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
건강하고 아름답지만 정장을 입고도 어묵을 우적우적 먹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음식을 우적우적 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촌부.
어머니는 칼 하나를 25년 넘게 써왔다.
얼추 내 나이와 비슷한 세월이다.
썰고, 가르고, 다지는 동안 칼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머니란 이름이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라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칼자국 /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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