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핸드메이드 제품 만들기 위해 재봉틀까지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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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30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의 한 바느질 공방. 열 명이 채 안 되는 30~40대 여성들이 재봉틀 앞에 앉아 있다. 홈패션을 주로 가르치는 이곳에서 오늘 배울 바느질은 간절기에 유용한 카디건 만들기.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자 회원들의 재봉틀이 일제히 드르륵 울린다. 노루발 밑에 들어간 천이 앞뒤로 왔다 갔다 하던 것도 잠시, 카디건 몸통이 완성돼 나온다. 주부 사지선(45)씨는 “재봉틀 하나면 못 만드는 것이 없다”며 바느질의 매력을 풀어놓는다.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 한복디자이너 이효재씨 등 살림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이들이 늘면서 집안 살림에 관심을 갖는 여성들이 바느질의 매력에 푹 빠졌다. 낡은 것도 고쳐 쓰는 친환경 움직임과 직접 만드는 재미를 찾는 디아이와이(DIY) 시장의 인기가 바느질에 대한 관심을 부채질했다.
회원 4만9000여명을 거느린 온·오프라인 바느질카페 ‘바느질세상’의 운영자 판명희씨는 “삯바느질로 가난의 상징이었던 바느질이 어두운 이미지를 벗고 이젠 핸드메이드 예술품의 영역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바느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재봉틀 업체에서도 이런 변화를 주목한다. 부라더미싱의 홍보팀 김상백씨는 “수선 목적으로 쓰이던 재봉틀이 요샌 창작용으로 쓰이고 있다”며 “5~6년 전만 해도 30만~40만원대의 수선용 재봉틀이 잘 팔렸다면, 지금은 다양한 기능을 갖춘 70만~150만원대의 고가 제품들이 인기”라고 전했다.
최근 부라더미싱은 우리보다 바느질 시장 규모가 큰 대만·일본의 추세에 맞춰 바느질 복합문화매장 ‘소잉 팩토리’를 열었다. 바느질을 가르치는 공방이자 바느질 부자재를 한번에 쇼핑할 수 있도록 만든 쇼핑공간이다. ‘앗 뜨거워’ 할 만큼 폭발적인 증가는 아니어도 바느질의 인기가 애호가층의 취미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달라진 마케팅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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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젊은 주부들은 아토피 걱정을 덜어주는 유기농 면제품을 이용해 직접 출산용품을 만드는 게 유행이다.
‘아이옷 만들기 디아이와이’ 바람을 타고 지난해와 올해 사이 바느질 관련 서적도 부쩍 늘었다. 탤런트 김현주씨가 쓴 <현주의 손으로 짓는 이야기> <바느질하는 남자, 놀아형> <에코맘 윤아영의 아이옷+장난감 만들기> 등이다. 바느질은 한 땀 한 땀이 시간이고 정성이다 보니 내 아이를 위한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은 엄마들에게 직접 만든 옷은 의미가 남다르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둔 주부 박영미(33)씨도 아이에게 배냇저고리를 직접 만들어 입혔다.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주면 의미있는 선물이 될 것 같아 임신 때 미리 만들어뒀어요.”
옛날 엄마들이라고 달랐을까. 첫아이를 낳았을 때 직접 옷을 만들어 입혔다는 주부 사지선씨는 “이젠 고3이 된 아이에게 사흘 걸려 만들어준 투피스가 내 최고의 작품”이라고 했다. “작업 속도는 더뎌도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만족감이 크다”는 게 바느질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다. 엄마의 솜씨는 그렇게 아이와 함께 자랐다.
의상이나 패션 소품을 만들기 좋아하던 20~30대 여성들이 옛날 어머니들처럼 알뜰살뜰한 신부의 기본 소양으로 재봉틀을 챙기는 모습이 되레 신선하다.
값싼 공산품에 질린 사람들 손맛에 빠져
웨딩플래너 정지은(30)씨는 드레스를 만들고 싶어 3년 전부터 바느질을 시작했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꿈이거나 만든 드레스를 직접 입을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다. 직업상 드레스를 자주 접하다 보니 내 손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호기심이 발동했다. “드레스는 만들려면 아직 멀었어요. 그래도 커플티를 만들어 마음에 드는 신랑신부 고객에게 선물한 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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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이 집중력을 키워주는 취미활동이다 보니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어 정신건강을 위해 한다는 이들도 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게임을 즐겨 했다”는 주부 조현정(36)씨는 “바느질을 하면서 화를 누그러뜨리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재정설계사인 가밀라(별칭·49)씨는 바느질로 갱년기 우울증을 날렸다. 10년 동안 퀼트에 빠져 살았던 그는 인대가 끊어질 정도로 몰입하다 바느질을 그만뒀다. 그러다 1년 반 만에 재봉틀을 이용한 손바느질을 다시 시작했다.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 등공예·칠보공예 등 다양한 것을 해봤지만 바느질만큼 손맛이 나는 취미가 없더라고요.”
바느질을 하는 이유와 목적은 달라도 바느질하는 사람들의 만족감은 대체로 비슷하다. 물건을 사서 쓰는 것보다 경제적이고, 나만의 핸드메이드 제품을 가질 수 있으며, 집중력이 필요해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것. 더불어 환경과 건강을 지켜준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는다.
같은 이유로 바느질은 세계에서도 사랑받는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자료를 보면, 영국·오스트레일리아·미국은 바느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가정용 재봉틀 매출이 몇 년 새 급성장하고 있다. 그 원인을 조사해보니 친환경, 디아이와이, 수공예품의 인기 같은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바느질하다 보면 “화가 저절로 삭혀져”
한살림 서울북부지부 회원들의 친환경 바느질제품 만들기 모임인 ‘목화송이’는 천으로 된 개짐(생리대의 순우리말)을 만들어 아름다운가게와 한살림에서 판다.
주부 한경아(49)씨는 “일회용 제품을 쓰면 짓무르고 가려워 개짐을 사용하게 됐고, 개짐 보급을 위한 바느질 모임까지 만들어 하게 됐다”고 했다. 손으로 만든 개짐을 쓰면 일회용을 쓸 때보다 장점이 많다. 여러번 빨아 쓸 수 있어 경제적이고, 일회용 제품 쓰레기도 줄일 수 있으며, 건강도 챙길 수 있다.
여성의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바느질은 여러 곳에서 진행중이다. 두레생협 ‘한땀두레’, 여성주의 자활공동체 ‘마고할미네’ 등이 목화송이처럼 개짐이나 이불 등 친환경 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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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틀 하나면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버려진 낡은 천을 이용해 쓸모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바느질 리폼도 환경에 도움이 된다.
한경아 주부는 “아름다운가게에서도 소진되지 못하는 유행 지난 옷을 리폼해 팔리는 제품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환경을 생각하는 일은 귀찮고 불편하다고 생각하지만 바느질하는 것만으로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소 재봉틀을 특별히 아꼈다는 고 박경리 선생은 ‘바느질’이란 시에서 잠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를 쓰고 바느질을 했다고 했다. 시인은 한 땀 한 땀 기워나간 바느질 흔적을 시간 따라 쌓인 글줄로 비유하기도 했다.
“<토지>가 실패하면 재봉틀로 삯바느질을 하며 살겠다.” 작가가 입에 풀칠하기 위해 믿은 것도 글재주가 아닌 재봉틀이다. 궁핍했던 시절,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이 그렇게 바느질에 기대 살았다. 이제 가난의 시절을 지나온 바느질은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로하스적인 라이프스타일까지 잇는다.
실과 바늘을 쥔 정직한 손맛은 그렇게 우리에게 의미있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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