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잠든 사이 설거지를 해본다
덩그런 개수대 한중간에
양푼냄비 바닥부터 층층이 쌓인 식기들
간장종지는 밥그릇 안으로 파고들고
밥그릇은 국그릇 위에 얹혀지며
젓가락은 쭈뼛하게 돛대로 꽂힌 채
난파선처럼 기울어 있는 우리 생활의 밑천들
큰 것은 작은 것을 보듬어 안고
켜켜이 속을 채운 오지랖 질서
해무(海霧) 같은 세제의 거품으로
오염된 삶의 부속을 씻긴다
내 문패같이 오종종한 한쪽 공간에 바다가 있었다니
아내는 끼니 후에 난파되는 배의 키를 거두어
해신제를 지내듯 하루 꼭 세 번
이것들을 닦아 진설했구나
수없이 바다에 손을 담그고 절했겠구나
엔진처럼 따뜻한 밥이
식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젖은 손을 갑문처럼 여닫아 묵은 바다를 비우고
새 바다를 담으려 하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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