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스러운 차생활을 위한 차도구의 선택
서울 관악산아래 신수길의 차실 (요월산방)
차(茶)생활은 삶의 질을 한 차원 높여주는 두 팔 안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예술입니다. 차는 물질적인 차를 마시는 즐거움과 좋은 찻그릇을 쓰는 즐거움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또한 차(茶)는 우리의 정신적 안정과 건강을 지키는데도 한 몫을 하고 서로의 마음을 열어주며 교분을 두텁게 해주기도 합니다.
차(茶)생활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다기에 차를 넣고 더운물을 부어 우려 마시기만 한다고 차생활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차를 통해 심신을 편안하게 하며 화합과 배려로 서로를 위하고 차도구를 쓰면서 예술적 안목을 넓혀가야 되리라 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좋은 차도구 선택에 대하여 잠시 언급해보기로 합니다.
1. 찻사발(茶碗)
이라보 편신체 월파 이정환 작
가루차를 마실 때 쓰이는 사기(沙器)로 된 발(鉢)을 찻사발 또는 다완(茶碗)이라 합니다. 채식을 위주로 하던 옛 동양 삼국에서는 가루차를 마시거나 잎차를 우려마실 때, 그릇에는 구애(拘礙)받지 않았기 때문에 차와 함께 찻사발은 서서히 발전한 것으로 봅니다.
우리나라 찻사발의 역사는 신라시대 귀족문화의 상징이기도 한 안압지(674년에 조성) 터에서 7∼8세기경에 쓰던 것으로 추정되는 찻잔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때 이미 찻사발을 쓴 것으로 추정 됩니다. 겉면에 言, 貞, 榮,이라는 명문(銘文)과 함께 “차(茶)”자가 뚜렷한 와질토기(瓦質土器)다완이 복원 공사 중에 나온 것입니다. 이는 확실한 다완임을 입증할 수 있는 세계 최고(最古)의 찻사발입니다. 이 찻잔은 그 당시 상하 계층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쓰던 찻잔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그것은 신라인들은 토기잔도 썼지만 왕족이나 귀족들은 금, 은, 유리, 옥 등과 같은 호화용품을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 찻사발의 미(美)적 요건
찻사발은 실용성과 아름다움이 공존해야 하는 공예용품입니다. 공예품(工藝品)은 어떤 것이나 쓰는 즐거움 속에 아름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찻사발은 쓰는 이가 일반인들과는 달리 고도의 미의식을 갖고 있는 차인들이기에 차별화된 미(美)적 안목으로 선택하게 되고, 그 쓰임에도 정숙함이 곁들어져 있습니다.
정호형 찻사발 신들메 신현철 작
좋은 찻사발이란 첫째, 조형적 아름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형태미는 우리가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시각적 아름다움입니다. 기능이나 색상,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해도 조형미가 없다면 좋은 다기라 할 수 없습니다. 형태는 사발 형식에 맞는 모양새를 갖추어야 하고, 안정감이 있어야 합니다.
찻사발 몸통과 굽의 크기는 그 비례가 맞아야 하고 균형이 잡혀 조화로워야 하겠습니다. 굽이 너무 높으면 손으로 잡기는 좋지만, 보기에 흉하고 낮으면 잡기에 불편합니다. 또 사발의 두께도 알맞은 것이 좋습니다. 두께는 무게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형태가 좋으면 두 손으로 잡았을 때 잡히는 느낌이 좋고 쓰기에도 대부분 편합니다.
둘째, 실용성이 있어야 합니다. 도공에 의해 만들어진 찻그릇을 잘 쓰는 것이 다인이라 하지만 찻사발은 먼저 그 기능에 맞게 태어나야 됩니다. 행다를 하기 위해 격불을 하거나 차를 마실 때는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사발이 크기에 비해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도 안 되고, 뜨거워서 잡기가 어려워도 문제가 있습니다. 조형미가 아무리 있다고 해도 그 기능에 문제가 있다면 찻그릇으로는 쓸 수가 없습니다.
셋째, 색상과 자화상태가 좋아야 합니다. 찻사발의 피부는 태토와 유약에서 결정되지만 색상은 불의 조화에 의해 흙의 본성을 나타내게 딥니다. 유약을 고루 입혔다 해도 그것이 잘 녹아 있지 않으면 여성이 화장을 잘 못한 격이 됩니다. 유약이 덜 녹아 있다던가, 너무 지나친 상태도 좋은 다기(茶器)는 아닙니다.
도자기의 색상이나 자화상태는 도공이 산화와 환원, 중성염의 불을 조화롭게 운용하여 한 폭의 동양화를 완성하는 것이며 자기(自己)의 심성을 도자기에 그려 넣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찻사발의 형태나 기능이 좋다 해도 색상과 자화상태가 좋지 못하면 차인(茶人)의 손에서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백자5인다기 한석봉요 한도현 작
"차우리게"라고도 하는 다관은 잎차를 우릴 때 쓰는 차도구(茶道具)입니다. 처음 중국에서는 차를 넣고 탕으로 끓여 마시거나, 덩이차를 가루를 내어 끊는 물에 넣고 휘저어 마시거나, 가루차를 그릇에 넣고 끓인 물을 붓고 저어 마셨습니다. 명나라 홍무24년(1391년)에는 백성들의 차 만드는 폐해(弊害)를 없애기 위해 공차(貢茶)제도를 폐지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잎차를 활용하게 되었고 잎차를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마시는 찻그릇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의흥 지방의 다호(茶壺)가 개발되면서부터는 간단하고 편리하게 잎차를 우려 마시는 다관(茶罐)이 확산 되었고 그것이 이어져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다관을 손잡이로 구별해 보면 위에서 잡는 주자형 손잡이를 윗손잡이 다관이라고 하고, 옆에서 잡는 자루형 손잡이를 옆손잡이 다관이라고 하며, 뒤에서 잡는 고리형 손잡이를 뒷손잡이 다관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윗손잡이를 상파형(上把形), 옆손잡이를 횡파형(橫波形), 뒷손잡이를 후파형(後把形)이라 칭했으나 지금은 우리말을 애용한다는 의미로 이 모두 쓰지 않고 다관(茶罐)이라고 통칭하고 있습니다.
* 다관(茶罐)의 미(美)적 요건
윗손잡이다관 김석만 작
다관은 그 형태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기능이 떨어지면 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다관을 제작하더라도 좋게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처음부터 기능이나 형태 등, 질 좋은 다관을 만들 수 있는 안목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선택하기도 어렵습니다. 관심을 갖고 사용해보고, 다구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 교육을 받고, 많은 것들을 보면서 지속적인 심미안(審美眼) 훈련을 해야 안목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다관이란 첫째, 삼수삼평의 기능이 맞아야 하고
둘째, 유약이 잘 녹아있고 색상이 맑아야 하며,
셋째, 거름망이 섬세하여 차 찌꺼기가 나오지 않아야 하고,
넷째, 형태적 아름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삼수삼평”이란 물대에서 나오는 출수와 물이 끊어지는 절수, 물이 멈추는 금수를 가리켜 삼수라 하고 삼평이란 물대 끝과 구연부, 손잡이 끝의 높이가 수평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다관에서 나오는 물은 자연스럽게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야 하고 찻물을 찻잔에 따르다 멈출 때 찻물이 물대를 타고 흐르지 않고 잘 끊어져야 합니다. 구연부와 뚜껑이 잘 맞아 공기구멍을 막으면 다관을 기우려도 물이 밖으로 흐르지 않아야 합니다.
다관 물대의 끝 높이와 구연부의 높이, 손잡이 끝의 높이가 같아야 하는 것을 삼평이라 하는데 물대 끝이 높으면 다관에 가득 찬 물이 찻잔에 따르기 시작할 때 구연부로 먼저 넘치게 되고, 물대 끝이 낮으면 물이 다관에 가득 차지 않게 됩니다. 손잡이 끝이 높으면 손목이 불편하며 반대로 손잡이 끝이 낮으면 행다를 할 때도 불편하고 보기에도 좋지 않습니다. 이것이 “삼수삼평”의 중요성입니다.
물대와 손잡이의 각도는 위에서 볼 때 몸통을 중심으로 직각(90도)일 때가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앉은키가 작은 사람이나 여성들에게는 약간 옥은 듯한 느낌이 있는(88~89도) 것이 물 따르기에 더 편리합니다.
찻그릇은 어디까지나 도자기의 완성이 우선입니다. 찻그릇을 아무리 잘 만들었다 해도 도자기가 완전하지 못하면 찻그릇으로서의 명맥은 유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3. 다판(茶板)
홍송 옻칠다판 고무영 작
다판은 장식이나 부착물이 없는 어느 정도 두께(약20cm미만)의 판(板)으로 비교적 이동거리가 짧거나 일정한 곳에 두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높이가 낮아서 차를 우리고 마시는 행위를 하는데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요즘 다인들이 일반적으로 떡판이나 고재(古材)판을 다판으로 많이 쓰는데, 우리의 옛 목물을 아끼며 활용하는 측면에서도 좋고, 다실 분위기에도 잘 어울립니다. 이것들을 찻상이라고 하는 다인들도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돌이나 도자기, 나무로 된 좋은 다판은 차실의 운치를 더해주기도 하지만 행다를 한층 돋보이게 하고 차생활의 멋스러움을 느끼게도 해줍니다. 다판은 다인들의 작은 예술 공간이고 그들의 정신세계를 펼쳐내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좋은 무대에서 펼치는 행위예술은 차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하고 싶어 합니다.
* 좋은 다판(茶板)이란?
먼저 쓰임이 편해야 하고 두꺼우면서 터지거나 틀어짐이 없어야 하며 중량감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의 폭(40cm)과 적당한 길이를 갖추어야 하고,
높이는 약 16~18cm 정도가 좋습니다.
또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어야 합니다.
오동나무 찻상 신수길 작
찻상은 소반의 기능과 같은 의미로 차를 나르는 반의 기능과, 차를 놓고 마시는 상의 기능을 통합하여 찻상이라 합니다. 찻상은 행다를 할 수도 있고 이동할 수도 있어야 좋습니다. 또한 이것은 다기들이 도자기이기 때문에 가벼워야 하고, 그릇이 흘러내리지 않게 낮은 운두가 있어야 하며, 손으로 잡기 쉽게 제작되어야 합니다. 참고로 우리 반(盤)상(床)의 분류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형태에 따른 분류 ... 원반, 사각반, 호족반, 구족반, 연엽반, 다각반(각이 많은 반) 등
재료에 따른 분류 ... 행자반(銀杏), 소(松)반, 괴목(槐木)반, 피나무반, 자개반 등
지역에 따른 분류 ...나주반, 해주반, 통영반, 강원도반 등
쓰임에 따른 분류 ...전골반, 외다리반, 곁상, 돌상, 다과상 등
* 좋은 찻상(茶床)이란?
가볍고 견고하며 알맞은 크기와 높이로 간결한 멋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주어야 하며, 운두가 낮아야 하고 손으로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위판은 휘어짐이나 틀어짐이 없이 판판해야 하고 터짐은 가능하면 없어야 하며
목리는 혼란스럽지 않아야 하고 나뭇결이 좋고 상한 데가 없어야 하겠습니다.
좌식 차생활에 맞게 높이가 높지 않아서(약 12~16cm) 사용하기 편해야 하고,
두 팔로 들 수 있는 넓이로 이동하기에도 편리해야 좋은 찻상이라 하겠습니다.
찻상으로 많이 사용하는 형태는 사각반(四角盤), 연엽반(蓮葉盤), 원반(圓盤) 등입니다.
청자 기하문 이중 투각호 신수길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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