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scTitle/좋은글

어머니란 이름

아기 달맞이 2011. 12. 10. 22:23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



건강하고 아름답지만 정장을 입고도 어묵을 우적우적 먹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음식을 우적우적 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촌부.

어머니는 칼 하나를 25년 넘게 써왔다.

얼추 내 나이와 비슷한 세월이다.



썰고, 가르고, 다지는 동안 칼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머니란 이름이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라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칼자국 / 김애란

'$cont.escTitle >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랭 드 보통 /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0) 2011.12.10
행운은  (0) 2011.12.10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 조병화  (0) 2011.12.10
인생 최고의 영양제  (0) 2011.12.10
세월의 뒤안길에서   (0) 2011.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