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의 무명 화가들이 민중의 마음을 담은 민화를 그릴 때, 여염집의 아낙들은 실로 그림을 그렸다.
한 올의 실을 뽑아 봉황도 그리고 오동나무, 모란꽃도 그렸다.
어눌하고 소박한 형태였지만 정성만큼은 빈틈없이 촘촘했다.
이 구봉침(九鳳枕) 도안은 오동나무에 봉황이 깃드는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세화(歲畵)인 민화에서 기원하였다.
민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봉황에 7마리의 새끼 새를 수놓아 다산의 의미를 기원하였고,모란을 수놓아 부귀의 소원도 함께 표현한 점이다.
손바닥만한 공간에 19세기에 융성했던 민화적 세계관을 모두 압축하여 재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수컷인 봉(鳳)은 좀 더 화려하게, 암컷인 황(凰)은 작고 수수하게 수를 놓았다.
문득 영화의 한장면이 떠오른다. 억울하게 죽은 자식에 대한 오열을 삼키며, 부지런히 뜨개질을 하던 어머니였다. 하얀 레이스는 손끝을 따라 고운 무늬를 만들어 내고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슬픔 때문에 곧 무너 질 것 같은 그런 장면이었다. 그랬다. 그렇게 짜이고 있었던 것은 산산이 무너지고 부서지는 그녀의 마음이었다. 그렇게라도 엮어야만 지탱할 수 있었던 그녀의 삶이었던 것이다. 그 영화 때문일까?
문득 호롱불 앞에서 밤을 지세워 수놓으며, 시름을 내려놓았을 어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라 화려하고 고운 자수 빛깔이 오히려 처연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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