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산악인 남난희가 된장 담그는 까닭
2008.01.08 13:18
2010년 04월 30일경기신문
오은선이 27일 마침내 안나푸르나를 오르면서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에 이어 4번째 히말라야 14좌 완등 산악인을 갖게 됐다. 남녀 통틀어 세계에서 20번째다.
그러나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 의혹’은 여전히 꼬리표로 남아있다. 지난해 5월 오은선이 칸첸중가에 올랐을 때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과 일부 국내외 언론이 제기한 ‘과연 정상이 맞나?’라는 의혹 말이다. 파사반은 오은선과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놓고 경쟁해온 라이벌이다. 파사반은 안나푸르나를 내려온 24일 카트만두에서 엘리자베스 홀리와 인터뷰를 갖고 또다시 같은 내용의 의혹을 제기했다. 홀리는 히말라야 등정을 확인하는 전문기관이 없는 상태에서 산악인들 사이에 공식인증자로 통하는 사람이다. 홀리는 파사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오은선의 칸첸중가 ‘인증’을 ‘논쟁중(disputed)’으로 바꿨다. 만약에 홀리가 오은선과의 추후 인터뷰 결과 칸첸중가 등정을 ‘미등정’으로 바꾸거나 계속 ‘논쟁’으로 놔둔다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문득 남난희가 생각난다. 1986년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강가푸르나(7455m)에 올랐던 국내 여성 산악인 1세대다.
그녀 또한 예외 없이 에베레스트라는 열병을 앓았다. 1993년 국내 첫 여성들로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꾸려질 때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 탓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물러나고. 그녀가 빠진 원정대는 보란 듯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다. 당시 나이 37세. 그녀는 심한 상실감에 빠진다. 이후 결혼과 함께 지리산 청학동으로 들어가 찻집을 하던 그녀는 강원도 정선으로 옮겼다, 다시 지리산 화개골로 들어와 된장을 담그며 산다. “그동안의 산이 ‘등산(登山)’의 산이었다면 지금은 ‘입산(入山)’의 산이죠. 원래 우리의 산은 등산의 대상이 아니었잖아요” 서구의 알피니즘이 추구하는 등정주의에 매달려 속도와 높이에 갇혀 열병을 앓다가 지금은 ‘산을 버려 산을 얻었다’는 남난희다. 머잖아 오은선의 경우도 남난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전설의 산악인 남난희가 된장 담그는 까닭
입력 2008.01.08 13:18
여성 최초 백두대간 단독 등정, 세계 최초 히말라야 강가푸르나봉 등정.`
국내 대표 여성 산악인 남난희(52)씨의 일상이 7일 KBS 2TV `인간극장`을 통해 소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씨는 국내 여성 산악인 중 독보적인 존재였다. 1984년 겨울 76일간 혹한을 뚫고 여성 최초로 백두대간을 단독 종주했고, 1986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을 등정했다.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산 전설적인 산악인이었던 것이다.
현재 그녀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지리산 자락의 한 작은 마을. 높은 산만 오르던 그녀가 얕은 산자락에 터를 잡은 것이다.
방송에 따르면 그녀가 그 곳에 터를 잡은 계기는 결혼 때문이었다. 30대 후반에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산으로 들어왔다. 그 동안 남편은 출가해 스님이 됐고 가족은 두 식구로 줄었다.
혼자 생계를 책임지면서 남씨는 된장을 담으며 생활하고 있다. 지인들에게 조금씩 보내던 된장이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담그기 시작한 것이다.
주변에서 늘려보라고 하지만 남씨는 정해진 양만 담근다. 적은 수입이지만 두 식구가 먹고 살기에 충분한데다 그 정도가 남씨의 갖은 정성이 미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씨는 된장 하나하나에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 된장 담그는 것 역시 예술이라고 생각한단다.
된장 담그는 일외에 남씨가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 비록 낮은 산이지만 남씨는 여전히 산을 찾는다. 어느 정도 오르면 양말을 벗고 맨발로 산책하거나 나무를 꼭 안고 교감하기도 한다. 남씨는 "어떤 대상보다 산과의 소통이 잘된다"고 말했다.
한때는 높은 산만 고집했던 적이 있었다. 방송에서 그녀는 "그게 산의 전체인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등산을 할 때 산을 볼 줄 몰랐어요. 내가 목표로 하는 대상만 보였지 산을 볼 줄 몰랐던 거에요. 그게 산의 전체 인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입산해보니까 그건 산이 아니라 산의 일부일 뿐이었어요."
평생 산을 찾아 올랐던 한 산악인은 이제는 산의 품에 안겨 소통하고 교감하는 법을 익힌 것이다.
'산악인 ·남난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이 왔습니다...| (0) | 2011.12.17 |
---|---|
남난희 선생님댁에서.../펌 (0) | 2011.04.03 |
화개골의 된장 모자, 남난희·남기남 (0) | 2010.10.13 |
2008/01/14 지리산의 청정한 기운 담은 남난희 씨의 소박한 자연밥상 (0) | 2010.10.09 |
낮은 산이 낫다 - 남난희 (0) | 2010.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