고 하였다. 흙에 잠긴 분이 만 전의 사례를 아끼지 않았노라.
『이원』에 섬현고을에 사는 진무의 아내는 젊어서 두 아들과 함께 과부로 살았는데, 차 마시기를 즐겼다. 집 안에 옛 무덤이 있기에 마실 때마다 먼저 제사를 지냈다. 두 아들은 근심하여 <옛 무덤이 무엇을 알겠나이까, 부질없는 수고이옵니다>라고 말하면서 파헤쳐 벌려하자, 어머니가 간신히 금지시켰다. 그날 밤 꿈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나는 이 무엄에 3백여 년이나 머물렀소이다. 그대의 두 아들은 볼 때마다 언제나 헐어 버리려고 하였거늘 그대의 도움에 힘입어 보호되었고, 또한 나에게 좋 은 차까지 제사지내 주셨소. 내 비록 흙에 잠기어 문드러진 해골이기는 하오만 어찌 예상의 보은을 잊으오리까」라고 하였다. 새벽이 되자, 뜰 안에서 돈 10만 냥을 얻었다 」고 하였다. 솥 음식은 저 홀로 칭친하고 차는 여섯 가지 청량음료의 으뜸이라네.
장맹양의 『성도 누각에 오르는 시』에 이르기를,
「솥음식은 때때로 올리고 백 가지를 섞은 묘미 또한 뛰어났도다. 향기로운 차는 여섯 가지 청량음료의 으뜸으로 넘치는 맛은 천하에 퍼졌어라」라고 하였다.
개국황제는 머릿골을 고친 이상한 사연을 전하노라. 수나라의 문제가 미련할 때, 꿈에 귀신이 머릿골을 바꾸면서부터 머릿골이 아팠다. 문득 만난 한 중이 아뢰기를 「산 곡에 차가 있사오니 달여잡수시오면 마땅히 병이 나을 것이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마셔 효험이 있자, 이로부터 다투어 따게되어 천하에서 차 미시기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뇌협 ,용향을 차례로 만들어 가졌네. 당나라 각림원의 지숭스님은 세 가지 등급의 차를 거두어서 경뇌협으로는 손님을 대접하고, 훤 초대 로는 자기를 받들며, 자용향으로는 부처님을 공양하였다. 대당에서는 백 가지 진수성찬 차려먹기를 숭상하고 심원에서는 다만 자영차만을 알 뿐이라네. 당나라 덕종이 동창공주에게 매양 음식으로 내린 차에는 녹화 ,자영이라는 것이 있었다. 법도대로 만든 두강이 이로부터 성행되고 청현명사는 준영을 자랑하네. 『다경』에 차맛을 준영이라 하였다. 용단 봉병을 채색비단으로 장중하게 싸서 옮기니 교묘하고도 아름다워라. 백 개의 떡차 빚기에 만금을 다 썼네. 크고 작은 용봉단은 정위에서 비롯되어 채군모가 완성시켰는데, 향약을 섞지 않고 떡을 빚었다. 용봉떡차의 의에는 용봉무늬로써 장식하고 어용차는 금장식으로 완성하였다. 소동파의 시에 이르기를. 「자금차 백 덩이에 만전을 소비하였네」라고 하였다.
누가 알랴, 참된 빛깔과 향기가 저절로 넉넉한들 한 번 점찍히고 옮으면 참된 본성을 잃는 것을. 『만보전서』에 「차에는 참된 향기와 참된 맛이 저절로 있는데, 한 번만 점찍히고 오염되면 문득 그 참됨을 잃는다」고 하였다. 도인은 늘 모두 좋은 차만을 바라고, 일찍이 몽정산에 나아가 손수 심고 키워서 얻은 다섯 근을 군왕에게 바쳤으니, 길상예와 성양화라네. 전대사가 몸소 몽정산에 가서 암자를 짓고 차를 심은 지 무릇 3년 만에 절묘하게 좋은 차를 얻고, 성양화 ,길상예라 이름지어 모두 다섯 근을 가지고 돌아가서 바쳤다. 설화차와 운유차는 방열을 겨루고 쌍정차와 일주차는 절강에 떨쳤어라. 소동파의 시에 「설화차와 우각차를 어찌 넉넉타 말하랴」라고 하였으며, 황산곡의 시에 「내 집이 있는 강남에서 운유차를 땄네」라고 하였다.
소동파가 승원에 이르자, 범영스님이 법당의 지붕을 고치니 묵은 것에 비하여 혹독하게 깨끗함을 더 하였다. 차를 마시자 향기가 아름답기에「이것은 햇차요?」라고 물으니 영이 이르기를, 「차의 성미 란 새것과 묵은 것을 섞으면 향기와 맛이 회복되니요」라고 하였다. 초차는 양절에서 성행되는데, 양절의 품질에서는 일주차를 첫재로 꼽는다. 경우연호가 있은 뒤에 흥 주고을의 쌍정차와 백아차가 점차로 성행되어 근년에는 차의 만듦새가 더욱 정교하여졌으며, 그 품질 이 심오하고 일주차를 상회하여 마침내 초차를 첫째로 꼽게 되었다. 건양과 단산은 물맑은 고장이라 월간차와 운감차의 품수를 특별히 높혀서 값 매겼노라.
『돈재한람』에 「지금은 건안차를 천하에서 제일로 삼는다」하였다. 혼초가 초형부에 차를 보내는 서장에서 이르기를, 「만감후 열 다섯 녀석을 시재합에 보냅니다. 이 무리들은 모두 우뢰를 청하여 따서 물을 받아 맛을 조절하였습니다. 대개 건양과 단산은 물맑은 고장이라 월간차와 운감차의 품격업신여기기를 삼가할 일입니다」라고 하였는데, 만감후란 차의 이름이다. 다산선생의 『걸명소』에는 「아침꽃이 피기 시작하고, 뜬구름이 개인 하늘에 맑디맑고, 낮잠에서 갓 깨어나고, 맑은 달이 푸른 시냇물에 휘영청 비최일 때」라고 하였다.
동국에서 나는 차는 근본이 서로 같아서 빛깔이나 향기나 맛에 들은 공이 한결같이 평가되고 육안산은 맛차요 몽산 것은 약차인데 옛사람을이 양쪽 근본이 겸비되었다고 높이 평판하였노라. 『동다기』에 이르기를, 「어떤 이는 동다의 효험이 월산차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의심을 하지만, 내가 모건대 빛깔이나 향기나 맛이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차책에 이르기를, 「육안차는 맛으로 훌륭하고, 몽산차는 약으로 훌륭하다」고 하였는데, 동다는 대개 겸비하고 있다. 만약 이찬황이나 육우가 있다면, 그 사람들은 반드시 내 말이 옳다고 하 리라.
마른 것을 떨치어 어리게 돌이키는 신통하고도 빠른 효험으로 여든 살의 늙은이 얼굴이 복숭아 붉기처럼 화기가 도네. 이태백이 이르기를, 「옥천진공은 80여 세의 나이에 얼굴빛깔이 복사꽃 같다. 그리하여 이차싹은 맑은 향기에 미끄럽고 성숙되어, 다른 것과 달라서, 능히 어리게 돌이키고 마른 것을 떨치어 사람의 수명을 돕느다」고 하였다.
나에게 젖샘이 있기에 지켜서서 수벽탕과 백수탕을 만들지만 어찌 목멱산 앞에 갖고 들어가서 해거옹에게 드릴거나. 당나라 소이가 지은 『16탕품』의 제 3품을 백수탕(百壽湯)이라 하는데, 「사람이 백 번의 숨쉬기 를 지나치거나 물의 열번째 끓음이 넘은 것을 혹은 애기로 막히기도 하고, 혹은 볼일로 해서 그치기 도 하다가 비로소 들어서 쓰노라면 끓는 물은 이미 성품을 잃고 만 것이 된다. 감히 묻거니와, 머리 털이 희고 얼굴이 창백한 나이 많은 늙은이가 활을 들고 화살을 당겨서 과녁을 맞히게까지 돌이켜지 겠으며, 씩씩하게 높은 데를 올라가거나 활달하게 걸어서 멀리 갈 수 있을 만큼 돌이켜지겠는다」가 고 하였다.
제 8품을 수벽탕(秀碧湯)이라 하는데, 「돌이란 것은 하늘과 땅의 빼어난 기운이 응결되어 형체가 부여된 것이다. 이것을 쪼아 다듬어서 그릇이 되어도 빼어난 기운은 오히려 남아 있기 마련이니, 그 그릇에 달인 물이 나쁠 리가 있을손가」라고 하였다. 근자에 유당 어르신네께서 두륜산의 남녘을 지나가시다가 자우산방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그 샘물 을 맛보시더니 「맛이 소락보다 좋구나」라고 하시더라.
차에는 아홉 가지의 어려움과 네가지의 향기가 있는데, 현묘하게 운용된다. 『다경』에 이르기를, 「차에는 아홉 가지 어려움이 있느니,
첫째가 만들기이며,
둘째가 가려내기이 며
셋째가 그릇이며,
넷째가 불이며,
다섯째가 물이며,
여섯째가 굽기이며,
일곱째가 가루내기이며,
여덟째가 삶기이며
아홉번째가 마시기이다. 흐린 날씨에 차잎을 따거나 밤에 불을 쬐어 말리는 것은 만들기가 아니요, 차를 씨벙서 맛보거나 냄 새를 맡아 보는 것은 가려내기가 아니요, 노린내나는 솥과 비린내나는 사발은 그릇이 아니요, 진이 배인 섶나무나 부엌 숯을 쓰는 것은 불이 아니요, 물살이 빠른 여울이나 막혀서 괸 물은 물이 아니요, 겉만 익고 속이 설익은 것은 굽기아 아니요, 푸른 가루나 옥색나는 티끌은 가루가 아니요, 어줍은 솜 씨로 다루거나 덤벼서 휘젓는 것은 삶기가 아니요, 여름에는 마시고 겨울에 폐하는 것은 마시기가 아 니다」라고 하였다.
『만보전서』에 이르기를, 「차에는 진향, 난초향기, 맑은 향기, 순박한 향기가 있다. 겉과 속이 가지런한 것을 순박한 향기라 하며, 설지도 익지도 않은 것을 맑은 향기라 하며, 불기가 고르게 멈춰진 것을 난초 향기라 하며, 곡우 전에 신기가 갖춰진 것을 진향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네 가지 향기라고 한다」고 하였다.
옥부대 위에서 좌선하는 너희들 중을 어찌 가르치랴. 지리산 화개동에는 차나무가 4,50리나 연이어 자라고 있는데, 동국 차밭의 넓기로는 이보다 지나친 것을 헤아릴 수 없다. 골(滑)에는 옥부대가 있고, 그 밑에는 칠불선원이 있는데, 좌선하는 자는 늘 잎을 늦게 따서 섶나무 처럼 볕에 말려 나물굴을 삶듯이 솥에다 삶으니, 빛깔은 붉고 맛은 몹시 쓰고 떫다. 정송에서 이르기를, 「천하에 좋은 차를 속된 속된 솜씨로 못쓰게 하는 바가 많다」고 하였다.
아홉 가지 어려움을 범하지 않고 네 가지 향기가 온전하면 지극한 맛은 구중에 헌공할 만하며 취도와 녹향은 겨우 조회에 들어간다.
『다보』의 소서(小序)에 이르기를, 「사발에는 비취빛 물결이 일렁이고, 맷돌에는 푸른 가루가 날 으네」라고 하였다. 『만보전서』에 이르기를, 「차란 맑고 푸른 빛깔나는 것이 훌륭하며, 차의 물빛은 희고 쪽빛나는 것이 좋고, 누르거나 검거나 붉거나 어두운 것은 모두 품수에 넣지를 않는다. 구름같은 물결이 으뜸 이며, 비취색 물결이 중품이고, 누른 물결이 하등품이다」라고 하였다. 진미공의 시에 「아름다운 그늘에 모여 덮였는데 영초(차)의 기이함을 시험하네. 중로에 얹고 고요히 다스리니 소나무 불은 성내어 날으네. 물은 싱겁게 섞여서 차 겨루기를 살지게 하고 녹향이 행길에 가득하여 온종일 돌아가기를 잊네」 라고 하였다. 총명함은 사방에 통달하여 체하거나 막히는 것이 없거늘 하물며 신령스런 나무의 뿌리를 신성한 사에 의탁함에 있어서랴. 지리산을 세상에서는 방장산이라고 일컫는다. 신선 같은 풍모와 옥 같은 기골은 종자부터 다르며 녹아(綠芽)와 자순(紫筍)은 바위를 꿰뚫었는데 오랑캐 신발, 혹부리 소의 가슴팍, 주름진 물무늬라네.
『다경』에 이르기를, 「난석주어세 난 것이 으뜸이요 역양토에서 난 것이 버금간다」고 하였다.
『만보전서』이르기를, 「골짜기의 것이 으뜸이다」라고 하였다. 화개동 차밭은 모두 골짜기와 난석을 겸비하였다.
『만보전서』에 이르기를, 「자주빛 나는 차가 으뜸이요 주름진 거죽은 버금간다」고 하였다.
『다경』에 이르기를, 「초록빛 잎이 버금가며, 죽순 같은 것이 으뜸이요 새싹 같은 것이 버금간다. 그 모양이 서역 오랑캐의 신발 같은 것은 찌푸리고 오그라든 듯하다. 혹부리 들소의 가슴팍 같은 것 은 모가 나고 가지런한 듯하다. 산들바람이 물을 떨친 것과 같은 것은 물에 잠기어 흔들리는 듯하다. 이것은 모두 차의 정유이다」라고 하였다. 흘러서 무르녹듯 맑은 밤 이슬을 다 마시니, 삼매경의 솜씨에 기이한 향기 오르네.
『만보전서』에 이르기를, 「차 따는 철은 그때가 귀중하다. 너무 이르면 맛이 온전치 않고,늦으면 신기가 흩어진다. 곡우날 닷새 전이 으뜸이고, 닷새 뒤가 버금가며, 다시 닷새 뒤가 그 다음이다」라 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즉 동다는 곡우 전후면 너무 이르니 입하 뒤를 귀한 때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밤새 구름없고 이슬 받은 것이 으뜸이요 낮에 딴 것이 버금가며, 음산하게 비가 내릴 때는 따기에 마땅치가 않다.
동파가 겸사를 보내는 시에 이르기를, 「도인이 새벽에 남병산을 나와서 삼매경의 솜씨로 찻기를 내는 시험하러 왔네」라고 하였다. 속에 있는 현미함은 미묘하여 나타내기 어렵고 참된 정유는 바탕과 신기가 분리되면 나타나지 않는다.
『만보전서』의「차 만드리가름」에 이르기를, 「새로 딴 것은 쇤 잎사귀와 억센 줄기와 부스러기를 골라내고, 솥이 몹시 달 때를 기다렸다가 차를 떨구어넣기 시작하여 얼른 덖어야 하며, 불길을 늦춰 서는 안 된다. 뜨거워질 때를 기다렸다가 바야흐로 불을 물려내고, 체에 담아서 맴돌림 체질을 몇 번 가볍게 한 다음 다시 솥에 넣고 불길을 차차로 줄이면서 알맞은 정도로 말린다. 그 속에 현미한 것이 있으나 말로써 나타내기란 어렵다」라고 하였다. 「샘물의 품수 가름」에 이르기를, 「차는 물의 신(神)이요 물은 차의 체(體)이다. 진수(眞水)가 아 니면 그신기가 나타나지 않고, 꽃다운 차가 아니면 그 체를 엿볼 수 없다」고 하였다. 체(體)와 신(神)이 비록 온전하더라도 오히려 중정(中正)을 넘을 까 두렵고 중정을 넘지 않아면 건실함과 영기가 아우러진다.
『만보전서』의 「포법」편에 이르기를, 「탕(湯)의 순숙을 살폈다가 곧 들어올려 먼저 다관 속에 조금 따라서 탕을 버리고 냉기를 가셔낸 다음, 차잎의 많고 적음을 알맞게 짐작하여 떨구는데, 중정 을 잘못하면 아니 된다. 차가 많으면 맛이 쓰고 향기는 약하며, 물이 많으면 빛깔은 맑아도 냄새가 적다. 다관 둘을 돌린 다음, 냉수로 흔들어 씻어서 다관을 서늘하고 깨쓰하게 한다. 그렇게 안하면 차의 향기가 감소된다. 탕관이 불에 익으면 차의 신기가 건실하지를 않고, 다관이 맑으면 물의 성미는 언 제나 신령스러다. 차와 물이 충화되기를 잠시 기다린 뒤, 식히고 우려서 마시도록 베푼다. 빠르게 우리는 것도 마땅치 가 않고, 늦게 마시는 것도 마땅치가 않다. 빠르면 차의 신기가 덜 일어나고, 더디면 묘한 향기가 앞 서 사라진다. 」
평론하여 말하자면, 「차 따기는 그 묘를 다하고, 만들기에는 그 정성을 다하고, 물은 그 참된 것을 얻고, 물 다루기에서는 그 중용을 터득하고, 체와 신이 서로 화합되고, 건실함과 신령스러움이 서로 함께 하여야 된다. 이에 이르면 다도는 다 된 것이다」 옥화차 한 잔을 기울이면 겨드랑이에서 바람이 일어 홀가분한 몸으로 맑은 경지 위를 건널 따름이네. 진간재의 차시에 이르기를, 「이 옥화차의 내음을 감상하네」라고 하였다.
노옥천의 차 노래에 이르기를, 「오로지 양쪽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솔솔 일어나는 것을 깨닫 네」라고 하였다. 밝은 달을 촛불과 벗으로 삼고 흰구름을 깔자리와 병풍으로 하였는데, 대 퉁소 소리와 솔바람이 고즈넉하고 뼈 마디와 마음 속이 맑고 시원스럽네. 오로지 흰 구름과 밝은 달을 두 손님으로 삼으니, 도인이 이 자리에 앉는 것은 빼어난 것이라네.
차를 마시는 법도란 손님이 적은 것을 귀하게 여기면, 많으면 시끄럽고 , 시끄러우면 아취가 모자란 다. 혼자서 마시는 것을 「신(神)」이라 하며, 두 손님을 「승(勝)」이라 하며, 3,4를 「취(趣)」라 하며, 5,6을 「범(泛)」이라 하고, 7,8을 「시(施)」라고 한다. 초의는 햇차의 녹향을 시험하려고 연기를 피우는데, 곡우 전의 첫물이라 날짐승이 혀처럼 가늘구나. 단산의 운감차난 월간차를 꼽지 말라. 잔에 찬 뇌소차는 목숨 늘이네.
백파거사 적음
『농정신편』(農政新篇) 기정 안종수
잎 차는 잎의 훌륭한 것이다. 일찍 딴 것을 차라 하고, 늦게 딴 것을 차싹이라고 한다. 아직 잎이 펴지지 않은 차를 따서 만차(挽茶 : 가루차)를 만들어 점다(點茶)에 쓴다. 이미 잎이 펴진 것을 딴 것은 전차(前茶 : 잎차)에 쓴다. 또 우전차(雨前茶), 우후차(雨後茶)라는 이름이 있는데, 곡우(穀雨) 전후에 딴 것을 일컫는다. 청명 전에 딴 것을 상품으로 삼는다. 무릇 일찍 딴 것을 으뜸으로 삼으며, 늦으면 하등품이다. 그러 므로 쇤 차, 늦차는 그 잎이 크게 펴진 하등품이다. 또 수간차(水揀茶), 추차가 있다. 수간차는 우수 때 딴 것이다. 거친 빛깔의 차는 곧 우전차이다. 대개 빛깔이 선명하고 아름답고 싹이 가늘고 작은 것을 상등품으로 삼는다. 그래서 일직 딴 것을 귀 하게 여긴다. 토양의 성분이 지나치게 따뜻하면 향기가 몹시 강렬하고 그 맛이 아름답지 못하다. 지나 치게 춥고 차가우면 그 맛이 짙더라도 향기는 매우 좋지 않다. 다만 정묘하게 배양하면 상등품을 얻는데, 두엄과 인분이 가장 알맞다. 차의 성미는 나무에 그늘지고 북풍이 상쾌하게 부는 산북(山北)의 높은 땅을 좋아한다. 그래서 가장 꺼리는 것은 습기가 넘치는 것이다. 9월 하순, 늙은 나무열매의 껍질이 벌어지려는 것을 따서 껍질을 떼어버린 다음, 종자로 삼아 거적 자리에 싸서 껍질을 떼어 버린 다음, 종자로 삼아 거적자리에 싸서 축축한 땅에 파묻는 것이다. 위에 는 풀과 볏집을 덮어서 추운 기운에 상하지 않도록 한다. 따뜻한 물이나 쌀뜨물을 가끔 주면 정월 하 순의 춘분 대 종자의 배꼽에서 싹이 나온다. 그리고 싹은 옮겨 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모종 하여 심는다. 붉은 흙, 검은 흙과 모래, 돌을 막론하고 깊이 두 자, 너비 두자 예닐곱 치로 땅을 파서 기와를 깔 고, 기름진 흙 20톤, 참개기름 지게미 여덟 말, 마른 멸치가루 여덟 말, 쌀겨 여덟 말을 흙과 섞어서 메운다. 도랑마다 석 자 대여섯 치를 서로 띄워 차싹 30여 알을 줄지어서 나누어 심고, 오줌 재에 약간의 흙 썩을 것을 한 치 가량 덮고, 쌀겨 세치 쯤을 덮는다. 새, 까치, 꿩, 솔개의 성미가 차씨를 좋아하니 장대를 세워 그물을 쳐 벌려서 막는 것이 마땅하다. 쌀뜨물이나 장류수(물 뿌리개에서 흐르는 물)를 가끔 주되, 그 해와 이듬해는 내버려 둔다. 셋째 해 의 이른 봄에는 뿌리 주변의 흙을 호미질하여 응결되지 않도록 하고, 분변으로 물을 대어 준다. 차나무는 키가 작고 옆으로 펴진 것을 귀하게 여기므로 가장 긴 가지는 잘라 버린다. 또 기름진 논 의 가뭄을 타는 곳에 차를 심으면 능히 상품을 만들 수 있다. 차를 기르는 사람은 잡초를 제거하는 데 힘쓸 것이며, 뿌리 근방은 깊게 갈고, 겨울에는 외양 두엄이 나 인부, 마분을 배양하며, 마른 잎과 거미줄을 제거한다. 겨울에 뿌리 근방에 두엄을 묻어 주고, 춘분 때 충분히 물을 대어 주면 빛깔이 곱고 향기와 맛 또한 매우 좋아진다.
9우러
하순에는 대나무 시렁을 맨 위에 거적을 덮어 서리와 눈을 엄중히 방비한다. 겨울에 덮지 못 하면 상차도 하품으로 바뀐다. 잎을 다기 30일 전에 색부분(色附糞 : 차잎의 빛깔을 돋보이게 하는 비료)이라는 수분(水糞)을 엷게 주면 그 효과는 현저하다. 차는 묵은 나무 그루에서 반드시 상품차가 나며, 2, 30년 이하의 나무는 겨울 동안 숙분을 짙게 많이 배양하여 뿌리 주변에 주고 흙을 덮는다. 2월 8일에 또 이처럼 북돋아 주면 차맛은 점점 좋아진다. 차를 만드는 법 ○ 만차의 제법에는 증제와 자제의 두 가지 법이 있는데, 증제하는 것은 새 잎의 매우 어린 것으로 만들며, 자제하는 것은 새 잎이 점점 살찐 것으로 만든다. ○ 증제법은 큰 가마에 물을 60%쯤 붓고 짚으로 가마에 테를 돌려 그 위에 시루를 얹어놓은 다음 차 잎을 시루 속에 넣는다. 너무 센 불로 때면 뜨거운 끓는 물의 김이 올라와 차잎이 모두 오그라들 므로 젓가락을 넣어 찰싹 달라붙을 정도로 때며, 잎이 너무 벌어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찐 차잎을 대발에 옮겨 바르게 식힌 뒤 조금 있다가 센불로 말리는 상자(불에 말리는 상자는 두꺼운 종이 두 장을 풀로 붙인 상자이다.
화로의 깊이는 한 자 여덟 치, 바닥에 재를 서너 치 깔고 숯불을 얹는다. 볏짚을 덮어 태워서 느린 불꽃 기운을 대발에 베푼다.
화로 위엔 불에 말리는 상자를 놓고, 발에 차잎을 벌려 깔고, 불에 말리는 상자 속에 한 겹을 깐다)에서불에 쬐어 말린다. 두 줄의 대비치게(대비치개의 길이는 한 자 두 치의 절반을 굽혀서 여섯 치로 하고, 그 끝에 새끼로 엮어서 점점 넓게 벌린다.)로써 어지럽게 부러지는 잎이 없도록 가볍게 저어 대충 습기가 없어지는 정도로 하여 미지근한 불로 말리는 상자(미지근한 불에 말리는 상자는 손으로 만지면 미열을 느끼며, 센 불에 말리는 상자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 열기를 감당치 못한다)에 옮긴다. 대비치게로 저어서 따뜻한 기운이 없어지면 어레미로 체쳐 내려서 갑 ? 을을 정하는데, 가장 가는 것이 상품으로서 열 돈쭝을 한 봉지로 한다. 그 다음가는 것도 각기 차이가 있다.
○ 자제법은 대광주리에 차잎음 담아 절반의 분량을 물이 끓는 가마 속에 넣고, 맑은 물에 옮겨 식 혀 마른 뒤 말리는데, 방범은 증제법과 같다 증제에는 제벽법이 있는데, 그 잎이 지나치게 크면 종종 버릇이 있다. 만약에 맛이 쓰거나 떫으면 끓는 물에다 석회즙을 조금 섞고, 향기가 나쁜 것은 올벼의 볏짚과 잿불 을 섞고, 또 빛깔이 나쁜 것은 귤 껍질과 잿물을 섞으면 푸른 빛이 살아난다. 그리고 차를 만드는 탕 이 아주 뜨겁지 않으면 빛깔과 맛이 좋지 않다.
○ 전다제법은 윗잎과 아랫잎을 나누어 자제법처럼 맑은 물에 식혀 골풀자리에 널어서 햇볕에 말린 다. 습기가 없어지면 센 불로 말리는 상자에서 불에 쬐어 말리고, 거친 가루의 체친 것을 상품의 전 다로 삼는다. 하품은 뜨거운 잿물에 삶아서 갈대자리에 널어 말린다.
○ 당차제법은 만차제법과 같다.
부뚜막의 생김새가 얕고 뒤가 놓은 그 위에다 넓적한 남비를 안치 하고 미지근한 불로 말린다. 차의 날잎을 남비 속에 넣고 불에 쬐어 말릴 때 손으로 저으면 잎이 오그라드는데, 연약한 것을 정 도로 삼아 왕골자리에 옮기고 잎이 부스러지지 않도록 천천히 부드럽게 부벼 남비에 넣는다. 이와 같 이 일고여덟 번하여 부스러질 만큼 말랐거든 네댓 번에 그쳐도 무방하다. 이는 미지근한 불에 여러 번 죄어 말린 것이라 기미는 마침내 상품으로 만들어진다. 또한 산다 ? 다매 ? 구기 ? 오가피 ? 뽕 ? 닥 등의 잎도 모두 찌고 삶아서 차로 하는데, 흉황과 굶주 린 자를 건진다. 높은 산, 큰 재 막힌 골짜기 중위 놓은 곳은 차를 심기에 가장 알맞다. 차라는 것은 안개와 이슬을 많이 받을수록 그 맛이 더욱 무르녹는다. 심음 땅의 성질이 아주 짙으면 차나무는 더욱 장대하여 잎이 두껍고 커진다.
차는 천연생을 극품이 라 하며, 딸 수 없는 것을 암차의 종류라고 한다. 차잎은 이른 새벽에 이슬이 있을 때 따면 부드러운 기생을 머금는다. 지맥이 올라올 때면 잎의 정화가 충익하므로 맛과 향기가 그윽하다. 차잎을 잘 살피어 반은 밀리고 반은 펴진 잎의 등에 가는 털이 있고 잎 안의 빛깔이 푸른 구슬 같은 것이 가장 좋고 , 반은 마르고 반이 펴진 것을 딴 것은 혈기가 왕성한 소장인에 견줄 수 있다. 차잎은 싹이 세 차례 난다. 첫번째는 곡우, 두번째는 황매 때, 세번째는 벼꼿 철이다. 다만 첫물에 는 지나치게 따면 안 되는 데, 두번째의 발아가 방해될가 두렵기 때문이다. 두 물 따기에도 이를 본 받는다. 녹차 만드는 법 약한 불기에 달군 가마에 차잎을 잠시 내버려두었다가 멈추지 않는 손으로 연하게 덖는다. 때에 따 라 가려내어 부벼서 거의 한 덩어리가 되면 다른 가마에 옮기는데, 다른 가마 또한 미열을 넘지 않는 다. 이미 덩어리로 된 잎은 손으로 들어 펴서 또 부빈다. 잎 일리기를 끝맺으면 다시 먼젓번의 가마로 옮겨서 수시로 가려내어 수시로 부빈다. 그 잎이 알맞게 마른 것을 모차라고 한다. 크고 작은 열 두 낱의 어레미로 첫번째는 가지와 줄기를 체질로 통과시키고, 2호 어레미로 체질하 여 남은 차를 체에 통과시켜서 우두머리 어레미의 그릇에 집어 넣는데, 이것을 두사모차라고 일컫는 다. 3호 어레미 이하는 모두 차례로 바꾸어 옮긴다. 이미 12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등급마다 풍차 에 넣고 풍구질하여 통과시킨 뒤, 충분히 선택해서 가마에 넣고 덖는다. 첫번째 덖음을 마광히라고 하며, 두번째 덖음을 작색이라고 하며, 세번째 덖음을 복화라고 한다. 그 빛깔이 가지런하지 아니함이 없어지면 상자에 포장하여 내다가 팔아 넘긴다.
육우다경
차는 맛이 지극히 차서 행실이 깨끗하고 검소한
덕망이 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알맞은다.
- 서문 -
육우의 『다경』은 집에 전하는 것이 한 권, 필씨와 왕씨의 책이 세 권, 장씨의 책이 제 권, 내외의 책이 여남은 권이다. 그 글의 번잡함과 간략함이 같지 않다.
왕씨와 필씨의 책이 번잡한 것은 그것이 옛글임을 뜻한다. 장씨의 책이 간결명료하기란 집의 책과 합치되지만 잘못과 빠진 것이 많다. 집의 책은 옛것에 가까워서 가히 고증할 만하다. 가로되, 7. 차의 옛일」그 이하의 글은 세 책을 합쳐서 이루어 베껴 두 편으로 하여 집에 간직한다.
대체로 차의 책을 짓는 것은 육우로부터 비롯된다. 그 것이 세상에서 사용되는 것도 또한 육우에서 비롯된다. 육우는 진실로 차에 공이 있는 분이다. 위로는 궁성으로부터 밑으로는 읍리에까지 미치고, 밖으로는 되 ? 동방 종족 ? 남쪽 오랑캐 ? 북쪽 오랑캐에 이르러 손님 접대 ? 제사 ? 잔치에는 미리 먼저 베푼다. 산천에서는 차 시장을 이루고 상품의 장사는 집안을 일으킨다. 또 육우는 사람들에게도 공이 있는 분이나 가히 지혜에 이르렀다고 일컬을 만하다. 경서에 이르기를, 「차의 좋고 나쁨은 구 결에 있다」고 하였다.
곧 책에 실린 바는 오히려 조잡하여 차를 예술로 삼기에는 하급이다. 그 정미함에 이르러서는 책도 다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천하의 지극한 도리를 글씨나 종이와 먹 사이에서 구하기를 바란다고 한들 그것을 얻을 수 있을손가.
옛날의 선왕들은 사람에 의지하여 가르치고, 바람을 같이하여 다스렸다. 무릇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 은 모두 그치지를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풀어서 이르기를, 「선왕들은 시서와 도덕뿌이더라」고 하 였다.
이는 곧 세상을 멀리한 방법 자기의 논의요 마른 나무를 몸소 지키는 행실로서, 천하에 떼지어 있지 를 못하는 것이다.
사기에 말하기를, 육우가 다구를 잡고 이계경에게 마시게 하였으나 계경이 우두머리로 공경하지 않 으니, 또 평론을 지어 이를 비방하였다. 예술이란 것은 군자가 갖는 것으로서 덕이 이룩된 다음에야 백성과 화합하기에 이르는 까닭이다. 근본에 힘쓰지 않고 보잘것 없는 일을 재촉하는 까닭에 예술이 이루어져도 알량한것이다. 학자는 이를 삼가할지어다.
송나라의 진사도 지음
1. 차의 근원
차는 남녘의 아름다운 나무이다. 키가 한 자, 두 자에서 수십자에 이른다. 그 나무는 과로와 같고, 잎은 치자와 같으며, 꽃은 흰장미와 같고, 열매는 병려와 같으며, 줄기는 정향과 같고, 뿌리는 호도와 같다.
그 글자는 혹 초두를 좇거나, 혹은 나무목변을 좇거나, 혹은 초두와 나무 목변을 합한다. 초두를 좇 으면 마땅히 다(茶)가 만들어지는고, 나무목변을 좇으면 마땅히 도가 만들어지는며, 초두와 나무목변을 합하면 다가 만들어진다.
그 이름은 첫째로 차라하며, 둘째로 가라 하며, 셋째로 설이라 하며, 넷째로 명이라 하며, 다섯째로 천이라 한다. 「일찍 딴 것을 차라 하고, 늦게 딴 것 은 명이라하며, 혹은 온통 천이라 할 따름이다」라고 말하였다.
그 지질로 말하며, 상품은 문드러진 돌멩이 땅에서 나며, 중품은 조약돌이 섞인 땅에서 나며, 하품 은 누른 땅에서 난다. 무릇 차는 씨앗을 뿌려도 부실하며, 심어도 무성하기가 드물다. 외 심기를 본받으면 세해 만에 딸 수가 있다. 들에서 나는 것이 으뜸이요 밭에서 나는 것이 버금간다. 햇볕이 쬐는 벼랑의 그늘진 숲에서 자주빛 나는 것이 으뜸이요 초록빛 나는 것이 버금간다. 순이 으뜸이요 싹이 버금간다. 잎이 말린 것이 으뜸이요 잎이 펴진 것이 버금간다. 그늘진 산과 둑이나 골짜기에서 나는 것은 막히는 성미로 적병이 되니 따서 주워모으기를 견디지 못 한다.
차의 용도에 대하여는, 맛이 지극히 차서 행실이 깨끗하고 검소한 덕망이 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가장 알맞다.
만약 열이 나거나 목이 마르고, 번민이 영기거나 골이 아프거나 눈이 깔깔하거나 사지가 번거롭거나 백마디가 안 펴진다면, 그저 네댓모금만 마셔도 제호/ 감로와 저울대를 겨룬다. 때없이 따거나. 부정하게 만들거나, 초목의 잎을 섞어서 마시면 병이 된다. 차가 누가 되는 것은 또한 인삼과 같다. 상품은 상당에서 나고, 중품은 백제/ 신라에서 나며, 하품은 고구려에서 난다. 택주,역주, 단주에서 나는 것도 있으나 약으로 삼기에는 효험이 없거늘, 하물며 이런 것도 아님에 있 어서랴. 설사 제니를 복용하더라도 여섯 가지의 질병을 낫게 하지는 못하리라. 인삼이 누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차도 누가 된다는 것을 다 알 것이다.
2. 차의 연장
상자..
바구니, 종다래끼, 광주리라 한다. 대나무로써 이를 짠다. 닷 되를 받는다. 혹 한 말, 두 말, 서 말들이도 있다. 차인부가 지고서 차를 따는 것이다.
부뚜막..
굴뚝이 있는 것은 쓰지 않는다. 가마는 전이 있는 것을 쓴다.
시루..
나무, 혹은 질그릇으로 된 것이다. 허리띠가 아니라면 진흙을 두른다. 대바구니를 작은 종다래끼로 삼아서 대껍질로 매어 단다. 찌기 시작하면 시루에 작은 종다래끼를 넣고, 이미 익었으면 작은 종다래끼를 꺼낸다. 가마의 물이 잦아들면 물을 시루 속에 붓는다. 시루는 테를 두르지 않고 진 흙을 바른다. 또 닥나무 가지의 세 아귀로 만든 것으로 찌는 바 싹과 순을 잎과 합하여 흐트러뜨린다. 그 진의 유실을 두려워해서이다.
절굿공이와 절구통..
디딜방아라고도 한다. 오로지 늘 쓰는 것이 좋다.
틀..
본이라고도 하며, 권이라고도 한다. 쇠로 만드는데, 동그라미/ 네모/ 꽃모양이다.
받침대..
대라 하며, 방칫돌이라고도 한다. 돌로 맞들거나 아니면 홰나무나 뽕나무로 만들어 절반은 땅 속에 묻어서 흔들려 움직이는 곳이 없도록 한다.
가리개..
옷이라고도 한다. 기름기를 입히 비단이나 혹은 비옷의 홑옷 꿰진 것으로 만든다. 가리개를 받침대 위헤 놓고 또한 틀을 가리개 위에 놓고서 차를 만든다. 차가 만들어지면 가리개를 들어서 바 꾼다.
비리..
상자라 하며, 방랑이라고도 한다. 길이 석 자의 작은 대나무 두 개로 두 자 다섯 치의 몸통과 다섯 치의 손잡이를 만들고, 대껍 질로 채마밭 언부가 쓰는 너비 두 자의 흙체처럼 빙안으로 짜서 차를 줄지어 넌다.
창..
송곳 칼이라고도 한다. 자루는 굳은 나무로 만들어 차에 구멍을 뚫는 데 쓴다.
두드리개..
채찍이라고도 한다. 대나무로 만들어 구멍 뚫린 차를 차끼리 흩어지게 한다.
배로..
땅을 깊이 두 자, 너비 두 자 다섯 치, 길이 한 길로 뚫어 위에다 짧은 담장을 만들고 두 자 높이의 진흙을 바른다.
꿰뚫개..
대나무를 깎아서 만든다. 길이는 두 자 다섯 치이다. 차를 꿰어 불에 쬐어 말리는 것이다.
선반..
비계라고도 한다. 배로 위에 나무로 얽어맞추며, 나무로 한 자 높이의 2층을 매어 차를 불에 쬐어 말린다. 차의 절반이 마르면 아래층 시렁에 얹으며, 전부 마르면 위층 시렁에 얹는다.
꿰미..
강동과 회남에서는 대나무를 쪼개서 만드록, 파천과 협산에서는 닥나무 껍질을 꼬아서 만든다. 강동에서는 한 조각을 상천으로 삼으며, 반 조각을 중천으로 삼으며, 네 냥/ 닷 냥을 소천으로 삼 는다. 협중에서는 백 스무 조각을 상천으로 삼으며, 여든 조각을 중천으로 삼으며, 쉰 조각을 소천으 로 삼는다. 천이라는 글자를 옛날에는 채천의 천으로 짓거나 혹은 관/ 관으로 지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마/ 선 / 탄/ 찬/ 봉의 다섯 글자처럼, 글은 평성으로 적되 뜻은 거성으로 부른다. 그 글자는 천으 로 이름 지었다.
기를통..
나무로 만들어 대나무로 짜고 종이로 풀칠하여 바른다. 사이에 간막이가 있고 위에는 덮개가 있으며, 밑에는 불자리가 있다. 곁에 문이 있는데 쪽문짝으로 가리고 속에는 그릇 하나를 놓고 묻은 잿불을 담아서 따끈따끈하게 한다. 강남의 매우 때는 불을 사른다.
3. 차의 만들기
무릇 차 따기는 2월, 3월, 4우러 사이에 있다. 차의 순은 문드러진 자갈의 기름진 땅에서 나며, 길이 는 네댓 치로서 고비나 고사리가 갓 돋아나는 것 같은데, 이슬을 무릅쓰고 딴다.
차의 싹은 떨기의 얕은 것 위에 핀 세 가지/ 네 가지/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 송곳끝처럼 빼어난 가지를 골라서 딴다. 그 날에 비가 있으면 따지 않는다. 개어도 구름이 있으면 따지 않는다. 개인날 따고, 찧고, 치고, 쬐고, 꿰고, 봉하면 차는 마르는 것이다.
차에는 천태만상이 있다. 대충 말하자면, 오랑캐의 가죽신 같은 것은 주름 잡혀 오그라든 듯하다. 혹이 달린 황소의 가슴팍 같은 것은 모나고 반듯하다. 뜬 구름이 산에서 나온 것 같은 것은 꾸불꾸불하다. 가벼운 바람이 물은 떨치는 것과 같은 것은 물에 잠겨서 흔 들리는 듯하다. 도가의 사람이 태토를 걸러서 물로 빛나고 맑게 한 듯한 것도 있다. 새로 고른 땅이 폭우를 만나서 넘쳐흐르는 곳을 지난 듯한 것도 있다. 이른 것은 모두 차의 정수다. 대나무 껍질 같은 것이 있는데, 가지와 줄기가 굳세고 단단하여 찌거나 찧기가 참으로 여려워서 그 모양이 대나무 체인 듯하다. 서리 맞은 연 같은 것이 있는데, 줄기와 잎이 시들고 꺾여 그 모양이 바뀐다. 그러므로 그 모양이 초라한 듯하다. 이런 것은 모두 차가 파리하 고 쇤것이다.
따기에서 봉하기까지 일곱 번의 과정을 거친다. 오랑캐의 가죽신에서 서리 맞은 연에 이르기까지 여 덟 등급이다. 혹 빛나며 검고 넓적하고 반듯한 것을 좋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하등의 감정법이다. 주 름지고 누렇고 오목하고 개암이 둑 같은 것을 훌륭하다고 하는 것은 차등의 갑정법이다. 만약에 모두 좋다고 말하는 것과 모두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상등의 감정법이다. 왜냐하면 진이 스며나온 것은 빛나며, 진을 머금은 것은 주름살이 잡혀 있고, 하룻밤 묵혀서 만든 것은 검고, 그 날로 만든 것은 누 렇고, 쪄서 누르면 넓적하고 반듯하며, 그 버금가는 것은 오목하고 개암이 둑처럼 되니, 이런 것은 차 와 초목의 잎이나 마찬가지이다.
차의 좋고 나쁨은 구결에 있다.
4. 차의 그릇
풍로 재받이..
풍로는 구리나 쇠를 녹여 부어서 만든다. 옛날 솥 모양처럼 두께 서 푼에 가장자리의 너비는 아홉 푼으로 하고, 여섯 푼은 속을 비우세 하고, 벽을 바르는 흙손과 보통 흙손으로 진흙을 바른다.
대개 세 발인데, 옛 글씨체로 스물 한 자를 쓴다.
한 발에 이르기를 「위에는 물, 밑에는 바람, 가운데는 불」이라 한다. 한 발에 이르기를 「거룩한 당나라가 오랑캐를 멸망시키 이듬해에 녹여 부어 만들다」라고 한다.
그 세 발 사이에 창문 셋을 마련하고, 밑바닥에도 창문 하나를 내어 통풍과 불탄 등걸이 빠지는 곳 으로 삼는다. 창문 위에는 옛 글씨체로 여섯 글자를 나란히 쓴다.
한 창문 위에「이공」(伊公) 두 자를 쓴다.
한 창문 위에「갱육」(羹陸) 두 자를 쓴다.
한 창문 위에「씨다」(氏茶) 두 자를 쓴다.
이른바 「국이라면 이공이요 차라면 육우로다」라는 것이다.
불룩하게 솟은 둔덕을 풍로 안에 두고 세 개의 간막이를 마련하다 그 중의 한 간막이에는 꿩이 있다. 꿩은 불괘의 날 짐승이다. 「리」라는 괘를 그린다.
그 중의 한 간막이에는 얼룩무늬 범이 있다. 표범은 바람괘의 짐승이다. 「손」이라는 괘를 그린다. 그 중 한 간막이에는 물고기가 있다. 물고기는 물괘의 동물이다. 「감」이라는 괘를 그린다. 손은 바람을 주재하고, 리는 불을 주재하며, 감은 물을 주재한다.
바람은 불을 곧잘 일으키며, 불은 물을 곧잘 데운다. 그러기에 그 세 가지의 괘를 갖추는 것이다. 풍로의 겉치장은 이어진 꽃무늬 / 드리운 덩굴/ 구비구비 휘어져 흐르는 물/ 내모진 무늬의 종류로 한다. 그 화로는 혹 쇠를 단련하여 만들기도 하며 혹은 진흙을 이겨서 만든다.
그 재받이는 삼발이 쇠받침을 만들어서 든다.
숯광주리..
숯광주리는 대나무로 짠다. 높이는 한 자 두 치에 지름의 너비는 일곱 치이다. 혹은 등나무를 사용하 여 광주리모양 같은 나무골 을 만들어 여섯개의 돌출된 둥근 눈구멍으로 짠다. 그 밑창 은 편리한 대나무 상자와 같은데, 아가리는 쇠테를 두른다.
숯가르개..
숯가르개 쇠로써 여섯 모로 만든다. 길이 한 자에 한 쪽을 날카롭게 하고 가운데를 풍성하게 하며 손잡이는 가늘게 한다. 머리에 하나의 작은 고리쇠를 이어서 가르개를 꾸민다. 지금의 하주와 농주 군 인의 나무 방망이와 같다. 혹은 쇠망치로 만들고, 혹은 도끼로 만드는 것은 그 편의에 따른 것이다.
부젓가락..
부젓가락은 일명 조라고 한다. 늘 쓰는 것과 같은데, 둥글고 곧으며 한 자 세 치이다. 정수리는 넓 적하게 끊겨져서 팟종이나 굽은 쇠사슬 등속은 없다. 쇠 혹은 속동으로 만든다. 솥..
솥은 생철로 만든다. 바로 쇠 불리는 것을 영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른바 급철이다. 그 회는 쓰기에 망설여지는 장기를 녹여 부(釜)어서 만든다. 속틀은 흙으로 하면 겉틀은 모레로 한다. 흙은 속 을 미끄럽게 하여 문질러서 씻어 내기 쉽게 하며, 모래는 겉을 껄끄럽게 하여 불길을 빨아들이게 한 다. 그 귀는 모나게 하여 규칙을 바로잡게 하고, 그 가장자리를 넓게 하여 오래 힘쓰게 한다. 그 베꼽을 길게 하여 중용을 지키게 하는데, 배꼽이 길면 가운데부터 끓는다. 가운데가 끓으면 찻가 루가 올라가기 쉽고, 찻가루가 올라가기 쉬우면 그 맛이 순박하다. 홍주에서는 사기로 만들며 내주에서는 돌로 만드는데, 사기와 돌은 모두 아담한 그릇이다. 바탕이 굳 세고 실하지를 않아서 오래 간직하기가 어렵다. 은으로 만든 것이 지극히 깨끗하면 깨끗하다. 만약 이것을 항상 사용할 것이라면 마침내는 쇠붙이로 돌아간다.
교상..
교상은 열십자로 교차시키고 가운데를 깎아 새겨서 비게 하여 솥을 지지한다.
집게..
집게는 작고 푸른 대나무로 만든다. 길이는 한 자 두 치인데, 한 치마다 마디가 있게 하고, 마디 이 상은 쪼개어 이것으로 차를 굽는다. 그 대나무의 가는 데가 불에서 진액이 적셔져서 그 깨끗한 향기 를 빌어 차의 맛을 더한다. 아마도 수풀 골짜기가 아니면 이룰 수 없으리라. 혹 정련된 쇠난 숙동의 종류를 쓰는 것은 그 내구성을 취하는 것이다.
종이 주머니..
종이 주머니는 희고 두꺼운 섬등지로 끼어서 꿰매어 구운 차를 저장한다. 그 향기가 새지 않게 한다.
연 가루털개..
연은 귤나무로 만든다. 다음은 배나무/ 뽕나무/ 오동나무/ 꾸지뽕나무로 만든다. 속은 둥글고 겉 은 모난다. 속이 둥근 것은 운행에 대비한 것이고, 겉에 모가난 것은 기울어지는 위험을 억제하는 것이다. 속에 는 연알을 넣고, 겉에는 나머지 나무가 없다. 연알의 모양은 수레바퀴와 같은데, 바퀴살은 없고 굴대 가 있다. 길이는 아홉 치, 너비 한 치 일곱 푼, 연알의 지름은 세 치 여덟 푼, 가운데의 두께는 한 치, 가장자리(날)의 두께는 반 치이며, 굴대의 중앙은 모가 나고 손잡 이는 둥근다. 그 가루털개는 새의 깃털로 만든다.
체/ 합..
찻가루를 체질하여 합과 덮개로써 이것을 저장하고 구기를 합 속에 넣어둔다. 체는 큰 대나무를 쪼 개어 굽히고 사견으로 옷 입힌다. 그 합은 대나무의 마디로 만든다. 혹은 삼나무를 굽혀서 옻칠한다. 높이 세 치에 덮개는 한 치, 속은 두 치에 아가리의 지름은 네 치이다. 구기..
구기는 바다조개 껍질/ 굴/ 껍질/ 대합조개 껍질의 무리로써 하며, 혹은 구리/ 쇠/ 대 숟가락의 종류로써 한다. 구기는 말이요 견줌이요 자이다. 대개 물 한 되를 끓이는 데 사방 한 치 숟가락의 가루차를 사용한 다. 만약 엷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줄이고, 진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늘린다. 그러기에 구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통..
물통은 나뭇결이 많은 나무 안 홰나무/ 가래나무/ 가나무 등으로 합한다. 그 안을 바깥과 합한 이음새에 옻칠을 한다. 한 말을 받는다.
물 거르는 자루..
물 거르는 자루는 늘 쓰는 것과 같다. 그 뼈대는 생동을 녹여 부(釜)어 만들어서 물의 습기에 대비하 니 더러운 이끼가 끼거나 녹슬 염려람 있을 수가 없다. 숙동으로 하면 더러운 이끼가 끼며 쇠로 하면 동녹이 슨다. 수풀에서 살거나 골짜기에 숨어사는 사람은 혹은 대와 나무를 사용하지만, 나무와대는 오래 견디고 멀리 겪을 그릇이 아니다. 그러므로 생동을 사용한다.
그 자루는 푸른 대나무로 짜서 말아, 푸른 모초비단을 잘라서 꿰맨다. 가는 비취빛 명주로 이를 꿰맨 다. 또 녹유낭을 만들어 저장한다. 둘레의 지름은 다섯 치에 손잡이는 한 치 닷 이다.
표주박..
표주박을 희표라고도 한다. 박을 갈라서 만든다. 혹은 나무를 깎아서 만든다. 진나라의 사인 두육의 『천부』에 이르기를「잔질은 박으로 한다」고 하였는데, 박이란 표주박이다. 아가리는 넓고 정강이 는 잘룩하고 손잡이는 짧다.
영가 연간에 여요사람인 우홍이 폭포산에 들어가서 차를 따다가 만난 한 도사가 이르기를 「나는 단 구자라요. 그대에게 비노니 훗날 사발이나 자루 달린 구기에 여줄가리가 있거든 부(釜)디 내게도 보 (輔)내주시오」라고 하였는데, 희란 나무로 된 구기이다. 지금 상용되는 것은 배나무로 만든 것이다.
대젓가락..
대젓가락은 간혹 복숭아나무/ 버드나무/ 포규나무로 만든다. 혹은 감나무의 속으로도 만든다. 길 이는 한 자이며 양쪽 가를 은으로 싼다.
소금단지..
소금단지는 사기로 만든다. 둘레의 지름은 네 치로서 함의 모양과 같다. 혹은 병 이나 술잔 같기도 한데 소금을 담는다. 그 주걱은 대나무로 만든다. 길이는 네 치 한 푼이며, 너비는 아홉푼이다. 뜨개는 대쪽의 구기이다. 익은 물 바리..
익은 물 바리에는 익은 물을 저장한다. 혹은 자기 혹은 사기로 되었으며, 두 되를 받는다.
주발..
주발은 월주가 으뜸이고, 정주가 다음, 무주가 다음, 악주가 다음, 수주와 홍주가 버금간다. 어떤 사람은 형주를 월주의 위로 분별하지만 뛰어나게 그렇지는 않다. 만약에 형주의 자기가 은을 닮았다면, 월주의 자기는 옥을 닮았다. 형주가 월주와 같지 못한 첫째 이다. 만약에 형주의 자기가 눈을 닮았다면, 월주의 자기는 얼음을 닮았다. 형주가 우러주와 같지 못한 둘 째이다. 형주의 자기는 희어서 차의 빛깔을 붉고, 월주의 자기는 푸르러 차의 빛깔은 초록이다. 형주가 월주 와 같지 못한 셋째이다. 진나라 두육의 『천부』에 이른바 「그릇은 고르고, 질그릇은 가리는데, 동구에서 난다」는 구란 월 이다. 주발은 월주가 으뜸이다. 입술은 굽지 않고 바닥은 굽어서 얕은데 반 되 이하를 받는다. 우러주의 자기와 약주의 자기는 모두 푸르다. 푸르면 차에 유익하고 차는 연두빛을 드러낸다. 형주의 자기는 희어서 차의 빛깔은 붉다. 수주의 자기는 누래서 차의 빛깔을 자주빛이다. 홍주의 자기는 갈색이어서 차의 빛깔은 검다. 다 차에 마땅치가 않다.
둥구미..
둥구미는 흰 부들을 말아서 짠다. 주발 열 낱을 저장할 수가 잇다. 혹을 광주리를 사용한다. 그 종이 수건은 섬등지로 맞꿰매어 모나게 한다. 이 또한 열 장으로 한다.
솔..
솔은 병려 껍질을 잇고 수유나무에 끼워 묶는다. 혹은 대나무를 잘라서 다발지어 대롱으로 하낟. 큰붓 모양과 같다. 개수통..
개수통은 깨끗이 씻은 나머지를 저장한다. 가래나 무를 합쳐서 물통처럼 만든다. 여덟 되를 받는다.
찌꺼기통..
찌꺼기통은 모든 찌꺼기를 모은다. 개수통처럼 만든다. 닷 되를 처리한다.
행주..
행주는 깁의 피륙으로 만든다. 길이 두 자짜리를 두장 만들어서 서로 바꾸어 사용하여 모든 그릇을 깨끗이 한다.
구열..
구열은 혹은 평상으로 만들며, 혹은 시렁으로 만든다. 혹은 순전한 나무나 순전한 대나무로 만든다. 혹은 나무로 대나무를 본떠서 노랑과 검정 빛깔로 나누어서 옻칠을 한다. 길이는 석 자에 너비는 두 자이며, 높이는 여섯 치이다. 구열이란 것은 모든 기물을 다 거두어서 다 진열하는 것이다.
모듬 바구니..
모든 바구니는 모든 그릇을 다 세움으로써 이름한것이다. 대나무 껍질로 안쪽은 세모의 방안으로 만 들고, 바깥쪽은 두 겹의 넓은 대 나무 껍질을 세로로 하여 외가닥의 가는 대껍질로 동여매고, 차례로 두 가닥의 경사를 바꾸어 누른다. 방안을 만들어서 영롱하게 한다. 높이는 한 자 다서 치이며, 바닥의 높이는 두 치이며, 길이는 두 자 네 치이며, 너비는 두 자이다.
5. 차 달이기
무릇 차 굽기는 신중하게 하여 바람과 깜부기불의 사이에서는 굽지 말지어다. 불티와 불꽃이 송곳 같아서 더위는 서늘함을 고르지 않게 한다.
차를 가져다 불에 바싹 대고 자주 뒤집어서 구워지는 상태를 바로 잡는다. 토둔의 형상과 두꺼비의 등이 나타난 뒤, 불에서 다섯 치를 물리쳐 말렸다가 펴지면 그 처음에 근본을 두고 굽는다. 만약 불에 말린 것은 불기에 덥혀지면 멈추고, 햇볕에 말린 것은 부(釜) 드러워지면 멈춘다.
그 처음에 만약 차의 지극히 연약한 것은 찌기를 마치고 뜨거운 것을 찧으면 잎은 문드러져서 싹과 순이 남는다. 힘을 비는 사람이 천 균의 공이를 잡더라도 문드러지지를 않는다. 칠과주와 같아서 장사 가 맞아도 그 손가락에 머무르게 하지 못한다. 차가 완성되면 양골이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을 구우면 그 마디의 힘줄이 어리고 약한 모양은 젖먹이의 팔뚝과 같을 뿐이다. 정화로운 기운 이 흩어져 넘칠 곳이 없다. 차가와지기를 기다려서 이것을 가루낸다.
그 숯은 일찍이 지지거나 굽기를 겪어서 누린 기름냄새가 날 지경에 이른 것과 진이 있는 나무와 썩을 그릇은 쓰지 않는다. 옛 사람이 「지친 섶나무의 맛이 있다」고 하였는데, 믿을 만하다.
그 물은 산의 물을 쓰는 것이 상품이요 강물이 중품이요 우물물은 하품이다. 그 산의 물은 젖샘과 돌못에 게으르게 흐르는 것을 가린 것이 으뜸이다. 그 폭폭의 물솟음이나 양치질 소리가 나는 여울물은 마시지 말지어다. 오래 마시면 사람으로 하여금 목병이 있게 한다. 또 산골짜기에 많은 샛줄기는 맑게 잠긴 채 새어나가지를 않아서 화성이 흐르는 7월에서 서리가 내리는 9월 이전까지 어쩌면 잠긴 용이 그 사이에다 독기를 쌓아 두었을지도 모르니, 마시는 사람은 물꼬를 터놓아 나쁜 것을 흘려보내고 새로운 샘물이 졸졸 흐르게 한 다음에 잔질하는 것이 좋겠다. 그 강물은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것을 취하며, 우물은 많이 물 긷는 것을 취한다.
그 끓음은 고기 눈과 같고 어렴풋한 소리가 있는 것을 첫째 끓음으로 삼는다. 가장자리에 솟구치는 샘과 이어진 구슬을 둘째 끓음으로 삼는다. 물결이 뛰어오르고 북치는 것을 셋째 끓음으로 삼는다. 그 이상 올라가면 물이 쇠어서 먹지 못한다.
처음 끓으면 물을 분량에 맞추고 소금맛으로 고른다. 먹던 나머지를 버리라고 이르는 것은 짜기만 하고 온갖 맛을 모을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두번째 끓음에 물 한 표주박을 떠내고, 대젓가락으로 끓는 물의 가운데를 빙글빙글 심하게 휘저으면 곧 찻가루를 헤아려 마땅히 중심으로 떨어뜨린다. 잠깐 있다가 물의 기세가 마치 달리는 큰 물결이 물거품을 치듯이 되거든 떠낸 물로써 이를 멈추고, 그 가루를 기른다.
무릇 잔질하여 여러 주발에 놓는 데는 거품과 발을 고르게 한다. 거품과 발은 차탕의 가루이다. 가루의 엷은 것을 거품이라 하고, 진한 것을 발이라 하며, 잘고 가벼 운 것은 꽃이라고 한다. 꽃은 대추꽃이 둥근 연못 위에서 동실동실 떠도는 듯하고 또 돌아서 굽은 못과 물강에 푸른 부(釜)평 초가 처음 생긴 것과 같고 또 시원하고 맑게 갠 하늘에 비늘구름이 뜬 듯하다. 그 거품은 녹전이 물가에 뜬 것 같고 겹친 가루와 포갠 거품이 희뜩희뜩하여 눈이 쌓이 듯할 뿐이다. 『천부』에는 이른바「밝기가 쌓인 눈 같고, 빛나기가 봄꽃과 같네」라고 적혀 있다.
첫번째의 달이기에서는 물을 끓여서 버린다. 그 거품 위에는 수막이 있는데, 검은 운모와 같다. 이것을 마시면 그 맛이 바르지가 않다. 그 첫번째의 것을 준영으로 삼는다. 혹은 익은 물을 묵혀서 이를 저장 하고 가루를 기름으로써 끓음을 돕는 용도에 대비한다.
모든 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이며, 세 번째 주발이 이에 버금간다. 다섯번째 주발 이외는 매우 목마 르지 않으면 마시지를 말지어다. 무릇 달인 물 한 되를 잔질하여 다섯 주발로 나눈다. 뜨거운 기회를 타고 이것을 잇대어 마시는 것은 무겁고 흐린 것은 밑에 엉기고 맑은 꽃이 의에 뜨기 때문이다.차가운 것 같으면 맑은 꽃이 기운에 따라서 마른다. 마시고 훌쩍거려도 삭지 않는 것이 또한 당연하다.
차의 성품은 검소하여 넓은 것에는 마땅치가 않다. 곧 그 맛이 암담하다. 또한 만일 하나 가득한 주 발이라면 절반만 마셔도 맛이 적다. 하물며 그 넓은 것임에 있어서랴. 그 빛깔은 담황색이다. 그 향기는 아름답다. 그 맛이 단 것은 가요 달지 않고 쓴 것은 천이요 마시매 쓰고 목구멍에서 단 것이 차다.
6. 차 마시기
날개가 있어서 날고, 털이 있어서 달음질하고, 입을 벌리고 말한다. 이 셋이 함께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살며, 마시고, 쪼아서 산다. 마시기의 뜻은 멀기도 하구나. 만약 목마른 것을 구원하려면 장 을 마시고, 울분을 없애려면 술을 마시며, 혼미함을 쓸어 버리려면 차를 마시기에 이르렀다. 차를 음료로 삼은 것은 신농씨로부터 일어나서 노나라의 주공이 이름났다. 제나라에는 안영이 있고, 한나라에는 양웅과 사마상여가 있으며, 오나라에는 위요가 있고, 진나라에는 유곤 ? 장재와 먼 조상인 육납/ 사안/ 좌사의 무리가 있어서 모두 이를 마셨다. 시대의 물결에 따라 훙속이 번져 국조에 성 행되어 두 도읍과 형유 사이에서는 즐비한 집의 음료로 삼게 되었다.
마시기에는 추차/ 산차/ 말차/ 병차가 있다. 곧 쪼개고, 볶고, 굽고, 절구질하여 항아리나 앙병 속에 담아서 끓는 물을 끼얹은 것을 담그는 차라고 이른다. 혹은 파/ 생강/ 대추/ 귤 껍질/ 수유/ 박하들을 넣어 백 번을 끓인다. 혹은 떠올려서 미끄럽게 한다. 혹은 달여서 거품을 버린다. 이런것 은 도랑이나 개천 사이에 물을 버릴뿐이다. 그래도 습속을 그치지를 않는다.
오호 하늘이 만물을 기르는 것이 모두 지극히 묘한 것이 있는데, 사람이 공교한 것은 다만 얕고 쉬 운 것만 찾는다. 덮는 것은 집인데 집은 지극히 정교하다. 입는 것은 옷인데 옷은 지극히 정묘하다. 배부르게 하는 것은 음식인데 밥과 술은 모두 깨끗하다.
차에는 아홉 가지의 어려움이 있다. 첫째가 만들기요 둘째가 분별하기요 셋째가 그릇이요 넷째가 불이요 다섯째가 물이요 여섯째가 굽기요 일곱째가 가루내가요 여덟째가 달이기요 아홉째가 마시기이다.
흐려서 따고 밤에 불에 쬐어 말리는 것은 만들기가 아니다. 맛을 보(輔)거나 냄새를 맡는 것은 분별 하기가 아니다. 노린내 나는 솥과 비린내 나는 사발은 그릇이 아니다. 진이 있는 섶나무와 부엌 숯은 불이 아니다. 물살이 빠른 여울과 막혀서 괸 물은 물이 아니다. 겉만 익고 속이 날것인 것은 굽기가 아니다. 푸른 가루와 옥색 티끌은 가루가 아니다. 어줍게 다루거나 덤벼서 휘젓는 것은 달이기가 아니다. 여름에는 행하고 겨울에 그치는 것은 마시기가 아니다.
무릇 진기하고 신선하며 심하게 향기로운 것은 그주발의 수효를 셋으로 하며, 버금가는 것은 주발의 수효를 다섯으로 한다. 만약에 앉은 손님의 수효가 다섯사람에 이르면 세 주발을 행하고, 일곱 사람 에 이르면 다섯 주발을 행한다. 만약 여섯 사람 이하라도 주발의 수효에 얽매이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 몫만 빠질 분이라면 그 준영을 빠지는 사람에게 보탠다.
7. 차의 옛일
삼황 염제인 신농씨.
주나라 : 노나라의 주공단. 제나라의 재상인 안연.
한나라 : 선인인 단구자/ 황산군/ 문제원릉의 영인 사마상여/ 양웅.
오나라 : 귀명후(손호)/ 태전인 위요, 자는 홍사.
진나라 : 혜제/ 사공인 유곤/ 곤의 형의 아들이자 연주자사이 유연/ 황문의 장재, 자는 맹양/ 사 례인 전함/ 세마인 강통/ 참군인 손초/ 기실인 좌사, 자는 태중/ 오흥(태수)인 육납/ 납의 형의 아들이자 회계내사인 육숙/ 관군인 사안석 / 홍농(태수)인 곽박/ 양주목인 환온/ 사인인 두육/ 무 강 소산사의 석법요/ 패국의 하후개/ 여요의 우홍/ 선성의 진정/ 돈황의 단도개/ 섬현골 진무의 아내/ 광릉의 노모/ 하내의 산겸지.
후위 : 낭야의 왕숙.
송나라 : 신안왕인 자란/ 란의 동생이자 예장왕인 자상/ 포소의 누이 동생인 영휘/ 팔공산의 사문인 담제.
제나라 : 세조인 무제.
양나라 : 정위인 유효작/ 도홍경 선생.
황조(당나라) : 영국공인 서적.
신농의 『식경』에 「차를 오래 먹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힘이 있게 하고 뜻을 즐겁게 한다」고 하였다. 주공의 『이아』에 「가나무는 고다이다」라고 하였다.
『광아』에 이르기를 「형주와 파주 사이에서는 잎을 따서 떡을 만든다. 잎이 쇤 것은 쌀의 끈끈이를 낸 것으로 떡을 빚는다. 잎이 쇤 것은 쌀의 끈끈이를 낸 것으로 떡을 빚는다. 차를 달여서 마시기를 바라면 먼저 구워서 붉은 빛깔이 나게 하여 찧은 가루를 오지 그릇 속에 담은 다음, 끓느 물을 붓고 덮는다. 파/ 생강/ 귤을 가려서 사용한다. 그 것을 마시면 술이 깨고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자지 않게 한다」고 하였다.
『안자춘추』에는 「안영이 제나라 경공의 재상으로 있을 때에 궂은 쌀밥과 세 마리의 새 구이/ 다섯 개의 알/ 차/ 뺑쑥을 먹을 뿐이었다」고 하였다.
사마상여의『범장편』에는 「바꽃/ 도라지/ 서향나무/ 민들레/ 패모/ 황경나무/ 누금초/ 작약/ 계수나무/ 절굿대의 뿌리/ 삽주/ 왕골버섯/ 천탁/ 가희톱/ 구리대뿌리/ 창포/ 초산소다/ 난디나무 열매/ 수유」라고 하였다.
양웅의『방언』에 「촉나라의 서남 사람들은 차를 설이라 한다」고 하였다.
『오지』의 「위요전」에 「손호는 향연마다 좌석은 대략 일곱 되를 한도로 삼지 아니함이 없었다. 비록 입에 다 들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두 물 대어 다함을 취하였다. 요는 술 마시기가 두 되에 불과하여 호가 처음부터 예를 달리하여 은밀히 차를 내려 술을 대신케 하였다」고 한다.
『진 중흥서』에는 「육납을 오흥의 태수로 삼을 때 위장군인 사안이 항상 납에게 뵈옵기를 바랐다. 납의 형의 아들인 숙은 납이 준비하는 바가 없는 것을 괴이하게 여겼으나 감히 묻지는 못하였다. 이에 사사로이 수십몫의 음식을 갖추었다. 안이 이미 이르 렀더니, 베푼바는 오직 차와 과실뿐이었다. 숙은 마침내 성찬을 베풀고 진수도 반드시 갖추었다. 안 이 물러감에 이르러, 납은 숙에게 마흔 대의 몽둥이 매질을 하고 이르기를, <너는 이미 숙부를 빛내 는데 유익하게 할 능력도 없었는데 어찌하여 나의 평소의 소행을 더럽혔단말이냐>」라고 하였다.
『진서』에는「환온을 양주목으로 삼았는데 성품이 검소하여 마시는 잔치마다 오직 옻칠한 전반의 차와 과실을 내릴 뿐이었다」라고 하였다.
『수신기』에는 「하후개가 병으로 말미암아 줄었다. 한집안 사람으로서 자를 구노라 하는 사람은귀 신을 살펴볼 줄 알았다. 보(輔)아하니 개하는 귀신이 오더니 말과 아울러 앓는 그 마누라를 잡고, 위 가 평평한 상토건과 홑옷을 입고 들어와서 살아 있을 때처럼 서쪽 벽의 큰 평상에 앉아 사람에게 마 실 차를 구하여 이루었더라 」고 하였다.
유곤이『형의 아들로서 남연주의 자사인 연에게 주은 글월』에 이르기를, 「전자에 얻은 안주의 마 른 생강 한 근/ 계피 한 근 ? 황금 한 근은 모두가 요긴 한 것이다. 내 몸 안에서는 번민이 성내어늘 참 차를 마시니, 자네가 이것을 베푸는 것이 옳겠네」라고 하였다.
전함의 『사예교』에 이르기를, 「듣자니 남시에 찻죽을 쑤어 파는 촉의 할미가 있는데 염탐군으로 하여금 그 기구를 쳐부쉈다더라. 훗날 또 저자에서 떡을 팔았는데, 찻죽을 금지하여 촉의 할멈을 괴 롭힌다니 어찌된 일이고」라고 하였다.
『신이기』에는「여요 사람인 우흥이 산에 들어가서 차를 따다가 세 마리의 푸른 소를 끌어당기는 한 도사를 만났다. 홍을 인도하여 폭포산에 다달아 이르기를, <나는 단구자라오. 듣건대 그대는 마실 것을 잘 갖춘다기에 늘 뵙고자 생각하였다오. 혜산 속에는 큼직한 차싹이 있으니 가히 돕기에 넉넉하 오. 그대에게 비노니, 다른날 사발과 구기의 여줄가리가 있거든 도와주기를 빌겠소.> 그런 인연으로 제사지내기를 갖추었다. 훗날 늘 집안 사람으로 하여금 산에 들여보내니 큼직한 차싹을 얻게 되었 다」고 하였다.
좌사의 『아리따운 여인』시.
내 집에 아리다운 여인이 있는데,
빛나고 밝아 자못 환하도다.
아명은 환소인데,
입과 이는 본시 맑고 가지런하네.
언니가 있는데 별명은 혜방.
눈과 눈썹이 눈부셔 그림 같아라.
줄달음질쳐서 동산의 숲을 날아
과실 나무밑에서 모두 날 것을 따네.
비바람 속에서도 꽃을 탐내어
홀연히 수백 걸음을 가누나.
마음은 차에 안달이 나서
다리 굽은 솥에 숨을 내뿜노라.
장맹양은 『성도의 누각에 오르는 시』에서 말하였다.
양자의 집을 시험삼아 물어보고,
장경의 오두막집을 상상으로 본다.
정 ? 탁은 천금을 포개었으니,
교만과 사치를 오후에 비기랴.
문에는 줄 이은 말탄 손님이 있고,
비취 허리띠엔 오나라 칼을 찼어라.
솥 음깃은 수시로 올리고,
갖은 요리는 묘하고도 뛰어났도다.
숲을 헤쳐서 가을 귤을 따고, 강물에 임하여 봄 물고기를 낚는다.
흑자는 말젓보다 지나치고,
과실 차림을 게장맛을 넘는다.
꽃다운 차는 육청의 으뜸이고,
넘치는 맛은 천하에 퍼진다.
인생이 한때 안락하려면,
이 땅도 잠시는 가히 즐길 만하구나.
전손의 『칠해』에는 「호도 ? 대완의 능금 ? 제지방의 감/ 연지방의 밤/ 환양의 황술 레/ 무 산의 붉은 귤/ 남중의 차씨/ 서극의 석청」이라고 하였다.
홍군거의 『식격』에는 「추위와 더위의 인사말이 이미 끝났거든 응당 서리꽃과 같은 차에 손댄다. 석잔이 끝나면 응당 사탕수수/ 모과/ 큰 오얏/ 양매 열매/ 오미자/ 감람/ 귀박/ 아욱국 각 한 잔에 손댄다」고 하였다.
손초의 『노래』
수유는 꽃다운 나무의 정수리에서 나고,
잉어는 낙수의 샘물에서 난다.
흰 소금은 하동에서 나며,
맛좋은 메주는 노지방의 연에서 난다.
생강/ 계피/ 차는 파촉에서 나고,
후추/ 귤/ 목란은 고산에서 난다.
여뀌/ 차조기는 도랑에서 나며,
정갈한 피는 밭 가운데에서 난다.
회타의 『식론』에는 「차를 오래 먹으면 뜻을 생각하는 데 유익하다」고 하였다.
호거사의 『식기』에는 「차를 오래 먹으면 신선이 된다. 부(釜)추와 함꼐 먹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몸을 무겁게 한다」고 하였다.
곽박이 단 『이아』의 주석에 이르기를, 「나무는 작고 치자를 닮았다. 겨울에 잎이 생기는데 가히 국으로 끓여서 마실 수 있다. 지금은 일찍 따는 것을 차라 하며, 늦게 따는 것을 차싹이라 부른다. 혹은 오로지 늦차라고도 한다. 촉 사람들은 이를 쓴차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
『세설신어』에는 「임첨, 자는 육장, 젊을 때 영명이 있었다.강을 건너면서부터 뜻을 잃고 이미 음 료에 손을 대고 사람에게 물어서 이르기를, <이것은 차요 차싹이요>라고 하였다. 그 사람에게 괴이한 기색이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밝히며 이르기를, <아까는 마시면 뜨거운지 차가운지를 물었을 뿐이오 >」라고 하였다.
『속 수신기』에는 「진나라의 무제 때에 선성 사람이 진정은 늘 무창산에 들어가서 차를 따다가 신 장이 한 길 남짓한 한 털보를 만났다. 정을 인도하여 산 밑에 이르러 차떨기를 보(輔)이고 물러가더 니 갑자기 되돌아와서는 곧 품안의 귤을 찾아서 정에게 주었다. 정은 두려워서 차를 짐지고 돌아왔 다」고 하였다.
『진사왕기사』에는 「혜제가 몽진하고 낙양에 돌아왔는데 황문이 질바리에 차를 담아서 임금에게 올렸다」고 하였다.
『이원』에 「섬현 진무의 아내는 젊어서 과부가 되어 두 아들과 함께 살면서 차 마시기를 즐겼다. 집안에 옛무업이 있기에 마실 때 마다 문득 제사부터 지냈다. 두 아들은 이를 근심하여 여쭙기를, < 옛무덤이 무엇을 알겠나이까. 헛되게 생각만 지칠 뿐이옵니다>라고 하면서 이를 파내어 없애고자 하 였으나 어머니가 간신히 만류하여 막았다. 그날 밤, 꿈에서 한 사람이 이르기를, <나는 이 무덤에 머 무른지가 삼백여 년이나 되오. 그대의 두 아드님은 늘 헐어서 드러내고자 하였건만, 도움에 힘입어 서 보(輔)호되었을 쁜만 아니라 나에게 좋은 차까지 제사지내 주셨소이다. 내 비록 숨겨져 문드러진 썩은 뼈이긴 하오만 어찌 예상의 은혜 갚기를 잊으오리까>라고 하였다. 새벽이 되자, 뜰 안에서 십만 전을 얻었는데, 묻힌 지는 오래된 것 같았으나 꿰미만은 멀쩡한 따름이었다. 어머니가 두 아들에게 알렸더니 이를 면구스러워하였다. 이로부터 빌기와 진지 올리기를 더욱 심하게 하였다」고 한다.
『광릉의 기로전』에는 「진나라의 원제 때에 할미가 있었다. 새벽마다 홀로 차 한 그릇을 들고 장 에 가서 팔았다. 장에 온 사람들이 다투어 사는데도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 그릇은 줄지 아니하였다. 번 돈은 길가의 외롭고 가난한 비렁뱅이에게 뿌렸다. 사람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고을의 법조가 할미를 옥 안에 가두고 말 굴레를 씌워 두었다. 밤이 되자 할미는 팔던 찻그릇을 가지고 옥의 격자창 사이로부터 날아서 나갔다」고 하였다.
『예술전』에 「돈황 사람인 단도개는 추우와 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늘 작은 돌을 먹었다. 먹는 약에는 솔/ 계피/ 꿀의 기운이 있었다. 나머지는 차와 차조기 뿐이었다.」고 하였다.
석도설의 『속 명승전』에는 「송나라 석법요의 성은 양씨요 하동 사람이다. 원가 연간에 강을 건너 서 심대진을 만나 무강의 소산사에 돌아가라는 청을 받았다. 수레를 매달아서 드리울 나이에 마시는 차를 먹이로 하였다. 대명 연가에는 오흥으로 칙명을 받았으나, 예로써 서울에 올라오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나이는 일흘 아홉 살이었다」고 하였다.
송나라의 『상끼가전』에 「강통의 자는 응원인데 민회태자의 세마로 얾겼다. 일찍이 상소에 간하여 아뢰기를, <지금 서원에서 파는 식혜/ 국수/ 쪽씨앗나물/ 차의 무리는 나라의 체면을 이지러뜨리고 헐게하는 것이옵니다>」라고 하였다.
『송록』에는 「신안왕인 자란과 예장왕인 자상이 팔공산의 담제도인을 참예하였다. 도인이 차를 베 풀자 자상이 이를 맛보고 이르기를, <이것은 감로요 어찌 차라고 하리까>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왕미의 『잡시』
적적함이 높은 누각을 뒤덮고
쓸쓸함이 넓고 큰 집을 비우네.
기다리던 님은 마침내 안 오니
옷깃 여며 이제 차라도 마시리.
포소의 누이동생인 영휘는 『향명부』를 지었다.
남제의 세조인 무황제는 유조에서 「짐의 영좌 위에는 삼가 희생으로 제사제내지 말지어다. 다만 떡/ 과실/ 차음료/ 마른 밥/ 술/ 마른 고기만을 베풀지 어다」라고 하였다.
양나라 유효작의 『진안왕꼐서 보(輔)내주신 쌀 등을 사례하며 여쭙는 글』에는 「전조인 이맹손이 교지를 널리 펴서 쌀/ 술/ 외/ 죽순/ 김치/ 마른 고기/ 식초/ 차의 여덟 종류를 드리워 주셨나이다.
냄새는 신성에 향기롭고
낫은 운송에 아름답네.
강과 못에 싹튼 마디는 창포와 마름풀의 진미보다 뛰어났네.
밭두둑에 솟으니 빼어나고
부(釜)들꽃의 맑은 아름다움이 넘치네.
진수는 실로 묶어 맨 것이 아니고
향내 밴 들노루는 눈 속의 나귀를 닮았네.
물고기젓은 오지병의 잉어와 다르고
자으니 아름다운 옥의 흰 쌀 같도다.
차는 흰 쌀을 먹는 것과 같고
식초는 큰 귤을 탓하는 듯하구나.
천리길의 숙박에도 절구질을 면하고
석 달치의 낟알 모으기가 생략된다네.
소인은 은혜를 생각하고
대의는 잊기 어렵다네」라고 하였다.
도홍경의 『잡록』에는 「차는 몸을 가볍게 하고 뼈를 바꾼다. 옛날에 단구자와 황산군이 이를 먹었 다」고 하였다.
『후위록』에는 「낭야의 왕숙을 남조를 섬겼는데, 차 마시기와 순채국을 즐겼다. 북녘 땅으로 돌아 옴에 이르어서는, 또다시 양고기와 낙장을 즐겼다. 사람들이 간혹 이를 물어서 <차와 타락과는 어떠 하오> 라고 하면 숙이 말하기를, < 차를 타락의 종이 되기를 견디지 못한다>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동군약록』에는 「서양/ 무창/ 여강/ 진릉의 차싹들은 모두가 좋다. 동녘 사람들이 청명으로 함 는 것이다. 차에는 발이 있는데, 이를 마시면 사람에게 걸맞는다. 대저 가히 마실 만한 것은 모둔 흔 히 그 잎을 취한다. 천문동과 발설은 뿌리를 취하는데. 모두 사람에게 유익하다. 또 파동에는 따로 참차가 있는데, 달여마시면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자지 않게 한다. 풍속 중에는 흔히 박달나무 잎과 대조리를 함께 달여서 차로 삼는 것도 있는데, 모두 차갑다. 또 남녘에는 과로나무가 있는데, 이 또 한 차싹을 닮아 몹시 쓰고 떫어 따서 가루차로 하여 마신다. 이것 역시 밤새도록 잠이 오지 아니한다. 소금을 고는 사람들은 다마 이 음료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교주나 광주에서는 가장 소중히 여겨서 손님이 오면 먼저 베풀고, 향기로운 나물의 무리를 추가한다」고 하였다.
『곤원록』에는 「진주 서표현의서북 350리에 무사산이 있다. 오랑캐의 훙속 중에 상서롭고 경사 스러운때를 당하면 친족들이 산 위에 집회하여 춤을 추고 노래하는데, 산에는 차나무가 많다고 한 다」고 하였다.
『팔지도』에는「임수현의 동쪽 140리에 다계가 있다」고 하였다.
산겸지의 『오흥기』에는
「오정현의 서쪽20리에 온산이 있는데, 어용의 차가 난다」고 하였다.
『이릉도경』에는 「황우/ 형문 ? 여관/ 망주 등의
산에서는 차가 난다더라」고 하였다.
『영가도경』에는 「영가현의 동쪽 300리에 백다산이 있다」고 하였다.
『회음도경』에는「산양현의
남쪽 20리에 다파가 있다」고 하였다.
『다릉도경』에 이르기를, 「다릉이란 이른바 능의 골짜기에 차가 자란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본초』의 「목부」에는 「차란 고다요 맛은 달고도 쓰다. 어렴풋이 차고 독을 없다. 누창을 주체 하며, 소변을 통하게 하고, 가래/ 갈증/ 신열을 물리치며,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적게 하다. 가을 에 이를 딴다. 쓴 것이 기를 내리고 음식 삭히는 것을 주체한다. 주석에 이르기를, 봄에 이를 딴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본초』의 채부에는 「고도는 혹은 차라 이름짓고, 혹은 선이라 이름짓고, 혹은 유동이라고 이름짓 는다. 익주의 개천 골짜기나 산 언덕이나 길가에 나는데, 겨울을 업신여기고 죽지 아니한다. 삼월 삼 짇날에 따서 말린다」. 주석하여 이르기를「의심할 나위없이 이것이 곧 지금 의 차인데, 혹은 다라 이름지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자지 않게 한다」고 하였다. 『본초』의 주석에 살피건대, 『시 경』에 이르기를〈오두와 씀바귀는 엿과 같다〉고 하였는데, 모두 고객이다. 도가는 〈고도란 나무의 종류이지 나물의 계통이 아니다〉라고 일컬었다. 봄에 따는 차싹을 고다라고 일컫는다. 봄에 따는 차 싹을 고다라고 일컫는다.
『침중방』에는 「여러 해 된 종기는 고다와 지네를 아울러 구워 냄새가 나게끔 익히고 반등분해서 찧고 체질하여 감초탕을 달여서 씻은 다음, 가루로써 이를 펴서 고친다」고 하였다.
『유자방』에는 어린애가 까닭없이 놀라서 뛰는 것을 고치려면 고다와 파뿌리를 달여서 먹인다」라고 하였다.
8. 차의 산출
산남도에서는 협주가 으뜸이다. 양주/ 형주는 버금간다. 형주가 하치이다. 금주와 양주는 더욱 하치이다.
회남도에서는 광주가 으뜸이다. 의양군과 서주는 버금간다. 수주는 하치이다. 기주와 황주는 더욱 하치이다. 절서에서는 호주가 으뜸이다. 상주는 버금간다. 선주/ 항주/ 목주/ 섭주는 하치이다. 윤주와 소주는 더욱 하치이다.
검남도에서는 팽주가 으뜸이다. 면주/ 촉주는 버금간다. 공주는 버금간다. 아주/ 여주는 하치이다. 미주/ 한주는 더욱 하치이다.
절동에서는 월주가 으뜸이다. 명주와 무주는 버금간다. 태주는 하치이다. 검중도에서는 사주/ 파주/ 비주/ 이주에서 난다. 강남도에서는 악주/ 원주/ 길주에서 난다. 영남도에서는 복주/ 건주/ 소주/ 상주에서 난다. 그 사/ 파/ 비/ 이/ 악/ 원/ 길/ 건/ 천/ 소/ 상의 11주는 아직도 자세하지 않다. 가끔 얻는데, 그 맛이 매우 좋다.
9. 차의 생략
그 제조도구란 것도 만약 바야흐로 봄의 금화할때에 들판의 절간이나 동산에서 일손을 모아 줍고, 찌고, 절구질하고, 다시 불로 말릴 수만 있다면, 창/ 두드리개/ 배로/ 꿰뚫개/ 선반/ 꿰미/ 기를 통 따위의 일곱 가지를 쓰는 일은 모두 폐한다.
그 달이는 그릇이란 것도, 만약에 고나무 사이의 돌위에 앉힐 수만 있다면 구열은 폐한다. 마른 섶 나무와 세 발 달린 솥이나 다리 굽은 솥 등속을 쓸 수만 있다면 풍로/ 재받침/ 숯가르개/ 부(釜)젓 가락/ 교상 따위는 폐한다. 만약 샘물을 굽어보거나 산골물이 임하게 된다면 물통/ 개수통/ 물 거 르는 자르는 폐한다. 만약 사람이 다섯 명 이하이고 차가 가히 맛나고 가는 것이라면 체는 폐한다. 만약에 칡덩굴의 도움으로 바위에 오르거나 굵은 밧줄을 끌어당겨 구렁에 들어갈 때 산의 어귀에서 차를 구어 가루낸 것을 혹 종이에 싸거나 합에 담을 수만 있다면, 연이나 가루털개 따위는 폐한다.
이미 표주박/ 주발/ 대젓가락/ 솔/ 익을 물 바리/ 소금단지를 모두 하나의 대광주리에 담았다면 모듬 바구니는 폐한다. 다만 성읍 안 왕공의 가문에서는 스물 네 가지의 찻그릇에서 하나만 빠져도 차를 폐할 수밖에는 없다.
10. 차의 그림
네 폭이나 여섯 폭의 흰 깁에 나누어 펴서 쓰고, 여러 자리 곁에 드리우면 차의 근원/ 차의 연장/ 차만들기/ 차의 그릇 / 차 달이기/ 차 마시기/ 차의 옛일/ 차의 산출/ 차의 생략을 목격하고 살핀 다. 이에 있어서 다겨으이 처음과 끝이 갖추어지 세 음이다.
♬. 허차서의 『다소』
요소헌의 서문
육우는 차를 품평하되, 자기 고향의 고저에서 생산되는 차를 제일 으뜸이라 했다. 그러나 명월협은 원래 좋은 차가 생산되는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 나는 그 가운데 조그마한 차밭을 사서, 해마다 차로써 소작료를 받아 그것의 좋고 나쁨을 스스로 판단해 왔다. 소년시절부터 늙을 대까지 이러한 일에 종사함으로써 비로소 그 오묘한 차맛을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다. 연명은 나의 친구로 그는 워낙 차를 좋아하는 성품이었다. 매년 새차가 나오는 계절이 되면 나의 집에 와서 금사·옥천의 두 우물물을 길어다 차를 달이고 완미검토하여 이를 품평했다. 나는 평생을 통해 습시자득한 비결을 전부 그에게 전수했다. 그가 돌아가서「다소」 한 권을 저작했으나, 미처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연명은 3년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차를 마실때마다 지기지우를 잃은 것을 슬피 생각했다. 그때 정미년(만력35년) 봄, 허재보가 연명의 「다소」를 가져와 보이며 덧붙여 말하기를, 꿈에 연명이 나타나 이것을 출판할 것을 부탁했다고 했다. 연명은 생전에 저서가 많았지만 특히 이러한 맑은 일을 친구에게 부탁한 것은 오로지 그의 정신이 그 책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또 「다경」의 뒤를 이어 불후의 저서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옛날 공현의 사람들은 도자기에다 육우의 상을 그려 넣었고, 차를 파는 사람들은 차를 부어 놓고 절을 했다 한다. 나도 연명을 권두에 소개하고서, 이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풍채를 인지할 것을 생각하는 차제이다. 만력 정미(35년) 봄날에 오흥의 친구 요소헌이 명월협에서 서하다.
허세기의 서문
내 고향의 허연명은 일찍부터 문단에 그 명성을 떨친 분이다. 병신년(만력24년), 나와 연명은 용정에서 유하게 되었는데, 열흘동안 사원의 방을 빌어 차를 마시며 옛 얘기를 나누곤 했다. 절의 승려가 새 차를 달여 주어서, 죽로의 물끓는 소리와 인적 없는 산중에서 송풍성을 들이며 마음껏 즐기었다. 연명이 한탄하여 말하기를, 『완적은 군대 창고에 술이 삼백석 있다는 소리를 듣고 지원해서 보병대장이 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머리를 깎고 용정의 승려가 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 후 몇 년 뒤 연명은 「다소」를 저작해 보였다. 내가 한 번 읽어 본 즉, 입과 코에서 차 향내가 절로 나고, 실로 용정차를 품평하던 그 때의 생각이 나더라. 나는 연명에게 말하기를 『육우의 「다경」이후 천년, 육우의 다도를 계승한 사람이 드물었으나, 「다소」는 육우의 익우가 되고도 남을 만하다. 뿐만 아니라 자네의 문장은 한위의 형식을 받아 육우의 문장보다 훌륭하다』고 했다. 연명이 답하기를 『이것은 잠시 나의 취미에 지나지 않을 뿐, 진실로 육씨의 공신이 된고 싶다』고 했다. 그 후 10년 뒤 연명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좋은 친구가 떠났음을 슬퍼하고, 그 저술의 산일을 애석히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밤, 꿈에 연명이 나타나 말하기를 『「다소」의 출판을 자네에게 의뢰하고 싶다』고 했다. 문득 잠을 깨고 보니 꿈이더라. 용정의 품차시절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잃어버린 친구를 사모하는 마음에 눈물이 베개를 적시게 되었다. 연명은 저술이 많지만 「다소」는 그 중 한 편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째서 이 저서를 특별히 꿈에 현몽케 되었는지.... 생각컨대 연명이 평생동안 제일 열중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었던가 한다. 그 집념이 깊이 뿌리 박혀 있는데다, 나와 같은 취미이므로 끝내 저 세상에서 의뢰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곧 출판소에 의뢰해서 연명이 현몽된 것을 얘기했다. 저서 가운데 「소품실」고 「탕절제」의 두 권이 있는데 친구들이 지금 그 출판을 혐의중에 있다. 정미(만력 35년) 여름날 친구 허세기 재보가 서하다.
1. 차의 산지
천하의 명산에는 반드시 영초가 나게 된다. 강남은 땅이 온난하기 때문에 특히 차를 생산하는 데는 알맞은 곳이다. 양자강 이북에는 육안(안휘성 남부에 있는 지명)의 차가 유명하다. 육안은 그 땅의 주명으로, 실제는 이 주에 속하는 곽산현 대촉산에서 생산하고 있다. 여기는 차의 생산이 많고, 가품도 많이 나고 있다. 하남·산서·섬서의 사람들은 이 차를 이용한다. 남방에는 그 차가 찐득한 냄새를 없애고, 체증을 없애기 때문에 귀중하게 여기고 있다. 단지 육안의 산중 차는 제법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밥솥에 넣어 큰 장작을 태우면서 덖고 볶기 때문에, 솥에서 나오기도 전에 차가 너무 타서 차 맛을 잃게 된다. 게다가 대로 이은 큰 항아리 속에 뜨거울 때 넣어 저장하기 때문에 좋은 차잎사귀가 있어도 곧 황색으로 변해버린다. 이렇기 때문에 식후에 반차로 사용될 따름이다. 강남차는 당대의 사람들은 양선(현재 강서성 이홍현을 말함)에서 나는 것을 제일로 치고 이 땅의 동관산에서 차를 생산하고 당대에는 나라에 공출로 바치기도 했다. 당나라 노동의 차시에는 < >고 시를 읊은 적이 있다. 송대의 사람들은 건주차를 최고로 여겼다. 양선은 말 뿐이지 건주차가 최고다. 거기다 무이의 우전이 좋다고도 한다. 요즈음 사람들은 장흥의 나개차를 좋아한다. 옛 사람들은 고저의 자순을 말하였던가 싶다. 산 가운데 끼여있는 땅을 개라하고, 나씨라는 사람이 이곳에 은거했기 때문에 나라고 이름을 붙인 것 같다. 그러나 원래 개라는 것은 여러 곳에 있기 때문에, 지금은 단지 동산에서 생산되는 것을 가품으로 여기고 있다. 요백도(「다소」의 서문을 쓴 요소헌의 자)가 『명월협에는 좋은 차가 있고 이것을 상승이라 한다. 요컨대 적당한 시기에 채취하고 십분 주의하여 제조하면 가품이 안될 수 없으며, 그 운치와 청원·자미·감향은 가슴을 트이게 하고 근심을 잊게 하므로 가히 선품이라』고 말하였다. 차는 바로 이러한 것이다. 만약 고저에 살고 좋은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것을 수구차라 이름 붙이고, 개차와 수구차를 구별하고 있다고 했다. 휘주의 송라·소주의 호구·전당의 용정 등의 차는 향기가 높고 다른 것에 못자 않은 좋은 차로서 나개차에 대응할 수 있는 차다. 곽차보는 때때로 황산차를 칭찬했다. 황산은 휘주에 있는 땅이요, 송라와는 먼 거리에 있는 곳이다. 옛 사람들은 천지의 차를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천지의 차는 조금만 많이 마셔도 배가 불러지기 때문에, 나(허차서)는 그 차를 하등품으로 여겼으나 그때 다른 사람들은 나의 말을 부정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나의 말을 믿게 되었다. 절강에는 용정 외에 천태의 안탕, 괄창의 대반, 동양이 금화, 소홍의 일주가 있고, 이러한 것들이 무이차와 동등한 품질의 차이다. 그러나 명차가 있다손치더라도 제법과 저장법을 모르면 안된다. 제법이 정교하지 못하고, 저장에 법도가 없으면 일단 산지에서 출하되면 색도, 향도, 맛도 모두 잃게 된다. 전당 일대의 산에서 차를 많이 생산하고 있으며 남산의 차는 모두 좋고, 북산은 약간 품질이 떨어진다. 북산은 비료를 쓰기 때문에 잎은 무성하나 차가 가지 기운은 오히려 얕다. 옛날에는 육주의 구갱, 사명산의 주계에서도 상당히 많이 산출되었으나 지금은 품평에 들지 못한다. 무이 외에 천주의 청원차도 유명하다. 만약 좋은 직공이 제조할 때에는 무이차 다음가는 품질이 될 수도 있지만, 애석히도 대개는 제조에 정성을 들이지 않기 때문에 먹는 사람에게 실망을 주게 된다. 호남의 보경, 운남의 오화 이것은 세상이 다 아는 유명한 차요, 기타 명산에서 나는 차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저자는 아직 그런 곳을 답사하지 못했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또 그 차명이 일반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로써 그친다. [주]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는 녹차는 용정을 제일로 하고, 사천서에서 생산되는 몽정, 명협, 무산 등이고, 운남성에서 생산되는 보이차가 있고, 대중적으로는 복건성의 철관음과 향편, 오룡 등으로 유통되고 있다.
2. 고금의 제법
옛 사람들의 제차는 용단과 봉병을 소중히 하고 향약을 넣기도 했다. 채군모 등은 이 차의 이론에 정통했으나, 평상시 친구들과 시차할 때 항상 궁중에서 사용하는 진품을 갈아서 썼을 뿐, 아직 새로 제조한 차를 썼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복건로의 전운사가 진공하는 처음 나가는, 북원시신이라 이름 짓는 차는 각설·수아의 제품으로서 한 개의 값이 비싼 것은 40만전이고, 겨우 몇 잔 밖에 되지 않는 비싼 것이다.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이냐. 뿐만 아니라 수아라는 것은 먼저 물에 적셨기 때문에 이미 진미를 잃게 되었고, 거기에다 명향을 섞었기 때문에 더욱 차의 향기를 잃게 되었다. 어떤 이유로 이러한 것을 즐기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모를 일이다. 그보다도 근세의 제법은 따면서 찌고 덖기 때문에 색·향·미를 온전히 갖출 수 있다. [주] 근세에 와서는 이러한 제법이 완전히 없어지고 따서, 찌고, 덖어, 눌려 말리되 산위의 높은 곳에서 건조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향편차의 경우는 향편차를 제조하는 전문업체에 차잎을 건조시키기 전에 위탁을 한다.
3. 차의 채취
청명·곡우는 차의 채취시기로서 적기이다. 청명은 약간 이르고, 입하는 약간 늦다. 곡우 전후 정도면 채취시기로 적당하다. 만약 하루 이틀 정도 늦어져도 그 기력은 충분하며, 향미가 증강하기를 기다리면 수장하기도 쉽고 장마에도 습기에 견디기 좋다. 약간 크지만 원래가 부드러운 잎이기 때문이다. 향주의 우중촬점에는 이것을 좋아한다. 근심을 없애고 우울한 것을 가셔 주기 때문에 이런 풍속을 부정할 수 없다(오송·상해·향주를 말함). 사람들은 자기 고향의 용정차를 좋아하고, 돈을 아끼지 않고 우전차를 사기도 한다. 습관으로 먹고 있지만, 오직 그 묘리를 다 알지 못하고 있더라. 고저 사람들은 입하 전에 차를 딴다. 첫 번 차를 딸 때를 개원이라하고, 입하를 지나서 딴 차를 춘차라 한다. 그 기후가 약간 차서 여름을 기다려 따기 때문에, 이것을 늦다고 비난할 수가 없다. 옛날에는 가을에 차를 따는 일은 없었지만 요즈음은 가을에 차를 따는 경우가 있다. 7·8월 경에 따는 것을 조춘이라 하며 그 품질도 상당히 좋다. 맛은 약간 싱겁지만, 차인은 구태여 그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돈벌이를 위주로 하는 다원에서는 장마 때에 차를 딴다. 장마 때의 차는 떫고 쓰지만 음식을 먹은 뒤에 사용할 수는 있다. 그 뒤에 따는 차는 좋은 차를 기대하기 어렵다. [주] 우리나라의 경우는 위도가 중국과느 약간 다르기 때문에 곡우 후 10일이면 최적기로 여긴다.
4. 차를 덖는 법
생잎을 따면 향기가 밖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열을 빌어 향을 나게 한다. 그러나 차의 성질은, 함부로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오래 덖는 것은 좋지 않다. 솥에서 차를 한꺼번에 많이 넣으면 손으로 차를 주물러 혼합할 때 손의 힘이 고루 미치지 못하게 된다. 솥안에 오래 두게 되면 너무 익어 향기를 잃게 되고 더욱 오래 두면 타고 만다. 이러한 차를 어찌 팽차할 수 있겠는가. 차를 덖는 그릇은 신철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솥의 쇠냄새가 창 배게되면 결국 차향을 버리게 된다. 더구나 솥에 기름기가 있으면 쇠냄새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미리 솥하나를 전용하여 쓰되, 다른 용도로 써서는 안된다. 차를 덖을 때 쓰는 나무는 나뭇가지라야 하며, 큰 장작이나 나뭇잎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큰 장작은 화력이 너무 세고, 잎은 잘 타지만 쉬이 꺼지기 때문이다. 솥은 깨끗이 닦아서 사용하고, 차는 따는 즉시 덖어야 한다. 솥에 차를 120g정도 넣고 먼저 약한 불로 덖으면서 부드럽게 하고, 다음에 센불로 점진해 간다. 손에는 목지를 끼고 빨리 덖으면서 공굴린다. 반숙 정도가 된 뒤, 약간 기다리면 향내가 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차향의 징조이다. 이럴 때 작은 부채 같은 주걱으로 이것을 떠서 대광주리에다 담는다. 광주리 밑에는 순면의 큰 종이를 깔아야 한다. 그 위에 덖어서 건조시킨 차를 담는다. 식는 것을 기다려 저장한다. 사람이 많을 경우에는 솥을 여러 개 사용해도 좋다. 만약 인력이 모자랄 경우에는 솥은 한 두 개를 쓰더라도 대광주리는 4·5개를 준비해야 한다. 그 이유는 찌는 것은 빠르지만 섞여 있으면 솥 안의 차 모두를 못쓰게 된다. 그러므로 센불을 피하고, 솥이 식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솥이 식으면 잎이 부드럽게 되지 않는다. 주의해서 화력의 가감을 조절해야하니 더욱 더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5. 개차의 제법
개차는 덖지 않고 시루에 쪄서 볶는다. 이런 제법은 따는 시기가 늦어 그 잎이 노엽이 되었으므로 그것을 덖더라도 부드러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애를 아무리 써도 마르고 부서질 따름이다. 극세한 개차가 있으나 원료를 딴 산에서 그것을 찌고 덖어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그곳은 차를 아주 애석히 여겨, 연한 잎은 따지 않는다. 그것은 나무를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약간 늦더라도 잎이 크기를 기다려 개차의 제법과 같이 쪄서 만들더라도 그릇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로서는 이러한 것을 아직 시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이러한 것을 만들지는 않는다. [주] 원문이 불분명하여 덖고, 볶고, 찌는 과정의 상세한 것을 덖자 자신도 이해하기 어렵다. <청목박사>
6. 저 장
차를 저장하는 그릇은 자기 항아리가 제일이다. 항아리 크기는 10~20kg정도를 넣을 수 있는 것이 적당하다. 항아리 주위를 시리대 잎사귀로 싸고 그 가운데에 차를 저장한다. 저장하는 차는 충분히 건조시켜야 하고, 새 차이어야 한다. 이러한 차 저장 항아리는 전용으로 쓰는 것이 좋고 한번 쓰던 항아리를 오래 쓰면 더욱 더 좋다. 항아리에 차를 꽉 다져 넣고 눌리면서 채워야 한다. 시리대 잎사귀로 항아리 입구를 꽉 채우고, 두터운 종이로 봉하여 삼끈으로 꽉 잡아매고 새로 구운 곱돌을 그 위에 얹어 눌리게 하고, 공기가 스며 들지 않도록 주의하여 다음 해에 새 차가 날 때까지 사용해야 한다.
7. 차를 두는 곳
차는 습기를 피해야 하며, 항상 건조한 곳에 두어야 한다. 또 찬 곳을 피해야 하며 따뜻한 곳이 좋다. 음산한 곳을 피하여 청량한 곳에 두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두는 장소는 사람이 출입, 거처하는 곳에 두어야 한다. 사람이 출입, 거처하는 곳은 온기가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판자로 된 공간에 두어야 하며 흙으로 된 공간에 두어서는 아니 된다. 판자로 된 공간은 건조하지만, 흙으로 된 공간은 습하기 때문이다. 구석진 곳에 두지 말고,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 두어야 한다. 상시로 자주 살필 수 있는 곳에 두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항아리 밑에 곱돌을 몇 층 까고 항아리 주위를 곱돌로 둘러 싸되 화로와 같은 형태로 조성한다. 다소 공간이 넓어야 하며 벽에 바짝 붙여 두어서는 안된다. 쌓인 벽돌 위에 차 항아리를 얹고 수시로 부엌에 있는 따뜻한 재를 식혀 항아리 주위에 채우되 5촌쯤 부피로 채운다. 따뜻한 재를 수시로 채워서 안에 있는 재가 건조하게 한다. 이와같이 하여 한편으로는 바람을 막고, 한편으로는 습기를 막게 한다. 화기가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화기가 항아리 안에 들어가면 차색이 누렇게 변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대그릇에 차를 저장하기도 한다. 시리대 잎사귀로 싸고 덮고 둘러서 보호하나 원래 시리대 잎사귀는 뻣뻣해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나름대로 꽉 싸서 공기가 들지 않도록 하지만 애쓴 보람이 없게 된다. 또한 지로(부뚜막 비슷한 것) 위에 둘 수도 없으니 이러한 저장법은 절대 금한다. 혹은 죽기에다 차를 넣고 피롱에다 저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러한 차는 볶으면 곧 황색으로 변하고 만다. 죽기에 차를 저장하는 방법은 금하는 것이 좋다.
8. 저장한 차를 항아리에서 내어 쓸 때
차에 맞지 않는 점은 상술한 바와 같다. 비오는 날에 항아리에서 차를 함부로 내는 것은 옳지 않다. 만약 사용하게 될 때는 천기가 청명하고 날이 밝을 때 항아리를 열어 바람의 침입을 막아야 한다. 먼저 열탕으로 손을 깨끗이 씻고 삼베수건으로 닦아 손의 물기가 사라진 후에, 항아리 안에 있는 시리대 잎사귀를 꺼내어 깨끗한 그릇에 옮겨 두고 미리 준비한 작은 차통에 차를 저장한다. 하루에 필요한 양을 고려해서 10일분 정도의 차를 저장한다. 꺼낸 차의 분량만큼 다시 시리대 잎사귀를 넣어 보충해야 하며 이 때는 시리대 잎사귀를 작게 잘라서 쓴다. 이렇게 해서 차는 나날이 적어지고 시리대 잎사귀는 나날이 많아지게 된다. 이러한 것이 차를 저장하는 절도이다. 시리대 잎사귀를 약간 불에 쬐어 말려서 항아리에 꽉 차게 넣어 본래대로 채워 둔다.
9. 종이에 포장함을 금함
차의 성질은 종이를 두려워한다. 종이는 수중에서 제조하기 때문에 물기가 종이에 잘 스며든다. 가령 차를 종이에 다 싸서 두면 종이의 성질에 따라 차의 향기가 없어지고 만다. 차를 불에 덖을 지라도 조금 지나면 차가 끈끈해진다. 안탕산의 차는 특히 이러한 피해가 크다. 먼 곳에 보낼 때 종이로 포장된 차가 좋을 리가 없다.
10. 나날이 쓰는 차를 두는 곳 항시
쓰는 차는 작은 병에 넣고 시리대 잎사귀로 항아리를 채우고 삼끈으로 묶어 습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해야 하고, 작은 탁자 위에 얹어 두면 된다. 상자나 서가 옆에 두어서는 안 된다. 제일 두려운 것은 음식 냄새 나는 기물과 함께 두는 것이다. 약물과 함께 두면 약 냄새가 나고 어물과 함께 두면 어물 냄새가 오염된다. 기타 물질도 마찬가지다. 잘못하면 하룻 밤새 차빛이 누렇게 변해서 먹을 수 없게 된다.
11. 물의 선택
좋은 차 안에 포함된 오묘한 차향은 물의 힘을 빌어 그 향을 발하게 되니 물이 없으면 차가 소용이 없다. 옛사람들은 물을 품형할 때 금산(상해 남경 철도변에 있는 금산사 뒷산이며, 금산사는 중국에 있는 최대 사찰의 하나이다. 양자강을 왕래하는 선박들이 한번은 금산사에 들어 수제를 지내고 간다)의 중냉천을 제일로 여겼다. 혹은 강서성 여산의 강왕곡의 물을 제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산은 아직 필자가 가 보지 못한 곳이다. 금산의 정상에 있는 우물도 옛날 그대로의 우물로 믿기는 어려울 듯하다. 수맥이 고갈되어 이미 매몰되지 않았는가 싶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하여 그 물맛이 얕고 먹을 수가 없게 되었겠는가. 오늘날 물을 품평할 때는 반드시 혜산의 물을 제일로 친다. 그 물맛이 달콤하면서도 산뜻하고, 늠름하면서도 입안에 남게 된다. 저자가 어느 때 황하를 지나게 되었을 때, 처음 보고서 그 물이 탁함을 염려했더니 뱃사공이 여과시킨 물을 주어 마셨는데, 그 물맛이 달콤할 뿐 아니라 차수에도 적합하며, 이 물이 혜산의 물에 못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황하의 물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라 했으니, 물빛이 탁한 것은 흙빛일 뿐, 그 물의 본래 성질은 맑고도 깨끗하여 여과시키면 향미를 스스로 발휘한다. 저자는 일찌기 이렇게 말한 바가 있다. 명산이 있으면 거기엔 좋은 차가 있고 또한 명산이 있으면 좋은 물이 나온다고 했다. 이에 상대하여 거듭 말한 바 있는데 이것은 억측이 아닐 것이다. 저자가 여행한 지역은, 고향 절강성을 비롯하여 북경·남경·산동·호북·호남·광서·광동·강서·운남·귀주를 거쳤다. 일찍이 그 지방을 여행할 때마다 그 곳의 물 맛을 보았다. 그 원류가 먼 곳에 있고, 물이 모여 있으되 맑고 깨끗한 곳은 반드시 물맛이 감미로왔다. 강호계곡의 물은 큰 호수를 거쳐서 내려오며, 그 물맛이 감열하다. 파도와 급한 여울과 폭포, 비천 혹은 배가 심히 닿이는 곳의 물은 쓰고 탁하여 마시는 것을 금한다. 그러나 그것은 물이 혼탁한 탓이지 원래 수성이 나쁜 것은 아니다. 빗물은 봄·여름에 물이 불어 날 때는 물맛이 감해지고, 가을·겨울철에 물이 줄어 들 때는 물맛이 좋아진다. [주] 상해 오송강·회하·주강 등지의 선상에 사는 사람들은 큰 물동이에 명반을 넣어 물을 맑게 하여 일상생활의 음료수로 사용하는 것을 역자는 보아 왔다.
12. 물의 저장
감천은 그때 그때 길어 쓰면 좋지만 집이 성안에 있을 때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꺼번에 많이 길어다 큰 동이에 저장하여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물동이를 새 것을 쓰면 물맛을 잃게 된다. 뿐만아니라 벌레가 발생하기 쉽다. 오래된 물동이가 좋으며 이 물동이 다른 물질을 담아서는 안된다. 물의 성질은 나무를 싫어한다. 소나무나 수입구는 시리대 잎사귀로 두껍게 덮고, 진흙을 칠하여 두었다가 쓸 때 아궁이를 열어 쓴다. 좋은 샘물을 얻을 수 없을 때는 장마철 빗물을 대용하기도 한다.
13. 물을 길을 때
물을 길을 때의 물 긷는 동이는 필히 자기 뚝배기를 사용해야 하며, 조용히 물동이에서 떠내어 천천히 차관에 기울여 넣어야 한다. 물동이 안에서 물이 출렁이는 소리가 나게 되면 물맛을 잃게 된다. 이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14. 차물을 끓이는 그릇
쇠는 수모라 한다. 주석은 유하고 강함을 구비하여, 주석에 끓인 물은 떫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으므로 차관으로 가장 적합하다. 차관은 그 가운데를 원형으로 만들어 원통과 같이 화기를 통하게 한다. 물이 빨리 끓으면 물맛이 산뜻하고 싱싱하다. 더디 끓으면 물맛이 무겁고 찡찡하며 거기에다 물냄새가 나게 된다. 언제나 주의해야 할 점이다. 차는 물에 의해 일어나며, 물은 그릇에서 끓어 오르며, 물은 화기에 의해 탕이 되는 법이다. 이 네 개<차·물·그릇·불>가 서로 의지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니 하나라도 결여되면 끽다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주] 차관의 중심부를 원통으로 제작해 쓰는 것은 중국 북방 지방에서 널리 쓰는 방법이다.
15. 화 후
차물을 끓이는 숯은 단단한 나무로 만든 숯으로 한다. 만약 완전히 숯이 되지 아니한, 아직 나무의 성질, 남아 있는 숯으로 차물을 끓이면 연기가 차물 속으로 들어가게 되므로 끓인 차가 소용이 없게 된다. 한꺼번에 불을 피게 하여 연기와 화염을 없애고, 화력이 세차게 될 때에 물이 고루 잘 끓게 된다. 끓인 물은 즉석에서 차를 달여야 한다. 끓인 물을 오래 두면 차맛이 없어진다. 항상 새로 끓인 물로써 차를 달여야 한다.
16. 차를 달이는 법
물을 길어 오기 전에 모두 다구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 반드시 청결하게 하고 건조하게 하며, 차병 뚜껑은 열어 둔다. 차병 뚜껑은 위로 보게 놓아야 하며 혹은 도자기로 된 그릇 위에 두어도 무방하다. 차탁 위나 쟁반 위에 엎어 두어서는 안된다. 차탁 위의 먼지, 칠냄새가 뚜껑에 옮으면 차맛을 잃게 된다. 먼저 차를 손에 쥐고 있다가 차물이 걸숙이 되엇을 때, 차와 물을 동시에 차관에 투입하고 차병 뚜껑을 덮고는 세 호흡 쯤 지난 후, 깔때기나 큰 뚝배기에 한꺼번에 다룬다. 이것을 다시 차병에 투입한다. 이렇게 하면 향운이 발휘되고 그 차색이 골고루 일어난다. 다시 세 호흡쯤 지나면 차잎이 가라 앉는다. 연후에 손님에게 따루어 올리면 맛은 싱싱하고 부드러우며, 오묘한 차향이 코에서 나오고, 병도 낫고 피곤함도 풀리고, 예상치 못했던 시상도 떠오르게 되며 청담교우의 자리를 빛나게도 한다. [주] 색·향·미의 조화를 통한 삼매경의 경지를 표현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다인의 최고 경지를 읊은 최고 문장이라고도 할 수 잇는 완당의 글이다. 정좌처에 차는 반쯤 마셨으나 향기는 되레 처음 같고 모용시에 물 흐르고 꽃잎 열린다.
17. 차를 넣는 분량
차병은 작은 것이 좋으며 너무 크면 산만하게 된다. 작으면 차향이 그 속에 담기게 된다. 차병 크기는 코피잔 5잔 정도의 크기가 좋다. 혼자 마실 때는 코피잔 3잔 정도의 크기가 적합하다. 코피 5잔 정도의 크기에는 차잎이 1숟가락 정도이면 되고, 사람 수에 따라 분량을 가감하여 적당히 넣으면 된다.
18. 탕 후
차물을 차관에 주입하여 끓이게 한다. 송풍성이 나면 차관의 뚜껑을 열어 탕이 끓어 오르는 모양을 살핀다. 해안(게눈) 후에 얕은 물결이 서면 이때가 제일 좋은 때다. 큰 물결이 끓어 오르게 되면 이어 소리가 없어진다. 이 때는 벌써 늦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에는 이미 좋은 차를 낼 수가 없다. 때를 놓치면 노수하여 차향을 발휘하기 어렵다. [주] 밥이 눌게 되면 누룽지냄새가 나듯이 물도 이와 역시 마찬가지다.
19. 찻잔과 차병
찻잔은 옛날에는 천목(오지사발을 말함)이 좋았지만 천목은 말다용으로 차를 다를 때 사용되었다. 근래에 와서는 수백자 찻잔이 좋고 찻잔이 작은 것은 귀히 여긴다. 각처에서 나는 좋은 찻잔이 많으나 근래에 와서는 모조품도 좋은 것이 있다. 회청도 특징이 있으나 보기 좋고 알맞은 것을 구하기 어렵다. 찻잔에 흠이 있는 것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차병에 딴 물질을 넣어서는 안된다. 은이 제일이고 주석이 그 다음이다. 좋은 주석 차병은 은에 못지 않다. 주석 가운데 흑연이 섞이면 차향을 잃게 된다. 또한 유약을 칠한 [주] 의흥산은 강소성 무석 근처의 산이다.
20. 차기를 씻는 법
찻잔, 차관, 차병 등은 반드시 깨끗이 씻어 두어야 하며, 건조하게 하여 축축한 물기가 없도록 해야 한다. 아침마다 뜨거운 물로 재도구를 깨끗이 씻고 삼베행주로 안팎을 깨끗이 닦아 축축한 물기가 없도록 하며, 대발을 탁자 위에 얹어 건조한 곳에 두었다가 차를 따를 때 수시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차를 따른 후에는 차병 속의 찌꺼기를 대젓가락으로 제거해서 다음에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잔 속에 남은 차 부스러기도 샅샅이 씻어 버려야 한다. 차병이나 찻잔에 조금이라도 찌꺼기가 남아 있으면 새로 넣은 차의 맛을 상실하게 된다. 찻잔은 한 사람 앞에 1개씩 사용하고 손님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찻잔을 손님앞에 갖다올린다. 두어잔 먹고는 차를 버리고 다시 세차를 따라 마신다. [주] 일본 잎사귀차의 경우 3잔 마신 후 손님이 계속 남아 있을 때는 다시 차를 넣어 대접한다. 나의 경우에는 한번 넣으면 손님이 자리를 뜰 때까지 가탕하여 계속 마시게 한다. 두 서너잔 마시고 손님
21. 차를 마시는 법
한번 넣는 차의 분량은 두 번 따라 마실 수 있는 분량이면 족하다. 첫잔은 산뜻하고, 두 번째 잔은 달콤하며 찐득하다. 세 번째는 떫다. 저자는 어느 친구와 사귈 때 음다의 가감을 말한 바 있는데, 첫잔의 맛은 <정정요요 13세 소녀>라 하고, 두잔째 차맛은 <벽옥이 참외씨를 뚫고 올라온다는 16세 소녀>의 맛이라 했고, 석잔후에는 <녹엽이 우거져 그늘진 성숙한 맛>이라 했더니, 그 친구도 여기에 크게 찬성했다. 그러므로 차병은 작은 것이 좋으며 재순으로 그치는 것이 좋다. 차병 안의 차잎을 버리지 말고 두었다가 식후의 반차로 쓸 수도 있고, 양치질을 해도 좋으므로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차 주전자가 클 경우 몇 차례 계속 마시거나, 가득히 부어서 마시거나. 또 오래 두어 냉하게 되고, 농하여 떫은 맛이 나는 경우에도, 농부나 직인들이 갈증이 날 때 먹는 수도 있다. 품차나 차맛을 논할때는 차의 풍미를 잊어서는 안된다.
22. 객을 논함
하객이 많을 때는 술잔을 나누는 것이 좋다. 평소 오래 전부터 사귀던 친구를 우연히 만났을 때는 보통으로 사용하는 차로서 대접하면 된다. 서로 흉금을 털어놓고, 풍진세상을 떠나 세간사를 잊어 버리고 청담 할 경우에는, 차동을 불러 등롱에 불을 넣고 물을 길어 오게 하고 풍로에 불을 살려 차를 달여야 한다. 객의 수에 따라 다구의 번잡을 피해야 한다. 손님이 3명 이하이면 풍로 하나로 족하고, 손님이 5명 이상일 경우에는 풍로 두 개를 사용해야 한다. 차동은 되도록 1명을 사용하도록 하고 차동을, 둘을 쓰는 것은 오히려 번잡하다. 손님이 더 많을 때는 차실에서 팽차하지 말고 깨끗한 별실에서 다과를 가져 와서 접대해도 무방하다.
23. 차 료
서실 외에 따로 차실을 둔다. 건조하고 약간 높은 지대이면서 밝은 곳에 차료를 짓되, 항상 출입하는 곳이어야 하며, 폐쇄된 곳에 만들어서는 안된다. 벽가에 두 개의 화로를 두고 조그만 설동(우장같이 생겼음)으로 화로를 덮어 씌우고, 한쪽만 열어 재가 흩어짐을 막는다. 차실에 차탁을 한 개 두어 차병과 찻잔을 정돈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둔다. 또다른 한 개의 탁자 위에는 기타 도구를 씻어 놓고, 옆에 수건걸이를 하나 세워 행주를 걸어 둔다. 사용시에는 방 가운데로 가져 오도록 하고, 물통의 물을 뜨고 나서는 곧 뚜껑을 덮어 먼지와 오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여 수질을 보호한다. 숯그릇은 멀리 떨어져 놓게 하고 화로 가까이 두지 말아야 한다. 제일 좋은 것은 다량으로 사두어 충분히 건조시킨 후에 사용하면 불길이 잘 일어난다. 화로는 벽면에서 약간 거리를 둔 지점에 놓아 두고 재는 자주 소제해야 한다. 요약하면 불의 용심이 최고 급무이다.
24. 차를 씻는 법
개산에서 생산한 차는 산 밑에서 차를 따므로, 산에서 사진이 빗물에 섞여 내려와 차잎에 앉게 된다. 그러므로 차잎사귀에 묻은 먼지를 씻어내야 한다. 팽차 전에 반드시 먼저 손을 깨끗이 씻고, 다음에 약간 끓인 물을 부채로 부쳐 물을 식혀 가며 차를 씻어낸다. 물을 끓이지 않으면 물기가 다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차맛을 잃게 된다. 또 너무 많이 씻어도 차맛을 버리게 된다. 모래가 제거되고 나면 급히 손 가운데 넣어 살며시 짜서, 물기를 빼어 말린 다음, 깊은 자기 뚝배기에 넣어 둔다. 고루고루 섞어 두었다가 사용을 기다린다. 차잎사귀를 씻는 일은 주인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며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는 안된다. 무릇 탕의 냉열, 차의 건습, 일의 완급의 양상, 물건을 놓아 두는 위치의 적당함 등은 주인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자신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을는지...
25. 동 자
팽차와 소향은 모두 풍류이기 때문에 주인 자신이 스스로 차를 다루는 것이 좋을 것이나, 손님과 대화하면서 스스로 팽차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차동을 두 명쯤 두고 미리 차례차례 익히게 해서, 주인 대신 차를 다루게 할 수도 있다. 동자로 하여금, 제도구는 반드시 아침에 씻게 하고, 항상 손을 깨끗이 씻어 손톱을 청결히 하도록 한다. 화로에 항상 불을 묻어두고, 차를 먹어서 좋은 때를 봐서 화로에 불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라도 항상 주인에게 일일이 물어서 시행하도록 한다. 몇 순배 마시고 나면, 잠깐 쉬는 것이 좋다. 틈틈이 차를 올릴 때는 중등 이상의 다소 농한 차를 올리도록 한다. 대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밀접한 것이니, 어느 한 쪽을 중지해서는 안된다. 너무 감미로운 것과 농후한 것을 함부로 많이 마시면 누구라도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술상을 차려 올릴 때는 차는 당연히 정지해야 한다. 코 안에서 화근내가 나고 귀 뒤에서 찬바람이 날 때에는 차로써 물러나게 해야 한다(즉 감기, 몸살, 피로......등). 이러한 때는 큰 뚝배기에 우전의 세엽을 듬뿍 넣어 열탕을 부어 마시면 즉효가 있다.
26. 먹어서 좋은 때
심신이 한가한 때 마음이 복잡할 때 가곡이 끝났을 때 거문고를 타면서 그림을 볼 때 밝은 창밑에 깨끗한 탁자를 앞에 둔 때 주객이 흉금을 터 놓고 애길할 때 친구를 방문하고 돌아왔을 때 신록에 가는 비가 축축히 내릴 때 수풀과 장간죽림을 보면서 연못가 정자에서 피서할 때 면회가 끝나고 객이 돌아간 뒤 독서와 작시에 권태증을 느낄 때 가곡을 감상할 때 문을 닫고 세상만사를 피할 때 밤이 늦도록 같이 얘기할 때 이충 안사랑에서 후원의 풍경을 볼 때 좋은 손님과 소첩이 있는 곳 풍일청화한 날 무지개 다리 및에서 화방(유람선)을 타고 있을 때 화원을 손질하고 새를 다를 때 서재에 소향할 때 고요한 사원과 도관에서 아이들 공부방에서 좋은 물과 계곡이 있는 곳
27. 차를 마셔서 안되는 때
일하면서 대우 대설 때 인사 다망할 때 연극을 볼 때 편지를 볼 때 오래 끄는 잔치 서적을 열람할 때 먹어서 좋은 때와 반대되는 때
28. 써서는 안되는 것
나쁜 물과 부서진 도구 구리로 된 숟가락과 주전자 나무 물통 거부지기 연료 부서리기 숯(물에 넣으면 뜬다) 불손한 동자 말 많은 시녀 불결한 차포 각종 과실과 향약
29. 가까이 하지 말 곳
음산한 방 주방 시장거리 어린 아이가 우는 곳 거친 사람이 있는 곳 아이들이 입씨름 하는 때 무더운 사랑방
30. 좋은 친구 청풍명월 종이로 만든 장막과 종이로 만든 홑이불 대로 된 평상과 석침 명화와 옥수
31. 여행시의 다구 선비가 산에 오르거나 물에 임할 때 술병과 술잔은 가지고 가지만, 차도구와 향, 화로는 잘 휴대치를 않는다. 이는 단지 호유일 뿐이지, 소박한 구교의 따뜻함을 마음 속으로 새기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특히 여행할 때에 적합한 기구들을 준비한다. 다음 제도구는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좋은 차와 좋은 향, 이것은 따로 포장해서 휴대해야 한다. 또 차통 한 개·차병 두 개·차관 한 개·작은 찻잔 4개·물받이 한 개·자기함 한 개·놋쇠화로 한 개·작은 세면대 한 개 쯤 들어가는 백자 도자기 물통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32. 임시편법
먼 곳으로 떠날 때는 차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여행지의 토산차가 좋지 못하거나,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적은 경우에는 자기의 기호에 맞는 차와 도구를 휴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단지 무거운 자기 그릇에 담아 운반하면 그 중량에 불편함이 많으니, 죽기에 넣어 가볍게 하면 여행에 편리할 것이다. 차통에서 차를 낼 때는 곧 불에 쬐어야 하며, 죽기는 햇볕에 말리고, 시리대 잎사귀를 차통에 꽉 차게 넣어둔다. 행선지에 도착하면 곧 새 차통을 구해서 불에 쬐고, 차를 통에서 꺼내어 불에 쬐어 건조시킨 후 병에 저장하면 풍미는 다소 감해진다 할지라도 차맛과 차향은 여전할 것이다. 만약 뱃길로 갈 때나 마차를 타고 멀리 갈 때는 도자기 차통을 스는 것이 좋다. 휴대에 편리한 것만 생각지 말고 차의 영질을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다인이 유의할 점이다.
33. 항주의 물
항주 남북 양쪽 산의 물은 호포천을 제일 좋다고 한다. 물맛이 방열하고 달콤하므로 세상 다인들이 극히 소중하게 여긴다. 향적주(사원의 주방)에 있는 토주·석장·도광·유종·영봉 등이 물도 차수에 좋다 한다. 항주 산들의 계곡의 청등한 물들도 길어 슬 수가 있다. 단지 수락동(항주의 남쪽에 있음)에서 나는 물은 질탕하여 물이 피로했으므로 그 물맛이 결코 좋지 못하다. 옥천사의 물도 왕시에는 좋았지만 요즈음은 제지공장 때문에 차수에 부적당하게 되었다. [주] 옥천사는 항주 서호가에 있는 사찰이며 이곳 석지에는 오색 금잉어가 비약하는 것이 구경거리다.
34. 다음을 경계함 차는 항상 마시는 것이지만 많이 마시면 좋지 않다. 늘 마시면 심장과 폐장을 맑게하고 근심과 우울증을 해소시켜 준다. 그러나 많이 마시면 비장과 신장을 다소 약하게 하고 오줌이 잦아지며, 몸이 차가와진다. 대개 비장은 흙이고 본시 부드러운 것이며, 신장은 수향이므로 건조케 하는 것이 좋고 따뜻하게 해야 하므로 많이 마시면 이롭지 못하다. 옛 사람들은 물을 마시거나 탕수를 마셨지만, 뒤에 와서는 차로써 물을 대신했다. 그러므로 탕수를 마시는 마음으로 차의 색·향·미를 갖춘다면 그로서 만족할 뿐이다. 너무 다음하여 몸을 해치는 일은 삼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좋은 차를 너무 많이 투입하는 것는 많이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다음을 삼가야 하고 차엽을 아껴 써야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는 이 점을 보충해 쓰는 바이다. [주] 역자의 경험으로서는 차를 많이 마시면 환골탈태는 되지만 몸의 체중은 줄게 된다. 그러므로 근래애 와서는 비대한 사람이 체중 감량을 위해 많이 마시기도 한다.
35. 잘못된 점을 변명함
옛 사람들은 차를 논할 때 필히 몽정차를 제일로 여겼다. 몽정산은 촉나라의 아주에 있는 산이다. 옛날에는 그곳에서 차가 생산되었지만 지금은 나지 않는다. 만약 있다손 치더라도 그쪽 사람들이 그것을 점유하여 산에서 출하하지를 않는다. 촉나라에서도 얻기 어려운데 하물며 중원과 강남에서 이를 구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석이 같은 것을 엽랑에 넣어 와서는 산동에서 왔다 하는데 그것은 몽정산의 석이이지 결코 차는 아닌 것이다. 단지 그 맛이 약간 달콤할 뿐이다. 그것을 제멋대로 남산차라 하지만 차는 반드시 차나무에서 나는 것이다. 어찌해서 석이를 차라고 속여 팔 수 가 있겠는가. [주] 사천성 고산의 석이를 은이라 하여 중국 삼대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이다. 36. 근본을 생각함 차는 이식이 안되니 심을 때는 반드시 씨로써 심어야 한다. 옛 사람들은 결혼할 때 차로써 봉채의 일종으로 한 이유는, 차는 불이식자(옮겨 심을 수 없는 것)의 의미로서 사용했다. 요즈음 사람들은 그것을 하차라 하여 아직까지도 예의하나로 전해 오고 있다. 남방의 벽지 사람들은 지금도 정혼할 때 차를 사용하고 있다. 단지 많이 쓰느냐 적게 쓰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예는 없어졌지만 이런 것을 들에서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저자는 집애 있으면서 별로 할 일도 없으며, 육우의 성질을 닮은 데가 많이 있다. 상저옹(육우의 호)은 자기가 가는 곳에는 항상 필상과 차도구를 가지고 다녔다. 어느 때 차를 좋아하는 친구가 때때로 내게 이렇게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반드시 책 한 권을 엮어 다의를 행하고, 호사가에게 분배하면 좋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이 책을 엮어 펴 내는 바이다. 만약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 미처 내가 하지 못한 점을 일깨워 주고, 이것을 보충하여 더 완성된 책을 만들기를 나는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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