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설거지를 하면서 / 정건우

아기 달맞이 2011. 7. 12. 19:51

 

 

 

 

 

 

아내가 잠든 사이 설거지를 해본다

덩그런 개수대 한중간에

양푼냄비 바닥부터 층층이 쌓인 식기들

간장종지는 밥그릇 안으로 파고들고

밥그릇은 국그릇 위에 얹혀지며

젓가락은 쭈뼛하게 돛대로 꽂힌 채

난파선처럼 기울어 있는 우리 생활의 밑천들

큰 것은 작은 것을 보듬어 안고

켜켜이 속을 채운 오지랖 질서

해무(海霧) 같은 세제의 거품으로

오염된 삶의 부속을 씻긴다

내 문패같이 오종종한 한쪽 공간에 바다가 있었다니

아내는 끼니 후에 난파되는 배의 키를 거두어

해신제를 지내듯 하루 꼭 세 번

이것들을 닦아 진설했구나

수없이 바다에 손을 담그고 절했겠구나

엔진처럼 따뜻한 밥이

식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젖은 손을 갑문처럼 여닫아 묵은 바다를 비우고

새 바다를 담으려 하였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