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골에 들어온 여성 산악인, 남난희 씨. 동네 사람에게는 ‘된장 만드는 산악인’으로 통한다.
하동군 화개면 용강마을 산 중턱에 자리한 그녀의 집은 아침마다 자연의 조화 한가운데 있다. 백운산(광양) 정상이 훤히 내다보이는 마당 앞에 서면 골짜기를 따라 안개가 오르내린다. 남향인 집 앞마당에서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불일암이 코앞. 안개가 걷히면서 삼신산 능선 위로 해가 떠오른다.
그 조화 속에서 아침마다 사랑방에 군불을 지피는 남난희 씨를 만난다. ‘백두대간’ 현판이 내걸린 솟을대문을 빼꼼 열고 마당에 발을 들여놓으면 맞은편 사랑채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은 화개동의 아낙. 그녀에게서 가족이 모두 잠든 이른 아침에 마른 솔잎을 태워 밥을 짓는 ‘전 세대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요즘은 한창 메주를 발효시키는 때다. 일어나자마자 군불을 때고, 저녁 먹기 전에 한 번 더 불을 넣는다. 시골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된장을 직접 담가 먹게 되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청학동으로 내려가기 전에 그의 여성 ‘팬’ 하나가 “시골 생활을 하려면 된장과 고추장 만드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며, 메주 쑤는 법과 함께 콩 한 말을 보내주었다. 매뉴얼대로 만든 된장은 의외로 맛이 좋았다.
본격적으로 된장을 담그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정선의 한 폐교에서 열었던 자연학교 시절부터. ‘학교에 뭔가 도움 되는 일이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80kg짜리 콩 두 가마로 메주를 쑤었다. 강원도의 건강한 콩 덕분인지 아주 맛이 있었고, 다음 해엔 다섯 가마로 늘렸다. 화개동에서 만드는 된장은 자연의 산물이다. 강원도 정선에서 주문한 콩으로 12월 초에 메주를 쒀서 사랑방 처마에 매달아 한 달 정도 건조한 다음, 예전 방식대로 구들장에서 메주를 발효시킨다. 일주일에 한 번씩 뒤집어가며 한 달 정도 발효시킨 후, 음력 정월 대보름 지나 ‘말의 날’에 맞춰 장을 담그는데, 장 담그기 2~3일 전에 염기를 뺀 소금물을 준비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콩 열 가마니면 우리 두 식구 살아가는 데 딱 맞아요. 주문이 들어오는 양만큼만 만드니까 남을 염려도 없고, 그 이상 담글 필요도 없죠.” 강원도 정선과 지리산 화개동 생활에서 얻은 된장 만드는 기술이 이제 두 식구의 든든한 밥벌이다. 그녀가 화개에 살면서 가장 정성을 들이는 일은 ‘사람 하나 키워보는 일’이다. 그 ‘사람’은 늦은 나이에 결혼해 얻은 아들 기범 군. 엄마와는 딴판인, 화개골에서 통통 튀는 천방지축이다. “나는 방목해요. 나이가 열셋이나 됐는데, 자기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해야죠. 장래도 기범이가 하고 싶은 것 하도록 놔두려고요. 산에 곧잘 따라다닐 때는 산악인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한때는 유명한 스님이 된다고 하더니, 요즘은 MTB에 정신이 팔려 사이클 선수가 하고 싶다고…. 내년에 중학생이에요. 나는 실상사 대안학교에 가면 좋겠는데, 거기는 교복을 안 입는다고 싫다네요. 6학년이 되니까 교복 입은 중학생이 부러운가 봐요.” “방목이요? 그게 뭐예요? 아, 간섭 안 하는 거? 한 90%는 방목이에요. 아니다, 80%? 70%? 어머니는 아침마다 산에 가시거든요. 여기저기 마을도 자주 다니시고. 그러니까 어머니가 안 계실 때는 완전 방목이죠. 그런데 어머니가 집에 계실 때는 안 그래요. 게임도 마음대로 못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또 나는 공부에 별로 소질이 없는 것 같은데, 공부도 해야 하고. 특히 수학. 아, 그러고 보면 방목이 단 1%도 안 될 때도 많겠는걸요.” ‘방목한다’는 표현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한없는 애정의 반어법일 것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인 불일암 산행을 빼먹지 않는다. “성찰의 시간이죠. 빠르게 걸으면서, 암자에서 108배 드리면서, ‘내가 어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하고 되돌아보는 거죠.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씩 오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제는 단 하루도 거를 수가 없어요. 마른 잎사귀 하나,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 흐트러지는 구름 한 줄기가 이제는 모두 한가족처럼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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